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거리에 선 페미니즘>을 엮은 김희영, 김나영 활동가 인터뷰


Q∥ 독자들에게 자기소개와 인사를 해주세요.

A∥ 안녕하세요.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희영과 김나현입니다. 민우회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삶이 곧 운동이 되는 곳’을 지향하는 여성 운동 단체입니다. 1987년부터 어느덧 30년 동안 활동을 이어오고 있네요. 최근 굵직하게는 렛미인 방송 폐지, 르노삼성 직장 내 성희롱 사건 대응, 그리고 성차별과 소수자 혐오를 넘어서 우리 일상을 변화시키는 8가지 제안 ‘해보면 캠페인’ 같은 활동들을 하고 있고요. 현재는 한창 낙태죄 폐지를 위한 시위와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이번에 펴낸 『거리에 선 페미니즘』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신다면요?

A∥ 올해 5월 17일 새벽 1시, 강남역의 노래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번화가의 중심이고 화장실이라는 평범한 공간이었고, 누구나 그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점에서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이라며 여성들은 피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했고 강남역은 추모 포스트잇으로 뒤덮이기 시작했습니다. 분노와 공감, 애도를 넘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여성들은 말하고 싶어 했어요. 그러나 ‘묻지마 살인’ 이라거나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마라’라는 한쪽의 이야기만 무성하게 불어나고, 여성들이 왜 추모의 공간으로 모여들고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한 목소리는 묻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민우회는 여성들이 직접 자신의 말을 사회에 전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5월 20일에 신촌에서 〈여성 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 ‘나는 ○○에 있었습니다’〉를 열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시각인 새벽 1시까지, 8시간 동안 릴레이로 약 50명이 발언을 했습니다. 『거리에 선 페미니즘』 책은 이 날 현장에서 발화된 내용들을 담아낸 기록입니다.



Q∥ 이 책을 어떻게 준비하게 되셨나요? 책을 만들며 힘든 점은 없었나요? 특히,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A∥ 이 책은 당일 현장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놀랍도록 생생하고 절절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발화자들은 성추행, 성폭력 경험부터 외모로 인한 압박과 옷차림에 대한 검열, 대중교통에서 겪는 문제, 여전히 가족 내에서 존재하는 불평등에 대해 쉬지 않고 쏟아냈습니다. 변화를 위해 싸우겠다는 힘 있는 다짐들도 이어졌어요.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페이스북 생중계로 지켜봤던 사람들과 함께 공유했던 것만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한 순간의 발화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듣고 읽을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판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발언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입말들을 충분히 살리고 싶었지만, 글로 옮겨지면서 현장성이 삭제되지는 않을까 하는 게 염려되었어요. 처음 마이크를 잡은 순간 떨리면서도 차분하게 시작하던 목소리, 잠시 말을 잊지 못하고 울먹거릴 때 사람들이 보낸 위로와 응원,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 책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그런 것들을 다 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당일 현장에 직접 와서 발언을 신청하신 분들 중에 끝까지 연락이 닿지 않아 최종적으로 이 책에 실리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또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빠진 경우도 있고요. 소중한 내용들인데 모두 싣지 못해 아쉽습니다.



Q∥ 책 제목을 직접 지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리에 선 페미니즘’이 뜻하는 바가 있다면요? 어떤 의미로 생각해보면 좋을까요?

A∥ 말 그대로 필리버스터를 진행한 곳이 신촌 ‘거리’ 한복판이기도 했고, 거리라는 공간이 가지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성들에게는 공적으로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쉽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말을 하려고 하면 곧바로 비난이나 저지하려는 시도에 부딪치게 되고요.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면서, 여성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지 않는 사회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공식적으로 대중 앞에 서서 발화한다는 것 자체가 저항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은 “오늘 처음 사람들 앞에서 말해본다”고 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여성들의 경험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기 어려웠던 것은 드러내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드러낼 공간이 부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항상 낯설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 시작하는 변화의 이야기를 함께 써나가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러한 거리에서 여성의 말하기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믿음과 함께 발언의 장소가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Q∥ 본문 속에 오롯이 녹아 있는 ‘서로 다른 그녀들의 말’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배울 수 있을까요?

