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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생물학 산책>를 펴낸 서울대 이일하 교수 인터뷰


Q∥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과학자 이일하입니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교수로 일한 지 15년 정도 되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새삼 많은 것들을 깨닫고 배워갑니다. 서울대 식물학과에서 4년 학부생 시절을 보냈고, 이후 동대학 식물학과 대학원에서 준프로로 입문하여 2년간 석사, 미국 위스콘신 대학 생화학과에서 4년간 박사, 박사후연구원 1년, 미국 샌디에이고 소재 소크 연구소(소크 박사는 소아마비 백신의 대량생산 기술 개발로 과학자로서도 경제적으로도 대박을 이루어낸 과학자인데,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세계적 생물학 연구소인 소크 연구소를 세웠습니다)에서 박사후연구원 3년을 보낸 뒤 서울대 생물학과로 부임해왔습니다. 특히 요즘은 기초교육원부원장으로 문과생들도 생물학의 기본 개념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도록 교과목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Q∥ 이번에 펴내신 책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을 소개해주신다면요?

A∥ 우리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작동 매뉴얼을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재미있어 할 것 같습니다. 생물이 작동하는 중요한 원리를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총 5부의 큰 구성도 ‘생명은 흐름이다 → 생명은 반복한다 → 생명은 해독기다 → 생명은 정보다 → 생명은 진화한다’, 즉 생명체의 작동 원리를 바탕으로 잡아보았습니다. 일면 묵직해 보일 수도 있지만, 너무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읽히도록 아들 녀석과 산책하면서 “아들아~ 생물은 이렇게 작동한단다!”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으로 써내려간 책입니다.


이 책의 제목을 한때 ‘21세기에 다시 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고 할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천재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1948년에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 제목을 차용한 것이지요. 슈뢰딩거는 DNA가 무엇인지 유전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시기에 생물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려 시도한 책을 썼습니다. 당시까지 축적된 물리·화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생명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 했던 것이지요. 그가 지금 시대의 생물학적 지식을 알고 있었다면 책을 어떻게 쓸까를 상상해보았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을 읽어보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물리학과 화학의 지식을 동원하여 생물을 이해한다는 관점으로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Q∥ 어떻게 집필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집필 과정에서 힘든 점, 또는 재미있었던 일은 없으셨나요?

A∥ 여러 해 동안 저는 다양한 곳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강연을 요청받아 진행해왔습니다. 강연의 초창기, 한 시간짜리 강연이지만 그 안에 ‘생명’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모든 내용을 담았다고 스스로 만족하고 뿌듯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청중들에게 생명을 개념적으로 모두 이해하게 했다는 생각은 착각이었음을 알았답니다. 어찌 보면, 무려 30여 년 동안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내 정신세계에 스며들었던 생물학적 개념을 고작 한 시간에 다 이해시킨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생명(생물학)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써보면 어떨까, 각자의 속도에 맞춰 읽고 이해하며 한 걸음씩 배워갈 수 있는 제대로 된 생물학 커리큘럼을 담은 책이라면, 생명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를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생물학적 개념의 핵심을 오롯이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 마음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집필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생물 공부가 암기만 하면 되는 지루한 과목이라는 일반화된 상식을 깨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 전공이 식물과학이다 보니 그동안 지내오면서 GMO 관련 질문을 많이 받곤 했는데, 이 또한 생물을 조금만 이해하면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갖게 했고 책 집필에 생물학 산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아, 정말 그렇구나!’ 하고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생물학 지식을 논리적으로 바르게 알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집필 과정에 연구실 <서울대 식물발달유전학연구실> 대학원생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일반인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 읽힐까 염려되어 학생들에게 먼저 읽히고 감상평을 들은 것이지요. 이 과정이 제게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학생들의 생물학에 대한 생각들을 읽을 수 있었고, 각자의 생물관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연구실 행정원이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이 책에 대해 평해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반인들이 어떤 오해를 할 수 있는지 의견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은 연구실원 모두가 함께해 준 여정이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행복했습니다.



