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를 펴낸 유 경


Q저희와 펴낸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유 경의 죽음준비학교』외에도 『마흔에서 아흔까지』『꽃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등 노년과 죽음에 천착하는 책들을 펴내셨습니다. 노인, 노년, 그리고 죽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A 대학을 졸업한 후 1980년대 중반과 후반에 걸쳐 7년 반 정도 CBS 아나운서로 근무했습니다. 그때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하세요’라는 제목의 노인 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어르신들을 만났고, 언젠가 인생의 전환점이 온다면 노인복지를 해보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방송을 그만 두고 노인복지 현장에 가서 파트타이머로 일했습니다.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해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사회복지사가 되었습니다. 노인복지관의 사회복지사로 4년여 근무하다가 프리랜서로 독립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나 할아버지에 대한 각별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르신들을 특별히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방송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내리사랑’에 폭 빠져서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것 같습니다. 노인복지 현장에서 보낸 세월이 20년 정도인데, 그러고 보면 방송보다는 확실히 노인복지가 적성에 맞는 듯도 합니다.

죽음은 노인복지를 마음에 두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제 안으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아동복지나 청소년복지와 달리 노인복지의 끝은 사실 죽음입니다. 열심히 섬기고 행복하게 소통할지라도 결국 보내드려야 하니까요. 복지관에서 찍어드린 영정사진이 놓여있는 빈소에 엎드려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제게 노인복지는 그런 허무를 극복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어르신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생의 마지막을 보내시도록 돕고 싶다는 바람이 죽음 공부로 저를 이끌었고, 마침 2006년에 어르신 대상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이 예산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죽음준비교육 전문 강사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죽음은 제게 노인복지, 어르신 만남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상입니다. 



Q프리랜서 사회복지사, 죽음준비교육 강사, 노년 전문가 등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직함을 갖고 있습니다. 각각의 영역에서 어떤 일들을 주로 하시는지요?

A ‘프리랜서 사회복지사’는 기관이나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자유롭게 일합니다. 단순히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사와의 차이는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복지관에 제안하기도 하고,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관과 같이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예산 지원 기업의 의뢰를 받아 프로그램을 기획한 후 수혜 단체를 선정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모두 하기도 합니다.

‘죽음준비교육 전문 강사’는 말 그대로 죽음준비교육을 기획 혹은 강의하는 일입니다. 특히 어르신 대상의 죽음준비교육은 노인에 대한 이해와 죽음준비에 대한 전문성이 함께 필요한 일이라서 어렵기도 하지만 보람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죽음을 준비하면서 인생을 돌아보는 인생 회고의 과정으로 자서전 쓰기까지 병행하고 있어 어르신들과 마음을 깊이 있게 나누는 남다른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노년 전문가’는 흔히 사람들이 ‘노인문제전문가’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조금 더 범위를 넓혀 저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만든 말입니다. 노인은 이미 늙은 사람[老人]을 뜻하는 정태적 개념이라면, 노년은 늙어가는 과정까지를 담은 동태적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노인문제전문가와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저는 ‘노인=문제’라고 보이는 것을 좀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Q특히 2006년부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죽음준비교육은 어떤 과정인지요? 혹시 우리가 죽음준비교육에 대해 자칫하면 가질 수 있는 오해, 잘못 알고 있는 점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A죽음준비교육은 죽음을 중심에 놓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중간 점검을 해보자는 의미입니다. 한편으로는 죽음에 대한 이론적인 공부를 하면서 구체적인 죽음준비의 방법들을 배웁니다. 즉,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여러 시각, 죽음에 이르는 심리적인 과정, 법적인 정리, 장례와 장묘, 사별의 아픔 나누기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물론 영정사진 촬영이라든가 화장장-납골당(봉안당)-자연장지 견학과 유언장 작성 등도 주요 교육과정 중 하나입니다.

죽음준비교육에 대한 오해가 여전히 많은데 죽음준비는 당장 죽자는 것이 아닙니다. 죽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죽음을 체험해보자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준비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을 기억하면서 사는 것, 즉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죽음을 생각하고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지금 여기서 정성껏 잘 사는 일이지요. 흔히 죽음을 늘 생각하고 기억하면서 살면 왠지 우울하고 칙칙하고 어두울 것 같다고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죽음준비교육을 받은 많은 어르신들이 증언하고 계십니다. 죽음준비교육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느꼈다, 남은 인생 좋은 마음으로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말씀을 가장 많이들 하십니다. 죽음을 통해서 삶을 재인식하는 것, 죽음준비를 통해서 지금의 삶을 새롭게 조망하는 것이 바로 죽음준비교육입니다. 


나의 인생 그래프 그리기, 묘비명 써보기 등을 하는 어르신들 죽음준비는 죽음을 기억하고 살면서 '바로 지금 여기서' 잘 사는 일이다.

Q‘웰다잉’도 ‘웰빙’처럼 하나의 유행이나 상품으로 번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연 진정한 웰다잉이란 무엇인지요?

