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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내게 금지된 공간, 내가 소망한 공간> 서윤영 인터뷰


Q∥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로 궁리 레터 2호에서 인터뷰를 한 바 있습니다. 이후 거의 3년 만에 다시 새로운 책을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셈인데, 이번에 내놓은 『내게 금지된 공간, 내가 소망한 공간』은 이전에 써왔던 책들과는 달리, 저자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엮었습니다. 어떤 내용을 담은 책인지요?

A∥ 제목에서 ‘내’가 드러나는 것처럼, 나의 이야기이자 내가 소망했던 공간의 이야기입니다.중학교 때, 이 다음에 나는 아내의 사랑(舍廊), 남편의 사랑이 따로 마련된, 두 개의 사랑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단지 소녀시절의 꿈일 뿐 실제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10년 후 내가 결혼을 할 때면 그런 꿈을 꾸었는지조차 새까맣게 잊고 말 거라고, 지레 생각했었습니다. 정말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10년 후 나는 결혼이 아닌, 학교 설계실에 앉아 또 다른 20년 후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자녀 없는 40대 부부가 사는 집을 설계하되, 각자 아내의 서재, 남편의 서재를 따로 마련하라는 것이 당시 내려진 설계지침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집이 과연 얼마나 된다고…, 그때 저희들은 그렇게 수군거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말이 다가와서 크리틱에 초대된 외부 건축가들도 꼭 그러더군요, 세상 어느 집에서 여자가 서재를 따로 쓴단 말이니, 서재는 남편 서재 하나만 있으면 되는 거야.

물론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다들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지요. 그러나 제가 의문을 가진 것은, 그 집안의 공동 서재가 어째서 당연히 남편의 서재인가, 하는 거였습니다. 언젠가 TV 광고에서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여보, 새 집 이사가면 당신 서재 꼬옥 만들어 드릴게요.”

아주 간절한 아내의 목소리였습니다. 공동 서재를 함께 만들자, 그것이 아닌, 당신 서재 만들어 드릴게요, 라고 하더군요, 참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공손한 목소리로….

그 무렵 여성잡지의 설문조사를 보면, 방이 한 여유가 있다면 가장 만들고 싶은 공간 1위가 남편의 서재, 2위가 아내의 작업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성 스스로가 남편에게는 서재가 필요하고, 자신에게는 작업실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의문들에서 출발한 거였습니다.

그래서 정말 중학교 때 꿈꾸었던 두 개의 사랑이 있는 집, 대학원시절에 그렸던 두 개의 서재가 있는 집을 실제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오랫동안 자신만의 서재를 갖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뭐하는 분이길래 공부방을 두 개나 쓴대요?” “세상에 서재가 두 개인 집이 어디 있어?” 등 세상의 선입견과 편견이 담긴 시선을 많이 경험하셨을 것 같은데, 오랜 시간이 흐른 요즘은 이런 반응들이 좀 줄어들었을까요?

A∥ 1999년에 결혼해서 이럭저럭 10년이 넘었고, 무엇보다 이런 글을 한번 써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아내의 서재’라는 검색어를 꾸준히 입력해 보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예 검색 자체가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 한겨레신문에서 부부공동의 서재를 한번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함께 나온 사진은, 뭐랄까, 남편이 아내에게 자신의 서재 반쪽을 할애해준 것이자, 마치 듬직한 큰오빠가 여동생 귀여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남편이 아내를 쳐다보고 있더군요, (그 사진은 아직도 검색이 되고 있습니다).

그 후 요즘에는 일부 연예인이나 명사 등을 중심으로 아내에게 별도의 서재를 마련해주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데 역시 아직은 생소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녀의 부엌, 그녀의 작업실 등, 요즘 많이 팔리는 단행본의 이름입니다. ‘그녀의 서재’라는 책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걸 보면 ‘서재는 남편 서재 하나면 충분하고, 여자에게는 별도의 서재가 필요하지 않다’ 그 생각은 여성 자신이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대개 여성들은 부엌이나 작업실을 더 좋아하는 모양인데, 그 작업실에서 하는 일이 주로 재봉틀을 돌려서 간단한 옷이나 소품을 만드는 일이더라고요.

