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책 밖에서 만난 작가┃<길 위의 수학자>를 우리말로 옮긴 김소정 인터뷰


Q ∥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독자들에게 자기소개와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A ∥ 안녕하세요. 번역하는 김소정입니다. 그다지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부업은 아니지만 주부 겸 엄마라는 직업도 병행하고 있어서 서툴지만 집안일도 하고 있고, 시간을 정해서 매일 산책도 다닙니다. 언젠가는 세계사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Q ∥ 이번에 나온 『길 위의 수학자』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신다면요? 

A ∥ 『길 위의 수학자』는 수학의 본질과 수학이 현대인(의 사고체계와 인지능력과 생활 방식)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가볍고 경쾌하게 다룬 책입니다. 어려운 풀이 문제는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미적분은 물론 유한기하학이나 유한대수처럼 일반인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수학 개념도 쉬운 방식으로 소개해줍니다. 모두 수학에 능통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났던 이 책의 저자 릴리언 리버 덕분입니다. 릴리언 리버는 아인슈타인이나 에릭 템플 벨 같은 당대 석학들이 감탄했던 책을 많이 쓴 저자이자 저명한 수학자였지만, 사생활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리버는 또 다른 리버이자 삽화가였던 남편 휴 그레이 리버와 함께 많은 작업을 합니다. 휴 그레이 리버도 남다른 유머 감각을 소유했다는 사실은 그가 남긴 그림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경쾌한 부부가 남긴 작품, 그래서 경쾌한 책이 바로 『길 위의 수학자』가 아닌가 합니다. Q ∥ 이 책의 원제목은 ‘THE EDUCATION OF T. C. MITS’입니다. 제목과 책의 주제와 관련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T. C. Mits는 본문에도 나오지만 ‘거리에서는 명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만큼은 상당히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동네 명사지요(미국은 집을 나서면 거리지만 한국은 집을 나서면 골목일 때도 많으니 ‘골목에서는 유명한 사람’이라고 번역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T. C. Mits는 ‘보통 사람’이나 ‘일반인’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용어로, 릴리언 리버가 만든 (그 당시로는) 신조어입니다. 『길 위의 수학자』가 담고 있는 주제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길 위의 수학자』는 수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수학을 잘 모르는 우리 같은 일반인을 위해 집필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수학에 관심은 있지만 너무나 어려워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수학에 관심은 없지만 어쩌다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사람도 짧은 시간을 내어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는 책입니다. Q책의 본문 구성이 독특합니다. 운문은 아니지만 마치 여러 편의 장편시를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 저자가 의도한 바가 있을까요? 구성과 관련하여 독자로서 선생님께서 느낀 점이 있으면 말씀해주셔도 좋겠습니다. A ∥ 본문에 들어가면서 릴리언 리버는 자유시가 아닌 수학에 관한 글을 자유시처럼 쓰는 이유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임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안 그래도 어려울 수 있는 현대 수학이라는 주제를 긴 산문으로 쭉 이어 쓰는 것보다는 운문처럼 끊어주면서 보기 쉽고 읽기 쉽게 만들겠다는 의도였던 거지요. 저자의 의도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행과 행 사이에 잠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수학은 산수를 푸는 과정이 아니라 생각을 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길 위의 수학자』는 독자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점에서, 수학책이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구성 방법 한 가지를 소개했다고 생각합니다. Q ∥ 번역 과정에서 힘든 점이나 재미있었던 일은 없었나요? 단행본 작업 과정에서 특히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셨나요? A ∥ 내용 자체가 시가 아니면서 시라는 점이 힘들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행과 행을 띄지 말고 그대로 쭉 이어 쓰면 산문이 되는 구성이라, 순수문학인 시를 번역할 때 들여야 할 만큼의 품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시 형식이라고 해도 어쨌거나 수학을 다룬 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의 형식을 띠는 것은 분명했기 때문에 문장들을 수학책답게 풀지, 동시처럼 풀지를 두고 번역 초반에는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고, 번역을 하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책의 형식과 문체를 처음부터 완전히 바꾸면서 수정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택한 방식은 책의 형식은 시처럼, 내용은 대화처럼 풀자는 것인데, 그저 최선의 선택이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되도록 『길 위의 수학자』의 첫 한국인 독자로서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감정을 문장에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한국어와 영어는 어순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행이 놓인 순서를 바꾸어 배열해야 했던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살짝 한국어와 다르더라도 문장을 그대로 살려, 한국어로는 도치를 했구나 하는 부분도 없잖아 있습니다. 