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번역과 중국의 근대>를 우리말로 옮긴 한성구 교수 인터뷰


Q. <번역과 중국의 근대(影響中國近代社會的一百種譯作)>라는 책으로 궁리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어떤 공부를 했고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본인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A. 안녕하세요? 궁리 독자 여러분께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저는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 중국에 건너가 중국 근현대철학을 전공해서 석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제가 철학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동양의 전통 철학과 사상이 근대 시기 외래 학문의 충격 속에서 어떻게 변화를 모색했고, 그 결과 동아시아 현대 철학의 탄생에 어떤 식으로 기여했는 지입니다.

석사 때는 서구 사상의 영향 아래에서 전통 사상의 정체성 전환을 고민한 중국 현대 신유가를 주제로, 박사과정에서는 서양 과학이 중국 근현대 지식인들의 관념과 사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주제로 논문을 완성했습니다. 『원시유교, 동아시아 문명의 축』, 『생태미학과 동양철학』(공저), 『중국 6세대 영화, 삶의 진실을 말하다』(공저) 등을 썼고, 『중국 윤리사상 ABC』, 『송나라 식탁 기행』, 『과학과 인생관』 등을 번역했습니다. 현재는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에서 HK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지식 권력의 변천과 동아시아 인문학>이라는 아젠다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Q. 이 책은 ‘중국 근대사회에 영향을 미친 100권의 번역서’라는 부제가 인상적인 900쪽에 달하는 대작입니다. 이 책을 처음 접하고 번역하게 된 계기가 무척 궁금합니다. 총 번역기간은 어느 정도 걸렸는지요? 저자인 쩌우전환 교수님과는 어떤 인연으로 책 출간까지 이어지게 되었는지요?


A. 책의 서문에도 나오듯이 저자인 쩌우전환 교수는 동서양 문화교류에 관한 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적지 않은 독서 찰기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후에 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공교롭게 저 역시도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중에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책의 내용이 제 논문 주제와 관련이 깊지는 않았지만, 근대 시기에 중국에 번역된 서양 서적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번역서에 대한 지식인들의 반응, 새로 만들어진 번역어에 대한 소개, 판본에 대한 설명 등이 포함되어 있어 논문 자료를 검색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쩌우전환 교수는 중국 푸단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푸단대학 역사학과는 구제강(顧頡剛), 쩌우구청(周谷城), 쩌우위통(周予同), 차이상스(蔡尚思) 등 중국 역사학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분들이 교편을 잡았던 곳일 뿐만 아니라, 주웨이쩡(朱維錚), 장이화(姜義華), 거졘슝(葛劍雄) 등의 학자를 배출한 곳으로 중국 근현대사 연구의 요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쩌우전환 교수는 특히 명청 이래 서양 서적의 번역과 중국문화의 관계에 관한 연구로 정평이 나 있어서 중국 근현대 사회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참고할 가치가 큽니다.


아쉽게도 저는 쩌우전환 교수와 직접 만나본 적은 없습니다. 책을 번역하면서 메일을 몇 차례 주고받았는데, 과거 방문학자의 신분으로 한국에 장기간 머물렀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한중 문화교류에 상당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번역에 관해서도 아무런 조건 없이 흔쾌히 승낙해 주셨고, 심지어 판권 만료 시한까지 알려주시며 최대한 친절하게 번역의 편의를 봐 주셨습니다.


책의 번역을 처음 결심한 것은 제가 중국에 있을 때였으니까 꽤 오래전입니다. 멋모르고 달려들었다가 책이 다루고 있는 범위와 인용된 자료의 무게에 기가 눌려 한동안 덮어 두었었지요. 귀국 후 뜻이 맞는 몇 분과 공동으로 번역을 하려고 시도해봤지만, 이 역시도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책에서는 모두 100권의 번역서를 소개하고 있는데, 산술적으로 따져보니 혼자 번역한다면 3일에 한 챕터씩 해서 1년이면 되겠더군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3일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챕터도 끝내기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어느 정도 번역이 진행되자 욕심이 생기더군요.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번역서와 저본이 된 서양 원서를 비교해보자’, ‘책에 등장하는 번역 관련 개념이나 번역자, 비평가들에 관해 최대한 주석을 많이 달자’, ‘선정된 책들이 한국에서는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살펴보자’. 이런저런 곁가지 작업에 신경을 쓰다 보니 3년이 훨씬 지나서야 번역 초고가 완성되었습니다. 여전히 아쉬움이 많지만 제대로 된 번역 문화사 한 권을 번역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특히 궁리출판사를 만나 결실을 보게 되니 이제야 비로소 책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요.


Q. ‘번역이 중국의 근대를 만들었다’고 할 만큼 해외문물의 번역작업은 중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잘 알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번역작업들이 큰 결실을 맺고 커다란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시기는 특히 언제부터였다고 할 수 있을까요? 중국 번역사를 크게 시간 순서에 따라 민족 번역(民族翻譯), 불전 번역(佛典翻譯), 그리고 서학 번역(西學翻譯)의 세 단계로 나누고 있던데요.