내가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는 사람이냐? 내가 이 집 가정부야? 삶에 지친 주부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녀들이 원하는 공간은 밥하고 살림하는 공간이더라고요, 무언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면이 있네요. 아마 그러한 문제점들이 펜을 들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Q∥ 눈에 띄는 점은 결혼을 하고 옮겨 다닌 여섯 개 아파트의 도면과 그곳에서 읽은 책의 목록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간과 책이라는 물건을 함께 엮은 까닭은 무엇인지요?

A∥ 어쩌면 이 책은 ‘서재와 독서’라는 두 가지 요소를 서로 교직시켜 놓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개 책을 읽고 서평을 작성해 놓은 독서일기류의 책은 많지요, 혹은 서재 꾸미기, 내집 마련 등 개인주택의 이야기를 다룬 책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는 서재를 마련하고 그 서재에서 책을 읽고, 그리하여 마침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재 꾸미기에 담론은 현재 활발한데, 그런데 그저 서재 만들기에 그칠 뿐 거기서 책은 읽지 않는 것 같아요. 그저 보여주기 위한 서재, 남자가 혼자 지내기 위한 서재 등의 성격이 강해요,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작성하는 개인블로그 등이 많고, 그중 많이 읽는 사람은 하루에 한 권 또는 1년에 100권씩 꾸준히 읽는 것 같아요, 서평도 작성하고 또 그걸 책으로 엮어내기도 하는데, 그런데 그냥 개인적인 독서이력으로 그치는 경우도 많지요. 저의 경우에는 운이 좋았는지 어쨌는지, 서재 마련과 독서로 인해 인생에 전환점이 생긴 경우니까, 그 이야기를 한번 풀어보고 싶었어요.

결혼 후 13년 동안 여섯 번 이사 다닌 이야기, 그리고 600권의 책을 읽은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이면서 무늬를 자아낸 거죠.



Q∥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던 것 같은데, 평소 책을 읽는 원칙이랄까요, 나만의 특별한 독서 방식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A∥ 특별한 것이라,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저 초등학교 때 배웠던 정독이 전부입니다, 라고 말하면, “그저 예습 복습과 학교 공부에 충실했어요”라고 대답하는 전교 일등의 얄미운 꼼수로 보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정말로 정독이 전부입니다. 속독이나 비독(飛讀, 주요 부분만 골라 읽는 발췌독)은 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재미있게 읽습니다. 원래 빠른 것보다는 느린 것, 새로운 것보다는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성미라서, 한 번 읽었던 책도 재미있다 싶으면 또 다시 읽습니다. 그래서 2~3년 터울을 두고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반복해 읽을 때도 많은데, 한 번 읽었을 때보다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수박을 그저 겉에서 구경만 하는 것이 초독(初讀)이요, 그것을 칼로 잘라 보는 것을 재독(再讀)이라 하겠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짙은 초록빛이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속살은 새빨간지, 초독과 재독의 차이가 이렇게 극명합니다. 삼독(三讀)은 그것을 직접 먹어보는 것일 텐데, 초독만 하고 그 책을 덮어버리는 것이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속에 새빨간 속살이 있는 줄도 모르고, 아니 수박 맛도 모르면서, 수박에 대해 잘 아는 양 혼자 착각하는 것이지요.

