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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을 펴낸 김홍표 교수


Q∥ 독자들에게 자기소개와 첫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A∥ 식구들을 잠시 미국에 놔두고 한국 들어와 울산 살 때 안동에 놀러갈 일이 생겼습니다. 시간이 잠깐 남아서 시외버스 정차장 주변을 배회하다가 동네 서점을 들어갔지요. 그때 발견한 책이 <기생충 제국>이었습니다. 그 책은 거의 20년 이상 실험실 생활에 익숙해진 저의 관성을 일거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침을 하는 이유가 바이러스가 자신을 퍼뜨리도록 인간을 조종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충격에 가까웠습니다. 그때 이후론 그렇게 즐겨 읽던 소설을 더 이상 손에 잡지 않았습니다. 생물학의 제반 영역에 ‘시간’, 특히 지질학적 시간이라는 매개 변수를 넣고 세상과 거기 곁들어 사는 생명체를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공부하는 김홍표라고 합니다. 워낙 전공이 약학인지라 질병의 진화적 역사를 유심히 바라보고 ‘진화의학’을 국내에 소개하고자 하는 마음에 번역을 시작한 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동안 평범한 것들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아 보일 때까지 공부하려고 합니다.



Q∥ 이 책을 어떻게 집필하게 되셨는지요?

A∥  제가 처음으로 쓴 책은 산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 식구들은 제 책을 읽지 않아요. 관심이 없는 것이지요. 제 목표는 울 아들이 책을 읽을 수 있게 쓰는 것입니다. 부차적인 것이지만 제게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내용의 책을 쓰느냐는 별개 문제겠지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서문에도 나와 있지만 런던 칼리지 대학 생화학자 닉 레인의 글귀였습니다. 그가 소화기관의 역사에 대해 쓰고 싶었다는 말을 했을 때 저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여러 조직들의 역사를 쉽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첫 번째 결실이 이 책입니다. 소화기관과 그 주변 이야기, 이게 이 책의 내용이지요.



Q∥ 우리는 외부에서 받아들인 음식물을 먹고 소화해서 다시 외부로 보내는 일을 매일같이 반복합니다. 책에서 설명하셨는데, 이런 음식물이 거치는 통로, 우리 몸 속 기관인 “소화기관은 내 안의 밖”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부분을 좀 더 설명해주신다면요?

∥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어느 책에서 네발 동물의 신경계가 몸통의 진행 방향인 앞쪽에 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전면에 위치한 모든 신경이 먹을 것을 찾고 포획하기 위해 근육을 움직이거나, 혹은 먹히지 않으려고 도망가기 위한 생존 전략의 핵심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지만 눈이 뒤쪽에 없는 것으로 보아 먹을 것을 찾고 쫓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얼핏 듭니다. 먹을 것이 수중에 들어오면 그 처리는 온전히 소화기관의 소관으로 넘어갑니다.


척추동물의 부속지(팔, 다리 같은 것을 일컫습니다)를 논외로 하면 이들의 몸통 설계는 기본적으로 도넛 형태로 단순화시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화기관은 음식물을 잘게 쪼개 몸통 안으로 들여보내고 그 몸통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세포가 섭취할 수 있는 형태로 밥상을 차리는 역할을 합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가 먹을 수 있는 식단은 주로 탄수화물, 지방산, 아미노산 같은 것입니다. 뭐 미네랄 같은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 양은 극히 적습니다. 교과서에서 보던 것들이지요. 세포 차원에서 보면 유글레나가 사는 방식이나 인간이 사는 방식이 서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세포가 먹지 못하는 것들은 앞에서 뒤로, 인간이라면 위에서 아래로 최종적으로는 몸 밖으로 나갑니다. 관을 따라 밖으로 나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입에서 항문까지는 우리 몸이지만 열린 관이고 신체 내부의 바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소화기관의 발달이 혈관계, 근육계, 신경계, 호흡계의 발달을 이끌었다고 책에서 논하셨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인 것도 같습니다만, 소화기관은 어떻게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기관이 되었을까요?

