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를 펴낸 심혁주 교수 인터뷰



“지난 1년 동안 사람들은 세계적인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확실한 걸 하나를 확인했다고 생각해요.

그건 ‘죽음’이죠. 누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새삼 절감하고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공간이동, 접촉, 여행, 소통, 모임 그리고 사람들의 소리와 냄새 같은 것들 말이죠.”


Q. 디지털의 세상, 눈과 혀가 대접 받는 시대에 귀(소리)와 코(냄새)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존재방식이라고 이야기하면서, 2019년 『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 『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를 펴냈습니다. 『소리』와 『냄새』 편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꼽아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A. 조선후기 홍양호(洪良浩, 1724~1802)라는 문신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 중에 심령이 밖으로 발하면 소리가 된다.” 그러니까 이 말은 소리는 몸 안에 간직되어 있다가 어떤 계기에 부딪히면 터져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정신이 이 계기와 만나면 글이 이루어지기도 하고요. 이 부분은 제가 『소리와 그 소리에 대한 기이한 이야기』 책 인터뷰할 때 중국의 문장가 한유(韓愈, 768~824)를 예로 들어서 ‘불평즉명’(不平則鳴)을 소개한 기억이 있는데 같은 맥락입니다. 냄새도 마찬가지입니다. 냄새도 몸 안에 가만히 있다가 어떤 절박한, 궁박한, 위태로운 처지나 대상을 만나면 몸 밖으로 흘러나오게 됩니다.

소리와 냄새는 눈으로 시각화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색(色)이나 무게로 표현할 수 없고 상상하기도 힘들죠. 우리들은 대체로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그걸 토대로 판단하고 예측하죠. 그런데 이 보이지 않는 소리와 냄새는 숨(㗵)을 간직하고 움직이는 생명체의 중요한 특징이라는 겁니다. 이건 동물도 곤충도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 존재하는 것, 그게 약해지거나 멈추면 죽음에 가까웠거나 죽음의 징조라는 지점이 같은 부분이라 생각하고요. 굳이 다른 부분이라면 소리는 인위적으로 입을 닫아버리면 그만이지만 코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냄새를 맡는 코는 자기의지대로 경계를 짓지 못한다는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요.

Q. 왜 ‘청각’과 ‘후각’이라는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눈에 비해 귀와 코가 점점 소외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디지털 플랫폼을 주목했습니다. 그것들은 ‘속도’와 ‘초연결’이라는 무기가 있잖아요. 그 강력한 무기 앞에서 우리들은 고개를 숙이는 거죠. 이야기와 관계가 줄어들고 교감의 감정이 빈약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디지털에 접속한다는 것은 빛(光)과 불(火)의 세상에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 속에 들어가면 몸도 뇌도 뜨거워지죠. 타인의 시간과 공간을 추적하고 비교하고 상상하고 심지어 망상에 빠지기도 하지요. 그런 면에서 소리와 냄새의 매력을 환기하고 싶었어요. 귀와 코의 생리학적 기능보다는 숨겨져 있는 인문학적 가치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책에서도 말했지만 인간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소리와 냄새가 있어요. 고유의 울림, 진동 같은 것들. 그건 다양한 대상과의 접촉과 그리움 속에서 형성되는 건대 오늘날 사람들은 빛과 불에 먹히는 일상을 살고 있으니 점점 그것의 일부가 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류는 발전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반면 잃어가고 있는 것, 혹은 이미 잃어버렸지만 눈치 채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Q. “냄새로 기억하는 힘은 강하고 오래가지요. 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냄새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기억하는 것이 좋아요. (...) 결정적인 순간에는 흘러나오게 돼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경우에는.” 티베트의 붉은 나무가 해부사에게 전한 메시지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사람들에게서 나는 각자의 냄새가 그 사람이 어떠한지 잘 드러내준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저는 소리와 냄새로 그 사람의 존재는 더욱 선명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나무도 동물도 곤충도 벌레도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나무나 동물보다 인간의 냄새가 가장 우아하게 포장돼 있고 숨겨져 있다고 생각해요.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거나 두터운 화장을 해서가 아니고 인간은 몰리거나 궁박한 상황에 처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냄새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죠. 숨길 수 있는 거죠. 하지만 냄새는 솔직합니다. 나이를 속이지 못하고요, 결정적으로 그 사람이 내부에 숨겨놓은 비열하거나 폭력적인 냄새는 결국 흘러나오게 돼 있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어보시면 어떤 의미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Q. 『냄새』에서는 티베트로 떠난 친구 저안이를 찾아가는 여정이 큰 줄기를 이룹니다. 저안과의 우정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들려주실 수 있나요?

A. 저는 그 친구를 보면, 오랫동안 아픈 아이가, 오래 살았지만 철이 안 든 노인보다 생각이 깊다는 생각을 해요. 그 친구는 저보다 두 살 어린데 성숙하고 선(善)한 내면의 세계를 가지고 있어요. 처음에는 무뚝뚝하고 터무니없는 말만 해서 거리를 두려 했는데 역시 그 친구만이 가지고 있던 내면의 냄새를 맡고부터는 제가 매일 찾아다니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제가 창피하고 부끄럽게 느껴졌어요. 별을 바라보는 내 얼굴 같다고나 할까요. <티베트어 수업>시간이 저에게는 고통이자 지옥이었는데 그 친구가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책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수업 전후로 학교에서 일어난 일화들입니다. 소년 같은 표정을 가졌지만 고집스런 자기세계가 있었던 친구로 기억해요.