그 다음으로는 한 가지 주제를 깊이 천착해서 읽는 방법인데, 이를테면 매년 동지(12/22)부터 다음해 우수(2/19)까지 겨울 동안 신화를 집중적으로 읽는 방법을 지난 10년간 계속했던 적이 있습니다 (마치 스님들이 동안거 하는 것처럼 ^^;;;). 2001년에는 그리스 신화를 읽기로 하고, 서로 다른 저자가 저술한 그리스 신화를 대여섯 권 구해서 집중적으로 읽었지요,

그 다음 2002년에는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서너 권 구해서 읽고(우리나라의 문화편중을 심하게 느낍니다. 신화라면 그리스 신화가 대부분, 다른 것은 참 구하기 힘들어요), 2003년은 이집트 신화였나. 이런 식으로 북유럽신화, 켈트신화, 중국신화, 인도신화, 일본신화, 한국신화, 아프리카 신화 등등 지평을 넓혀 나가면 정말 재미있어요, 나중에는 정말 신화학자라도 된 듯한 이상한 착각에 빠지면서, 그냥 마구마구 글을 쓰고 싶어져요, 정말이에요.

또는 자기 전공에 관련된 지평을 계속 넓혀 가는 방법도 있어요, 예를 들어 나는 건축을 전공했으니까 18세기 프랑스 주택에 관한 건축서적을 서너 권 구해 읽으면서, 동시에 18세기 프랑스 소설을 함께 읽는 거예요. 적과 흑, 나나, 레 미제라블, 괴도 루팡 등등. 그러면 18세기 프랑스 사회와 그 주택들의 모습이 마치 3D 입체영상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나는 기분이 들고요, 딱 바로 그때 “괴도 루팡은 어떤 집에서 살았을까” 이런 책을 쓰면 바로 베스트셀러가 되겠죠? (그런데 이건 정말 핵심기술인데 ^^;;;)

언젠가 한번 너무너무 멋진 책을 발견한 적이 있었어요. 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책을 쓸 수 있는지, 나에게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능력을 준다 하면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 수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하게 하는 책이었지요. 그래서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대신, 그 책의 말미에 나와 있는 참고문헌을 읽었어요. 물론 모두 읽은 것은 아니고 구할 수 있는 만큼, 또 읽을 수 있는 만큼 읽고 나서, 그리고 몇 년 뒤에 그 원래 책을 다시 보니까 예전과 같은 엄청난 아우라는 사라지고, 다만 뭐 이 정도라면 나는 좀 더 다르게 쓸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내가 그만큼 자랐다는 이야기겠지요. 이건 재독, 삼독과는 다른, 뭐랄까, 아예 책을 통째로 꿰뚫어버리는, 관독(貫讀)이라는 말이 좋겠네요.


Q∥ 이 책에는 공간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여성을 옥죄었던 다양한 사회문화적 제약들을 넘어서려는 저자의 도전이 곳곳에서 엿보입니다. 그런 장벽들을 만날 때마다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A∥ 스물여덟 살에 수학에서 건축으로 전과를 했고, 또한 서른네 살에 T자 대신 펜을 잡는 것으로 전업한 것을 두고, 대개 사람들은 파란만장했다 혹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그런데 그런 행동은 용기 보다는 열정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개 스물여덟 살과 서른네 살이라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나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하던 것도 중단하게 되는 나이이기도 하지요. 특히 여성이라면 결혼 또는 임신과 육아 때문에 심각한 경력의 단절이 일어나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일견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도전을 선택한 이유는….

저보다 선배격인 한비야 씨가 먼저 말한 바 있습니다. 지금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 라고요. 제가 그때 꼭 그러했습니다. ‘건축’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 분명 심장이 뛰었고요, 또한 자신의 이름을 단 책을 낸다는 생각을 했을 때 역시 가슴이 뛰었습니다. 인생에서 어떤 전환이나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이것이 옳은가, 저것이 옳은가, 스스로도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 때 제가 사용하는 방법은 심장이 뛰는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저는 심장의 박동을 딱 세 번 경험했는데, 그 순간이 오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고 신호를 보냅니다.

열다섯 살의 어느 날, 갑자기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듯한 충격을 받으며 건축가가 되리라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 아버지가 지금이라도 건축으로 전과를 하라고 했을 때, 정말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치는 줄 알았습니다. 서른네 살 출판계약서와 사직서를 양손에 쥐고 있는 내 손이 2만 볼트 전류에라도 감전된 듯이 덜덜덜 떨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지체없이 결행했던 것, 그거 하나밖에는 없습니다.

