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나의 밥 이야기>를 펴낸 식품공학자 김석신 교수


Q 우선 독자들에게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제 전공은 식품공학입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 분야는 식품건조학이고요. 대학시절 제가 존경하던 은사께서 이 분야를 주로 하셨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따라 한 셈이지요. 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 삶의 패러다임에 무언가 변화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음식윤리’. 우리나라 대학에서 유일무이하다고 생각되는 이 과목을 개설하여 강의도 하고, 관련되는 논문도 쓰면서 참 행복했지요. 대학 은사께서도 칭찬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기뻤지요. 예전에 하수도 공사를 하면 그 주변을 넓게 파헤치는 바람에 다니기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칼로 도려내듯 아스팔트를 잘라내어 공사하는 현장을 보면서 참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정작 저는 예전 사람이라 그런지 ’넓게 파야 깊이 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효율을 중시하고 ‘빨리 빨리’를 지향하는 우리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 비효율적인 생각이지요. 이런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나의 밥 이야기』를 썼습니다. 한 자료가 다른 자료를 부르고, 저는 자료의 노예가 되어, 관련 깊지 않은 자료도 읽고 또 읽었지요. 이쯤해도 될 것 같은데 차마 그렇게 못하고 계속 넓게 파는 사람. 다른 책을 쓰더라도 또 그렇게 할 것 같은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Q『나의 밥 이야기』는 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집필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제목에 쓴 ‘밥’이라는 낱말이 단순히 우리가 먹는 밥만을 지칭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A‘밥’이라는 낱말의 의미_ ‘밥’은 ‘쌀을 씻어 솥에 넣고 물을 부어 끓여

 익힌 음식’입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의 ‘밥’은 이런 사전적 의미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공부나 일에 지쳐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온 자녀에게 부모님이 묻지요. “밥은 먹었니?” 밥에는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애틋한 걱정이 담겨 있습니다. 아직 밥을 먹지 않았다면 “쯧쯧, 얼마나 배고플까. 조금만 기다려라.” 엄마가 서둘러 차려주신 밥에서 나는 냄새. 엄마의 사랑이 흠뻑 배어 있는 냄새지요. 명절에 고향집에서 온가족이 함께 먹는 밥. 그 밥에는 행복이 철철 넘칩니다. 제가 중학교 때 병원에서 퇴원한 후 집에서 다시 만났던 밥은 늘 먹던 밥과 참 많이 달랐지요. 어린 마음에도 밥을 앞에 놓고 울컥 하더라고요. 글쎄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건강하게 살아 있음에 대한 고마움? 밥이 단순히 호화된 전분질 곡식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사실의 깨달음? 참으로 밥은 개인의 생명뿐만 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생명도 지켜주었습니다. 한마디로 밥은 우리들에게 사랑, 행복, 생명을 주는, 존재를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이지요. 『나의 밥 이야기』의 내용_ 이런 의미에서 『나의 밥 이야기』는 음식에서 비롯되는 우리들의 사랑, 행복, 생명 즉 우리네 삶 자체에 대한 스토리텔링입니다. 영어로 책 제목을 붙인다면 ‘My BOB Story’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이 책의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까 참 많이 고심했습니다. 어떻게 판을 짜야 독자가 이해하기 쉬울까. 아니 우선 저부터 이해하기 쉬울까 하는 큰 고민이었지요. 오랜 생각 끝에 ‘사람과 음식, 세상과 음식, 삶과 음식’의 세 부분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제1부 ‘사람과 음식’에서는 한 개체로서의 사람에 초점을 맞추었지요. 사람의 생명, 탄생, 죽음, 건강, 나이, 성별, 욕구 등과 음식이 맺는 관계나 음식의 본질적 의미를 중심으로 써내려갔습니다. 특히 서두에 음식과 관련된 사람과 동물의 차이와 차별에 대해서도 언급하였지요. 제2부 ‘세상과 음식’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세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쳤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란 무엇이고, 가족공동체, 지역공동체, 국가공동체, 민족공동체, 세계공동체와 음식의 관계도 둘러보았지요. 