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해질녘 보랏빛>을 우리말로 옮긴 유윤한 역자 인터뷰



Q. 새롭게 선보이는 에디션F8 『해질녘 보랏빛』의 번역가로 함께하셨습니다. 독자분들께 소개와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프런티어 걸들을 위한 과학자 편지』 출간 후 궁리레터에서 다시 인사드립니다. 이번에는 히구치 이치요 작품선 『해질녘 보랏빛』의 번역가로 독자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했습니다. 당시 저와 같은 전공의 학생들은 교사직을 많이 준비하고 있었지만, 저는 첫 직장을 문학 전문 출판사로 정하고 편집자로 출판계에 입문했습니다. 사실 문학이 아니었다면 굳이 출판사에 지원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대학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문학은 재미없던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을 버티게 해준 힘이었고, 작은 문학상은 제 터무니없는 자부심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래서 문학 출판사에 입사해, 나름 문학가가 되어보겠다는 꿈도 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학책이나 경영서와 관련된 일을 주로 하다 보니 그런 꿈을 잊고 있었는데요, 이번에 『해질녘 보랏빛』을 번역하면서 문학이 제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버팀목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Q. 에디션F 시리즈의 작가로 히구치 이치요를 소개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A. 히구치 이치요는 19세기 초 현대 일본어 화법이 자리 잡기도 전에 당대 문인들의 극찬을 받으며 나타난 작가입니다. 19세기 초 일본은 메이지 시대로 국민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하던 격변기였습니다. 사회는 아직 봉건제에 얽매여 있었고, 신분제는 철폐되었지만 빈부 격차가 여전했고 여성의 희생 위에 사회가 유지되고 있었지요. 새롭게 계급을 형성한 시민 세력의 남성들은 사회적 지위를 확실히 다지기 위해 여성을 가정에 머무르게 했습니다. 여자들은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던 시절이라 히구치 이치요 역시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와카(일본 전통시)를 공부하며, 거의 독학으로 소설 작법을 익혔습니다.

그런 그녀가 24세 나이에 요절하기 전 불과 2, 3년에 걸쳐 쓴 작품들은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당대의 내로라하는 평론가는 고등 교육을 받은 남성 작가들에게 “히구치의 작품을 읽고 배우라”고 질타했지요. 하지만 정작 히구치 본인은 작품의 뛰어난 점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여성이 이런 작품을 쓰다니…” 하고 감탄하는 듯한 평론을 거부했습니다. 히구치 이치요는 그처럼 치열한 작가정신과 여성으로서의 단단한 자의식을 지닌 작가입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와카(일본 전통시)를 공부해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작품 속 문장들이 아름다운 시구처럼 입에 착착 붙습니다. 젊은 작가인데도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고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어 작가로서 자질을 타고난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면을 고려해볼 때 에디션F 시리즈에 더 없이 어울리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독자분들에게 이 책을 짧게 소개해주신다면요? 히구치 이치요의 어떤 작품을 소개 번역하셨는지요?

A. 히구치 이치요의 작품은 19세기 일본 문학 특유의 탐미적 요소가 강하지 않습니다. 강렬하게 오감을 자극하며 삶의 어둡고 음울한 면에 집착하는 광기를 보이지 않아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문장이 간결해 잘 읽힐 뿐만 아니라, 와카를 쓰는 작가답게 자연이나 심리 묘사가 뛰어나고 아름답습니다(히구치 이치요에게 와카를 배운 제자들 중에는 나중에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나 교수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맑고 아련한 느낌을 줍니다.


마음 아픈 것은 이런 맑고 아련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더없이 비참한 삶의 조건에 얽매여 있다는 것이지요. 하녀, 유곽의 여자, 돈에 팔려간 어린 아내가 학대받거나 치정 살인을 당하는 이야기도 있고, 계모의 눈치를 보며 어린 나이에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포기하는 여자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갑갑하기 이를 데 없고, 어떻게든 그 상황을 벗어나야만 인간답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전 과학 전공자이다 보니 이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처한 삶의 조건을 벗어나는 것이 더 어려울까? 중력계에 갇힌 인간의 조건을 벗어나는 것이 더 어려울까?“

인간은 중력계를 벗어나 무중력 상태에선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무중력이란 우리를 둘러싼 시공간이 해체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5차원 존재라면 모를까, 3차원의 몸을 가진 우리가 중력의 지배를 받기 싫다고 그것을 벗어던진다면,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차원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미지의 세계이니 두렵기만 합니다.


