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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를 펴낸 래리 고닉 저자 인터뷰



* 이 글은 2010년 궁리출판 편집부에서 저자와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다듬은 것입니다.

* 사진 제공: 래리 고닉


제1장. 하버드의 수학도, 만화를 만나다


Q. 한국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독자 여러분 그리고 곧 제 책의 독자가 되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만화가 래리 고닉입니다.


Q. 이력이 독특합니다. 하버드 대학교 수학과를 우수하게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수학과 박사과정을 밟다가 홀연 그만두고 만화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계기는 무엇인가요?


A. 말씀하신 것처럼 대학과 대학원에서 수학을 전공했지만, 항상 무언가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남는 시간에 몇몇 작은 만화들을 그려보곤 했습니다. 1970년에 친구 스티브 애틀러스가 저에게 자기가 쓴 원고를 보여주며 함께 만화책을 만들자고 제의해왔어요. (이 책은 1971년 『Blood From a Stone, A Cartoon Guide to Tax Reform』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스티브의 제안으로 함께 일을 시작하면서, 긴 이야기를 그림에 간결하게 담아내는 것에 매료되었습니다. 두 페이지 분량의 만화를 그리자마자 저는 이것이 저를 위한 일이라는 걸 알았지요. 그렇게 전업 만화가가 되었고, 지금까지 40년 넘게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Q. 첫 책을 출간하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요?

A. 물론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당시 ‘역사만화’라는 분야는 미개척지였기에 제 작업은 새로운 시도였거든요. 출판사들도 이 분여를 생소하게 여겼고, 독자들도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모르더군요. 처음에는 신문에 연재하다가 기회가 닿아 1978년 샌프란시스코의 언더그라운드 출판사에서 이 시리즈의 시초 격인 역사만화 아홉 권을 펴냈습니다. 물론 그 책들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덴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요.


그리고 드디어 1980년, 역사만화 시리즈가 유능한 편집자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이었던 재클린 오나시스였습니다. 오나시스 여사는 제 책이 더블데이 출판사에서 나오도록 힘썼습니다. 책 홍보도 그녀가 담당했죠. 결국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요. 이 일은 제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오나시스 여사를 만나기 전까지 저는 한낱 고군분투하는 무명 만화가에 지나지 않았거든요. 그녀를 만나고 나서 만화가로서의 삶이 안정될 수 있었습니다.


제2장. 무명 만화가, 재클린 오나시스의 눈에 들다


Q. 재클린 오나시스가 작가님의 운명을 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재클린과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그녀가 역사만화를 펴내는 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고, 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합니다. 함께 작업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A.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디렉터로 있던 지인이 오나시스 여사에게 제 책을 소개한 일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제 책을 흥미롭게 본 오나시스 여사가 더블데이 출판사에서 펴내려고 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그녀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심장이 뛰었어요. 연락해야겠다고 확신하기까지 한 시간 정도 고민하며 서성거렸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고, 비서가 전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재클린 오나시스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답니다.

그녀는 만화 편집 작업도 작업이지만, 만화가로서의 제 경력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블데이에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첫 권이 출간되자, 오나시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가졌다고 할 수 있는 고민상담 칼럼니스트 앤 랜더스에게 책을 보내 홍보에 힘썼습니다. 그 결과, 랜더스의 칼럼에 제 책이 극찬과 함께 소개되었습니다. 이 일은 제 모든 것을 달라지게 했습니다. 제 전화는 불이 났고, 책은 서점에서 동이 났어요.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마치 로켓을 타고 달리는 것 같았답니다.



Q. 그렇게 시작된 세계사 만화 작업을 30여 년 만에 드디어 마무리하셨습니다. 긴 마라톤을 완주한 느낌일 것 같은데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A. 맞아요. 마라톤이란 말이 제격이죠. 때로 만화 작업이 일상에서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었는데, 바로 오나시스가 연락해올 때였답니다. 한 작업을 마친 다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민은 ‘다음엔 무슨 작업을 하지?’입니다. 세계사 시리즈를 마무리했을 때엔 공허감에 중심을 잃은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것도 곧 사그라지더군요. 새 만화책 집필로 정신없이 바빴던 덕이죠.



제3장.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세계사를 말하다


Q. 특히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5』의 경우, 300여 년의 근현대사가 한 권에 담겨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프랑스 혁명 이후의 복잡한 세계사를 한 권의 만화책에 훌륭하게 담아내셨는데요. 특별히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A. 저는 노예제의 국제적 폐지에 특별히 주목했습니다. 영국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들에 의해 일정 부분 유지되었고, 강요된 노예무역이요. 이건 지적․정치적․경제적 요인이 함께 만들어낸 흥미로운 이야기예요. 한쪽에는 노예제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보는 고매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쪽에는 노예제를 불공평한 경쟁이라고 생각하는 거대 산업에 지배받는 사람들이 있었고요. 경제적 측면을 생각하는 부류도 있었는데, 이들은 노예제가 (임금노동보다 덜 생산적이어서) 경제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하며 자본가의 혐오감을 합리화한 측면이 있지요. 종교에 적대적인 ‘계몽된’ 이들은 노예제가 자연권에 반한다고 보았고요. 일부 폐지론 운동에 가담한 종교 지지자들도 있었습니다.


노예폐지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던 자유로운 생각들은 결국 근대세계를 만들어낸 다른 유사한 사상들로 이어졌습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특히 그러했죠. 둘은 산업은 좋고 노예제는 나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성장’을 외치는 신화가 한계점에 다다른 걸 보고 있습니다. 또 민족성과 종교에 기반을 둔 강력한 (혹은 잠재적 영향력이 있는) 정치적 충격으로의 회귀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게 모든 사람을 어디로 이끌까요? 물론 저는 역사가이지 예언가가 아니랍니다.



