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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살아 있는 시간>을 펴낸 건축 비평가 이종건 인터뷰


Q∥ 지난 7월에 펴낸 ‘이종건의 생활+세계 짓기 시리즈’ 첫권 <시적 공간>을 잇는 후속작을 발표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시간’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시공간을 탐구하시는 건데요, 흔히 시간은 우리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히 흘러가기 마련이라 깊은 탐구의 대상이 되기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시간을 탐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책의 밀도와 다루는 사상가들의 스펙트럼으로 보건대 아주 오래전부터 시간에 대해 숙고해오신 듯 보였습니다.

A∥ 수명이 인간 실존의 핵심이라는 점은, 그래서 시간이야말로 삶의 가능성이자 한계라는 점은, 누구나 그렇듯, 아주 오래 전부터 인식하고 있었습니다만, 시간이야말로 삶의 실재라라는 사실을 통렬하게 깨닫게 된 것은, 90년대 박사 과정에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접했을 때입니다. 그 이후, 시간이 때때로 숙고의 대상이 되었지만, 궁리의 '생활+세계 짓기' 시리즈를 쓰면서 더욱 밀도 있게 숙고하게 되었습니다.



Q∥ 책에서 “여행”에 대해 잠시 언급하셨습니다. 가끔은 힘겨운 일상을 벗어나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여행을 떠난다지만, 되돌아오면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가 탈진하는 우리네 삶을 그다지 건강하게 보지 않으셨어요.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어떤 여행을 지향하시나요? 선생님의 여행관이 궁금합니다.

A∥  저에게 여행의 가치는 한 마디로 놀라운 경험에 있습니다. 예컨대, 십여 년 전 백두산보다 더 높은 산정에 홀로 고요히 누워 느꼈던 침묵, 십오여 년 전 경험한 칠흙 어둠, 그보다 더 오래 전 쏟아질 듯 총총히 박힌 하늘의 별들 등의 경험은, 지금도 그것을 떠올리면 그때의 경험이 어디에 잠복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의 내면에서 불려나와 저에게 큰 위로와 힘을 줍니다. 일상의 크기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능가하는 모든 새로움이야말로, 저에게는, 가장 큰 여행의 가치입니다.



Q ∥ 책 말미에서 ‘우리 사회가 공간에 대한 관심은 넘쳐나는데, 시간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관심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공간보다 시간에서 훨씬 많은 가능성을 엿보고 계신 것 같습니다.  A ∥  모든 생명은 시한부이니까요. 공간과 달리, 시간은 불가역성이니까요. 그리고 재산 곧 소유의 대상인 공간과 달리, 시간은 근본적으로 소유가 불가능하니까요. 게다가 시간은 의식주와 달리, 자본주의 사회가 추동하는 현실적 삶에 직접적이지도 구체적이지도 않은 까닭에, 대개의 사람들은 그것을 소유를 위한 자원으로 여기며 삽니다. 그리하여 삶/생명의 실재인 시간을 망각한 채 삽니다. 진실로 아름답게, 선하게, 혹은 충만하게 존재하기보다 (더 많은) 소유를 위해 투쟁하고 갈등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우리의 삶은 오직 일회적이라는 사실을 놓고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하고 슬픈 일이 아닐까요?

Q ∥ 이 책에서 “목전의 사태에 매몰되어 무시간적으로 사는 것”은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을 빌려 말하셨습니다. 그의 시간론에 따르면 2016년 대한민국은 빈곤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에서 논거하셨다시피,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억(추억)하는 ‘과거’도, 기대하는 ‘미래’도 없이,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며 당장의 눈앞의 일만 보고 아등바등 사는 것 같습니다. 한편에서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공포) 때문에 미래에 저당 잡혀 현재의 삶을 오롯이 느끼며 살아가지 못합니다. 이런 세태는 정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느라 혈안이 되어 지나온 일(과거)을 기억하지 않고, 다음 세대(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선생님께서 논거한 이 ‘무시간성’이 왜 문제인지 좀 더 설명을 해주신다면요?

A ∥ 목전의 사태에 매몰되어 사는 무시간적 삶은, 한마디로, 무반성적 삶, 따라서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관계하는 주변과 자신이 속한 세계 모두에 무책임한 삶입니다. 비인간적이고 반인간적인 삶입니다.

Q ∥ ‘반성하지 않는 삶, 성찰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말을 이 책에서 여러 번 힘주어 말하셨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정치와 시스템을 바로잡는 ‘바깥의 혁명’을 믿었지만 이제는 ‘내면의 혁명’으로 마음이 돌아섰다고 전편 <시적 공간>에서도 말한 바 있습니다. 내면의 혁명(즉 성찰하는 삶)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A ∥  주지하다시피 사람이야말로 (개인을 근거 짓고 구성하고 조건 짓는) 사회의 핵심입니다.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인간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폭력(성희롱, 성폭력, 데이트폭력, 이별살인, 성차에서 비롯하는 혐오증)의 뿌리는, 인간의 존엄성 무시와 타자에 대한 존중의 결핍입니다. 인간됨을 이루지 않고서는 좋은 사회 만들기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반성적 판단과 맞물리는 내밀한 혁명이 절실합니다.


Q ∥ 이 책에는 소크라테스부터 베르그송, 크리스테바, 벤야민, 아렌트, 니체, 스티븐스 등등 수많은 찰학자, 문화이론가, 시인이 등장합니다. 놀랐던 것이, 그 많은 사상가들이 ‘시간’이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이 되더라는 겁니다. 그것도 140쪽이라는 짧은 분량에 말이죠. 선생님의 방대한 철학적 이해와 해석이 놀라웠는데요, 선생님에게 철학책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철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A ∥  철학책의 독서와 철학함은 저에게는 사태의 근본을 숙고하게 하는 계기입니다.

Q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A ∥   자신을,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내면을 먼저 돌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일을 당장 개시하시기를 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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