A∥ 참으로 다양한 분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고등학생이거나, 퇴근 후 급하게 달려온 직장인, 마감을 제쳐두고 나온 프리랜서도 있었습니다. 우연히 근처를 지나다 발언까지 하게 된 경우도 있었고요. 미리 신청을 해서 스마트폰에 내용을 미리 작성해온 분도 있었지만 마이크를 잡고 떠오르는 대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말들이 꽤 유사한 흐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성으로서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고통, 강남역 사건이 특수한 것이 아니라 나의 현재 및 과거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피하려 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자각과 죄책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더 나아가 ‘더 말할 것이며 변화를 위해 싸우겠다’는 이야기의 순서가 마치 각본화된 것처럼 비슷했습니다. 미리 그 순서를 정한 적도 그래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왜 많은 여성들이 그곳에서 비슷한 흐름으로 이야기를 했을까요? 여성들의 말은 자꾸만 특수한 몇몇 여성들이 하는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됩니다. 책을 읽어보시면, 이들이 향하는 곳은 개개인의 남성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회를 향해 우리가 변화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항상 낯설게 바라봐야 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항상 낯설게 바라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A∥ 조언보다는 제안을 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온라인이나 SNS 상에서 흔히 듣는 말이 되었지만, 여성 혐오, 직장 내 성희롱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은 것, 사소한 것이라며 불편해하는 여성들에게 되러 예민하다고 했지요. 그러나 직장에서 권력을 이용해서 성적인 표현을 하는 것을 ‘직장 내 성희롱’이라고 이름 붙이고, 아내를 물리적으로 억압하는 것은 ‘가정폭력’으로, 소수자를 비하하는 것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라 ‘혐오’라고 언어화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분명하게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은 지극히 작은 것들입니다. 여성들은 지하철에 붙은 성형 광고를 볼 때, 늦은 밤 택시기사가 느닷없이 반말을 할 때, 직장 상사가 ‘웃자고 하는 소리’라며 사생활을 침범하는 질문을 할 때, 온라인에서 여성에게만 붙은 온갖 험한 댓글을 볼 때에도, 숱한 순간순간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럴 때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표현을 했을 때 그 행위와 내용을 그대로 인정하고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사소하거나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왜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지, 하나하나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Q책 속에는 얼굴을 드러내고 실명을 밝힌 분들도 있지만, 실명이 아닌 닉네임을 사용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실명을 밝히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발언자들이 스스로 불리기를 원하는 이름을 정한 것입니다. 실제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별칭을 사용해온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민우회에서는 나이, 성별, 직업 등 사회적 지위로 만들어지는 위계와 상관없이 관계를 맺기 위해 별칭을 사용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별칭을 사용한 것은 오히려 명확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둘째는, 온라인 상에서 강남역에 추모하러 온 여성들의 사진을 찍어 유포하거나 악의적인 댓글이 달리는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공의 장에서 자신의 폭력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위험을 의식해서 발화가 영향을 받거나 제약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선에서 얼굴을 드러내거나 이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Q∥ 페미니즘은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들을 페미니스트라고 하나요?

A∥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말이 답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페미니스트냐고요? 페미니스트는 직업도, 정체성도, 멤버십도 아닙니다. 물론, 저는 페미니즘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어떤 행동이 여성주의적인 것인지는 늘 고민스럽습니다. 페미니즘의 정의가 불가능한 것은 태생적 모순입니다. 여성 인구가 35억 명인데, 어떻게 여성이 같은 처지일 수 있겠습니까? 페미니즘은 계급, 인종, 종교 등 여성들 사이의 다름을 인식하고 차이를 갈등이 아니라 자원으로 삼고자 하는 세계관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rooting), 동시에 이동하고 변화하면서(shifting) 성장하는 것입니다.”



Q∥ 한국여성민우회는 어떤 단체인가요? 흔히들 ‘쎈 여자들’의 모임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에 대한 생각은?

A∥ 음… 이것이 질문이라고 보이지 않는 지점은요. ‘센 여자’라고 해도 아니라고 해도, 그 어느 쪽도 답변이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마치 “메갈이세요?”와 유사하게 그렇다고 해도 아니라고 해도 별로 관심 없는, 그냥 질문 자체에 내재된 편견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가 탑재된 물음입니다. 여성이 여성으로 자신을 자각하는 순간 세상은 그 여성을 무섭게 봅니다. 강인하고 용기 있는 것이 아니라 드세고, 나대고, 센 여자라고 인지합니다. 나대는 남자, 센 남자라는 표현은 흔하지 않습니다. 저희를 비롯해 많은 여성들은 자신이 받은 피해를 숨기지 않고 용감하게 말하고 해결하려 했습니다. 세상이 그걸 세게 본다면 센 여자들 맞습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A∥ 필리버스터에서 어떤 분이 하신 말씀으로 대신 끝을 맺고 싶습니다. “이게 시작입니다. 변화는 기존의 것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인식 없이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피해자들, 약자들,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데 기득권자들이 사회 시스템이 알아서 바꾼 예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폭력 중단을 위해서 작은 목소리나마 끊임없이 떠들고 소리 지르고 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