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이 책의 원제목은 ‘Höhenrausch’, 즉 ‘고도 환각’이라는 뜻인데요,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왜 이런 독특한 제목을 갖게 되었을까요? 예를 들어 처음에 등장하는 게오르크 칸토어의 이야기에서 남자1과 2는 결국 칸토어 자신을 가리킨다고 생각되는데, 이런 혼란스러움과 연관이 있는지요?
A ∥ 현대 수학의 추상성은 그야말로 악명이 높습니다. 심지어 예술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니까요. 기묘하게 꼬인 공간이나 무한 개념이 빚어내는 역설 등을 생각하면 몽환적인 분위기가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그리고 추상이라는 작용을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과 같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고도 환각’이라는 표현이 갖고 있는 상징성이 있는 거죠.
예전 유럽 여행 때 알프스를 오른 적이 있습니다. 4천 미터 이상 올라가니까 몽롱하니 온 몸이 붕 뜬 것 같더군요. 그런 기분이 아닐까 싶은데, 현대 수학의 추상성이 주는 현기증 같은 것이겠죠.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계단을 밟고 올라가듯이 우리를 차근차근 현대수학의 봉우리로 안내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듯이, 소설적 장치를 이용해서 단박에 높은 곳에 올려다놓죠. 그 덕에 그런 몽환적인 분위기가 더욱 살아나는 듯도 합니다.
현대 수학의 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는 칸토어의 이야기도 아주 상징적입니다. 시대적으로나 중요성 면에서 칸토어의 이야기가 제일 앞에 나오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왜 그런 식의 구성을 했을까 하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남자 1과 남자 2는 모두 칸토어 자신입니다. 문화적으로 보자면 기독교적 전통이 아직 분명히 남아 있는 사회에서 유한한 지성의 인간이 ‘실무한’을 다룬다는 것은 다윈의 진화론이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같은 도전으로 여겨졌죠.
따라서 그 당시의 문화적 배경을 염두에 둔다면 칸토어가 겪어야 했던 여러 어려움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정신 질환을 앓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칸토어를 이용해서, 저자는 일종의 사이코드라마를 시연한 겁니다. 그것은 인간 지성의 가장 은밀한 곳, 그래서 무의식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부분들을 들추어내는 작업인 셈이죠. 칸토어는 그동안 인간 지성이 넘어본 적이 없는 금단의 영역인 ‘실무한’의 문을 연 장본인이니까요. 정말로 무한한 것들인데, 그 무한한 것들 사이의 크기를 잴 수 있다? 놀라운 발상이기도 하고, 믿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죠. 그런 정신적인 혼란스러움을 인간 지성의 성장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현대 수학 전체가 미치광이의 상상력에 의지해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Q ∥ 20편의 수학자 이야기들 중 사실과 상상이 뒤섞여 있는데다가, 1950년대 이후의 수학자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정보가 많지 않아 번역작업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번역하실 때의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A ∥ 실제로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직접 책을 쓴 저자는 물론이고, 번역자인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개 어떤 일의 전모를 파악하고 평가하는 일은 그 일이 끝난 후에 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니까요. 특히 논의가 현재 진행 중인 최근의 작업들을 번역할 때는 저 역시 어려움이 많아서 이런저런 곳을 기웃거리고 자문 구하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의 전기를 쓸 때, 어려운 점은 그의 생애가 유동적인 상태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그의 현재 사상이나 행동이 결과적으로 굉장한 일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 역시 몹시 조심스러웠을 겁니다.
Q ∥ 왜 수학자들의 면모를 사실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이렇게 판타지 요소를 가미하여 써내려갔는지 저자의 의도가 살짝 궁금해집니다. A ∥ 사실, 한 사람의 개인사를 말할 때 ‘사실’만큼 어려운 개념도 없습니다. 무엇을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흔히 우리는 이런 말도 합니다. “그래, 객관적인 사실이야 그렇지. 하지만 진실은 뭐냐 하면 말야……”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어떤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또 어떤 것은 위조된 사실일 수도 있는 거겠죠. 물론 이 책의 저자가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현대수학을 일반 독자에게 좀 더 친근하게 소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이 소개하고 싶은 사람을 압축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사실이 무엇인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가령 근대적 세계관을 정초한 뉴턴을 소개할 때, 연금술에 관심이 많았던 위대한 지성이 어울릴까요? 아니면 치밀한 성격의 조폐국장이 어울릴까요? 그도 아니면 미적분학의 최초 발견자라는 명성을 두고 라이프니츠와 싸울 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은 명예욕 강한 사람이 어울릴까요? 더욱이 그런 ‘사실들’이 뉴턴의 역학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요?
