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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 |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을 펴낸 주은경 저자 인터뷰



Q. 독자 여러분에게 첫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펴내게 된 계기를 들려주세요.


A. 안녕하세요? 주은경입니다. 정년퇴직 후 꼬박 2년 동안 준비한 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2020년 말에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 원장이라는 직책을 내려놓고 그동안 업무에 밀려서 못했던 ‘나의 시민교육 현장 이야기’를 써보자 마음먹었어요. 그 결과물이 이 책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입니다. 저는 정년퇴직이 은퇴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단지 사회가 정한 어떤 선을 넘기는 거죠. 이 책이 퇴직 후 저의 두 번째 기획이자 결실이라는 게 기쁘고 설렙니다. (퇴직 기념 첫 번째 기획은 나이 오십 넘어 시작한 그림으로 준비한 첫 개인전이었고요.^^)

제 직업은 시민교육기획자입니다. 저에게 ‘시민교육’이란 “나의 진정한 기쁨과 세상의 깊은 허기가 서로 만나는 장소”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오랫동안 몸담은 시민교육 현장에서 어떤 질문이 있었고, 그것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어떤 경험과 실천을 했는지, 어떤 충만감과 기쁨,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는지 돌아보고 정리했습니다. 제 이야기가 이 길을 가는 동료들에게 작은 선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이 책을 쓴 이유는 또 있어요. 평생교육과 시민교육 기획자, 교육학과 연구자나 교수, 학생들 앞에서 발표자로 여러 차례 선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한두 시간 안에 제 얘기를 다 할 수 없는 거예요. 그 아쉬움을 이 책에 담았어요. 책을 통한 소통이 훨씬 깊고 강력하잖아요.



Q. 다큐멘터리 방송작가로 일하다 1999년부터 성공회대학교 사회교육원, 참여연대 부설 교육기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시민교육기획자로 일하셨습니다. 방송과 교육기획, 두 일의 공통점과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1994년부터 15년 동안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며 〈추적 60분〉, 〈인물현대사〉, 〈역사스페셜〉 등을 만들었어요. 방송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템 기획부터 촬영구성안, 편집구성안, 최종 원고까지 모든 단계에 관통하는 관점과 시선이에요. 그 밑바탕에 필요한 것은 사회에 대한 깊은 시선과 애정, 질문하는 능력이고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 있는가, 그것에 촉각을 세워 고민하고 구성하고 표현해야 하는 방송작가의 일이 제가 시민교육기획자의 길을 가는 데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시민들 누구나 다양한 직업이나 경험을 토대로 기자, 편집자, 작가,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당연히 시민교육 기획도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사랑하는 힘, 질문하는 능력이 있다면 말입니다.



Q. 책에 캐나다에서 보낸 3개월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필요한 약을 조제해 먹듯 캐나다의 다양한 학습 공간을 찾아다녔다”고 쓰셨는데요, 캐나다에 가게 된 이유와 그때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A. 2007년 초 방송 일을 하다가 섬유근통증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했죠. 일생 처음으로 일을 놓고 장기 휴가에 들어갔죠. 그리고 아무 준비 없이 캐나다로 후다닥 떠났습니다. 쉬는 동안 혼자 외국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지만, 일부러 어학원은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만 다니는 교회나 절에도 가지 않았고요. 대신에 다양한 학습공간을 찾아다녔어요. 큰 교회, 작은 교회, 대학부설 사회교육원의 영어교실, 동네 작은 커뮤니티 영어교실, 대학도서관, 시립도서관, 동네도서관을 마치 필요한 약을 조제해 먹듯 일정을 짜서 이용했어요.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목사의 설교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사람들과 노는 게 즐거워서 교회에 나갔어요. 큰 교회에서는 일요일 예배가 끝나고 근처 대학 운동장에 모여 축구를 했어요. 20대부터 40대까지 캐나다 사람은 물론 멕시코, 아르헨티나 출신, 그리고 아프리카 스와질란드에서 유학 온 20대 남자도 있었어요. 작은 교회는 작은 대로 분위기가 따뜻했고요. 목사님 얘기가 끝나면 1 대 1로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시립도서관, 동네도서관에서는 여권과 함께 자신의 주소가 적힌, 예컨대 내 이름으로 받은 우편물만 있으면 대출증을 발급해주었어요. 도서관 벽보를 보고 사서들이 진행하는 독서모임에도 가보았죠. 말은 못 알아들어도 사람 느낌이 좋고 분위기가 편안했어요. 대학의 정규 수업도 청강했어요. 그 대학의 중앙도서관, 법대도서관, 학생회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죠.


