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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길담서원, 작은 공간의 가능성>을 펴낸 뽀스띠노 이재성 인터뷰


Q∥ 독자분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A∥ 안녕하세요. 뽀스띠노 이재성입니다. 이재성은 부모님께서 ‘在’ 항렬에 따라 지어주신 이름이고 뽀스띠노는 제가 제 정체성을 찾아서 지은 닉네임입니다. 별명에 대한 이야기는 책에도 나와 있는데, <일 뽀스띠노>라는 영화를 보면서 제가 하는 일이 우편배달부처럼 메신저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은 이름이에요. 또 바닷가 마을에서 자전거포를 하며 시를 쓰고 살고 싶었던 어릴 적 마음도 담겨 있어요.


길담서원에서 인문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공부를 하면서 지낸 12년을 이번에 『길담서원, 작은 공간의 가능성』이라는 책으로 기록해 펴냈습니다. 요즘은 충남 공주시에서 새로운 공간을 어떻게 만들까? 궁리하며 산의 골짜기를, 책의 갈피를 넘기듯이 산책하고 있습니다.



Q이번에 펴낸『길담서원, 작은 공간의 가능성』을 독자분들게 짧게 소개해주신다면요?

A∥ 이 책은 전통의 서원을 현대의 맥락에서 풀어낸 공간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길담서원이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어떠한 생각으로 했고 시민들과 만나는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한 기록입니다. 또 뽀스띠노라는 평범한 시민이 세상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삶의 지향으로 삼고 있는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길담서원이 공주라는 소도시로 옮기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것도 그러한 삶의 지향점,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Q코로나19 여파로 예정돼 있던 길담서원 12주년 행사를 취소하고 훗날 만나기로 약속하셨지요. 이번 사태로 사람과 사람의 접속, 만남의 힘에 대해 거듭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 하는 생각들을 나누어 주신다면요?

A∥ 요즘은 우편물을 등기택배로 보내면 바로 다음 날 받을 수 있는 시대예요. 그런데 《녹색평론》이라는 잡지는 보냈다고 한 지 10일이 지나서 도착했더라구요. 서울에서 충남 공주까지 일반우편물이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0일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모든 시간이 이렇게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기다림도, 간절함도 없이 빨리빨리 돌아가는 세상에 살다보니 코로나 바이러스19가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느리게 살면서 자기다운 정체성을, 지역적인 고유성을 가지고 간절함이라든지 기다림을 감각하며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만남이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그렇게 다양한 에너지들이 교감하면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Q길담서원은 작은 책방의 역할을 넘어 시민들의 공부방, 놀이터로 다채로운 실험들을 해왔습니다. 이렇게 경계가 없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길담서원의 철학이 큰 몫을 했습니다. 길담서원이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를 듣고 싶어요.

A∥ 길담서원은 처음부터 책방이 아니라 서원에 방점을 두고 시작했습니다. 인문학 공부를 통해서 ‘시민운동을 했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컨셉 자체를 기존의 책방 개념에서 탈피하여 ‘책을 기반으로 한 공간이 주체적인 시민들과 만났을 때 어떠한 일이 가능할까?’를 실험했습니다.


그 실험의 핵심은 시민들의 ‘자율’적 참여로 강연, 음악회, 전시, 여행 그리고 공부모임을 통한 자기다움을 찾기입니다. 그리고 다른 모임과 사회와의 연대라고 할 수 있는 ‘공률’의 정신, 또 길담서원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우연성’의 가치가 운영원리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시민이 주체가 되어 무엇이든 제안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실험을 통하여 이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추구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Q길담서원에서 함께 낭독하고 토론하고 거듭 읽은 책 중에서 몇 권을 독자분들에게 소개해주신다면요?