A  ∥  혈관의 예를 들어볼까요? 혈관이 운반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세포의 먹거리이고 다른 하나는 산소입니다. 산소는 세포가 식사를 하고 에너지를 얻을 때 반드시 필요한 물질입니다. 생명체가 하나의 세포라면 잡아먹히는 것은 근심거리가 되겠지만 산소 걱정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확산을 통해 산소가 세포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생명체의 크기가 커지면서 몸 전체를 관통하는 “내 안의 밖“ 부위가 선명해집니다. 소화기관에서 처리한 음식물을 전체 세포가 나누어 가지는 방식이 혈관계와 호흡계의 분화를 이끌어 냅니다. 신경계와 근육계는 생명체가 먹이를 포획하는 전술적 기본 단위라고 볼 수 있겠지요.


우리가 유전자를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래되고 쉽게 변치 않는다고 말합니다.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공장인 리보좀을 구성하는 RNA는 세균에도 있고 인간에게도 있습니다.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말이지요. 생물학에서는 오래된 것은 유전자건 기능이건 중요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소화기관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Q∥ 얼마 전 한 TV 다큐멘터리에서 “고지방 다이어트” 방송이 나간 이후, 고지방 식단에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고기 중심으로 먹는다는 건데, 이런 다이어트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  민감한 문제네요. 호주에서 돌아오는 길 시드니 공항에서 샀던 책이 <빅 팻 서프라이즈 The Big Fat Surprise>입니다. 얼마 전 <지방의 역설>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지요. 영어 원본은 며칠 만에 다 읽었지만 맘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탄수화물을 줄여라 하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비량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우리 주식이 쌀이잖아요. 저는 패션이 유행하는 것처럼 다이어트 식단도 유행을 탄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거대한 실험 집단이 되는 듯한 불유쾌한 감정도 있습니다. 사실 알래스카 이누이트족 사람들은 지방과 단백질을 주로 먹고 탄수화물은 거의 섭취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심장병 발병률은 매우 적다고 알려졌어요. 식단을 다루는 많은 책들은 이누이트족의 육체적 활동에 대해서는 대체로 입을 닫습니다.


먹는 것만 가지고 건강하고 오래 살겠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건강 기능식품 교양 수업시간에도 가끔 말하지만 건강 혹은 수명은 사회경제적 지위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내 입이 아니라 인간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관점을 취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사실 인간 모두에게 좋은 식단이란 없습니다. 인간 집단이 살아가는 곳이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빌딩블록인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은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맞습니다. 대신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물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장화된 음식, 소화기관이 해야 할 일을 대체하는 가루음식들, 과자, 고과당 옥수수 시럽 같은 문제가 삼겹살을 먹고 다이어트하는 ‘개인적 노력‘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말로 대신하고 싶네요. 거기에 운동을 곁들이면 금상첨화겠지요?



Q∥ 이 책 <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은 아무래도 동물들이 주인공입니다. 이 책을 쓰고 난 후, 식물에게로도 관심을 두고 있다 하셨는데요, “동물의 생물학”과 “식물의 생물학”, 둘 다를 공부한 느낌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동물과 식물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 책에서도 그 연결고리를 설명하신 바 있는데요.

A∥  지구라는 행성에서 식물이 차지하는 지위는 생산자입니다. 독자적으로 유기물질을 만들어내는 생명체는 식물, 조류, 그리고 남세균 등등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소비자들이지요. 소비자 입장에서 생산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속내를 잘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호흡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식물에게 돌려준다는 식의 안일함을 벗어나야 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식물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너무 적다고 스스로 자책하고 있습니다. 가령 화살나무는 가지에 십자 모양의 날개가 달려 있는데 왜 그런지 아무도 알지 못해요. 대신 화살나무가 암을 치료하는 데 좋다는 소문이 나서 시달리고 있다는 풍문이 들립니다.


