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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 | 『휘어진 시대1,2,3』를 펴낸 남 영 저자 인터뷰



Q. 2017년에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 시리즈의 첫 책인 『태양을 멈춘 사람들』을 출간한 후 6년 만에 두 번째 책인 『휘어진 시대 1,2,3』을 완간하셨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을 들려주십시오.


A. 사실 대학에서 강의하고, 논문과 책을 쓰는 제 기본적인 일상사는 평범하게 반복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사건이 지난 3년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이 기간 자연스럽게 외부 활동이 줄어들고 집과 연구실에서 보낸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주 업무인 강의는 온라인 수업이 되어버려 안타깝게도 학생과의 상호소통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또 다른 제 정체성인 글을 쓰는 부분은 전혀 영향받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로 인해 『휘어진 시대』 집필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습니다. 물론 결과론적 측면이고 도를 닦는 것 같은 고독한 기간이었기에 다시 겪고 싶지는 않습니다. (웃음) 코로나-19 유행의 마무리 시점에 책의 완성을 보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늘려야 할 때이겠지요. 독자들과의 연결이 그간 잃어버린 대화의 많은 부분을 채워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주요 저작의 시리즈명인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라는 네이밍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짓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라는 말을 풀어 표현해본다면, 과학사 속의 모든 혁신은 잡종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핵심은 ‘잡종’에 대한 설명이 되겠네요. ‘융합’이나 ‘통섭’이 학문적인 섞음만을 의미한다면 저의 ‘잡종’은 훨씬 포괄적인 의미입니다. 모든 방법론의 섞음, 사람들과의 교류 속 섞음, 나아가서는 철학적 사유의 섞음까지를 포괄하는 모든 방면에서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합니다. 무엇보다 친근한 느낌의 단어이기도 하고, 우리말의 어법에서 경박하게 사용되는 측면이 있기에 역설적인 전복의 느낌도 있다고 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잡종이 무엇인지는 구구히 말로 설명하기보다 제 책 안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며 자연스럽게 느껴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차분하게 이 책을 읽어나간다면 『태양을 멈춘 사람들』과 『휘어진 시대』에 등장하는 과학자들 모두 그 성공의 핵심 키워드는 ‘잡종’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떠오를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는 2010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제가 강의해오고 있는 저의 대표 교과목명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저의 정체성이 된, 저만의 강의이지요. 과학사를 좀 더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을 가르쳐보자는 나름의 고민에서 시작된 강의였고, 한 학기 동안 과학 혁명에 집중해 진행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사건을 깊게’라는 슬로건 하에 이루어진 수업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그래서 용기를 내어 2013년 자매품(?)인 <과학자의 리더십> 교과목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제 강의를 책으로 옮기는 쪽으로 진행되었고요.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가 『태양을 멈춘 사람들』로, <과학자의 리더십>이 『휘어진 시대』라는 책으로 ‘익어가는’ 과정이 10여 년 동안 있었던 것이지요.



Q. ‘휘어진 시대’라는 이 책의 제목 또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자연스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휘어진 시대’라는 작명의 시작은 언제였는지 기억나시는지요?


A. ‘휘어짐’이라는 표현에서 상대성이론이 떠오른다면 이 책을 읽을 준비가 아주 잘 되어 있는 겁니다. (웃음) 정확히 그 의미에서 시작한 단어이니까요. 동시에 이 책이 다루는 시대는 양차 세계대전의 암울한 시기였고, 그러기에 참혹하게 왜곡되어 ‘휘어진’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적절한 단어로 채택한 것입니다. 최종 작명은 이번 책을 구상하기 시작한 2017년 말로 기억합니다.


처음에는 20세기 초반 물리학의 대격변을 설명할 명쾌한 용어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상대성’, ‘불확정성’, ‘상보성’ 같은 단어들은 너무 어렵고 현학적인 느낌이라 좀 더 선명하고 쉬운 느낌의 단어를 생각해봤습니다. 양자역학의 ‘얽힘’, 상대성이론의 ‘휘어짐’ 등의 단어가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이 모든 단어를 모아 제목을 만드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단어만 선택한다면 역시 ‘휘어짐’이 적절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세계대전의 비극 속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에도 ‘휘어짐’이라는 표현이 가장 알맞은 상징어라는 생각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렇게 과학과 시대와 인간 군상들의 고귀함과 저열함을 모두 함축한 중의적 표현으로 『휘어진 시대』라는 제목을 확정했습니다.