어색하게 읽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Q ∥ 본문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요?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이야기해주세요. A ∥ 기하학은 도형이 아닌 생각을 활용하는 수학이라는 구절을 읽을 때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실험을 경시했고, 머리로만 풀 수 없는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기하학은 도형을 보면서 길이를 재면 답이 나오는 문제를 다루는 게 아니라는 설명은, 수학에 무지한 저로서는(다행히 저자들은 일반인이라고 표현을 해주었네요)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점 스물다섯 개만 가지고 설명하는 ‘유한기하학’도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가는 경로만 같으면 합동이 되는 유한기하학의 선분들은 일반인이 익히 알고 있는 선분에 대한 상식을 파괴하면서도 또한 그런 선분들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번역을 하는 동안 유한기하학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지만, 참고할 만한 책은 많지 않았습니다(그래서 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아홉 개 숫자만을 가지고 만드는 유한대수도 흥미로웠습니다. ‘유한기하학’도 ‘유한대수’도 실생활에 쓸모가 있다기보다는 사고하는 방법에 충격을 주는 수학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만든 지식에는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저자들의 주장이 생각나는 부분입니다. 저자들은 절대 진리는 없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최선의 지식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지녀야 할 절대 윤리라고 합니다. 새겨 둘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Q ∥ 책을 읽으면서, ‘수학’과 우리네 ‘일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수학은 우리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지요. 또한 저자는 ‘수학의 세계에서 생각하는 법’을 알아가는 것이 곧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의 생각을 더한층 깨우는 일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관련해서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A ∥ 저자들은 책 초반에 쉽게 풀어볼 수 있는 문제를 세 가지 제시합니다. 바로 직장을 택하는 문제, 종이 냅킨을 쌓는 문제, 지구의 적도에 띠를 두르는 문제입니다. 세 문제 모두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답을 택했다가는 틀리기 쉽습니다. 이 세상에는 그런 식으로, 얼핏 생각했다가 틀리는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꼭 수치를 내는 것과 관련된 문제만이 아닙니다. 수학은 우리에게 조급하지 말 것을, 선입견을 갖지 말 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수학은 깊이 생각하는 기회를 주고 깊이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도구입니다. 수학은 쉽게 가는 지름길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평소라면 사용하지 않았을 사고력을 진지하게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학문이 수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학은 계산 결과로 풀어내는 답이 아니라 이리저리 궁리하면서 생각하는 과정이 의미가 있는 사고 능력 향상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도와주는 현명한 의사 결정력 향상 과정이 수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수학을 취미로 공부하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물론 저도 포함해야겠지요). 좀 더 진지하게 사고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함부로 말을 하기 전에,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데는 수학만큼 좋은 친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Q ∥ 과학 및 인문 분야의 다수의 책을 번역해오고 계십니다. 선생님만의 번역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A ∥ 살아오면서 한 분야를 진지하게 파본 적이 없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제가 읽고 배우고 싶은 분야를 택하다 보니 과학과 인문 쪽 번역을 하게 되었네요. 