A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죽음준비교육은 곧 삶을 위한 교육인데, 요즘 죽음준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단순히 관에 한 번 들어가 누워보는 입관체험이나 유언장 한 번 써보고 끝나는 일회성 이벤트 혹은 행사가 많습니다. 죽음은 결코 일회성 행사나 이벤트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일상, 그것도 가장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일상입니다. ‘웰빙’이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듯 ‘웰다잉’도 단순히 잘 죽는다는 말 한 마디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웰다잉을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이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적절한 죽음(An Appropriate Death), 좋은 죽음 / 건강한 죽음(Good Death), 바람직한 죽음(Dying Well)을 다 포함한 것, 거기다가 잘못된 죽음이 아닌 죽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Q2000년 ‘어르신사랑연구모임’이라는 모임의 문을 열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120여 회의 ‘어사연 공부방’을 진행하셨습니다. 모이는 분들의 면면은 어떠하며 어떤 내용들을 함께 공부하고 나누시는지요?

A어르신사랑연구모임(어사연, http://cafe.daum.net/gerontology)은 한마디로 노인복지 학습 모임입니다. 주로 온라인에서 소통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오프라인 공부방을 열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강사를 초빙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 각자가 가진 지식과 경험과 기술을 소개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20대 대학생에서부터 70대 노년까지 연령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 주부, 공무원, 방송작가, 교수, 레크리에이션 강사, 가수, 간호사, 연구원, 물리치료사 등등 직업 또한 다양합니다. 소모임으로 ‘부산 어사연 공부방’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고, 한 달에 한 번 노년 관련 책을 읽고 토론하는 ‘어사연 책 읽는 방’이 있습니다. 궁리에서 펴낸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 노년과 나이듦에 대한 여덟 가지 시선』이야말로 어사연의 정체성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책이고, 어사연 사람들의 지향점을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Q요즘 ‘복지국가’가 정치계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나라 노인 복지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A사람들은 노인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숫자와 돈으로만 계산을 하며 젊은 사람 몇 명이 노인 몇 사람을 부양해야 한다는 식으로 짐으로만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살아 숨 쉬고, 후세대를 길러내느라 모두를 바친 인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앞으로 노인인구가 증가하면서 복지에서도 노인복지의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언제까지 부담이고 짐이라는 시각으로만 볼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인은 엄연히 우리 옆에 존재하는데, 마치 유령 취급을 하듯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 시각 자체를 바꾸는 것이 예산 몇 퍼센트 늘리는 것에 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노인복지를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끼 식사가 걱정인 분들께는 식사를 드려야 하고, 병이 든 분들은 고쳐드려야겠지요. 먹을 것 걱정 없고 몸은 건강한데 할 일이 없어 괴롭다면 일을 하시도록 해야겠고, 긴긴 시간 자체가 고통이라면 즐겁게 보내실 수 있도록 장소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게 맞습니다. 우리가 다 다른 배경과 상황과 욕구를 갖고 있는 것처럼 어르신들도 다 다르다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인 일자리 사업이면 일자리 사업으로, 실버 영화관이면 실버 영화관으로 그때그때 지나치게 쏠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령사회는 피할 수 없는 물결입니다. 긴 안목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부산 강연에서 살아 숨쉬고, 움직이고, 일하고, 웃고, 울고, 서로 돕는 노년의 삶을 꿈꾸다

Q평소 영화와 책을 통해서도 ‘노년’과 꾸준히 만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추천해주실 감동적이고 인상깊은 작품들이 있다면요?

A 영화로는 <나라야마 부시코>. 워낙 이름난 영화지만 노년을 중심에 두고 보면 영화 속 기로(棄老) 풍습에서 지금의 노년을 볼 수 있습니다.

책으로는 박완서 선생님의 『너무도 쓸쓸한 당신』, 『친절한 복희씨』. 노년의 작가가 쓴 노년이야기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어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만화책으로도 한 권 추천하자면,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꼽겠습니다. 노인복지학 책보다 훨씬 쉽고 구체적으로 다양한 노년 문제들을 담고 있습니다. 박제된 노년이 아닌 살아 숨쉬고, 움직이고, 일하고, 커피 마시고, 사랑하고, 서로 돕고, 돌보고, 울고, 웃고, 화내고, 소리 지르고, 상대의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끌어안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는 책입니다. 



Q앞으로 또 어떤 책들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으신지요? 

A 전업 작가들은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지만, 제게 있어서 책이란 노년과 나이듦을 이야기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어사연 식구들과 함께 노년에 이른 인생의 선배들께 인생의 길, 나이듦의 지혜를 묻는 인터뷰 책을 만들고 싶고, 요즘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삶과 죽음의 인문학’입니다. 죽음, 죽음준비가 마치 유행처럼 인구에 회자되는데 죽음은 그렇게 가볍게 다루어질 것은 아니기에 좀 더 깊이 있게 탐구해보되 삶을 함께 들여다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궁리에서 이런 것을 알고 싶어하고 읽고 싶어하는 저 같은 독자를 위해 기획해주시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