Q. 각 부 후반부에는 ‘우리들의 시간’이라는 장면 전환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각 부의 전반부는 작가의 상상을 엮은 것, 후반부는 저안과 실제로 함께했던 에피소드로 생각하면 될까요?

A. 사람들은 보편적인 틀과 제도 안에서 안착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합니다. 성취를 하고 인정받고 관계가 쌓이고 그래야만 어떤 만족스런 주관적 느낌이 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리한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인간이기를 바란다고 할 수 있죠.

저의 대만 친구 리우저안은 그와는 반대의 인물입니다. 그는 나에게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사유와 침묵의 시간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와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기록한 것이 ‘우리들의 시간’입니다. 책에서 밝힌 이야기들은 거의 사실입니다. 원고를 쓸 때, 그 친구를 떠올리며 쓰다보니까 저안이라는 실체의 몸과 얼굴보다는 냄새가 훨씬 선명하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그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들 속해서 내가 느꼈던 당시의 공간과 시간의 냄새를 쓰기로 한 겁니다. 그 외 유목생활이나 하늘사원에서의 장면들도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을 한 겁니다. 전혀 없던 이야기는 아닙니다.

Q. 대만국립정치대학에서 티베트 조장(鳥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티베트라는 부족하고 결핍된 공간에서 지낸 경험이 『소리』와 『냄새』 집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부족함과 결핍에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중국 송(宋)의 문장가 구양수(歐陽修, 1007~1072)는 ‘궁이후공(窮而後工)’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마음속에 근심, 울분, 분노, 배고픔, 죽음, 질병에 대한 걱정이나 공포가 강할수록 공교해지는 마음도 온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한자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이 궁(窮)의 상황은 뜻밖에도 공(工)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죠.

저는 잠시지만 이걸 티베트에서 경험했다고 생각합니다. 막상 티베트의 불교사원에서 생활할 때는 고통스럽고 괴로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가장 궁핍하고 결핍했던 그 시절 그러나 그 시간에 나는 가장 본질적이고 투명했던 소리와 냄새를 맡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 시절의 사진을 보면 초췌한 몰골이었지만 정신은 오히려 탱탱하고 행동은 씩씩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살려고 그랬겠지요.

‘공간이 바뀌면 시간도 바뀐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가령 평지에서 고원의 티베트로 올라가면 시간의 개념이 바뀐다는 의미인데요. 부족하고 결핍된 공간은 인간을 유치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진지하게 죽음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절박하고 간절한 소리와 냄새는 자신도 모르게 절로 흘러나오는 거고요. 배가 고프고 머리가 아프고 다리가 후들거려 당장 죽을 거 같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인간은 최선을 다하는 어떤 긍정적 의지가 나오는 거 같아요.

티베트라는 그곳에서는 결국 자신을 최소화하고 타자를 관찰하게 됩니다. 자신을 작고 작게 만들어서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것, 그게 열악한 공간에서 어쩔 수 없이 발휘되는 생존의 발버둥이지만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Q.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A. 지난 1년 동안 사람들은 세계적인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확실한 걸 하나를 확인했다고 생각해요. 그건 ‘죽음’이죠. 누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새삼 절감하고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공간이동, 접촉, 여행, 소통, 모임 그리고 사람들의 소리와 냄새 같은 것들 말이죠.

냄새 이야기는 현재 지금 나의 몸을 더 낮은 곳으로 향하고 생명의 토대를 훼손하지 말자는 근원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질러 놓고 전염병이나 기후변화를 고민하기 전에 빛과 불을 줄이자는 거죠. 생명의 근간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있고 그것들이 결국 인간을 더욱 인간적인 것들로 만들어준다는 것에 안기고 싶었습니다.

책 속의 저안이가 동굴 안에서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나에게는 남을 생각하거나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했던 것 같아. 아니 없었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었어. 나를 위해 살면 남는 게 없어.“ 저는 그때 이게 동굴 안에서 할 말인가? 어리둥절했어요. 하지만 요사이 자고 일어나면 신문과 뉴스에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들이 쏟아지잖아요.

자동차는 머지않아 핸들을 잡지 않아도 잘 굴러갈 거라고 하고, 곧 알약 하나로 500살까지는 거뜬히 살 거라고 하고, 또 머지않아 우주로 날아가 지구를 감상할 날이 올 거라는 뉴스를 보면서 그걸 듣고 감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만, 그걸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무엇보다 저는 길을 가다 무지개나 노을을 봤을 때, 그걸 더 신나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참, 책 프롤로그 19쪽에 ‘전 이걸 **이라 생각합니다’라는 부분이 있어요. 그건 오자나 탈자가 아니고 일부러 그렇게 남겨놓은 것인데 그게 어쩌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될 듯합니다. 읽어보시면서 그게 뭘까? 하는 다양한 상상을 해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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