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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내 인생의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펴낸 안승철 교수 인터뷰


Q∥ 그동안 『우리 아이 머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등 생리학이라는 자신의 전공 분야를 살려 관련 책들을 쓰거나 우리말로 옮기셨습니다. 이번에 출간되는 『내 인생의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그러한 앞의 책들과는 달리, 의대를 나와 의사가 아닌 의학자로 살아가는 저자 개인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동물실험에 대한 막연한 저항감과 죽어가는 동물들에 대한 부채감이 있다고 하셨거든요. 그리고 어떤 내용을 담으려 하셨는지요?

A∥ 제가 맡은 생리학 강좌에는 실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습 중 하나인 토끼 동맥혈압 측정은 그 난이도 면에서 학생들이나 제게 스트레스가 가장 심한 실습입니다. 2001년 처음 단국대에 온 후 2년 정도 지나 이 실습을 단국대에서 처음 하게 되었는데 첫 실습이었던 까닭에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실습에서 토끼가 죽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이곳에서의 첫 실습이어서 그랬을까요? 죽은 토끼의 눈에 맺힌 눈물이 굴러 떨어져 검은 비닐을 적시던 그 광경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우연히 『우리 아이 머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를 번역하여 책을 쓰는 일에 발을 들이고 난 후 내가 경험하고 있는 죽음, 나로 인해 일어나는 죽음, 그러한 죽음을 유발한 데 대한 죄책감 따위를 언젠가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토끼 동맥혈압 실습>은 그 생각을 처음으로 글로 옮긴 것입니다.

죽음에 관해 쓰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글로 옮기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일상이 되어버린 죽음에서 다양한 면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과학을 하는 입장에서 죽음 뒤의 삶이나 영혼에 대해 얘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제가 정해지지 않다보니 글을 계속해서 써나가는 일은 참 힘이 들었습니다. 제 눈은 자연히 실험실 밖으로 향했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삶이 제 글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글의 계기가 되었던 제 실험들도 가끔씩 저를 불러세웠고요. 글을 그만 쓰고 책을 내겠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처음 생각과는 다른 책이 제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제 능력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컸던 것이었나 봅니다.



Q∥ 의대를 나오면 당연히 의사가 될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진로가 다양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생리학이라는 기초의학을 선택한 까닭이랄까요, 그러면서 겪었던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A∥ 제가 생리학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어느 한 가지로 딱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권유가 결정적이었긴 합니다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선배의 충고도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책에서는 선배가 내게 던진 ‘나만의 시간과 공간’에 매혹되어 이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고는 썼습니다만) 그것으로도 제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본과 3, 4학년 동안 임상 실습을 하면서 제가 갈 길을 찾았다고 믿었거든요. 환자를 잘 봤고 환자 보는 것을 정말 좋아했으니까 말입니다. 본과 1, 2학년 방학 때 생리학 교실에 실험을 도우러 나갔다가 “이건 정말 사람이 할 학문이 아니다”라고 치를 떨며 돌아섰던 경험이 있었는데도 결국 제가 이 학문을 하고 있다는 것은 참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모든 것이 제가 이 일을 하도록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하필이면 생리학일까 하는 생각은 아직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많이 있습니다만 그중 백미는 고양이 시중 들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설날 모든 교실원이 고향으로 가버려서 실험에 쓸 고양이의 밥을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집이 서울이어서 귀성전쟁을 치를 필요가 없었던 저는 자동적으로 고양이의 밥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날이 선을 보는 날이었습니다. 결국 그날 선을 보는 상대를 냄새가 진동하는 고양이 우리로 데려와 함께 밥을 주었죠. 정장 차림으로 말입니다. 그날 참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선이요? 결과는 당연히 안 좋았습니다.



Q∥ 의대를 졸업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자신이 ‘왜’ 의대에 갔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그 질문 자체가 대답할 수 없는 유형의 것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이 질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데, 혹시 지금은 그 해답을 찾으셨는지요?

