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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 | 『위로하는 애벌레』를 펴낸 이상권 저자 인터뷰



Q. 에세이 『위로하는 애벌레』를 펴내셨습니다. 어떤 책인지 소개해주신다면요? 이 책은 주로 경기도 광교산 주변, 전남 해남에서 집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글을 쓴 장소가 집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해요.


A. 저는 광교산 자락에 살고 있어요. 도봉산 품에 안겨 살다가 15년 전 이곳으로 온 후 세 번의 이사를 했어요. 그 시간을 애벌레와 함께했지요. 우리에게 보이는 애벌레의 시간은 참으로 하찮고 단순합니다. 그러나 그들과 하루만 가까이하다 보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펼쳐집니다. 애벌레들이 거의 마법사처럼 보이죠. 그런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애벌레들과 함께해야 해요. 그렇게 글을 써야 해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광교산 자락에 있는 집에서 썼고, 후반 작업을 해남 인송문학촌에서 3개월 체류할 때 마무리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느낌이 예상만큼 우러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얼른 애벌레를 만나러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애벌레를 반려동물처럼 들고 다닐 수도 없잖아요? 가끔 밤에 애벌레를 만나기 위해 숲에 가기도 합니다. 그때의 설렘은 아주 특별하답니다. 집에서 같이 사는 애벌레는 날마다 어디론가 사라져요. 그럴 때마다 숨바꼭질하듯이 애벌레를 찾아다닙니다. 그런 과정이 애벌레라는 우주를 여행하는 시간이었죠.



Q. 『위로하는 애벌레』는 애벌레를 바라보며 쓴 에세이입니다. 숲이나 도심에서 애벌레를 오랫동안 만나오셨지만 집 안에도 ‘애벌레 방’이 있으시지요?


A. 저는 전원주택에 살아서 늘 애벌레하고 살아갑니다. 마당에서 숲에서 애벌레를 만납니다. 저희 집 2층에는 애벌레가 사는 작은 방이 있어요. 그곳에 와서 보면 실망하지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제 방식이 그래요. 저는 한두 마리의 애벌레만 집으로 불러들이고, 가급적 좁은 곳에다 가두지 않아요. 그냥 나뭇가지를 크게 잘라와서 물통에다 넣어두면 끝입니다. 저는 똥만 치우고, 말동무해주는 거지요. 그러면 애벌레는 자신의 삶을 역동적으로 보여줍니다. 저는 애벌레를 보고 침묵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우리 인간이 잃어버린 순수를 느낍니다. 생명의 근원을 느끼죠. 그래서 저는 애벌레에게서 문학을 배우고, 예술을 배운다고 말하고 싶어요.



Q. 이 책에는 작가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열두 마리의 애벌레가 등장합니다. 이 중 몇몇 친구들을 소개해주신다면요?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A. 사실 저는 애벌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요. 제가 수영을 좋아하는데요, 수영장이 아니라 강에서 하는 수영을 좋아합니다. 강에서 헤엄을 치다 보면 뭔가 물컹한 게 만져질 때가 있어요. 가끔 애벌레가 제 몸에 붙어 있을 때도 있구요. 그럴 때마다 무척 놀라죠. 그런 제가 애벌레를 가까이하다니, 참으로 놀랄 만한 일입니다.


애벌레는 약한 존재예요.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입니다. 저도 인간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애벌레를 보면서, 애벌레가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애벌레를 제 삶하고 연결하려고 했지요.


‘주홍박각시나방 애벌레’는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애벌레예요. 꼭 살모사처럼 생겼거든요. 찬바람이 부는 날 그 애벌레가 우리 집 마당에 나타났어요. 그때 어디선가 까치들이 날아오는 겁니다. 그중 한 마리가 물어뜯었어요. 그래도 애벌레는 저항하지 않아요. 아니 못 하지요. 그냥 물봉선 줄기만 붙잡고 버티는 거죠. 제가 다급하게 까치들을 쫓았어요. 근데 몸에 상처 하나 없었어요. 와아, 하고 놀랐습니다. 물렁물렁한 살이 갑옷보다 더 질기다니! 그때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강남 교대 앞에서 애벌레 한 마리를 만났어요. 차도로 뛰어드는 녀석을 잡아 작은 봉투에 넣어서 집에 왔어요. 그러면서 저의 어린 시절, 온갖 생명체들하고 놀았던 그 잊혀진 시간들이 다 복원되더라고요.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일도 떠오르고요. 이 글은 저와 애벌레들과의 그런 인연을 기록한 책이기도 합니다.



Q. 이 책은 선생님의 글에, 딸이자 삽화가 이단후의 그림이 더해져 완성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린 이단후 삽화가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A. 딸은 미술을 전공하고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자신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힘들어하기도 해요. 저는 아빠로서, 이 사회의 선배로서, 그 청년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애벌레 글을 쓰면서 청년들 생각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딸에게 그림을 부탁했어요. 거의 60점이 넘는 그림을 그리는데, 그때는 출판사와 계약하기 전이라서 제가 우선 약간의 작업료를 전하며 협업을 제안했어요.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압니다. 다행스럽게도 제 생각보다 그림을 잘 그려주었고요. 딸이 어린 시절에는 애벌레를 많이 그렸거든요. 저랑 같이 애벌레를 키우기도 했고요.