Q. 이 책에서 인상 깊은 것은 과학자들의 삶 그 자체에 집중했다는 점입니다. 마치 영화나 대하드라마를 보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필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A. 『휘어진 시대』라는 제목이 당대 과학의 특징과 시대성의 맥락을 동시에 함축한 표현인데, 막상 제가 집필을 마무리하면서 스스로 시대와 과학의 급격한 변화 과정을 체험하며 시대가 ‘파동치며 휘어지는’ 묘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 떠오릅니다.


2022년 책을 마무리하는 과정에 갑작스럽게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고, 익숙했던 ‘키예프’, ‘크림반도’ 같은 단어를 ‘키이우’, ‘크름반도’로 바꿔 부르고 있는 저 자신의 변화를 경험했고, 세간의 바뀐 표기법을 따라 원고를 작게나마 수정해야 했습니다.

또 작은 사건으로는 알랭 아스페가 노벨상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미 다 완성된 원고의 일부를 교정해야 했습니다. 책의 완성 시점이 2022년이 아니었다면 없었을 일들이었습니다. 실시간으로 발생하고 있는 사건들이 지난 세기의 일을 다루고 있는 제 원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이 기묘하게 느껴졌습니다.


책의 끝마무리에 인용했던, 우리가 원자를 알아낸 것이 아니라 ‘원자 스스로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낸 것’이라는 하이젠베르크의 표현처럼, 제가 책을 쓴 것이 아니라 마치 『휘어진 시대』가 현재와 연결되며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양자적 불확실성을 가장한 운명적 필연의 세계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끝없는 대화라는 E. H. 카의 말도 생각나더군요. 지금 이 시점에서 제 손을 떠난 이 책이, 2023년 현재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독자들과 대화하리라 생각합니다.



Q. 『휘어진 시대』는 세 권으로 구성된 책입니다. 각 권의 표지를 보면, 앞표지에는 과학자들의 단체사진, 뒤표지에는 그 시대의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어떤 명징한 의도가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이미지들을 통해 어떤 걸 보여주고 싶으셨는지요? 또한 각 권의 구성도 아주 치밀한 계획 하에 배분이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A. 표지의 사진들 대부분은 제가 처음 책을 구상할 때부터 생각한 것입니다. 어쩌면 선택된 표지사진들 자체가 제가 집필하는 기간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앞표지에는 책의 주제인 현대 과학자들의 사진을 담고 싶었습니다. ‘고귀하고 찬란한 휘어짐’의 표상으로서요. 그리고 ‘과학자’가 아닌 ‘과학자들’의 사진, 즉 과학자들의 네트워크를 명료하게 표현해 줄 수 있는 사진이길 원했습니다. 책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거의 모두 등장하는 솔베이 회의 사진만큼 이 주제를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인상적인 사건이 많았던 1차와 5차 솔베이 회의 사진이 1권과 2권의 표지사진이 되었습니다. 실제 각권에 해당하는 시대의 가장 적절한 대표사진일 겁니다. (하지만 3권은 이미 고귀함을 찾아볼 수 없는 비극의 와중이라 그 비극과 과학자들의 연결을 보여주는 트리니티 원폭 실험 직후의 사진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뒤표지에는 당시 과학자들이 살아가야 했던 고달프고 어두웠던 시대의 상징을 담고자 했습니다. ‘비참하고 저열한 휘어짐’의 상징이 될 만한 사건, 말하자면 앞표지 사진과 대비되는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배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권에는 1차 세계대전의 상징으로 방독면을 쓴 병사의 사진을, 2권에서는 나치 집권기인 1934년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사진을, 3권에서는 당연하게도 이 시리즈 비극의 절정인 나가사키 원폭 폭발 사진을 선택했습니다.


즉,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에서 시대성 속의 명과 암을 대비시키고, 과학자들과 그들이 담긴 그릇인 시대를 대척점에 두어, 현대과학의 모순과 역설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완성된 책에 적절히 제 의도가 표현된 것 같아 출판사 측에도 감사를 전하고 싶네요. (웃음)