A∥ 저는 이 작은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청각연구자 중 하나입니다. 세계적인 수준에는 많이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제가 있어 ‘대한민국에도 청각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그릇이 있습니다. 그 그릇들은 모두 쓰임이 있습니다. 작건 크건 화려하건 소박하건 말입니다. 아직도 제가 왜 의대에 갔었는지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어떤 그릇으로 쓰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릇이 쓰이는 동안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묻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그게 그릇의 용도이니 말입니다.



Q∥ 생리학 실습실에서 ‘토끼 동맥혈압 실습’을 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는 현상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을 극대화해서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바로 실험입니다.”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실험’들을 가끔은 경험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연구실에서 다양한 실험들을 마주하면서 이것을 우리의 삶과 죽음과 연결지어 볼 수 있을까요?

A∥ 사람의 삶과 죽음은 여러 요소에 의해 결정됩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좌우됩니다만 (자신의 생활습관이 병을 유발한다는 뜻입니다.) 예기치 못한 죽음은 여러 가지 설명하기 어려운 조건들에 의해 결정됩니다. 인간들은 이러한 조건을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사회가 어려워질 때 불특정 다수에 대한 이유 없는 폭력도 증가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산다는 것 자체가 실험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하는 실험들이 바로 우리의 죽음과 삶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질문에 대한 옳은 답은 아닌 듯하지만 더 깊은 대답은 하지 않겠습니다.



Q∥ 의대에 왜 들어왔는가라는 질문을 오랫동안 품고 계셨다는 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도 함께 고민해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교수님은 생명이란 무엇이고 어디쯤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이 책에서도 그 고민에 대한 질문을 던진 부분이 있습니다. 2부 중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편의 마나미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마나미는 뇌사를 선고받아 이미 뇌는 의학적으로 죽은 상태였지요. 그런 마나미에게 오빠가 찾아와 초등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부른 노래를 들려주자 심장이 빨리 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미 뇌가 죽은 마나미에게 노래를 들려준다고 해서 심장이 빨리 뛰는 일이란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기적이 일어났던 것을 저는 쉽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서구 학자들에게 생명은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명명하기도 어려웠습니다. animal spirit이란 이름으로 불렀습니다만 그리 적절한 단어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서구의 학자들은 이 animal spirit이 뇌에 있다고 봅니다. 신경생리학자인 저도 그렇게 봅니다만 생명을 단순히 뇌의 활동 그것으로만 보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신경세포의 활동을 생명으로 본다면 사람의 신경세포를 분리하여 배양한 곳에서도 사람의 개성을 대변하는 생명을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대한 대답은 할 수 없습니다. 현재까지의 지식 외에는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Q∥ ‘3부 생리학 연구자의 발자국’에서는 학교에 자리잡기까지 생리학 연구자로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보람 등을 담으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주제로 연구를 계속해야 할지 한동안 찾지 못하다, 발달신경생리학이라는 자신의 전공을 결정하는 데 11년이 걸렸다고 하셨습니다. 상당히 늦은 셈이고 낯설게 느껴지는 학문인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A∥ 책에서도 밝혔다시피 아이 때문이었습니다. 결혼 후 6년 만에 찾아온 아이는 참 귀한 손님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듯 저 또한 아이를 보면서 세상의 경이를 다 경험하였습니다. 결국 아이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발달신경생리학에 발을 들였습니다. 번역한 <우리 아이 머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는 발달신경생리학의 첫걸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A∥ 저의 경험과 생각이 여러분과 나눌 만한 것인지 의구심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궁극적 이유는 결국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이라고 믿습니다. 제 책에서 여러분들의 삶을 돌아다볼 만한 거울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저의 소박한 바람입니다.

이 책을 읽을지도 모르는 청소년들, 특히 의대를 지망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직업으로서의 의사가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사람으로서의 의사에 대해 꼭 생각해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의사의 지위가 어떻게 변할지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의대의 서열이 어떻게 매겨질지 모르지만 그러한 것들을 고려하기 앞서 생명을 먼저 본다면 자신이 왜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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