A∥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빨강머리 앤』과 같은 책은 길담서원이라는 작은 공간의 가능성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길담서원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으면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모두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희에게는 공부도 일이라서, 비슷한 시기에 원서로 강독하는 여러 모임에 참여했어요. 수요일 아침엔 영어로 슈머허, 버지니아 울프, 러셀을 읽으면서 수요일 저녁엔 독일어로 니체를, 금요일엔 일본어로 사사키 아타루를 읽게 되었어요. 같은 책을 좋은 선생님과 3~4년을 강독하게 된 것이지요. 철학의 근원이 비슷한 저자들의 책을 일정한 기간에 읽다보니 그분들의 생각이 하나의 물줄기를 향하여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알았던 것 같아요.


니체를 읽으면서 우리는 자본에 가슴을 빼앗기고 머리로만 아파하고 머리로만 분노하고 머리로만 생각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잃어버린 가슴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의 물성을 손에 익히고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하겠구나, 소비하는 삶이 아니라 생산하는 삶으로의 변화, 예술적인 삶으로의 감각을, 감수성을 회복해야 하겠구나, 그러한 삶을 살려면 생산수단을 회복하여 자급으로 소박하고 당당하게 더불어 살아가야 하겠구나 하는 상상을 하게 된 것이지요.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자기가 먹고살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을 가지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가슴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백열등과 같이 맑은 정신의 상태를 갖기 위해서는 모든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가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자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슈마허의 말은 적정기술을 사용하면 가슴, 마음을 지킬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읽혔어요. 다윈도 그의 자서전에서 어린 시절 밖에서 놀고 문학 작품을 읽었을 때는 행복했으나 반복되는 실험과 자연과학 독서만 하면서 자신의 삶이 너무 건조해졌고 심지어는 도덕적으로도 둔감해졌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지요.


이 책들을 긴 시간 동시에 읽으면서 이상한 화학작용 같은 것이 일어났고 그 맥락에서 ‘빨강머리 앤 영어원서 읽기*되어보기’와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지요. 또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재정립하는 계기도 되었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가 몸은 무척 고단했지만 정신적으로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Q 길담서원을 운영하며 ‘일하는 틈틈이 기록한 글’을 이번에 책으로 정리해 펴내셨습니다. 뽀스띠노 님께 글쓰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A∥ 글쓰기는 어떤 특정한 누군가의 행위가 아니라 보편적인 활동, 누구나 일상에서 행해지는 것, 생각하고 행한 모든 작업의 과정이고 마무리라고 생각해요. 농사를 짓든, 아이를 키우든, 그림을 그리든, 내 생각이 흘러나온 과정을 보편적인 소통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책은 이러한 기록의 편린들을 하나의 보자기에 싸 놓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 보자기가 하나씩 두 개씩 생길 때마다 그 만큼씩 자라고 넓어지는 것. 공부든지, 예술활동이든지, 무엇이든지 간에 글로 기록을 하게 되면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이고 안다고 착각했던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나거든요. 따라서 글쓰기는 나를 성찰하는 일이고 대화이며 새로운 발견이고 발명이에요. 자기사상을 갖기 위한 주춧돌이며 꽃이라고 생각해요.


Q한뼘미술관, 책마음샘음악회, 청소년인문학교실, 시민예술단 등등 길담서원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해오셨는데요, 그중 ‘팔학년서당’ 모임에서 선생님 중 한 분으로 청소년들과 함께해오셨어요. 청소년들과 고전 읽기는 물론 풀, 꽃, 나무 그리기 같은 활동을 하셨지요. ‘팔학년서당’ 이야기는 이번 책 4장 ‘몸으로 하는 공부’에 자세히 그려져 있는데요, ‘팔학년서당’은 어떤 시간이었나요?

A∥ 이전에 진행했던 ‘길담서원청소년인문학교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청년이 되는 강의 중심의 공부였다면 ‘팔학년서당’은 전통의 서원방식을 도입한 12명 안팎의 소규모 공부모임이었어요. 원서를 읽으면서 요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영어공부도 하고 드로잉이나 놀이를 통하여 손의 감각을 복원하는 시간이었어요. 앞으로도 청소년, 청년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교감하며 세대 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을까 생각해보고 있어요.


