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독자들에게 첫 인사와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어떻게 번역, 소개하게 되셨나요?
A ∥
(김명진) 안녕하세요. 동국대와 서울대에서 과학기술사 관련 강의를 하면서 집필과 번역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김명진입니다. 저는 2010년부터 서울대에서 ‘테크노사이언스의 역사와 철학’이라는 학부 과목을 강의하고 있는데요, 2014년에 이 과목의 강의 방향을 냉전 시기 과학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하면서 예전에 사둔 이 책을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학생들에게 강의 내용과 관련해 읽힐 만한 글이 마땅치 않아 고심을 했는데, 마침 이 책이 그리 많지 않은 분량에 난이도도 학부 수업에 적당하다고 생각해 강의와 직접 연관된 몇몇 챕터를 급하게 번역을 했어요. 그러다가 아예 책 전체를 번역해 소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품게 됐던 거죠.
(이종민) 처음 뵙겠습니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에서 과학기술사와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이종민입니다. 미국 버지니아텍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2013년 가을부터 버지니아주립대에서 lecturer로 일하게 되었어요. 이공계열 학부 4학년 학생들에게 두 학기에 걸쳐 STS 이론, 공학윤리, 사례연구 등을 가르치면서 STS 졸업논문을 지도하는 일이었는데요, 그동안 동학들이 축적해온 커리큘럼 덕분에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에서 공학을 공부한 경험을 되살려 학생들과 좀 더 쉽게 공감할 수 있었구요. 그렇지만 복잡한 최신 이론과 구체적인 사례연구를 이어줄 수 있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알려주는 읽기 자료에 대한 갈증이 남았습니다. 그러다가 오드라 울프의 책을 김명진 선생님에게 소개받고 번역에 합류하게 된 것이죠.
Q ∥ 이 책의 번역 작업을 하며 흥미롭게 살펴본 대목이 있으시다면요?
A ∥
(김명진) 강의를 할 때도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점 중 하나지만, 2차대전 이후에 과학의 변화가 얼마나 엄청난 규모로 급격하게 일어났는지 ― 그것도 여러 차례나 ― 가 새삼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미국에서는 대학의 과학자들이 순수과학을 강조하면서 기업체나 심지어 정부의 지원조차 받지 않으려 했던 것이 2차대전 직전까지의 모습인데, 전쟁 끝나고 정부(주로 군대)가 과학에 엄청나게 지원을 하면서 군산학 복합체니 거대과학이니 하는 현상이 불거지는 데까지 불과 10~20년밖에 안 걸리거든요. 연구비 통계를 보면 1940년부터 1960년 사이의 20년 동안 미국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이 200배로 증가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책 후반부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런 추세가 1960년대 후반부터는 또 바뀌기 시작해요. 대학 내에서 베트남전과 군사 연구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정부(군대)의 대학 연구 지원이 정체되거나 심지어 줄어들면서 대학들은 대안적 자금원을 찾아나서야 했고, 그러면서 시작된 것이 오늘날의 상업화 경향입니다. 그런 엄청난 변화들이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오락가락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이종민) 미국과 소련의 대립구도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서유럽, 동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다른 지역의 국가들이 냉전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다루려는 노력이 인상 깊었어요. 더불어 사회과학 분야가 냉전의 정치학으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았고 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5장이 좋았습니다. 역사학,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 성과는 물론 사회학, 심리학, 경제학, 정치학, 철학, 경영학 등의 최신 연구를 “더 읽을거리“에 모아 놓은 것을 보고는 ”아, 이 책은 꼭 소개해야 돼“ 마음을 굳혔습니다.
Q ∥ 냉전시기 과학기술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어떻게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요?