Q. 혹자는 당신의 작품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세계사’라고 평가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A. 극찬인걸요. 저는 어떤 사건이든 언제나 각 당사자의 시선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점이 유머의 원천이 되기도 해요. 국제 관계에서 (혹은 인간관계에서) 한쪽은 다른 쪽을 완벽하게 오해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건 실제로 놀라움을 낳을 수 있어요.



Q.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5』에서 남북한의 긴장 관계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덧붙여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냉전의 종식을 보고 싶습니다. 제 인생의 대부분을 이 냉전과 함께 살아왔거든요.



제4장. 만화가의 일상과 가치관


Q. 작가님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풍자’와 ‘해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책을 손에서 뗄 수 없게 하는 유머가 가득한데요.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는지, 그리고 특별히 유머를 살려내는 노하우가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A. 저는 저만의 관점을 가지고 작업에 임한답니다. 이는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고 유머를 구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풍자적 표현을 위한 다른 소스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차 없이 원고를 다듬는 것인데요. 완성된 초고를 잘라내고 잘라내고 또 잘라냅니다. 이렇게 원고를 손보는 과정에서 사건과 사건 사이의 풍자와 해학이 만들어집니다. 제 생각에는 이렇게 놀랍고도 행복한 발견들이 가장 좋은 해석을 이끌어내지 않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새롭고 번뜩이는 영감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Q. 만화 작업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또한 작업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요?


A. 만화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여러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만화가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의 리듬을 만들어낼 수 있지요. 한 페이지에 동시에 많은 이미지가 담긴다는 사실은 독자가 하나의 이미지에 오래 머물 수도 있고, 둘 이상의 이미지를 비교할 수도 있게 합니다. 이러한 만화의 특별한 장점은 애니메이션이나 평면 텍스트 작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지요.


저에게는 늘 본문의 텍스트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최고의 도전입니다. 대부분의 만화책에서 동일한 캐릭터가 컷에서 컷으로 반복되고, 그림의 흐름이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제 작품은 종종 사건을 통해 아주 빠르게 전개됩니다. 아마도 모든 컷에 새로운 이미지가 있을 거예요. 만화는 텍스트로만 이야기하는 작업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말의 홍수는 페이지가 회화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너무 복잡해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입니다. 마지막 순간, 종이에 잉크를 칠하는 순간까지 글을 다듬는답니다.


Q. 책을 집필할 때 무엇보다 시간 관리가 중요할 텐데요. 노하우가 있다면요? 덧붙여 만화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A. ‘일단 시작하면 계속 이어가라. 집필하는 동안에는 편집하지 마라. 먼저 문장을 쓰고 단락을 만든 뒤 검토하라’. 이런 원칙이 없다면 일을 시작한다는 게 언제나 고역일 겁니다. 그리고 만화가들에게 조언하자면, 우선 대사를 쓰고 그다음 그 주위에 말풍선을 그리세요. 글은 남는 공간에 아무렇게나 배치하는 요소가 아니라 이미지의 일부이니까요.


Q. 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나요?

A. 모든 분야를 다양하게 읽습니다. 특히 논픽션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전기와 잘 역사서를 좋아합니다. 전기는 과거를 재창조하는 데 가장 좋은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존재를 바로 이 자리에서 보여주기 때문이죠.


Q. 혹시 좌우명이나 인생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또한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A. 평온한 내면을 유지하라. 깊게 숨을 들이마셔라. 이는 “다 쓰기 전에는 고치지 마라. 그리고 그것을 평가하기에 앞서 한 번 더 살펴보라”는 제 모토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또 매사에 염려하고 걱정하는 편이라 늘 스스로에게 ‘평상심’을 갖자고 되뇌곤 하죠. 그리고 이 시리즈가 애니메이션화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5장. 역사만화 제대로 즐기는 방법

Q. 작가님의 만화는 한국에서 학습용으로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입니다. 부모들이 이 시리즈를 자녀와 함께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요?


A. 아이들이 정말로 부모와 함께 책을 읽고 싶어할까요? 이 시리즈에는 10대 독자들이 놓칠 만한 점들, 반복해서 읽은 뒤에야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들어오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너무 일찍 책 내용을 설명해주기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행간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이 시리즈가 하버드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를 비롯해 고등학교 및 기타 교육기관에서 부교재와 추천도서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책들의 어떤 특장점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하시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특히 이 책들을 수업시간에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조언해주십시오.


A. 이 시리즈가 여러 학교에서 추천도서로 꼽는 것은 그만큼 저와 비슷한 역사관을 가진 선생님들이 많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역사적 사건들 사이의 관계를 더 명확하게 그려 보여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나 내 설명과 의견을 싫어하는 선생님들도 있답니다.


이 책을 수업시간에 활용하는 데 있어 제가 선생님들에게 알려줄 팁은 사실 없답니다. 오히려 제가 선생님들에게 여러 활용법을 얻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 꼽자면 가능한 한 부록에 있는 참고문헌들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하나하나의 주제에 대해 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래리 고닉은 아주 똑똑하고 해학이 넘치면서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복잡한 현상을 꿰뚫어 간결명료하게 정리하는 분석력과 종합력에서도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작가겠고요. 제게 고닉은 단순히 만화가가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역사의 높은 조망점에서 본 값진 통찰을 안겨주는 역사가입니다.”

―옮긴이 이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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