책의 구성에 대해서도 조금 더 설명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휘어진 시대』는 세 권의 책, 총 6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시대 순으로 권별로 나눠집니다. 1권은 1896-1919년의 기간, 2권은 1920-1939년의 기간, 3권은 1939-1945년의 2차 세계대전과 이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두 개의 부분으로도 나눠집니다. 1-3부가 주로 과학의 내부에서 발생한 이야기를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했다면, 4-6부의 이야기는 과학과 정치가 미묘한 경계에서 상호작용하며 과학과 공학과 산업이 융합되어 괴물 같은 규모의 거대과학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 결과 두 이야기는 규모로서도 큰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뢴트겐이나 퀴리 부부의 작업과 오펜하이머의 작업을 비교해보세요.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하나로 묶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인 모습일 겁니다. 또 4-6부의 진행 과정에는 과학자들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상당히 발견될 겁니다. 그들은 과학자가 아님에도 과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로브스 같은 군인이나 루스벨트 같은 정치인이 과학의 역사에 반드시 언급해야 되는 존재로 떠오르게 되지요. 또한 과학자들 역시 자신들의 분야를 넘어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게 됩니다. 오펜하이머나 텔러의 이야기를 보면 이런 부분들이 극명하게 느껴질 겁니다. 우리는 원자폭탄이 만들어지는 모습에서 거대한 공룡처럼 진화해버린 낮선 과학을 마주하게 됩니다. 1-3부를 읽었던 경험들이 전제된다면 이 장면들에서 우리는 ‘진화하거나 혹은 타락해가는’ 현대과학의 모습을 서서히 느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되찾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Q. 앞서 말씀해주셨듯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 시리즈는 2013년부터 진행한 <과학자의 리더십>이라는 수업이 모태가 되었습니다. 이 수업의 내용과 특징을 소개해주신다면요?


A.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가 150년 정도에 걸친 지동설 혁명을 다뤘다면, <과학자의 리더십>은 20세기 초반 수십 년간의 현대 과학자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현대과학자들의 이야기는 과거와 뚜렷이 구별되는 주제들이 몇 가지 떠오릅니다. 먼저 공동 연구가 일반적이 되었다는 것과 업적의 후속 효과 관리라는 덕목이 추가되었다는 것이 뚜렷한 특징으로 나타납니다. 오늘날에는 국가나 공공의 지원을 받는 연구를 수행하게 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공공에의 성과 환원 역시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그 결과 당연히 윤리적 고민과 후학 양성 등의 주제가 과거보다 훨씬 큰 중요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주제들을 모두 모아 소개할만한 사례들로 수업은 구성되었습니다. 그중 수업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과학자들이 바로 『휘어진 시대』의 주인공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DNA 구조발견 등의 스토리처럼 수업내용에는 있지만 책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주제와 무관하기에 생략된 내용들도 있습니다. 아마 이런 내용들은 나중에 진화론의 역사를 다루게 될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 세 번째 시리즈에서 소개될 것 같네요.)



Q. 앞으로 또 어떤 저술활동을 하고 싶으신지 계획을 살짝 들려주신다면요?


A. 여러 인터뷰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저의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 시리즈는 크게 3부작으로 구상되었습니다. 처음 아이디어를 구상한 시점도 명확합니다. 2008년 여름의 유럽 방문이었습니다. 당시 케임브리지에서 뉴턴의 연구실, 파리 팡테옹에서 퀴리 부부의 묘, 런던 웨스터민스터에서 다윈의 묘를 방문한 시점들에서 씨앗이 뿌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엉성한 아이디어 수준이었지만, 뉴턴을 주인공으로 한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를 강의하고, 퀴리 부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과학자의 리더십> 강의를 만들면서 책으로 연결해갈 인연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가장 큰 목표로는 진화론의 역사를 주제로 한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 세 번째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작업이 남아있겠지요.


2008년 처음 이 시리즈를 막연히 생각한 후 두 번째 시리즈를 완간하게 되었네요. 인생사는 역시 예측불허라 예상보다는 시간이 더 걸려버렸습니다. 그래도 처음 계획했던 때에서 20년 내인 2028년 정도까지는 어떻게든 세 번째 시리즈를 끝내 보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성공할지는 알 수 없지만요. (웃음)


그사이 작은 계획들로는 『태양을 멈춘 사람들』과 『휘어진 시대』를 좀 더 쉽고 작은 분량으로 청소년용으로 출간해보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전에 지금 당장은 조금은 ‘격렬하게’ 쉬려고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역사는 스토리입니다. 과학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이야기가 역사고, 과학자도 사람입니다. 과학에 대한 이해는 과학자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사람인 과학자를 알아야 그 과학자의 업적이 이해 가능하고, 그 시대를 이해해야 그 과학자의 삶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과학도 역사도 훨씬 쉬워집니다. 또 선각자들, 선배 과학자들에 대한 감정 이입은 과학연구의 중요한 시작점입니다. 타인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경을 배워야만 나를 움직여갈 동력을 얻게 되는 법입니다. 씨줄날줄로 엮인 역사 속 과학자들의 이야기들에 감정을 이입하고, 특히 그것을 인간과 인간의 연결의 시점에서 바라볼 것을 권합니다. 제 책이 그런 제 마음을 잘 전달해주기를 바라고요. 차디찬 겨울 같은 이야기의 끝에서 모두 따뜻한 봄을 만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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