저는 영어가 꽝인 사람이에요. 그럼에도 캐나다의 도서관, 대학, 교회는 시민교육기획자와 방송구성작가의 ‘호기심’ 하나로 휘젓고 다니는 한국 아줌마에게 문을 열고 환대해주었어요. 그 경험이 좋은 자극이 되었죠.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 이주노동자들은 일터 외의 장소에서 한국인들을 어떤 방식으로 만나고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평생학습관, 도서관, 시민교육공간은 외국인, 이주민과 그 가족들이 한국인들과 만나고 놀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Q. 책의 앞날개에 저자 소개글과 함께 〈자화상-춤추는 도시의 노마드〉가 실려 있어요. 책표지에서도 선생님의 그림을 만나볼 수 있고요. 2020년에 정년퇴직을 하면서 개인전을 연 것도 하나의 기획이었어요. 그림 그리기와 전시가 선생님께 선사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A. 그림은 저에게 좋은 친구예요. 2010년 제가 기획한 수업 〈서울드로잉〉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림이라는 좋은 친구가 생겼어요. 그림을 그리면 그리는 대상에 깊이 몰입해 하나가 되는 즐거움이 있어요. 답답하고 슬프고 벅차오를 때 깊은 위로를 받았죠.


개인전은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10년 동안 그렸던 40여 점의 그림들. 장롱 위, 침대 밑에 쌓인 액자들을 한번은 털고 싶었어요. 동시에 그림 그리는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두려워 말자. 그냥 좋아서 그린 그림들로 개인전을 할 수 있다’고 말이죠.


개인전을 하면서 새삼 발견한 게 있습니다. 배움을 통해 맺은 인연 덕분에 내 인생이 참 즐겁고 행복했구나 하는 깨달음이요. 제 그림 중에 〈나의 다순구미 마을〉이 있는데요. ‘다순구미’란 ‘따뜻하고 양지바른 언덕’이란 뜻이에요. 저에겐 시민교육이 곧 ‘다순구미 마을’, 힘들 때 찾아가 뭉개고 수다 떨며 위로받았던 친구,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공부하고 궁리했던 동료, 크고 작은 저항을 작당했던 동지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전은 그림을 통해 지난 시간과 인연을 기억하고 감사를 나누는 리추얼이었죠.


Q. 책에서 ‘느슨한 공동체’를 강조하셨어요. 왜 ‘느슨한 관계’가 우리 삶에 필요할까요? 선생님께는 어떤 ‘느슨한 관계의 친구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사회인가. 이것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 말이 있어요. 학연, 지연 관계 없이 서로 몰랐던 개인들이 친밀함을 쌓고, 느슨하게 사회적 우정을 쌓을 수 있는 편안한 배움의 공간이 필요해요. 소소한 예술모임, 독서모임, 도서관, 평생학습관, 시민단체에서 깊게 만나고 서로 지지하며 함께 공부하는 경험. 이것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시민들의 삶을 더욱 매력 있고 풍성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 소모임에 참여하면서 느슨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춤추는 시민서클 ‘도시의 노마드’,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 모임 ‘그림자’, ‘느티나무 시민연극단’, 삶을 예술로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감우산방 친구들’, 나이듦과 돌봄을 공부하는 ‘노년서클’, 독서서클 ‘와인’. 그런데 5년, 10년을 함께 해도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직업이 뭔지, 배우자가 있는지 물어보지 않아요. 그런데 아주 깊은 소통을 하죠. 큰 힘이 돼요.


이 책을 보면, 퇴직 후 젊은이들 못지않게 왕성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공부하고 글 쓰고 자원활동을 하는 인생 선배들, 시민연극단으로 무대에 오르고, 한강에서 춤추는 워크숍을 기획하고, 자신의 관심사를 살려서 역사, 정치모임을 하는, 잘 노는 멋진 친구들이 많이 소개돼 있답니다. 이들 모두 ‘기획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죠.


Q.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참여연대 아카데미에서 ‘민주주의학교’, ‘인문학교’, ‘시민예술학교’를 기획, 운영하셨는데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셨지만 이 세 학교에서 특별히 자랑하거나 소개하고 싶은 강좌가 있다면요?

