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불량엄마의 과학수다’ 시리즈 첫 책인 『불량엄마의 생물학적 잔소리』에서 따뜻한 느낌의 그림들로 엄마의 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었고,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책인 『불량엄마의 별난 지구여행』 에서도 복잡한 우리 지구와 그 주변 세상을 그림으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주었습니다. 출간된 책을 바라보는 느낌이 어떤지요?
A∥ 중학교 때 교과서의 그림들이 너무 딱딱해서 공부하기가 싫었어요. 색감도 딱딱하고 모든 그림이 틀에만 맞춰져 있어서요. 그래서 엄마랑 공부하면서 이렇게도 그려보고 저렇게도 그려보았지요. 엄마는 주로 말로 설명을 했는데, 과학은 그림만 보고도 이해가 될 때가 많잖아요.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림을 정말 못 그리거든요. 실제로 엄마가 설명하면서 그린 그림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반격하기 위해 엄마 얘기를 그림으로 다시 그리곤 했더니 엄마가 보고 마구 칭찬을 해주더라고요.^^
엄마의 첫책인 <불량엄마의 생물학적 잔소리> 그림을 그린 후 뉴질랜드에 있었기 때문에, 책이 출간되고 6개월이 지난 후에야 인쇄된 책을 볼 수 있었어요. 그림 그리는 일이 특별한 일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가 그린 그림이 인쇄되어서 나온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만 들여다보니, 조금 더 잘 그릴 수 있고,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변형을 했어야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Q∥언제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지요? 엄마의 글을 읽고 자신이 다시 재구성해서 그림을 그리는 셈인데, 그리면서 힘들었거나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A∥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대상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중학교 때 미술선생님을 좋아해서, 그 선생님이 하신 방과후 수업을 들었어요. 그 선생님이 하신 모든 말을 마음 속게 새겨뒀어요. ‘직선을 그릴 때는 가야 하는 목표지점을 보고 펜을 움직여라’라는 말은 아직도 기억이 나요. 그 선생님을 왜 좋아했었는지는 기억도 없지만 그렇게 그때해 주신 말들을 되새기며 그린 그림들이 지루한 시간을 때울 수 있게 해 준 것 같아요. 엄마는 스트레스 해소라고 말하지만요.
엄마 책의 그림 그릴 때 가장 힘들었던 건 한 마디로 엄마의 영혼 없는 무성의함이었어요.^^ 처음 스케치를 해서 보여주면 건성으로 ‘그래, 잘 그렸네. 알아서 해봐’라고 해놓고는 막상 색칠까지 다 해놓으면 ‘이건 아닌데~’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영혼 없는 멘트로 인해 똑같은 그림을 세 번 넘게 그린 적도 있어요.
엄마가 종종 제가 그려 놓은 그림들을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볼 때가 있었어요. 엄마의 틀에 박힌 말투를 벗어나거나, 엄마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그림들이 있지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엄마가 그 그림들을 그냥 다 책에 넣으셨다는 거예요. 덕분에 두 번 그리는 불상사는 없었지요. 그런 그림들은 생물학적 잔소리에도 있고, 지구여행에도 있어요. 지구여행에 보면 판의 섭입과 발산을 동시에 설명하는 그림이 있어요.
엄마 설명을 듣고는 러닝머신에서 달리는 것으로 표현을 했더니 “섭입과 발산은 바다 속에서 일어나는데 너는 물속에서 달리기 하냐?”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고정관념을 버려~ 이해가 잘 되면 그게 바다 속이든 땅 위든 상관없잖아” 라고 했더니 관련 본문 내용을 수정하더라구요. 물론 조용히 바꾼 건 아니에요. “바다 속에서 달리기 할 수 있다는 너의 특수한 생각에 경의를 표한다. 어디 한번 해보지?”라는 토를 달았고, 덕분에 저는 물방울을 내뿜으며 바다 속에서 달리기하는 특별한 개인기를 연습해야 했어요.

<불량엄마의 생물학적 잔소리> 본문 삽화 ⓒ 홍영진
Q∥엄마가 쓴 글에 대해 딸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어떤 평가를 할 수 있을까요?
A∥ 엄마는 일상적인 얘기로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평소에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과학뿐 아니라 시와 역사를 얘기할 때도 많이 있거든요. 엄마가 어느 순간 읊은 시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다시 찾아 읽어보면 그때의 감동이 없는 거예요. 결국 엄마의 사람 홀리는 재능에 낚인 거지요. 그건 저뿐만이 아니라 아빠도 늘 그렇게 말할 정도니까요.
엄마 책이요? 당연히 말과 글로 사람을 홀리는 능력이 녹아 들어가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지요. 더불어 전체적인 맥락을 잡게 해주는 책이기도 해요. 엄마랑 얘기하다보면 엄마는 제가 어떤 부분을 모르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거예요. 긴 얘기를 해도 그 얘기들 속에서 제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들을 꼭 집어서는 맥락을 만들어주는데 엄마의 그런 능력이 책에 녹아 있더라구요.
또 다른 거 하나는 일상적인 말로 과학을 얘기한 거예요. 어려서는 과학을 좋아했는데, 중학교 때는 싫어했어요. 교과서의 과학은 특별한 용어로 설명되어 있어, 마치 다른 나라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면이 많지요. 그런데 그런 내용을 일상적인 말로 저와 연계된 문제 중심으로 얘기하니까 과학을 훨씬 친숙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책 읽는 내내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예전에 엄마랑 공부할 때는 몰랐는데, 조금 커서 엄마와 공부한 내용을 다시 읽어보니 그때 제가 알지 못했던 내용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특히나 과학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허점과 모순투성이인 결과들이 쌓여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이요. 그래서 조금 더 과학과 우리를 조금 더 가깝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고요.