Q∥ 우리나라의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유독 생물 및 생명을 주제로 한 책들이 인기가 있고, 또 많이 출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만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A∥ 그동안 출판된 많은 생물학 관련 책들이 생물학의 에센스를 비켜간 책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너무 어려운 부분은 넘어가고 쉽게 읽히는 부분만으로 책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네요. 이 책은 생물학의 에센스를 직접 건드리는 만용을 부린 것이지요. 만용이라고 하는 이유는 책을 쓰다 보니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가능하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전철 안에서, 화장실에서, 연인을 기다리면서 자투리 시간에도 읽을 수 있는 책이 되도록 말이죠~




Q∥ 생물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또한 어떤 순서로 공부를 하고 배워가야 하는 것일까요?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생물 교육의 한계가 있다고도 말씀해주셨는데요. 어떤 점들이 그런지, 나아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 가야 하는지, 조언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A∥ 생물학에 대해 어떤 심오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우리가 생물이니까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는 요령 혹은 순서라는 것이 있다면, 우선 다양한 생물에 대해 백과지식처럼 접하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동물의 세계’나 ‘신기한 식물의 세계’와 같은 다큐멘터리를 열심히 보면서 다양한 생물의 생활방식을 먼저 익히고, 이후 물리·화학적인 지식을 습득한 뒤 생명체의 공통적인 특성과 그에 깔린 물리·화학적 원리를 이해하는 순으로 배우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게 되는 것이니 먼저 생물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중고등학교의 생물학 교육에 대해 한마디 거들자면, 공통과학 수준의 교과 내용을 다룬 뒤, 이후 현재의 교과서 체제처럼 동물생리나 식물생리를 열심히 설명하기보다는 생명이 작동하는 물리·화학적 원리를 우선적으로 설명하는 교육이 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그런 내용을 중고교 수준에서 어렵지 않게 교육시키는 작업이 만만치는 않을 것 같네요.



Q∥ 최근 치른 대입 수학능력시험의 과학탐구 생명과학 과목에 출제된 문제 하나가 출제오류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혹시 관련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이 책이 나오기 직전에 수능의 생물 문제에 출제오류가 발생한 것을 보고 참 재미있어 했습니다. 이 책에는 이 문제와 직접 관련 있는 젖당 오페론에 대한 설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나름 그 문항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파악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한 결과 중복답안을 채택하게 된 것은 이 책에서 깊이 다룰 수 없었던 유전자라는 용어의 엄밀한 정의 때문입니다. 유전자에 프로모터 부위를 포함시키느냐 아니냐에 따라 이 문제의 해답이 달라지게 되는데, 아직 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엄밀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문가에 따라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마치 프로모터 부위가 유전자에 포함되지 않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지만 많은 대학교수들은 포함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저 또한 포함된다고 보는 쪽입니다. 유전자의 범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답이 서로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문제는 생물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언어철학의 문제이기도 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따라서 고등학교 교과서가 엄밀하게 기술하고 있지 않고 또 학계에서도 그걸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있으므로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Q∥ 지난해, 한국 과학계의 잘못된 연구비 지원 시스템에 대한 글로 주목을 받은 적이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기초과학 연구는 어떤 상황인가요? 창의력과 상상력을 겸비한 과학(연구)자들의 발굴, 그리고 그들의 지원을 위해, 정부와 우리 개개인이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현재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연구 수준은 꽤 선진국 수준을 따라잡은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비교를 통해 설명하자면, 국내 상위 대학들은 미국의 주립대학 수준의 연구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9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기초과학 연구비가 지원된 사정을 생각하면 과학 분야도 참 빠른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성장한 것이지요. 이제 추격자형 연구를 그만하고 선도형 연구로 전환할 때가 되었다고 많은 분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몇 년 전 몇몇 소수의 뛰어난 연구자들에게 대규모 연구비를 지원하여 눈에 보이는 세계적 성과를 얻자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이것이 연구비 왜곡 현상을 일으키게 되어 문제를 공적 영역에서 지적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어 주목을 받았던 것입니다.