히구치 이치요의 작품들에 나오는 여주인공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로 태어난 것도 가난하게 태어난 것도 억울하지만, 가족관계나 신분 조건을 벗어던지는 순간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니 살아갈 수는 있다 해도 밑바닥을 지나 더욱더 깊은 심연 속으로 추락하는 삶이 기다리고만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처럼 맑고 아련한 이야기인데 삶의 조건, 혹은 인간의 조건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명작만을 골라 이 책에 담아 보았습니다.

Q. 번역 작업을 하시면서 특별히 염두에 두신 원칙이랄까 기준이 있으셨나요? 기억에 남는 일이나 힘들었던 점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사실 전 일본 고전에 관심이 많아 오래전부터 책을 모아왔습니다. 특히 일본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괴 이야기나 괴담이 많이 전해오고 있어 이 분야와 관련된 책들을 틈틈이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근대 일본어가 무척 어렵다는 생각을 했는데, 히구치의 작품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가 한 편의 장편시 같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오래된 시를 현대 소설 형식으로 풀어내며 장르를 넘나들어야 했습니다.

기나긴 문장을 잘라 등장인물이 주고받는 대화로 바꿀 때는 최대한 원문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의 뛰어난 문장이 주는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Q. 앞으로 에디션F 시리즈에 소개해보고 싶은 작가는 누구인가요? 준비 중인 다음 책 이야기를 살짝 들려주세요.

A. 히구치 이치요(1872~1896)에 이어서 그녀보다 조금 뒤에 태어난 다무라 도시코(1884~1945)의 작품을 소개해보려 해요. 다무라 도시코의 작품은 히구치 이치요와는 달리 일본 소설 특유의 탐미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면이 있고 매우 강렬합니다.


다무라 도시코는 히구치 이치요와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당시로선 드물게 대학교육까지 받은 인텔리 여성입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일본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역할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심지어 주위의 시선 따위는 무시하는 자유연애로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그녀의 생활>이란 작품에는 결혼 후 끝없는 가사와 육아에 시달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꿈을 잃어가며 황폐해지는 여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편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 여성의 영혼이 탈탈 털리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100년 전에 출간되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만큼 작가의 정신이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다무라 도시코는 일본을 떠나 캐나다와 중국에서 살며 인권운동을 벌인, 보기 드문 선구자이기도 했습니다.

Q. 번역가이자 과학책 저술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앞서 『프런티어 걸들을 위한 과학자 편지』를 집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평소에 여성 과학자나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s, Mathematics) 교육에도 관심이 많으신데요, 다양한 장르와 경계를 넘나드는 선생님의 활동을 조금 더 소개해주신다면요?


A. 얼떨결에 과학을 전공하고 얼떨결에 과학 저자로 활동하게 되었지만, 과학은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과학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잘 설명해주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학문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전 더 많은 독자들, 특히 청소년들이 과학에 대한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될 책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써보기도 하고 싶습니다.


한편, 문학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 삶의 버팀목이자 최후의 피난처이자 안식처입니다. 요즘은 영상의 시대이니만큼 좋은 작품을 더 좋은 영상으로 담아내 위로를 주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제가 좋아하는 일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을 보았는데요. 장애인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여주인공이 더 이상 밑바닥으로 추락할 수 없는 삶의 조건 속에서도 당당하더군요. 그 당당함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인간은 허다한 삶의 굴레와 중력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벗어나 고결한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지요. 이것은 문학만이 전할 수 있는 고귀한 진실이고 감동입니다. 소설도 좋았지만 그것을 담아낸 영상도 아름다웠습니다. 영상의 시대에 문학은 어떻게 살아남게 될지, 그 희망을 본 것 같았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전 과학 저자로서 문학의 고귀한 감동을 동경하며 계속 그 언저리를 기웃거리게 될 것 같습니다. 모르지요, 어느 순간 그 속으로 뛰어들지도요.


Q. 끝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몇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좋은 문학 작품을 만나면, 삶의 조건을 오롯이 들여다보면서 영혼까지 떨리는 감동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문학을 통해 엿보기도 하지요. 독자 여러분들이 히구치 이치요의 작품을 읽으며, 그런 체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책 뒷부분에 실린 작가의 일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 삶의 편린들이 어떻게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되는지를 깊이 체험해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