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이일하 교수의 식물학 산책』을 펴낸 이일하 저자 인터뷰



Q. 전작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을 출간한 지 8년 만에 반가운 신간을 선보이시는데요, 이번에는 ‘식물학’이 주제입니다. 신작 『이일하 교수의 식물학 산책』은 어떤 책인가요? 독자들에게 첫 인사 말씀을 함께 부탁드립니다.


A. 독자분들께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전작 『생물학 산책』(약칭)을 읽은 많은 독자분들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책의 오류를 여러 차례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더불어 책이 재미있고 유익했다는 따뜻한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가끔 생물학 분야 교수님들이 책을 읽고 중고등학생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고 이야기할 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격려에 힘입어 주제를 조금 좁힌 『식물학 산책』을 발간할 수 있었습니다. 식물을 과학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합니다.


Q. 이 책은 어떤 계기에서 집필을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집필할 때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구성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할 때인데요, 함께 생물학을 연구하는 동료 과학자가 식물을 ‘신호전달체계나 유전자 네트워크가 없는 생물’처럼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제겐 제법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식물을 과학적으로 바라보는 교양과학서적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의 시작은 25년 전부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행히 지난 30여 년 동안 ‘애기장대’라는 모델 식물의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식물에 대한 분자 수준에서의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제가 풀어내야 할 얘깃거리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이 책에서는 그러한 지식들을 다 소개하기 어려우니, 식물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혹은 식물의 궁극적 특성에 주안점을 두고 소주제들을 선택하였고, 이를 4계절에 따라 설명하는 방식으로 집필하였습니다.


Q. 대학에서 식물학을, 대학원에서 식물학과 생화학을 전공하셨습니다. 어떤 매력에 빠져 이 분야를 연구하게 되셨는지요? 그 시작의 순간, 공부의 시작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식물학에 특별히 매력을 느꼈다기보다 생물의 분자적 현상에 푹 빠졌던 것 같습니다. 대학 3학년 때 생화학 교과서를 읽는데, 폐에서는 산소와 결합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려놓고 조직에서는 이산화탄소와 결합하는 대신 산소를 내려놓는 헤모글로빈의 정교한 생화학적 과정을 배우면서 비로소 생명현상에 영혼과 같은 생기력이 필요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생명현상이 물리, 화학적 법칙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생물학에 푹 빠지게 되었지요.

식물학에 대한 관심은 개화 유도 호르몬 플로리겐의 미스터리가 저를 이 분야로 인도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플로리겐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지만 1990년대에는 이것이 무려 70년 된 식물학 분야의 미스터리였거든요.

Q. 그동안 어떤 연구를 주력해서 해오셨나요? 1993년에 세계 최초로 개화유전자를 찾아 발표하기도 하셨지요. 30년간 꽃을 공부해온 과학자로 그동안 해오신 연구를 조금 소개해주신다면요?


A. 지난 30여 년간 식물이 어떻게 꽃 피는 계절을 인지하여 정확한 때에 꽃을 피우는지를 주제로 연구해왔습니다. 우연히 선택한 애기장대 겨울종―겨울 저온을 거치면 다음 해 꽃이 빨리 피는 춘화처리 요구 생태종―을 연구하면서 제 연구는 자연스럽게 춘화처리의 분자 메커니즘 연구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광주기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돌연변이체를 실험재료로 활용했던 연구자들이 광주기 개화 메커니즘과 플로리겐의 발견으로 이어진 연구를 하게 된 것처럼 제 연구는 식물의 분자 기억 메커니즘이라 할 춘화처리로 이어지게 된 것이지요. 이들 두 메커니즘은 결국 개화 신호의 통합적 인지 메커니즘으로 자연스럽게 통합되면서 서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모로 가도 결국 서울에 다다르게 된 것이지요.


Q. 식물학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을 텐데요, 식물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연구실에서 선생님의 일상과 연구실 풍경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주로 현미경이나 유전체분석기술 같은 것을 이용해 연구하시나요?

A. 식물학도 다른 생물학 분야와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생태학과 분류학을 포괄하는 거대생물학(macro-biology)과 분자생물학이라 불리는 미시생물학(micro-biology)으로 나누어지고, 미시생물학 안에서는 다루는 주제에 따라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배발생학, 호르몬생리학, 발달생물학 등등으로요.