여성은 사회적 제약이 심하다고 하는데, 그러나 저의 경우 오히려 여성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스물여덟 살의 전과, 남자라면 그 시기 군 입대를 해야 하고 그 이후엔 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서른네 살의 전업, 처자가 있는 남자가 과연 회사를 그만두고 글쓰기라는 그 불투명한 미래에 자신뿐 아니라 가족 전체를 내맡길 수 있을까요? 사회적 제약에서 더 자유로운 것은 여성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제게 처음 가르쳐준 사람은 아버지였습니다.

오래 전 TV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숲 속에 홀로 사는 남자가 하루는 어미를 잃고 홀로 버려진 작은 새를 한 마리 집으로 데려와 키웁니다. 그런데 이 새는 두 다리밖에 없어서 네발 달린 개와 고양이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지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날아다니는 짐승을 보지 못한 어린 새는 그저 개와 고양이를 따라 달리기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새는 점차 자라고, 드디어 남자는 새에게 날기를 가르치기로 결심합니다. 하늘을 날지 못하는 인간이 과연 새에게 날기를 가르칠 수 있을까, 라는 그 나레이션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데,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남자를 보며, 그를 어버이처럼 따르는 새는 자신도 날개를 펼치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말로 하늘을 날고, 마침내 이소(離巢)를 하는 새를 지상에서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이 여태 기억에 선명합니다, 제게는 아버지가 바로 그러했으니까요.

남자라면 응당 짊어져야 할 책임과 의무가 여성이기에 면제되고 대신 더 많은 자유가 있다는 걸, 네발짐승에게는 없는 날개가 있다는 걸 가르쳐준 사람, 그런 아버지라면 결혼식 날 웨딩베일을 벗어 던진 돌발행동쯤이야, 내 딸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겠지요.


Q∥ 얼마 전 이사한 집에는 자신만의 응접실을 마련했다고 했습니다. 거실이 있는데, 이 공간을 따로 왜 마련했을까, 언뜻 궁금증이 이는데요. 나에게 응접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요?

A∥ 그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의 한 장면 때문이기도 한데,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놀러 와서 주방 한켠에 놓인 식탁에서 차를 마시는 장면이었어요, 이상스러울 것은 없지만, 그러나 여성은 왜 남의 집에 가서도 제대로 된 손님대접이 아닌, 부엌에서 차를 마셔야 하나요? 예전에 남자들은 방안에서 밥상 받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먹는 장면, 그걸 보며 옛날에는 어떻게 저렇게 살았나 하지만,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고급스럽고 세련되게 꾸며졌을망정 여전히 부엌인 그곳, 그 옆에 놓인 식탁에서 지금도 여성들은 차를 마시고 밥을 먹지요. 명절에 혹은 어른의 생신에 많은 손님이 왔을 때, 지금도 여전히 남자들은 거실 교자상에, 여자들은 부엌 식탁에 모여 앉지 않습니까. 더구나 여성지와 인테리어 잡지에서는 아예 ‘여자는 부엌에서 밥을 먹으라’고, 여성들끼리의 모임이라면 차라리 주방 앞 아일랜드 식탁에 테이블을 차리는 것도 좋다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즘에는 주방 한켠에 가계부 작성과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는 맘스 데스크(Mom’s desk, 엄마 책상)를 두는 아파트도 생기고 있습니다. 그게 여성을 배려하는 공간인 것 같지만, 옛날에 부엌에 앉아서 부지깽이로 한글을 깨치던 것과 뭐가 다릅니까. 여자에게는 서재가 필요 없다, 대신 주방이 아름다우면 된다, 그러니까 거기에 맘스 데스크를 두고 여자손님도 거기서 대접하라. 이게 조선시대하고 뭐가 다를까요.

