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루돌프 코는 정말 놀라운 코>를 펴낸 고윤주 루돌프 연구소 소장 인터뷰


Q∥우선 독자들에게 첫인사 부탁드립니다.

A∥안녕하세요. 저는 루돌프연구소 소장 고윤주입니다. 30년 넘게 호모사피엔스 아이들에 대해 배우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성 발달이 어려운 자폐적인 아이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자폐스펙트럼 연구자’입니다. 루돌프연구소는 자폐적인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을 연구하고 그들이 잘 성장하도록 돕는 기관입니다.



Q∥2005년 루돌프 어린이 사회성 발달 연구소를 설립하여 그간 3,000여 어린이들을 진단하고 치료하셨습니다. 연구소 이름에 ‘루돌프’을 넣은 까닭이 문득 궁금해집니다. <루돌프 사슴코> 노래의주인공 맞지요?


A∥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훈훈해지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노래 <루돌프 사슴코>란 노래가 있습니다. 그 주인공 루돌프를 생각하면서 연구소 이름을 지었습니다. 책에서도 설명했듯이, 루돌프연구소 이름을 지을 때 일화가 있습니다.. 2005년 미국의 ‘자폐연구를 위한 국가 연맹NAAR’에서 연구비를 받고 연구소 설립을 구상할 때, 저는 그리스의 코스아일랜드를 여행했습니다. 그 섬은 제주도의 1/6 정도 크기의 작은 섬인데,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고향입니다. 한평생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살았던 히포크라테스와 ‘대화’하면서, 자폐적인 아이들을 위해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이 여행 내내 머리 속에 꽉 차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순간 따돌림 당하는 사슴 루돌프가 떠올랐어요. 루돌프는 너무나 빨간 코 때문에 놀림을 당하기 일쑤였는데, 사실 그 코는 아주 ‘특별한 코’라는 것을 친구 사슴들은 몰랐죠. 결국 루돌프 코의 놀라운 능력이 알려지고 루돌프는 모두에게 사랑 받게 된다는 노랫말이 문득 떠올랐던 겁니다. 저는 억울한 ‘루돌프들’을 대변하고 특별한 코의 비밀을 밝혀내는 지지자가 되어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연구소 설립을 함께 논의해왔던 연구원들에게 ‘루돌프연구소’라는 이름을 제안하자 반대가 많았습니다. 과학적인 연구를 하는 연구소의 이름으로 너무 가볍고 권위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젊은 연구원들이 먼저 제 편을 들었고, 결국 루돌프연구소로 결정했습니다. 간혹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중에 “피노키오 연구소 잘 되고 있나요?”라는 식의 혼란이 있기는 하지만 한 번 들으면 잊지 못하는 이름을 가진 연구소가 됐습니다.



Q∥<루돌프 코는 정말 놀라운 코>의 부제가 ‘자폐스펙트럼, 소통 못하는 특별함에 대하여’입니다. 그리고 연구소를 찾아오는 많은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이 자폐(自閉)적이라기보다는 타폐(他閉)적이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자폐적인 아이들을 바라보는 따뜻하면서 남다른 시선이 느껴집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번뜩 떠오른 생각도 알고 보면 여러 가지 관련된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돌아 다니다가 하나의 다듬어진 생각으로 결정됩니다. 자폐적인 아이들은 자폐적이지 않다는 제 생각도 마찬가지로 자폐적인 아이들과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소아정신과학 분야의 사람들은 대부분 따뜻한 시선으로 아이들을 봅니다. 따뜻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그렇게 보이니까요. 아이들은 어른들의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른들의 눈에 귀엽고 순진하게 보이는 얼굴을 갖도록 DNA에 설계돼 있습니다. 사심 없이 아이들을 바라보면 아이들이 아주 예쁘다고 누구나 느낄 겁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정신과 병원이나 치료 센터를 찾지만, 결국에는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진단하고 치료하는 사람들은 그 아이들이 어떤 어려움에 처해있고 그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자폐적인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다른 면을 가지고 있을 뿐이죠. 저는 많은 자폐적인 아이들을 만나면서 이 아이들은 ‘소통하지 못하는 특별함’이라는 남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아이들은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그래서 이해 받지 못하고, 쉽게 소통하지 못해 다른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이 힘듭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따돌림 당하거나 혼자 남겨져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개미를 관찰하거나 온갖 사물들을 건드려 보고 남들은 듣지 못하는 소리에 집중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세계를 발견합니다. 그 아이들은 꼬마 발견자들이거나 꼬마 발명자들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남다른 발상과 창조물들은 아주 하찮은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 인류에게 아주 소중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른으로 성장해 새로운 예술 세계를 펼치거나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자폐적인 아이들은 아주 많습니다.


자폐적인 아이들은 ‘소통하지 못하는 특별함’이라는 선물을 DNA로 받았을 뿐,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싫어하거나 반사회적인 성향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울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는 의미의 자폐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교류하지 못하는 이유를 본인들에게 돌리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실제는 어떨까요? 특이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또는 특이한 말을 하기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가족들이 스스로 자폐적인 아이를 집 안에 격리해서 키우는 모습을 종종 봤습니다. 잘 돌볼 여력이 없어서 그냥 가두어 두는 집도 있지만, 체면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여서 따로 키우는 모습도 봤습니다. 과연 그 아이들이 스스로 그런 삶을 선택했을까요?