그 다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음식의 관계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권력과 음식의 관계나 금기음식과 음식문화의 상대성은 재미있을 겁니다. 제3부 ‘삶과 음식’에서는 인간의 삶―개체적이든 공동체적이든―과 음식의 관계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윤리, 복과 행복, 행복과 불행, 돈과 음식과 행복의 관계를 살펴보았지요. 여기서는 음식 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또 음식인이란 무엇이고, 음식인이 지켜야할 강령은 어떠하며, 행복과 불행에 직결되는 음식의 역할에 대해서도 조명하였지요. 『나의 밥 이야기』 집필 계기_ 평생을 이공계로 살아온 제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은 몇 해 전부터입니다. ‘식품위생학’을 강의하면서 늘 아쉬웠던 점. 우리는 사고의 원점 확인보다 사고 수습에만 바쁜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었지요. 실제로 식품과 관련되는 법규는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법이 식품위생사고를 확실하게 예방하진 못하더라고요. 식품사고의 예방은 법에 대한 타율적인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자율성 있는 윤리적 마인드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때 마침 제가 근무하는 가톨릭대학교가 설립이념에 맞게 ‘윤리적 인재 양성’을 목표로 윤리 교육을 강화하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힘들었지만 윤리와 관계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책과 논문과 씨름하였습니다. 그 결과 ‘음식 윤리’ 과목을 개설하여 강의하면서, 『잃어버린 밥상, 잊어버린 윤리』라는 책도 출간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애초 강의를 위한 교재였기 때문에, 내용이 딱딱하고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음식 윤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음식과 사람의 깊은 관계와 진솔한 의미를 드러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고 음식과 인간의 관계를 보다 깊이 보여주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지요. 이를 계기로 자료를 조사하면서 쓰기 시작하여 거의 3년 만에 완성을 보게 된 것이 바로 이 책 『나의 밥 이야기』입니다. Q교수님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음식과 관련된 재미있는 경험을 먼저 소개하고, 그에 어울릴 법한 일반적인 음식 이야기로 발전시켜 나가는 집필 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 맨처음도 “식품영양학 전공 수업시간에 비만을 주제로 이야기하며 볼록한 내 배를 감추느라 바빴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등 교수님의 삶이 많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나’를 이 책에 등장시킨 어떤 특별한 까닭이 있는지요?

A저는 이 책에서 음식과 인간이 빚어내는 ‘의미’와 ‘재미’를 균형 있게 쓰고 싶었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경험을 먼저 제시하여 독자의 공감, 친근감, 이해를 돕고자 하였지요. 강의할 때 말은 말하는 사람으로부터 듣는 사람에게로 흐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이 더 힘들지요. 이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반대로 가르침을 받아보면 금방 알게 됩니다. 말하는 사람은 신이 나지만 듣는 사람은 지루할 때가 많은 법이지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말하고 독자는 듣는 셈이지요. 듣는 사람의 지루함을 배려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하는 사람의 메시지를 잘 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감이 가지요. 말하는 ‘나’의 이야기는 곧 듣는 ‘너’의 이야기도 되거든요. 속담에 ‘떡이 별 떡 있지 사람은 별 사람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경험이라는 것도 다 거기서 거기이거든요. 지위가 높거나 격이 다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더 와 닿지 않겠습니까? 공감을 해야 귀를 기울이고 귀를 기울여야 메시지가 전달되듯, 공감을 해야 읽고, 읽어야 의미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조금 부끄러운 부분도 있지만 과감하게 ‘나’를 드러내고 ‘나의 경험’을 먼저 들려준 것이지요. 