팔학년서당의 핵심 프로그램이 ‘빨강머리 앤 영어원서 읽기 * 되어보기’였는데요. 강독은 여름나무님(이정윤 길담서원 학예연구원)이 중심이 되어서 진행했고 간간이 소년님(박성준 길담서원 대표)께서 합류하셨어요. 저는 자연놀이와 드로잉을 담당했는데 그림을 그리고 놀이하는 판만 벌려두었지 제가 직접 가르쳐준 것은 많지 않아요. 

강조한 게 하나 있었는데 자기를 닮은 그림을 그리라는 것이었어요. 저는 그것이 좋은 그림이라고 여기거든요. 길담서원 앞 작은 뜰에는 이런 풀 꽃 나무들이 있고 저기 서당 안엔 식물도감, 풀꽃사전이 있다고 펼쳐 보여주고 가끔 이야기를 들려주는 간섭을 했어요. 존 버거는 스케치를 하러 나갔는데 필요한 물감이 없어서 풀꽃을 따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무엇을 도구로 스케치를 하고 색을 칠했을까? 그렇게 질문을 던지고 방법을 찾아서 그리고 써 보라고 권했어요. 그러곤 지켜보았는데 청소년들은 저마다 자기를 닮은 그림을 그리고 자기를 닮은 글을 썼어요. 잘 그리는 친구들의 그림을 따라 그리거나 부러워하거나 하지 않고요.


그런데 대부분의 청소년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노동에는 일머리가 없어서 처음부터 알려줘야 했어요. 수업 전후로 행해지는 청소도 알려줘야 했고 자기가 사용한 물컵이나 간식을 먹은 접시를 씻는 설거지도 대부분 할 줄 몰랐어요. 심지어 들고 나면서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일러줘야 했어요. 덕분에 요즘 10대들이 놓인 상황, 행동 양식 등을 엿보는 계기가 되었지요.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생활 속 일머리도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자기 삶을 책임지고 살아갈 수 있을 테니, 집에서 일정한 양의 노동을 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Q얼마전 길담서원이 서촌 12년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충남 공주에서 제2기 길담서원을 준비하고 계시지요. 앞으로 어떤 사건들을 계획하고 계시는지요? 박성준 소년님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셔요.

A∥ 먼저 소년 박성준 선생님은 서촌에서 작은 공간을 새롭게 열 예정이에요.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 근처에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영어 전문 서점이 있는데요. 이곳은 제임스 조이스라든지, 헤밍웨이 등 많은 작가들이 머물면서 글을 썼던 곳인데 길담서원의 모티브이기도 해요. 아무튼, 선생님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현판을 걸고 벗들과 영어로 글쓰기를 하는 공부모임과 최소의 음악회를 기획중이라고 듣고 있어요. 평생 클래식음악을 사랑해왔고 영어원서강독을 비롯해서 일본어, 독일어 원서강독까지 이끌었던 선생님만의 독특함이 묻어나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충남 공주에서 매일 산책하고 마당일 하고 가끔 책 보면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느리게, 천천히, 서두름 없이, 조금은 서툴게, 뭐 이런 낱말들과 어울리는 느슨한 공부모임과 텃밭 일을 구상하고 있어요. 청소년과 청년들이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며 농사도 짓고 기록하는 작업, 산책, 함께 소리 내어 좋은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모임을, 백제의 역사공부 모임 등등 지역을 잘 알고 몸과 정신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공부모임을 하고 싶어요.




Q 『길담서원, 작은 공간의 가능성』이 어떤 분들에게 가닿으면 좋을까요? 끝으로 독자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몇 말씀 나누어주셔요.

A∥ 글쎄요. 이 책은 길담서원이 12년간 해본 실험이었고 앞으로도 그 실험은 계속될 거예요. 그러니까 안온하게 지내는 누군가에게 질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이런 거 해 볼까? 지금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하는 질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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