A. 하하. 너무 많은데 어떻게 하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디에도 없는 걸 새로 창작한 강좌예요. 2010년에 기획했던 〈에로스의 인문학〉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에로스가 어떤 의미인지, 개인뿐 아니라 사회와 역사의 관점에서 충만한 에로스는 어떤 힘이 있고, 그것이 억압됐을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함께 생각하는 강좌인데요. 처음에는 이런 걸 왜 시민단체에서 하냐는 놀라운 반응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레전드 프로그램 중 하나로 통한답니다.

2012년 가을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기에, 소심하기 그지없는 보통 시민들이 뭐라도 꼼지락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어요. “대단한 결과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장난치고 놀아보자.” 혼자 하기 힘든 작은 저항도 사람들과 함께 꼼지락 하면 정말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됐죠.


또 세월호사건이 일어난 2014년 가을 〈기억을 기억하라-기억, 평화, 민주주의〉. 강의와 워크숍, 연극을 결합한 기획인데 시작 5일 전 신청자가 네 명뿐이었어요. 기획자는 이럴 때 피가 마르고 잠도 못 자요. 신문사에 보도자료 보내고 인터뷰 기사도 싣고, 아는 교사들에게 전화하고, 그렇게 해서 모인 사람이 10명이었어요. 직장인, 인권단체 활동가, 교사들이었는데, 소수였지만 정말 깊고 풍성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에 이 강좌는 다른 기획으로 발전했죠.


2017년, 10여 명의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물건이나 사진으로 전시회를 한 〈인생사 전시회〉도 기억에 남습니다. 2017년부터 3년 동안 시도했던 ‘와하학교’도 있는데요. 와하는 why&how를 줄인 말이에요. 즐거운 삶, 유쾌한 변화를 위해 시민들이 함께 궁리하고 시도해보기 위한 프로그램이었어요.


Q. 거리에서 춤추고 그림 그리고, 연극 무대에 오르는 시민들까지, 그동안 시민교육과 예술을 결합한 다양한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시민예술가’를 중요한 키워드로 삼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시민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충만감’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고 연극을 하며 “살아 있다는 것을 즐기는 능력을 몸에 익힌” 시민은 단단한 자기 삶의 중심을 가질 수 있어요. 기쁨과 충만감은 소심함과 두려움을 걷어냅니다. 이것은 강한 자아를 만들죠. 강한 자아와 자존감이 있으면 돈과 권력 앞에 당당할 수 있어요. 시민의 자존감은 민주주의를 위한 중요한 힘이죠.


시민예술은 본질적으로 공동체 예술입니다. 공감과 치유, 존중, 격려, 환대의 커뮤니티를 경험하거든요. 예술로 소통하는 모임에서는 안전하게 서로를 깊이 만날 수 있어요. 시민들은 예술교육, 예술을 놀이로 경험하는 과정에서 시민성과 시민력이 향상된다고 생각해요.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성, 시민력에는 타인의 처지에 대해 공감하는 힘,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존중하며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힘, 연결하고 협력하는 힘, 참여하고 연대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힘, 나아가 불의에 저항하는 힘이 필요하죠. 이 힘을 키우는 데 시민의 예술경험, 예술교육은 큰 역할을 합니다.


Q. 최근 지리산 자락에 머물고 계시는데요, 요즘에는 어떤 배움과 놀이, 활동을 기획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그동안 책 쓰느라 못했던 연극 대본 쓰기를 해보려 해요. 10월에 이미 시민연극단 친구들과 그 과정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이 나왔으니, 문화기획자, 시민교육기획자는 물론 도서관 프로그램 기획자, 그리고 다양한 모임을 운영하는 분들과 북토크를 하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라고요. 다양한 ‘기획자 교육과정’을 해보고 싶어요.


Q. 끝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 이 책은 시민교육에 대한 이론서나 매뉴얼 북이 아니에요. 기획현장에서의 경험을 영상 아닌 글로 풀어낸 다큐멘터리에 가까워요. 나의 이야기가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경작하고 싶은 사람들, 함께 놀고 배우고 공부하는 공간을 좋아하는 시민들, 그리고 소소한 모임을 만들어 작은 변화를 작당하는 사람들에게 미약하나마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함께 공부하고 서로 배우며 친구가 되고 모르는 사람을 환대하는 공간을 더욱 확장하기 위해 더 많은 분들을 만나고 싶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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