아직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응접실을 제가 굳이 갖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문제점에서 출발했습니다. 여성손님이 왔을 때 거실을 차지하고 앉은 남자손님에 밀려 결국 부엌으로 오고 마는, 그래서 엉거주춤 식탁에 앉으며 손님임에도 손님대접을 받지 못하는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서재가 내 자신을 위한 공간이었다면, 응접실은 우리집에 초대된 여성손님을 위한 공간인데, 그런데 대부분 많이 어색해하더라구요, 남의 집에 가서 손님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아직은 낯설고 불편한가 봐요. 하긴 ‘아내의 서재’도 10년 전에는 몹시 생소했지요, ‘아내의 응접실’이란 아직까지는…,

Q∥ 700권, 800권... 자신만의 서재에서 끝없는 독서는 계속 이어지겠지요? 앞으로 또 어떤 글들을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신지요? 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A∥ 결혼 후 서재를 만들고 책읽기를 시작하고 그리고 그것이 내게 만들어 준 변화들, 이번 이야기들은 저의 30대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20대의 나는 책읽기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책을 읽을 틈이 없었지요.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중 하나가 여행이었습니다. 일본어와 불어를 배우고 그리고 실제로 여행했던 일본과 프랑스는 여섯 수레의 책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도시, 그곳에서 만난 사람, 그래서 이 책을 쓰는 내내 입안에서 간질간질 맴돌던 말들, 정말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그 뱃덧 같은 이야기들을 다음번에는 기어이 쏟아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나이가 들수록 꿈과 희망은 더 많아지고 또한 더욱 선명해지는 느낌입니다. 마흔네 살, 인생의 최절정기에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마흔 살이 되고서는 공부의 관심이 주택과 건물에서 도시와 건축으로 급격히 옮겨가는 느낌입니다. 지금 박사논문으로 준비하고 있는 주제도 그러한 것인데, 그에 대한 갈무리가 다음 번에 나오지 않을까 계획하고 있습니다.

쉰 살이 되면 도시가 아닌, 오히려 인간주거의 원형을 탐구하고 싶습니다. 아프리카로 여행을 다니면서 지금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인류의 원시움막, 원형주거 등을 채집하고 싶어요.

그리고 예순 살이 되면 그 관심을 인간을 너머 동물에게도 돌리고 싶습니다. 동물이 집을 짓는다는 게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요. 새가 집을 짓고, 벌레가 집을 짓고, 그런데 지능이 높고 고도로 정교한 사회생활을 하는 유인원들은 집을 집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런 새대가리 같은, 혹은 버러지만도 못한, 이라고 말하는 그 새와 벌레가 집을 짓습니다. 대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집을 짓게 하는지, 건축이라는 고도의 공정을 어떻게 새대가리와 버러지가 할 수 있는지, 그런데 그 새와 벌레가 지은 집을 인간이 홀랑 털어 먹더라구요, 제비집 요리가 그렇고, 또 벌집에 꿀을 발라서 비스킷 먹듯이 먹는데, 솔직히 건축가로서 저는 --;;;

그러다가 일흔이 되면 그만 돌아다니고 집안에 앉아 열심히 열심히 책을 쓰고 싶어요.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 않은가요. 웃을 땐 고운 주름이 자글자글 피어나고 이 검은 머리가 온통 새하얀 빛으로 바뀌고 나면, 그때 나는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울까요.

열여덟 살인가, 그 때부터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더군요, 그런데 정신은 계속 자랐어요.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스무 살이 간신히 사람대접을 받는 서른 살로 자랐고, 그리고 지금 스무 살보다 더 젊은 마흔 살, 서른 살보다 더 아름다운 마흔 살로 자랐네요, 열다섯 소녀가 앞으로 5년 후 스무 살 아가씨로 자랐을 때를 떠올리며 가슴이 설레듯, 저 역시 어서 빨리 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육신의 성장은 멈추어도 정신의 성장은 결코 멈추지 않으리니, 지금보다 훨씬 유능해져 있을 예순을 기다리고 또한 거인처럼 자라있을 일흔을 기다립니다. 그 생각을 하면, 앗, 지금 심장이 뛰어요, 찻잔 속의 커피가 너울처럼 일렁이는 것, 보이나요? 이것이 생애 네 번째 박동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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