A. 최근 과거로 타임슬립하는 드라마가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실제로 시간여행이 가능해져서 우리가 조선 초기나 중기로 간다고 가정해보세요. 뭐가 가장 큰 문제일까요? 제 생각에는 현대인과 조선사람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일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단어 가운데 대부분은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말이고 번역어이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면, 자유, 민주, 권리, 의무, 사회, 경제, 인기, 사진, 매장, 요리, 직장, 방송, 상징, 예술, 미학, 주관, 객관, 감성, 철학, 과학 등은 모두 19세기 말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번역어입니다.

사람은 생각할 때 개념을 이용하는데 개념은 ‘말’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어떤 말을 쓰느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와 직결되고, 그것을 특정 문화로 확장해 보면 언어가 특정 문화의 학술과 사상, 철학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번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데, 그에 비해 우리의 번역 문화사나 번역어 연구는 걸음마 단계여서 안타까움이 많습니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번역이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민족 간의 소통을 위해서나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도 번역은 매우 중요한 분야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외래문화가 전래되고 수용되는 과정에서 번역은 단순히 문자 간의 호환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사상을 융화시키고 문화적 충격을 완화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불경을 중국식으로 번역하는 격의 방식이 없었다면 이질적인 사상 형태를 가진 불교가 중국에 뿌리내리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민족 번역과 불전 번역이 동일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근대 시기의 서학 번역은 이질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서학 번역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이라는 천하 바깥에 더 뛰어난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써 중국인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위기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이 초안정 구조로 수천 년을 이어온 중화 문명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낸 결정적 계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번역과 중국의 근대>에는 주로 어떤 기준으로 100권의 책을 담았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교수님이 보시기에 100권의 책 중 지명도 등의 면에서 가장 의외의 선정 도서라고 생각되는 책들을 꼽아주신다면요?

A. 저자는 기본적으로 시대순으로 100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00권에는 서로 다른 분량,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번역서로서 의의가 매우 큰 경우라도 지나치게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거나 문화적 배경의 차이로 인해 중국에서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 것은 선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중국의 근대사회에 영향을 준 책이 100권에 불과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 실린 100종의 책들이 근대 중국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성경』이나 『기하원본』, 『만국공법』, 『자본론』처럼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작품도 있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리어왕』처럼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문학 작품도 있으며, 『담천』, 『지학천석』, 『광학게요』, 『뉴턴수리』, 『상대론천석』 등 서양 근대 과학이론을 담고 있는 과학서적도 있습니다. 비록 『류큐지리지』와 『소련 공산당 역사간요 독본』처럼 중국 당국의 정책과 견해를 반영하고 있는 책도 일부 있긴 하지만 책의 완성도를 해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어떤 집필 및 번역 작업으로 독자들과 만날 계획이신지요?


A. 저는 개인적으로 예일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이자 미국 중국사학계를 대표하는 조너선 스펜스의 글쓰기 방식을 좋아합니다. 특히 『천안문』이라는 책은 저자의 깔끔한 문학적 필치로 역사와 문학, 사상을 한 곳에 녹여 내어 중국 근현대사를 실감 나게 그려내고 있는데요,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동정 어린 시선과 책을 읽은 후 느껴지는 여운의 따뜻함 때문에 기존의 역사서와는 달리 더욱 끌리는 것 같습니다. 저도 기회가 된다면 이런 방식을 최대한 모방해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제가 구상하고 있는 책은 ‘중국’, ‘현대’, ‘과학’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최근 ‘대륙의 실수’라는 말로 자주 형용되는 샤오미 등 중국산 스마트 제품의 폭발적 성장이나 우주 탐사와 핵개발 성과, 중국학자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 등은 그동안 우리가 중국의 현재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닫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중국의 현재를 만든 동력은 무엇일까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그 근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날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중국 과학 굴기는 파격적인 깜짝 과학정책이나 천재적 과학자 몇몇이 단숨에 이루어 낸 성과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과학 굴기의 이면에는 전통 과학에서 현대 과학으로의 전환 과정과 현대 과학의 형성 과정이 두껍게 누적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전통에서 현대까지 중국 과학의 진행 과정과 중국 현대 과학의 원류에 관한 책을 써 볼 생각입니다.


또한 『번역과 중국의 근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좋다면 『독서와 중국의 현대』(가제)라는 책의 번역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이래 현대 중국에서 주목받았던 서적 120여 권에 관한 비평서인데, 쩌우전환 교수의 책과 함께 읽으면 근현대 중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Q. 끝으로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도움말을 주신다면요? ‘중국’과 ‘번역’, ‘역사’라는 키워드를 중첩해서 읽게 될 때 어떤 점을 염두에 두면 좋을까요?

A. 선별된 책은 시대순으로 수록되어 있지만, 어느 것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고, 관심 가는 분야의 책을 모아서 함께 읽어도 좋습니다. 또한, 한국에는 언제 어떻게 소개되었는지 추측하고 검색해보면서 읽는 것도 주체적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는 한 방법일 것입니다.


‘작품은 시대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형성하기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처럼 『번역과 중국의 근대』를 잘 설명하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중국 근대사회에 번역된 서적에 반영된 시대적 특징과 번역서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중국 근대 역사의 흐름을 함께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다면 중국 근대사회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