Q∥‘불량엄마’라는 엄마의 닉네임은 반어적인 느낌이 많이 듭니다. 홍 작가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인지요?
A∥ 저희 엄마가 아무리 ‘불량’이라고 해도 보통의 엄마들이랑 다르겠어요? 그냥 똑같은 엄마지요. 자기 자식 잘 되길 바라는(이런 멘트는 완전 닭살이에요). 물론 조금 다른 면이 있기는 해요. 사실 중학교 때는 엄마가 다른 보통의 엄마들과 달라서 싫었어요. 제가 해달라는 것을 즉각 해주지도 않고, 다른 엄마들처럼 나서서 제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도 않는 늘 약간은 방관자 같은 엄마였거든요. 물론 직장생활로 인해 바쁘다는 것이 좋은 핑계거리가 되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엄마의 말하는 방식이 아주 독특하다는 거예요.
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두 책은 저에게 말하는 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엄마, 나 아파‘라고 말하면 보통의 엄마들은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 병원 가자” 이렇게 말하는데, 엄마는 “아파서 다행이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저는 진짜 아픈데, 엄마가 ‘아파서 다행이다’라고 말해봐요. 바로 머릿속에 “내 엄마 맞아?” 이런 생각이 들지요. 그리고 “엄마 더워” 이렇게 한마디 하면 엄마는 “왜 더운 줄 아냐? 왜 습기가 많은지 아냐?”라며 열 마디 아니, 백 마디를 하거든요. 아니 어떤 엄마가 이렇게 얘기를 해요. 덥다고 하면 에어컨을 켜준다던가 시원한 음료수를 만들어주던가 하잖아요. 그래서 엄마가 스스로 불량이라고 정의하기 훨씬 전부터 저는 이미 엄마를 ‘불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친구들에게 얘기하는 방식을 보니까 엄마랑 똑같이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한마디로 그 엄마의 그 딸이라고. 그런데 그런 저를 친구들은 “넌 정말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 공부하면서도 그렇게 바라보는 시각이 전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결국 엄마의 그런 말투로 인해 제가 그런 다양한 시각을 가지게 된 거지요.
생각해보면 엄마가 스스로 ‘불량’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저 때문이잖아요. 저를 특별하게 뛰어난 아이로 만들고 싶어 한 엄마의 마음이잖아요. 그런 마음이 행동으로 옮겨져 저에게 스트레스가 되었다면 한판 했겠지만, 그냥 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지켜만 봤으니 계속 불량해도 되는 거지요. 그런 엄마의 불량함은 영원히 제 편이라는 얘기니까요. 영원한 제 편 한 명쯤은 있어도 되는 거잖아요.

<불량엄마의 별난 지구여행> 본문 삽화 ⓒ 홍영진
Q∥‘인류 문화와 생물학을 연계할 줄 아는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들려준다면요?
A∥ 작년 12월경에 영국 대학에 입학지원서를 냈고, 지금은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제가 지원한 분야가 생화학분야인데 엄마 아빠랑 조금 다른 분야거든요. 엄마 아빠는 늘 생물을 얘기할 때 ‘진화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제가 고등학교 때 배운 진화는 인체의 모든 뼈를 외워서 해부학적으로 어떻게 진화가 이루어졌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거든요. 한마디로 노잼! 생물학을 공부하기는 하는데 진화는 빼고 공부해야겠다는 무의식적인 반항심이 있었어요. 결국 제 생각에 진화와 비교적 거리가 멀어 보이는 생화학을 선택하면서 바이러스 연구를 해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대학 진학을 위해 자기 소개서를 쓰려고 보니까 바이러스만큼 빠르게 진화해서 인류 문명을 변화시킨 분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고등학교 때 해부학적으로 진화를 배워서 재밌다는 생각은 못했지만, 결국은 모든 학문이라는 게 인류를 빼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이런 고민을 아빠에게 얘기했더니 아빠가 조금 거창하게 ‘문화와 생물학을 연계할 줄 아는 과학자’라는 표현을 생각해줬어요. 아빠가 그렇게 만들어주니까 진짜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는 해요. 사실은 그냥 바이러스를 공부하다보면 뭔가 재미있고,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백신개발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는데 말이에요.
Q∥‘불량엄마의 과학수다’ 시리즈를 읽을 또래 친구들 혹은 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앞으로 과학분야를 전공할 만큼 관심과 능력이 뛰어난데, 과학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저의 경우는 엄마 아빠가 과학을 공부했고 그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과학이 일상이었어요. 그래서 특별히 과학과 친해지는 것이 어렵지 않았어요. “과학~ 참 쉽쥬?” 이렇게 말하는 순간 날아오는 비난의 화살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한마디 하면 엄마아빠가 나서서 열 마디, 백 마디를 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친구들을 보면, 과학은 늘 과학 시간에만 접하는 특별하고 생소한 일인 거예요. 그래서 친구들에게도 저처럼 ‘왜?’라고 질문하면 저의 엄마나 아빠처럼 열 마디, 백 마디 해주는 분들이 주변에 계시는 행운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분을 찾기 어렵다면 저처럼 그림으로 접근한다던가, 아니면 열렬히 과학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원리를 통해 전체를 이해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토리 없는 지식은 핵노잼, 암기잖아요. 사실 일상이 과학이고,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과학발전을 통해 이루어져왔는데 시험보고 다 까먹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더불어 스토리 속의 지식이 제가 이 세상을 재밌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지요. 제가 엄마 생각에 너무 많이 감염이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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