어쨌든 현대 수학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이유를 저보고 말하라고 하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현대 수학은 사실들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하는 ‘실증적 역사학’보다는 오히려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있어야 하는 ‘소설’에 가깝다라고요. 어떤 점에서 현대 수학은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떼어냈습니다. 특히 부르바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수학은 가능한 여러 가지 모델들을 만들어냅니다. 그 모델들 중에서 우리 현실에 적합한 것들이 있겠죠. 어떤 모델이 현실을 잘 설명하느냐는 수학자의 몫이라기보다는 바로 우리의 몫일 겁니다. 수학자들은 오히려 ‘상상력’을 통해 그런 여러 가지 모델을 만들어보는 예술가들에 가까울 겁니다.
Q ∥ 개인적으로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을 이야기해주세요.
A ∥ 저로서는 모든 꼭지마다 인상 깊은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고르자면, 에미 뇌터와 그로텐디크 이야기를 꼽고 싶습니다. 그것은 그 두 사람이 현대 수학의 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와는 상관없이 다만 그들의 삶이 주는 애잔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저자의 문학적 상상력에 의지한 것이기도 하지만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세간의 홀대를 받을 때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안타까움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예컨대 현대 수학에서 군(群) 이론만큼 중요한 분야도 없는데, 그 군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19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갈루아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갈루아는 아주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았고, 스물한 살의 젊은 자존심으로 결투에 나서 목숨을 잃고 말았죠. 그리고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야 그는 자신의 이론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저에게 매력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단순한 수학책을 넘어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깃거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Q ∥ 철학도이시면서 수학과 과학 분야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 세 분야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A ∥ 21세기의 학문적 트렌드를 압축하라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컨버전스convergence’를 말하려고 할 겁니다. ‘융합’이나 ‘통섭’ 같은 말로 소개되고 있죠.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만남과 그로부터 새로운 것들이 튀어나온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매력적입니다.
언젠가 어느 과학 칼럼니스트가 유명한 생물학자들의 심포지엄에 참석했다가 점심시간에 한 식물학자와 산책을 하게 되었답니다. 마침 길가에 핀 꽃이 예뻐서 그 식물학자에게 그 꽃의 이름을 물었더니, 그 식물학자가 깜짝 놀라며 ‘제 전공은 보리인데요……’라고 대답했다고 하더군요. 현대 과학의 전문성을 생각하면 능히 그럴 법한 일입니다.
그런데 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각 학문 영역 간의 대화가 안 되고 있다는 사실은 몹시 역설적입니다. 세계는 하나고, 학문은 그런 하나의 세계를 탐구하는 작업인데 말이죠. 물론 제가 모든 탐구방식을 하나로 환원하는 방식의 통섭이나 융합을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게는 오히려 하나의 세계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더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각 학문 영역이 고유한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각 학문 영역 간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건 틀림없는 문제입니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 또한 분명하고요.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 것인가가 문제겠죠. 제 평소의 소신대로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왜 학문을 하는지 물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근대 철학의 기초를 잡은 사람들, 예를 들면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 같은 사람들은 모두 수학자였죠. 또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지식인들 또한 과학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지식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더 좋은 세상 말이죠. 신성한 진리를 탐구하는 일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저 유리알 유희에 머무는 것이라면…….
Q ∥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수학, 과학 분야 책을 다섯 권 정도 추천해주세요.
A ∥ 수학 책이나 과학 책을 읽고 감동을 받는 경우는 주로 과학자들의 일대기에 관한 책들일 경우가 많죠. 저만 해도 어렸을 때 퀴리 부인 이야기를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있으니까요. 그런 인간적인 면모 외에 내용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책들을 꼽아보라면 이렇습니다.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화이트헤드의 『과학과 근대세계』, 모리스 클라인의 『수학의 확실성』 같은 책들이죠. 그리고 가장 최근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은 『20세기 수학자들의 초상』 정도?! 너무 속 보이나요? ^^
Q ∥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A ∥ 흔히 ‘수학’ 하면 계산 같은 기계적인 작용, 그래서 지루하고 까다롭고 정확한 어떤 것 등을 연상합니다. 부호 하나 잘못 붙여서, 괄호 하나 빼먹어서 낭패를 본 경험들을 누구나 갖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수학의 최전선에서는 상상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하네요. 그리고 모든 지식을 남김없이 흡수하는 것보다는 때때로 그 분위기에 젖어드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직 지식에만 욕심을 내다보면 지치거든요. 아무튼 책 읽은 즐거움을 이 책에서 얻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승억 ▶ 유럽 현대철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청주대학교 인문대학 문화철학 전공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계몽의 시대와 연금술사 칼리오스트로 백작』,『찰리의 철학공장』, 옮긴 책으로는 『세계가 어떻게 머리 속에서 생겨나는가』,『나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존재하는 건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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