제가 스무 해 전에 펴낸 동화 『애벌레가 애벌레를 먹어요』(웅진)는 딸 덕분에 세상에 나왔어요. 딸과 숲에서 보낸 시간이 이 책을 쓴 계기가 되었거든요. 어른이란 굳어버린 지식으로 무장하고 사는 참 답답한 존재입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딸은 그걸 깨우쳐주었고, 그 후로 저는 생태에 대해 절대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아요. 그건 어른 인간의 편협된 생각이거든요. 이 책을 준비하면서 두려움도 있었는데요. 어린 딸이 저한테 주었던 무한한 상상력을 떠올리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어린 딸은 제 자연의 스승이었던 거지요. 이 책을 통해서, 어른이 된 딸이 애벌레처럼 살아가는 힘을 믿고,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의 모든 청년들이 그랬으면 좋겠어요.


Q. 이 책에서 ‘천상의 예술가’ 애벌레들의 집과 건축을 인간의 건축 문명과 비교하며 세심히 그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애벌레들에게서 배워야 할 정신이 있다면 이야기 들려주세요.


A. 이 글을 쓰면서 제가 가장 염두에 둔 것이 집입니다. 제가 한참 글을 쓸 때, 저희 집에 문제가 생겼어요. 임대주택인데 2층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어요. 비만 내리면 2층 전체가 주륵주륵 쏟아졌어요. 그러면 집에 있는 양동이 10여 개를 들고 전쟁하듯이 2층으로 올라갑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각종 그릇을 더 투입해야만 했어요. 그 집은 지어진 지 3년밖에 안 된 새집이었거든요. 그러니 얼마나 황당합니까. 그때 애벌레가 저희 집에 같이 살고 있었어요. 저는 애벌레들의 집을 보면서, 새삼 집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은 각진 네모이거든요. 주변 동네 집들이 다 그래요. 어쩌면 다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제가 태어난 생가만 해도 둥글둥글한 초가지붕에다 숱한 여백이 살아 있었지요. 그러니 박쥐를 비롯하여 제비, 참새, 굴뚝새, 족제비, 두꺼비 같은 동물들이 더불어 살았고요. 겨울이면 산토끼도 내려와서 외양간에 머물다 갔지요. 그런데 우리 동네의 각진 네모 집들은 그 어떤 여백도 없어요. 오직 인간 혼자만 잘 살기 위해서 지어진 집입니다. 또 하늘도 땅이라면서 마구 위로 집들을 올립니다. 그러면서 예술적이라는 말도 가끔 하는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 예술적인지 저는 건축가들에게 묻고 싶어요. 인간만이 잘 살려고 지은 건축물이 예술적인가요? 그렇게 해놓고는 전혀 그 땅하고 어울리지 않은 나무나 풀 몇 포기 꽂아서 정원을 만든다고 예술적인가요?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지만, 애벌레가 만드는 집을 보면서, 그 고집스러운 행위를 보면서, 적어도 우리 인간처럼 과정을 함부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인간은 돈을 위해서 하면 과정을 엉터리로 하잖아요? 애벌레들에게는 그런 꼼수가 통하지 않아요. 그래서 인간들 문명의 상징인 건축물과 많은 비교를 하면서 풍자한 거지요. 적어도 건축가들은 애벌레들의 시간을 경배하고 들여다보고 배워야 합니다.



Q.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호랑이의 끝없는 이야기』, 『시간여행 가이드, 하얀 고양이』 등 그동안 아동, 청소년, 일반 문학을 주로 써오셨는데요. 이번 에세이 집필 작업은 작가님에게 어떤 시간이었는지요?


A. 여러 장르의 글을 쓰지만 에세이는 또 달라요. 저는 에세이가 자유로운 형식인 만큼 작가한테 더 많은 사유가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애벌레 이야기를 쓰면서, 문장 하나를 쓸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한 생을 살아낸 애벌레들이 자기 살을 뽑아서 집을 짓듯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려고 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고요. 작가로서 행복했습니다. 30년 전 작가가 되려고 할 때는, 당연히 이런 생각 못 했죠. 어떻게 하면 작가로 성공할까? 그런 생각만 했죠. 작가가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도 몰랐지요. 이 애벌레들의 시간을 쓰면서, 이제야 조금 작가가 무엇인가 알아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작가로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합니다. 저는 글을 통해서, 침묵으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그들의 삶, 그들의 우주 구석구석을 순례할 수 있으니까요.


Q.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끝으로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 이 책은 요즘 트렌드인 짧고 빠르게 읽는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천천히 읽어가는 책입니다. 저는 출판사에서 이 책을 받자마자 6권을 주변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지인들 모임이 있었는데, 모두 다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여행자들의 가방 속에 이 책이 편안하게 숨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행하다가 쉴 때, 카페에서나 숙소에서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이 책을 들여다보기를 권합니다. 아마도 이 책이 지금까지 살아온 당신들의 삶을 돌아다보게 할 것이고, 당신들이 잃어버린 자신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할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사람들은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분들도 자주 떠올렸습니다. 애벌레들이 그분들을 위로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애벌레도 앞만 보고 달려가지만 조금 다릅니다. 인간하고 달리 애벌레는 절대 누군가랑 자기 삶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경쟁은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이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과정에 충실하고, 그런 만큼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거지요. 누군가랑 비교하지 않는 삶, 그 당당함이야말로 애벌레들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비결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인간들보다 행복지수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을 것입니다.





 

저자와 함께한 ‘애벌레 방’ 풍경


애벌레 방에서 살아가는 반달누에나방 애벌레




애벌레 방에서 나온 참나무산누에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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