Q∥2011년 선생님이 한국 대표로 있는 국제 공동 연구팀이 수행한 유병률 역학 연구(Epidemiological Study)에서 ‘100명 중 2.64명이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결과를 담은 논문이 《미국정신과학회지》에 발표되자 전 세계가 놀랐었습니다. 그해 연말에는 《네이처》 학술지의 편집진이 각 분야별로 하나씩 선정하는 2011년 ‘올해의 연구’ 중 하나로 소개되기도 했고요. 자폐스펙트럼 연구에 새로운 지평이 열린 셈인데요, 그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A∥당시 우리나라에는 자폐스펙트럼 장애 유병률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었습니다. 선진국들에서도 연구할 때마다 유병률이 조금씩 높아지는 추세였지만, 공식 진단기준서인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 4판 DSM-IV』에 자폐 장애 유병률이 10,000명 중 2~5명으로 나와 있었고, 연구 결과에서 발표된 대부분의 유병률이 1% 미만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이라는 자폐 연구의 불모지에서 진행된 연구에서 유병률 2.64%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른 나라의 연구자들이 믿어줄 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면서 논문 작성 기간도 길어졌습니다. 연구 완료 후 4년만에 논문이 나왔는데, CNN TV에서 자폐 연구의 ‘선진국’인 한국의 현황을 인터뷰하겠다고 루돌프연구소로 연락이 왔습니다. 하루 아침에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네이처》 학술지는 해마다 연말에 각 과학 분야별로 가장 중요한 연구 결과를 하나씩 선정해서 소개합니다. 우리 연구가 역학연구 분야에서 선정됐습니다. 중앙일보는 함께 연구를 주도하고 논문을 쓴 예일대학교 김영신 교수와 저를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기사로 냈습니다. 한국을 빛낸 아들과 딸들을 지면에서 많이 봤는데, 내가 거기 있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고생을 했던 연구를 간신히 마치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나니까 사실 할 일은 더 많아졌습니다. 교육부나 보건복지부에 불려가기도 했고, 연구를 도왔던 교육청에서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선의의 압력을 넣었습니다. 쉴 틈 없이 바로 지자체의 예산을 지원받아 아이들을 치료하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지금은 국가에서 전국적으로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돕는 사업을 매년 시행하고 있는데, 우리 연구가 모델이 돼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외적으로도 우리 연구 방식이 유병률 연구의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선진국들에서 2%가 넘는 유병률을 받아들이는 추세입니다. 실제로 의료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미국의 뉴저지 주에서는 2018년 자폐스펙트럼 장애 유병률이 2.9%로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연구 결과가 발표된 지 7년이 지나서 나온 결과입니다.



Q∥문학계나 예술계, 정치&경제계, IT 분야 등에서 아주 뛰어난 업적과 성과를 이룬 사람들 중에도 자폐적 기질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누가 있는지요? 주로 어떤 부분을 보고 자폐 성향이 있다고 판단하시는지요?


A∥국내에도 여러 분야에 걸쳐 자폐적인 천재들이 많이 있지만 아직 커밍아웃을 한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외국의 사례를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과학 분야에서 최고의 천재로 거론되는 뉴턴과 아인슈타인, 예술 분야에서는 모짜르트나 엔디 워홀, 그리고 안데르센과 같은 동화 작가가 대표적입니다. IT분야에서는 자폐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인데요,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고, 이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자폐적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자폐 증상을 모두 드러내 보여준 사람들입니다. 자폐 증상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책에 소개된 많은 증상들을 요약하면, ‘소통과 교류의 어려움’과 ‘남다른 특별한 행동과 집중력’입니다. 뉴턴, 아인슈타인, 모짜르트, 엔디 워홀, 안데르센, 스티브 잡스 모두의 공통점은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새로운 세계를 연 사람들입니다. 남들과는 다른 발상에 집착하고 몰두해서 인류를 다른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삶이 평탄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루돌프연구소에 와서 진단 받은 한 대학생에게 이 천재들의 삶에 관한 책을 소개해 주었는데, 다 읽고 나서 매우 실망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천재적인 삶은 부럽지만, 사회생활에서 보여준 미성숙한 행동이나 삶의 굴곡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꼬마들에게는 루돌프연구소가 있습니다. 성인이 된 한 영재 소년은 책 저술 과정에서 저와 점심 데이트도 했는데요, 훌륭한 신랑감으로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15년 전 연구소를 찾은 아이들이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었을텐데요. 자폐적인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상황들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고도 하셨고요. 이에 대해 좀더 이야기 들려주세요.


A∥경미한 증상을 가진 자폐적인 아이들의 부모 그리고 중증 아이들의 부모 모두 예외 없이 자녀들의 사회생활에 대한 걱정이 여전합니다. 너무나 한정된 대인 관계 밖에 없어서 사회에서 격리된 모습이거나, 아니면 많은 사회 관계를 가지고 있어도 진정하게 소통을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어떤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에 따라서 걱정의 양과 질은 달랐습니다. 본인의 능력과 무관하게 얼마나 호의적인 환경에 있는가에 따라서 삶의 질이 달랐다는 말입니다. 이 부분은 우리 사회의 책임입니다.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사회 그리고 따뜻한 마음과 친절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구성원들이 모인 사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서로 상생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몰라서 그렇지 알고 나면 루돌프 사슴의 놀라운 코가 인류를 구원할 특별한 코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우리의 자폐적인 아이들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별난 생각들을 중요한 자원으로 받아들인다면 한 단계 더 성숙한 사회로 업그레이드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Q∥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A∥저는 지난 15년 동안 루돌프연구소에서 경험한 자폐적인 아이들의 매력에 빠져서 결국은 이 책을 쓴 사람입니다. 그 아이들에 대해 일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소통 못하는 특별함’을 가진 아이들이 얼마나 놀라운 아이들인지, 그리고 실제 그런 아이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한편 그 아이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서 그 아이들이 얼마나 절실하게 친구들을 원하는지 꼭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