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이굴기”라는 필명으로 두 번째 책을 지으셨습니다. 첫 책은 2014년 가을에 낸 『꽃산행 꽃詩』였고, 이번 책은 『내게 꼭 맞는 꽃』입니다. 꽃공부하고 꽃글을 세상을 내놓을 때, 이 이름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 호는 그냥 단순히 짓는 게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살다가 무언가 인생의 전환을 맞이하는 국면을 맞이할 때가 있지요. 그럴 경우 여행을 가거나, 이사를 가거나 혹은 목욕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기도 하겠지요. 산에 올라 호연지기를 내뿜으며 정신을 일신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일부를 잠깐 바꾸는 것입니다. 자신의 전부를 확 바꾸는 방법은 자신의 이름을 바꾸는 것입니다. 나의 이름이란 게 내가 지은 바도 아니고, 또 나보다도 남이 더 많이 사용하는 법이지요. 호는 이런 배경을 깔고 자신의 주체를 자신의 의지로 확 드러내는 방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 나이 오십이 되면서 생의 전환이 절실했고, 그에 맞추어 절을 조금 했더랬는데, 그때 평생지업 일일굴신(平生之業 日日屈身)이라고 조악하게 작문을 해서 종이에 쓰기도 했지요. 굴신(屈身)이란 말이 조금 비굴한 것 같아서 굴기(屈己)로 비틀었더니 그런대로 이름으로 삼을만해서 자호로 삼았지요. 그 이후 산에 가서 꽃 앞에 가니 무릎을 꿇을 일이 자주 생기고, 그러면서 꽃공부에 굴기라는 말이 합당하게 적용되는 것 같아서 그대로 쓰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고 다루느냐가 더 중요하겠지요. 또 모르겠습니다. 꽃 앞을 휙 떠나는 곤충처럼 저도 꽃이 싫어 꽃을 훅 떠날 날이 있을지도. 그땐 이름부터 하나 새로 장만해야겠네요.
Q ∥ 이 책은 2014년 2월부터 경향신문에 연재 중인 <꽃산 꽃글>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신문에서 <꽃산 꽃글>을 읽을 때, 꽃 하나에 얽힌 사연을 원고지 5매의 짧은 분량에 풀어내는 구성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신문 지면에 전하지 못한 뒷이야기와 꽃들의 사진을 보강해서 내놓으셨는데요. 신문 연재하실 때, “원고지 5매”라는 분량이 글 쓰는 입장에서 장/단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A ∥ 우리 시대가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입니까. 그 소식을 담아내야 하는 신문이니 속보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이목을 끌 만한 내용이 대부분이겠지요. 제 글이야 이런 사태하고는 한 발짝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느긋한 일들을 전하는 것이니 결이 조금 다른 글이겠네요. 그러나 모두가 그런 속도와 소리를 낼 때 전혀 다른 무늬를 보이는 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겠기에 신문에서도 지면을 내어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말씀드리는 건 저는 나무나 꽃에 대해 전문가도 아니고 지식 또한 짧기에 과학적인 정보는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꽃에 대한 저만의 인상기이겠지요. 그러나 어찌되었든 내 발로 그 꽃 앞에 가서 내 육안으로 확인하고 내 손으로 만지고 내 코끝으로 냄새 맡은, 그런 바를 토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꽃을 찾아 그 꽃 앞에 당도하기까지의 흔적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것이지요. 제가 좀더 내공을 쌓아 식물의 특징을 저만의 눈으로 포착해서 그 내용을 웬만한 누구라면 알기 쉽게 묘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 새 책의 제목이 『내게 꼭 맞는 꽃』입니다.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다는 건 어불성설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왜 꽃입니까? 왜 꽃이 좋으신지 여쭤보아도 될까요? A ∥ 원고를 모두 넘기고, 책 제목에 대해 고민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적당히 술을 한 잔 먹고 세수를 하기 위해 머리 숙이고 손바닥에 물을 받을 때, <내 몸에 꼭 맞는 꽃>이라는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을 편집부에 말했더니 지금의 제목으로 수정한 것이지요. <꼭>과 <꽃>이 마치 일부러 맞춘 어색한 대구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더 좋은 것을 찾지 못해 그것으로 제목으로 삼았지요. 가만히 관찰해 보면 이 세상에 가만 정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손가락 끝의 손톱이나 코밑의 수염도 어느 날 문득 무성하게 자라있기가 일쑤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꽃은 여러 상징으로 쓰입니다. 대개 가장 화려하고 절정의 어느 한 순간을 대변하는 것으로 꽃을 불러냅니다. 하지만 정말 꽃은 순식간에 피었다가 금방 집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산에 가서 꽃을 보아도 잘난 꽃을 보기가 힘듭니다. 대부분 이지러지거나 시들거나, 벌레 먹거나...... 꽃이 좋다면, 가만히 있지를 못해서 그래서 더욱 좋은 것일 테지요. Q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같은 산이라도, 같은 나무더라도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합니다. 지난 다섯 해 동안 꽃산행을 다니시면서 계절의 변화와 리듬을 온몸으로 경험하셨을 텐데요, 그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책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잎사귀도 꽃도 열매도 진 겨울산을 간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A ∥ 나무를 보되 식물원이 아니라, 화단이 아니라 가급적 야생의 것을 보기로 했기에 산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산 또한 가만 관찰하면 그냥 늘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닙니다. 항상 움직이고 변화하고 나아갑니다. 제가 인왕산의 사계를 일 년에 걸쳐 관찰하겠다고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바인데 인왕산은 매 순간마다 같은 모습인 적이 한 번도 없었지요. 