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둘리틀 박사의 바다 여행>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 임현정 인터뷰


Q∥ 둘리틀 박사의 모험’ 시리즈 전12권 중 1권 『둘리틀 박사의 이야기』, 2권 『둘리틀 박사의 이야기』가 출간되었습니다. 그동안 둘리틀 박사 이야기들 중 몇몇 권들은 여러 번 출간된 적이 있지만, 열두 권 전체를 모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임현정 선생님은 그중 2권을 번역했습니다. ‘둘리틀 박사의 모험’ 시리즈 번역 대장정 중에서 아직은 초반인 셈인데, 첫책을 펴낸 소감이 어떠신지요?

A∥ 드라마 감독이나 영화 감독의 첫 작품을 입봉작이라고 하죠. 『둘리틀 박사의 바다여행』이 저의 첫 번역책이니까 저에겐 입봉작인 셈입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냈고 이후 출산과 육아가 이어지면서 일명 ‘경단녀’였던 저에게 두 번째 직업인 번역가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책이니 감개무량할 밖에요. 매사에 끈기가 부족한 제가 책 한 권을 다 번역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컸는데 책이 마무리되어 마침내 독자들과 만나게 되다니 뿌듯하기도 하고 도와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이 뿌듯함과 감사함을 에너지 삼아 남은 시리즈도 열심히 작업하겠습니다.



Q∥ 둘리틀 시리즈는 제인 구달과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들의 인생의 책이라고 이야기한 바도 있습니다. 또한 『둘리틀 박사의 바다 여행』은 뉴베리 상을 받기도 한 작품입니다. 둘리틀 박사의 매력은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요?

A∥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동물과 소통하는 능력이겠지요. 누구나 어릴 적 동물원에 가서 곰이나 사자 우리 앞에서 ‘이리 와!’ 하고 소리를 질러보지만 눈을 끔벅이며 꼬리나 흔들 뿐 들은 체도 안 하는 동물들을 보고 좌절한(?) 기억이 있잖아요. 『둘리틀 박사의 바다 여행』에서 둘리틀 박사는 동물 친구의 도움을 받아 억울하게 살인죄를 뒤집어 쓴 쓴 친구를 구하고 몬테베르데에서 황소들과 멋진 공연을 펼치며 남극 근처까지 떠내려간 거미원숭이 섬을 역시 돌고래의 도움으로 브라질 근처로 되돌려놓습니다. 둘리틀 박사와 그의 동물 친구들이 마치 이 세상을 구하는 어벤저스 군단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책 속에서 둘리틀 박사는 대책 없는 낙천주의자이기도 하죠. 거미원숭이 섬에 가는 배에 몰래 탄 밀항자들에게 전 재산을 줘버리고 폭풍우를 만나 난파된 배 잔해에서 유리병 조각으로 면도를 하는 둘리틀 박사를 보면 참 대책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들이야말로 순수한 아이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요? 순수한 낙천주의자의 면모 역시 둘리틀 박사의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Q∥ 열두 권 중 짝수 권에 해당하는 책들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둘리틀 박사 시리즈를 번역하면서 인상 깊게 남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A∥ 한 문장 한 문장을 번역하면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땐 제 아이들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했는데 신통방통하게도 멋진 대답을 주곤 했답니다. 둘리틀 박사가 저와 아이들에게 대화의 징검다리가 된 셈이지요.

미국에 계신 선생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2012년부터 1년 반 정도 미국에 머무를 때 알게 된 선생님인데 둘리틀 박사 시리즈를 번역할 것라고 말씀드렸더니 잘할 거라며 크게 격려해주셨어요. 일흔이 넘은 분인데 어릴 때 둘리틀 박사 이야기를 재밌게 읽으셨답니다. 동물 애호가세요. 둘리틀 박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동물 애호가가 되나 봅니다!


『둘리틀 박사의 바다 여행』 원서에 'shellfish'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조개류와 갑각류을 통칭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우리말에 마땅히 대체할 만한 단어가 없어요.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 끝까지 고심하다가 결국 문맥에 따라 조개류와 갑각류를 혼용하는 걸로 마무리했죠. 번역을 왜 제2의 창작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책에 등장하는 범포 왕자와 그의 고향 아프리카 사람들을 묘사하는 일부 대목을 빼야 하나 말아야 하나 출간 직전까지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1900년대 초중반을 살다 간 작가(휴 로프팅)에게 상의할 수도 없고요.^^ 결국 고전이므로 그 내용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임현정 번역가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으신지요? 또한 ‘번역’이라는 작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합니다.

A∥ 일러두기에서 밝힌 바 있지만, 한 세기 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책이라면 그 책이 가진 결점보다 장점이 더 크지 않을까요? 그리고 책 속의 일부 인종 차별적인 내용이 더 이상 옳지 않음을 알고 있는 오늘날, 과거 시대환경에 대한 이해 역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E. H. 카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는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과거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제대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번역은 ‘고행’이죠. 하하, 농담이고요. 진부한 표현이지만 제2의 창작이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같은 원문에서 백 가지 다른 번역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원문의 뜻을 찰진 우리말로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번역가의 내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덧붙이자면, 이제 번역의 세계에 입문했기에 제 직업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아직 얇습니다. 내공이 좀 더 쌓이면 또 다른 대답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년 후에 다시 한 번 질문해 주세요!



Q∥ 앞으로 번역해보고 싶은 분야나 작가가 있다면요?

A∥ 둘리틀 시리즈 번역이 끝나려면 한참 남았기 때문에 그 다음 책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다만, 둘리틀 시리즈를 번역하면서 아이들 책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앞으로도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책들을 번역해보면 좋겠어요. 또 기회가 된다면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 분야의 책을 번역해보고 싶습니다.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팀이나 선수들, 이들의 라이벌 관계 등을 다룬 책이라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살짝 들려주세요.

A∥ 무엇보다도 『둘리틀 박사의 바다 여행』은 재밌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둘리틀 박사와 신나는 모험을 함께 떠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