창의력과 상상력이 풍부한 과학자들이 많이 나오기 위해서는 엉뚱한 상상을 하는 괴짜들이 나와야 하는데, 이렇게 왜곡된 연구비 지원 체제에서는 이런 엉뚱한 과학자들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게되는 것 아닌가 우려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한국연구재단의 기초과학 연구비 지원 시스템은 3년 전에 대단히 잘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잘 구축된 연구비 지원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되살려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 이루어진 대표적인 사례라 생각합니다. 왜 이런 개악이 이루어졌느냐 하면 조급한 성과주의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국민들에게 기초과학의 성과를 빨리 보여주기 위해 선두주자들에게 과식을 시켜가면서 무언가 언론에 자랑할 만한 성과를 내놓으라고 재촉한 꼴이지요. 그 때문에 너무나 많은 연구자들은 연구비 기근에 고통 받고 있고요. 이러한 조급에서 벗어나야 창의적 선도형 연구가 살아나게 되고, 그토록 목말라하는 노벨상의 성과도 나오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부와 개개인은 기초과학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느긋하게 기다려 주는 인내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Q∥ 생물학으로 진로를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 우선 많은 책을 읽으라고 하고 싶네요. 교양 과학서적뿐만 아니라 인문학 서적, 소설, 만화 등도 열심히 읽어두는 게 필요합니다. 상상력의 원천은 독서이니까요. 생물학을 전공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물리, 화학의 지식도 체계적으로 쌓아두라고 권합니다. 결국 새로운 생물학 영역을 개척하려면 물리, 화학의 지식들이 필요하게 되니까요.



Q∥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나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을 꼽는다면요? 앞으로 어떤 책들을 집필하고 싶으세요? 혹 준비 중인 책이 있으신가요?

A∥ 저는 생물학 관련 서적들을 집중적으로 읽고 있습니다. 특히 리처드 도킨스 교수의 책은 빠짐없이 읽고 있네요. 그분의 대중을 이해시키는 능력은 참 부럽습니다. 그만큼 도가 턴 분이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그런 분의 도량을 쫓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정년퇴임하기까지 세 권 정도의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 일단 이번 책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에서 생물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했으니, 다음 두 권은 ‘식물’과 ‘꽃’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넓은 영역인 생물에서 시작하여 생물 중에서 ‘식물’을 주제로 한 책과, 식물 중에서 ‘꽃’을 주제로 한 책을 집필하게 되면 제 연구와 저작이 조화롭게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이 책을 꼭 읽길 바라는 독자가 있나요? 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인사 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21세기는 생물학의 세기라고들 합니다. 물리학과 화학의 지식이 정점에 이르게 되면 그 지식들을 이용해서 생물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지요. 그런 관점에서 이미 생물학의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우리는 거의 일상적으로 게놈 이야기를 듣고 있고, DNA, 유전자의 이야기를 나누지요. 생물을 이해하지 않고는 생활의 많은 부분들이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밥상에 일상적으로 올라오는 GM 작물을 먹어도 되는지 피해야 하는지, 내 몸에 유전병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야 되는지 무시하고 살아야 할지……, 또 행정을 담당하시는 분들의 경우에는 어떤 법률적 판단을 할 때 생물학적 지식이 점점 더 필요해질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줄기세포 치료를 시행하는 업체가 나타났을 때 이를 제재해야 하는지, 제재한다면 어떤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지 등등 많은 법률적, 제도적, 행정적 판단이 생물학적 지식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교양인이라면 생물을 반드시 이해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회의 지도층, 여론 주도층이 이 책을 읽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한참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는 학생들이 이 책을 통해 기본적인 생물학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면 건전한 사회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세상을 알아가는 즐거움, 우주, 인간, 나를 이해하는 즐거운 여행에 동참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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