인간은 결코 소비자 지위를 벗어나 생산자가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나 인간을 둘러싼 주변을 돌아보는 행위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지요. 관계망 속에서 인간을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종 다양성이라고 흔히 회자되는 말이지요. 저는 생물학의 한 핵심 분파로서 식물학을 공부해보고 싶어요. 예컨대 광합성 같은 것 말이지요. 식물의 면역계, 생식 등 점차 범위를 넓혀가며 공부하고 싶습니다.



Q∥ 이 책은 생명의 진화사부터 인간의 입냄새까지, 소소하고도 위대한 먹고 사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책 내용 중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독자들에게 맛보기로 소개해주신다면요?

A∥ 자료를 준비하면서 소화기관이 매우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는 내용이 개인적으로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 특히 공장화된 음식물이 본격적으로 인간 집단에 유입되면서 우리 소화기관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은 아직 인간 생리학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또 우리가 밥을 먹을 때 탄수화물 말고도 쌀의 유전 요소(RNA)가 들어온다는 내용은 처음 들어본 것이었습니다. 음식물의 빌딩 블록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게 아니냐 하는 걱정(?)도 들었고요. 잡초 같은 화본과 식물이 인간의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나 옥수수의 수염 개수가 옥수수 알갱이와 이론적으로는 같아야 한다는 연구도 재미있었습니다.



Q∥ 저자 서문에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다양한 동물은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다”라고. 어떤 맥락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좀 더 덧붙여주신다면요?

A  ∥  어항의 물고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얼굴이 보입니다. 개별 유전자가 아니라 생물의 유전체 전체를 한번에 볼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에 따라 이제는 물고기와 인간의 유전체를 직접 비교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고기 신경계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겠지요? 가령 예를 들어 복어의 신경계가 문제가 생기면 인간처럼 치매를 앓게 될까요? 과학과 의학이 진일보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치매의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합니다. 동물을 열심히 살펴보다가 치매의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순전히 지적 호기심 말고도 동물을 들여다볼 이유는 엄청나게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가려움을 느낄까요? 그렇답니다. 척수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가려움을 척수 반사라고 보는 것이지요.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생명체에 핵심적인 요소는 그것이 유전자든 세포 소기관이든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섬모 같은 소기관이 그러한 예입니다. 유글레나도 갖고 있고 인간의 세포에도 섬모가 무궁무진합니다. 세포의 안테나처럼 우뚝 솟은 기관인 섬모는 운동을 담당한다고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진짜 안테나처럼 외부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감각 기관의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재미있게도 이 자그마한 섬모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수는 수백 개나 됩니다. 그중 하나만 고장 나도 질병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명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고인돌처럼 이석을 받치고 있는 것이 바로 섬모이기 때문입니다. 귀 안의 섬모가 문제가 생기면 몸통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난감해집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섬모가 동물의 균형을 담당하는 데 차출되었을까요? 또 그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유전자는 무엇일까요? 이런 식의 질문은 비교 생물학과 유전체학을 동시에 훑어볼 때 정확한 답이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팔굽혀 펴기를 하는 물고기 화석을 발견한 닐 슈빈은 “내 안에 물고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물고기 대신 예쁜 꼬마선충이 있다고 해도 과학적으로 삿대질할 사람은 없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몇 마디 부탁드립니다.

∥  저는 생물학을 화학이나 지구과학 혹은 물리학과 통합하는 게 어떨까 하고 궁리를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통섭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겠지만 작고 평범한 것에서 출발해 자연 혹은 생명의 법칙에 이르는 과정이 교과서에도 편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런 마음을 담아 고등학생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자연 과학을 공부하거나 관심이 있는 대학생, 대학원생,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겠지요. 논문 읽다 지루한 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이것 재미있는 실험이 되겠는데’,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실험 과학자들의 모습도 상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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