제 연구실에서 아마 가장 많이 하는 실험은 식물의 유전자 조각을 대장균의 벡터에 집어넣는 소위 클로닝이라는 실험일 것입니다. 이외에 질문하신 것처럼 유전체 분석을 통해 어떤 유전자들이 언제, 어디에서 발현되는지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실험실의 모습은 동물을 연구하는 실험실, 인간 세포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실 어디나 대동소이합니다. 방법적인 측면에서 분자생물학이라 불리는 연구를 수행하는 실험실은 겉모습만 보면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Q.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20년 넘게 강의를 해오고 계십니다. 특히 인문, 사회계열 학생들을 위한 생물학 강의를 운영 중이신데, 교과목을 개발하거나 가르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라든지 특별히 강조하는 점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A. 이 강의를 개설할 때 ‘21세기는 생물학의 세기이니 모든 교양인들이 생물학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그러한 목표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과 계열의 학생들은 화학적 기초가 거의 없기 때문에, 생물을 물리·화학적으로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개념을 재미있게 설명하면 곧잘 따라오더군요. 이를테면 시간이 왜 흐르는지 아느냐 하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엔트로피 법칙을 가르치고, 불규칙한 열역학 운동에서 어떻게 규칙적인 생명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하면 화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그 개념을 쫓아옵니다. 일단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인데, 이제 20년쯤 되니까 꽤 재미있는 강의가 되었습니다.

Q. 재직 중인 서울대학교 캠퍼스에서 사계절 식물 산책을 오랫동안 해오고 계십니다. 또 이 책의 구상과 집필은 호주의 애들레이드 식물원에서 보낸 시간이 큰 도움이 되셨다고요. 식물 산책을 하는 시간이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인지요? 혹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시다면요?


A. 점심 식사 후 캠퍼스 산책은 동기 교수들과 25년째 이어오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 시간이 연구 과정에서 겪게 되는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지요.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 보면 저절로 스트레스가 해소되니까요. 호주 애들레이드 대학의 안식년 동안에 했던 식물원 산책은 관악 캠퍼스에서 했던 산책의 연장이었습니다. 다만 새로운 식물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더해졌고,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좀 더 식물을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때부터 마음속에 있던 글들을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준비하면서는 책에 넣을 사진을 얻기 위해 방방곡곡 돌아다니기도 했고요. 한번은 좋은 겨우살이 사진을 구하기 어려워 한겨울에 무주스키장을 애써 찾은 기억이 있습니다. 스키도 타지 않으면서 스키리프트권을 끊는다고 했더니 티켓 판매원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표를 내주었던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Q. 이 책에는 선생님의 연구 이야기와 함께 과거부터 최신까지 국내외의 여러 식물학 연구를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최근의 식물학 연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연구나 집필 계획이 있으시다면 들려주세요.


A. 지난 30여 년간의 연구방법과 요즘의 연구방법은 꽤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일단 연구방법이 차세대 염기서열법이라는 기술을 폭넓게 활용하면서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깊이 생물정보학과 컴퓨팅 기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하나의 유전자 혹은 하나의 기능에 집중하는 연구를 했다면 현재는 한꺼번에 유전체 수준에서 생물을 이해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요즘 연구는 꽤 큰 규모의 연구비가 필요하게 되었고, 소위 말하는 스몰 사이언스는 발붙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면서 큰 규모의 연구비를 확보하는 노력들을 저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제 전공인 ‘꽃의 과학’을 집필해볼까 합니다. 큰 주제에서 작은 주제로 좁혀나가는 연역적 서술 방식을 따르는 것이지요. 생물학에서 식물학, 식물학에서 꽃이라는 주제로 말이지요. 다음 책은 앞의 두 책과는 조금 다르게 픽션과 논픽션을 뒤섞는 퓨전식으로 써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요즘 식물을 가까이 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책의 독자분들, 식물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식물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혹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 최근 유튜브에서 ‘식물행성’이라는 주제로 카오스 강연이 진행 중입니다. (*참조. 카오스재단 식물행성-이일하 교수 편 인터뷰 https://youtu.be/M6qkdn5N49A 강연 https://youtu.be/ILmYqVkG-o0 ) 덕분에 대중의 식물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폭이 무척 깊고 넓어졌습니다. 저도 카오스 강연 시리즈에 참여하여 ‘꽃은 어떻게 피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의외로 식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만큼 식물 과학에 대한 궁금증들이 있었는데 그동안 해소되지 못하고 있었다는 반증이 아닌가 합니다. 제 책 『식물학 산책』이 이러한 호기심을 채우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