A ∥
(김명진) 저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학에 대한 인식이나 기대, 이데올로기, 제도 등등이 형성된 가장 결정적인 시점이 냉전 시기라고 봅니다. 정부가 대학에 있는 과학자들의 기초연구를 지원해야 한다는 인식이나 그러한 기초연구가 궁극적으로 국부증진이나 국가안보 등의 목표에 기여할 거라는 기대는 모두 2차대전 이후 냉전 시기에 무르익은(그리고 20세기 후반부터 점차 의심받고 있는) 생각들입니다. 또한 오늘날의 과학 연구자에게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거의 공기처럼 느껴지는 과학의 여러 제도들, 가령 동료심사(peer review)나 간접비(overhead) 지원 제도 같은 것도 2차대전과 냉전 초기에 정부의 과학 지원이 폭증하면서 정착된 것들입니다. 결국 오늘날 과학과 관련해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냉전 시기에 과학에 일어난 변화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반드시 경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종민) 두 번째 질문에서만 대답해볼게요. 버지니아텍에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비폭력 평화행동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폭력에 대한 제 스스로의 입장이 언뜻 특수해 보이는 한국의 상황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클 수도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2차대전 후 세계 질서 속에서 한반도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한편 한국이 다른 제 3세계의 신흥개발국과 공유하는 점도 발견할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되었죠. 과학과 기술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급속한 경제발전에 대한 향수가(혹은 갈망이) 유사 지역의 역사와 현재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심증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그 구체적인 연결고리는 찾는 중입니다만, 냉전을 역사학의 시기 구분인 동시에 지역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 나아가 집단의 에토스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Q ∥ 이 책을 학생, 연구자들과 함께 읽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는지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다면요?
A ∥
(이종민) 버지니아주립대에서 몽골 출신 학생이 양복을 입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몽골 전통복장을 입은 미국인과 함께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몽골의 집 앞에서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몽골의 냉전 경험을 얘기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침 저도 그해 여름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미국 친구와 함께 DMZ 지역을 둘러본 경험이 있어 한반도에서 냉전의 기억과 현재를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었죠.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에서는 4장 “인민의 마음과 시장”을 함께 읽고 산업화, 근대화, 민주화 과정에서 과학과 기술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민주주의와 과학기술을 연결짓는 것이 쉽지 않은 도전으로 다가온다는 한 학생의 코멘트에 아마도 그 문제는 한 학기 수업의 주제로 삼아야 할 것 같다고 대답했었지요.
결국 냉전의 과학기술사는 역사학도들에게 과학과 기술이 사회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과학기술도들에게는 사회와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변화하는 과학과 기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유용한 틀이라고 봅니다. 냉전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포스트 91년 세대 학생들에게는 처음엔 낯설지만 들어보면 익숙한 얘기라고 할까요? 결국 기후변화, 테러리즘, 물부족, 난민 등 오늘날 국제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과학기술의 접근이 보다 장기적인 식민화, 근대화 프로젝트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봅니다.
Q ∥ 과학기술사 연구자로 어떤 주제를 연구하고 계시는지요?
A ∥
(김명진) ‘연구’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3년쯤 전부터 냉전 시기 과학사에 관심을 가진 몇몇 분들과 작은 독회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10~15년 사이에 출간된 냉전 과학사 관련 외서들을 골라서 매달 조금씩 같이 읽는 모임입니다. 요즘은 냉전 초기의 군산복합체와 거대과학 경향에 맞서 1960년대 중반 이후에 나타난 대항문화적 변화들을 다룬 여러 책들(Andrew G. Kirk, Sarah Bridger, Fred Turner 같은 저자들의 책)을 같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회를 같이 하는 분들과 함께 냉전 시기를 포함한 20세기 과학사 전반을 다루는 Jon Agar의 책 Science in the Twentieth Century and Beyond (Polity, 2012)를 번역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종민) 제가 주로 관심을 가지고 읽고 써온 것은 20세기 미국의 기술사와 환경사입니다. 원래는 과학과 기술을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싶은 관심에서 출발했지요. 자꾸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과학과 기술의 문제를 환경과 보건, 의료의 문제와 떼어내어서 생각하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미국에서 과학적 산림학을 주창하고 정부의 산림관련조직을 키우고 자원보전(conversation) 정책을 확장시켰던 기포드 핀쇼(Gifford Pinchot)나 환경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오염통제기술을 테스트, 시연하고 대기오염 규제정책에 기여했던 미국 환경보호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의 엔지니어-관료들은 그 좋은 예들이지요.