지금은 역자 후기와 리뷰를 보시고 소설도 해보자고 맡겨주신 편집자분이 계셔서 소설도 번역하고 있습니다. 남은 번역 인생 동안 되도록 비소설과 소설을 한 권씩 번갈아가면서 작업하는 재미를 누리고 싶다는 것이 요즘 새로 생긴 소망입니다. 저에게 번역은 여전히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큰 산과 같아서 좋은 분들과 함께 모여 꾸준히 영어와 한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번역 공부를 현재진행형으로 하고 있는 저로서는 별다른 번역 노하우는 없지만, 아는 지식이 별로 없어서 어떤 글이든 (시간이 허락한다면) 제가 알 수 있을 때까지 풀어쓰려고 노력합니다. 글의 내용을 바꾸지 않고도 형식을 변형해 적절한 한국어로 풀어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항상 염두에 두려고 합니다. Q ∥ 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나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을 꼽는다면요? 이 책과 관련해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셔도 좋겠습니다. A ∥ 경제경영서를 뺀 거의 모든 분야를 다작하는 편입니다. 약간 활자중독증이 있어서 늘 글을 읽어야 하는 편인데, 이해력이 부족해서 읽은 내용은 거의 대부분 머리로 들어가기 전에 눈앞에서 증발해버리고 맙니다. 거의 모든 분야의 책을 읽지만 저에게 독서는 지식을 얻는 과정이 아니라 그저 읽는 과정입니다. 읽는 과정을 사랑합니다! 현재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굳이 한 명 꼽으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움베르토 에코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사실 조지 오엘 같기도 하고 주제 사라마구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작가가 너무 많으니까요). 에코의 경우에는 읽어도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뇌만 어지러운 책을 좋아하기도 해서 『칸트와 오리너구리』를 읽으려고 몇 년째 도전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반도 못 읽었습니다. 읽다가 멈추는 책도 처음부터 다시 읽지 않고 멈췄던 부분부터 읽으며, 머리에 조금이라도 넣고 싶은 책은 적어도 세 번 정도 여러 해에 걸쳐서 반복해서 읽는 편입니다. 『길 위의 수학자』를 작업하는 동안 마음을 다독이면서 읽을 수 있었던 책은 경문사에서 나온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였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사이사이에 넣으면서도 수학이 인류 문명에 미친 영향을 깊이 있게 소개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번에 걸쳐 읽으면서 즐기면 좋을 책입니다. Q번역 작업 외에도 다양한 서평 등 칼럼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혹, 앞으로 집필하고 싶은 책의 주제가 있다면요? A ∥ 정밀하거나 정확하게 글을 쓰는 재주는 없어서 밖으로 드러나는 칼럼 활동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제 글을 좋아해주시는 편집자분들이 있어서 어린이 과학책 박스 글을 쓴다거나 작은 소품들을 의뢰받기는 합니다. 늘 공상하는 버릇이 있어서 판타지 소설을 써보고는 싶고,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들을 한 번은 정리보고 싶다는 소망은 품고 있습니다. Q ∥ 독자들이 어떤 면에 주안점을 두고 이 책을 보면 좋을까요? 이 책을 꼭 읽길 바라는 독자가 있나요? 끝인사 겸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일단은 이야기책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말로 이야기책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 뒤에는 수학이란 어떤 학문인지를 고민하면서 읽어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좀 더 고민하신다면 수학과 철학과 과학이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를 생각해보시면 좋을 거 같고, 이 세 학문이 종교와는 또 어떤 공통점이 있고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도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이 책은 당연히 우리 아이들이, 그리고 한국에 사는 많은 아이들이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수학은 노력을 한다면 정말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학문이라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요(그래도 절대로 재미없어, 라고 소리칠 아들 녀석이 떠오르지만요). 그리고 우리 남편도 옆집 아저씨랑 아줌마도, 더불어 많은 어른들도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수학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풀어낸 번역에서 오류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되도록 적기를 정말로 바랍니다. 이 책에서 재미를 발견하신 분은 행복하시기를 기원하고, 오류를 발견하신 분은 온화한 조언을 해주시기를 기원하고, 수학에 대한 호기심이 이는 분은 좀 더 본격적으로 수학책을 읽을 기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사실 저는 종교인이 아니라서 제 기원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궁리레터)를 읽는 분 모두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이 기원은 효과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