생각해 보면 내가 본다는 건 나의 입장과 내가 처한 조건에서 내 눈으로 세상의 일부를 편집하는 것입니다. 인왕산을 사무실 근처에서 보면 인왕산은 인왕산만으로 분리되는 게 아니라 하늘과 산, 서울과 조합된 공동체의 일부였습니다. 그럴 때 서울과 동네가 조용하면 하다못해 하늘에서 구름이 어슬렁어슬렁 나타나서 변화된 풍경을 완성하여 주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일 겁니다. 내가 내 안에 머물러 너무 고정적으로 바라보았기에 그렇지 실상 이 세계는 변화의 소용돌이에 온통 휩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아무튼 산에 들면서 그런 생각의 저절로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음력에 기반한 24절기를 일상생활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막상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글을 쓰면서도 이 절기에 관한 내용을 담으려 했는데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이는 나중 사무실 근처의 심학산 일기를 쓸 때 24절기를 기반으로 한 계절의 변화, 일상의 리듬을 담아내볼까 구상하고 있습니다. 흔히 꽃은 꽃이 필 때만을 생각해서 겨울산에 가서 무엇을 볼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겨울산에 가면 봄이나 여름에 꽃을 피우기 위한 작업을 이미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겨울눈도 나무를 동정하는 주요한 키포인트이기도 한데, 다종다양한 겨울눈을 가만 들여다보면 꽃만큼이나 아름다운 또 하나의 세계이지요. Q ∥ 이 책을 보면서 “각양각색”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저 때 되면 우리에게 신록을 선사하는 자연의 배경으로 생각했던 식물들. 그 얼굴들을 들여다보니, 생김새가 어쩜 그리 다르던지요. 이 책에서는 꽃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차원을 넘어서, 같은 나무 한 그루에서도 그 차이를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나무에서도 가지는 다 다르고, 같은 가지에서도 꽃은 색깔과 방향이 서로서로 다르다. 하얗게 피었다가 분홍빛이 되었다가 붉은색으로 변하는 꽃들. 이미 지는 꽃, 활짝 핀 꽃, 벌레 먹은 꽃들도 제각각 있다. 막 피기를 기다리면서 세상을 향한 포부를 가득 담은 꽃봉오리도 있다.” 비슷한 듯 다채롭고 다양한 꽃들을 이제 막 눈에 익히려는 분들에게 조언의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A ∥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맹점(盲點)이 있으니, 그건 바로 나 자신일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이 또한 나라는 물체일 것입니다. 나 혼자의 구태의연한 안목과 시선으로 그간 살아왔던 셈이지요. 꽃을 보고 나무를 만지면서, 나라는 중심을 벗어나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요. 예전엔 제자리에 있는 나무가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할까 하는 평면적인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유치한 생각에서 아직도 온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지만 꽃 너머, 나무 너머를 보려고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참 좋은 것을 참 좋은 이에게 보낼 때 곱고 고운 보자기라는 형식에 담습니다. 나무나 꽃도 이 세상이 참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형식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Q ∥ 식물을 구성하는 부위, 즉 뿌리, 줄기, 가지, 잎, 꽃, 열매 등 중에서 “잎”에 더 관심이 가는 때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연유에서 잎에 더 궁리를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 식물을 형용하는 용어들이 인체의 부위들에서 따온 게 많습니다. 우리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하는 것처럼 식물에게는 뿌리, 줄기, 가지, 잎, 꽃, 열매가 꼭 같은 손가락일 겁니다. 우리는 흔히 꽃에만 집중하는데 실은 나머지 것들도 그에 못지않게 제 역할도 하고 예쁘기로 치자면 꽃에 꿀릴 이유가 전혀 없지요. 꽃이 나기 전에 잎을 보면 그 연약하고 부드러운 것들이 간직한 매혹에서 헤어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단풍이 들 때, 대부분 꽃은 집니다. 둘이 함께 존재한다면 사람들의 눈을 두고 다툴 것인데 단풍을 위해서 꽃은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지요. 이렇게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시간을 두고 자리를 지키면서 한 나무 안에서도 질서를 지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니 꽃이 화려한 만큼 잎은 현명하다고 어찌 아니 할 도리가 있겠습니까. Q ∥ 끝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A ∥ 공자님도 제자들에게 시경을 많이 읽으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까닭으로 시경을 읽으면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을 많이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새, 동물, 풀,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수록 이 세상을 많이 아는 것입니다. 그만큼 자연과 접촉 면적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식물 이름 하나 안다고 그 식물을 아는 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식물의 세계로 들어가자면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이름은 그 입구에 달린 손잡이와도 같을 테니까요. <내게 꼭 맞는 꽃>에 등장하는 꽃 이름 84개를 중얼거려봅니다. 이 이름들은 마음에 붙이는 84장의 우표와도 같습니다. 이제 이 강력한 우표들이 우리를 어디 멀고 낯선 곳으로 배달시켜줄까요? * 이 책은 6월 22일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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