지금까지는 주로 역사학과 과학기술학의 방법론을 이용해서 행정부의 규제 및 진흥 정책에 대해서 연구해왔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남부와 한국이 인조 섬유 레이온을 생산하고 소비했던 경험을 비교하는 연구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를 수행하면서 그 작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책들을 앞으로도 번역해보고 싶습니다. 김명진 선생님과 같이 번역하는 작업이 즐거웠던 것처럼, 다음 책 번역도 다른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해보고 싶네요.
Q ∥ 과학기술사는 어떤 학문이며,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A ∥
(김명진) 이건 좀 거창한 질문이네요. 저는 그냥 과학기술사라는 용어 안에 실은 두 가지 분야가 섞여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정도로 답을 대신할까 합니다. 사실 과학사와 기술사는 흔한 선입견과는 달리 상당히 다른 학문 분야이고, 20세기 이전까지는 두 분야의 주제가 섞이는 일도 그리 흔치 않습니다. 요즘 우리는 과학기술, 심지어 이 둘의 융합을 강조하기 위한 테크노사이언스 같은 단어를 즐겨 쓰지만,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과학과 기술은 각각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나 활동의 목표 등에서 상당히 분명하게 구분되는 활동이었지요. 저는 원래 19세기 이후 미국 기술사를 전공했기에 그동안 강의나 번역에서도 이쪽 책들을 많이 소개해 왔습니다. 루스 코완의 『미국 기술의 사회사』나 토머스 휴즈의 『현대 미국의 기원』 같은 책들이 그런 책들인데요. 꼭 제가 번역해서가 아니라 두 권 다 현대 기술사를 이해할 때 아주 중요한 책들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반면 19세기 이전의 과학사는 제가 대학원 석사과정 때 1년 동안 수업을 들은 이후로는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없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국내에 출간됐다가 지금은 절판된 스티븐 셰이핀의 『과학혁명』을 예전에 학부생들에게 과학사 강의를 할 때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기회가 된다면 국내에 다시 소개해 보고 싶은 책들 중 하나입니다.
(이종민) 저 역시 과학기술사를 단숨에 정리할 자신이 없네요. 수업을 위해서 최근에 읽었거나 읽으려고 사둔 책들을 몇 개 나열해 보겠습니다. 일단 미국, 일본, 혹은 세계의 과학기술사를 다룬 책들로는 보울러와 모러스의 『현대과학의 풍경』, 에저턴의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파두아의 『에이다, 당신이군요. 최초의 프로그래머』, 겐이치의 『공해의 역사를 말한다』, 김동광의 『생명의 사회사』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의 사례에 초점을 맞춘 책들로는 한경희와 게리 리 다우니의 『엔지니어들의 한국사』, 문만용의 『한국 과학기술 연구체제의 진화』, 인문학협동조합이 기획하고 5인의 필자가 참여한 『한국 테크노컬처-연대기』, 김태호의 『근현대 한국 쌀의 사회사』, 직업환경의학자들이 쓴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을 함께 읽고 싶습니다.
Q ∥ 어떤 분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짧게 소개한다면?
A ∥
(김명진) 냉전사에 관심이 있거나 현대 과학사에 관심이 있는 분, 어느 쪽이라도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입니다만, 좀더 폭넓게는 아까도 잠시 언급했다시피 오늘날 과학과 관련해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에 대한 통찰을 얻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냉전 시기 과학사에 대해 현존하는 가장 좋은 입문서’ 정도로 이 책을 정의할 수 있을 듯하네요.
(이종민) 좋은 입문서라는 김명진 선생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더불어 냉전, 과학기술, 정책, 국제정치를 살펴보는 경제학, 사회학, 문화연구의 접근법이 녹아 있어서 과학기술학을 입문하기에도 좋은 책이 될 것 같습니다. 버지니아주립대와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학생들과 특히 이 부분을 절감하며 읽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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