그래야 밥이 주는 진정한 삶의 의미와 밥에서 비롯되는 삶의 재미를 균형 있게 다루는 차원 있는 스토리텔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Q교수님은 음식의 과학적, 공학적 바탕에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접목한 새로운 지평의 강의와 연구를 시도하며 ‘음식윤리’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해오고 계십니다. 이 개념이 조금은 생소한 독자들에게 설명을 좀 해주신다면요? '음식인(飮食人)‘이라는 낯선 단어도 만드셨습니다. 이 또한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A‘음식윤리(food ethics)’는 ‘음식에 대한 윤리적 고려’라고 정의되는 응용윤리의 한 종류입니다. 이 용어는 1996년 벤 메팸(Ben Mepham)의 ‘Food Ethics’라는 책에 처음 등장하였지요. 하지만 성경의 창세기에 쓰여 있듯 ‘음식’은 인류의 탄생 초기부터 있었고, ‘윤리’ 역시 혼자 살 수 없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은 매머드를 혼자 사냥할 수도 없었고, 혼자 다 먹을 수도 없었지요. 그래서 가장 원초적인 음식윤리는 ‘나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원시적 나눔은 결혼식 뷔페와 직장 회식으로 바뀌었을 뿐 오늘날에도 그 본질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지요. 밥 인심과 술 인심이 여전한 걸 보면 말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이때의 행복은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나의 행복, 너의 행복, 그리고 우리의 행복을 의미하지요. 이 행복을 추구하는 길을 윤리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 윤리의 목적이 행복이지요. 그런데 요즈음 음식윤리에 대한 관심이 왜 갑자기 커지게 된 걸까요? 그것은 과학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대량생산을 목표로 농약과 비료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농업.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대량 사육하고 도살이 철저하게 분업화한 축산업.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식품이나 음식을 대량생산하는 식품산업. 이 모든 시대적 상황이 음식을 먹는 사람과 만들거나 파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였고, 누가 만든 건지 모르는 익명성도 증가시켰습니다. ‘생명’ 자체였던 음식이 단순한 ‘제품’으로 소비되면서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고 행복을 주어야 할 음식이 그 존재 이유를 자꾸 잃어버리게 된 거지요. 이렇게 음식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커진 만큼 음식윤리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음식인’의 의미_ ‘음식인’은 한마디로 ‘음식을 만들고, 팔고, 먹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음식윤리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이지 음식이 지켜야 할 도리는 아니겠지요. 만들고 팔고 먹어서 행복해지는 것은 사람이지 음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음식윤리는 음식을 만들고, 팔고, 먹는 모든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이지요. 음식을 만들고 팔고 먹는 사람 모두를 표현하는 용어가 바로 음식인입니다. 특히 접미사 인(人)은 어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중립적인, 즉 과도하게 존경하거나 비하하지 않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지요. 이 음식인 모두가 지켜야 할 윤리가 바로 음식윤리입니다. Q최근 들어 음식을 주제로 한 책과 방송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끊임없이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걸까요? 한때 ‘착한 식당, 착한 음식’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 인기였던 적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음식을 대하는 관점이나 시선이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해 갈까요? A오늘날 음식에 대한 관심은 지나쳐 보일 정도입니다. ‘한류’ 열풍을 타고 세계적 관심을 끌기 시작한 우리의 ‘한식’은 분명히 맛, 영양, 안전성, 기능성 면에서 우수한 음식임에 틀림없지요. 어느 날 아내가 불쑥 제게 던진 질문은 “우리 선조들은 그렇게 우수한 한식을 먹었는데 왜 단명했을까?”였습니다. 제 대답은 “먹는 양보다 더 많이 소모했기 때문”이었고요. 그렇습니다. 선조들은 보리밥 한 그릇을 먹고 먹은 것보다 더 많이 일했습니다. 서울-부산도 걸어 다녔지요. 게다가 수시로 기근이 들었고 영양부족에 따른 질병으로 인해 일찍 세상을 떴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죽음보다 영양부족이 더 큰 영향을 주었지요. 왕은 어땠습니까? 왕도 대부분 단명했지만 이유는 달랐지요. 바로 현대인들처럼 운동부족과 스트레스 그리고 영양과잉 때문에 단명했던 것입니다. 불로장수(不老長壽)를 바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요. 선조들이 추구하던 오복 가운데 수(壽), 강녕(康寧), 고종명(考終命)을 현대인은 건강수명을 늘리고 잘 죽는 것, 즉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이라 표현할 뿐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영양부족이 문제였고, 지금은 영양과잉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영양부족은 평민의 문제였고, 영양과잉은 왕의 문제였는데, 현대인은 왕보다 더 잘 먹지 않습니까? 미래학자 짐 데이토 교수는 “우리나라의 농식품 분야가 한류의 주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한국은 이미 한류로 자신의 이미지를 상품화해 수출에 성공한 ‘드림 사회’ 진입국”이라고 했답니다. 또 다른 이들은 곤충이 미래의 식량자원이라고 역설하고 있다지요. 어떤 것이 우리의 미래가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건강수명과 행복을 지향하는 인류의 욕구와 음식에 대한 보수적인 성향은 크게 흔들릴 것 같지 않다는 점이지요. 어떤 음식이 새롭게 등장하더라도 음식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 고유성’의 네 가지 조건이 만족되지 않으면 그 음식은 존립하지 못하고 사라질 것입니다. 김치가 우리 식탁에서 사라져 ‘현재성’이 없어진다면, 곤충이 들어간 음식이 ‘대중성’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리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피자라도 빈대떡과 같은 ‘주체성’과 ‘고유성’이 없다면 소용이 없겠지요. 그런 음식은 외면 받아 사라지기 쉬울 것입니다. 그래도 변함없는 것은 있겠지요. 맛있고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에 대한 요구와 식탁의 행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음식 윤리 말입니다. Q“음식은 무엇이고 또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사람의 생명과 음식은 어떤 관계가 있나? 음식에도 이데올로기가 있나? 공동체와 음식은 무슨 관계가 있나? 음식은 권력인가? 음식인의 정의와 그들이 지켜야 할 것에는 무엇이 있는가?” 등의 무수한 질문들의 결론은 결국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A사람은 생명이 있기에 삽니다. 생명이 없으면 죽은 것이지요. 생명은 생명이 만들어내고 생명은 생명을 먹으며 삽니다. 우리가 먹는 것은 다 생명이지요. 즉 생명이 음식이고 음식이 생명입니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법. 불행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음식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데 그 음식은 바로 다른 생명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먹어야 합니다. 설령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다 하더라도 생명이 있는 음식을 대할 때 그 음식도 생명임을 잊지 말아야 하지요. 나만 행복할 수 없습니다. 쌀 한 톨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음식의 지평 너머에 있는 영속되는 생명의 우주를 보면서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자꾸 잊어버릴지라도. Q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A『나의 밥 이야기』 말미에 고구마꽃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고구마를 거두는 시기보다 고구마꽃이 피는 시기가 더 늦다고 하지요. 그래서 고구마꽃 보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물론 요즘 고구마 중에는 꽃을 쉽게 볼 수 있는 품종도 있다고는 하지만. 고구마는 줄기를 심으면 거기서 뿌리가 나오고 잎이 나오고 툭 불거진 고구마도 땅속에 생깁니다. 아들딸 고구마는 심었던 고구마 줄기와 거의 비슷한 특성을 보이겠지요. 고구마 입장에서는 손쉬운 번식방법입니다. 하지만 고구마꽃으로 번식하여 씨를 맺으면 선조와는 다른 아들딸 고구마가 생기겠지요. 달라진 고구마의 탄생. 고구마의 영양번식은 단기적으로는 쉽고 간편하지만, 스스로 품종을 개량하려면 장기적으로 꽃씨로 번식해야 합니다. 우리도 현재 수준의 음식윤리를 답습해 나가면 고구마의 영양 번식처럼 큰 문제없이 살아나갈 수 있겠지요. 하지만 예기치 않은 불행의 방지나 지속적인 행복을 위해서는 달라져야 합니다. 음식윤리의 ‘고구마꽃씨’로부터 출발하는, 지루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방식을 생각해야할 때이지요. 비록 변화가 더디고 의미가 작아 보일지라도 계속 노력한다면 우리는 물론 후손까지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