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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세상을 바꾼 기술, 기술을 만든 사회>를 펴낸 김명진 인터뷰



Q먼저 독자들에게 자기소개와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A∥안녕하세요. 동국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과학사와 기술사 관련 강의를 맡고 있는 김명진입니다. 올해부터는 서울자유시민대학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20세기 과학기술사 강의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원래 대학원 다닐 때 전공은 서양기술사였지만, 지금은 문을 닫은 시민과학센터의 활동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면서 과학기술학(STS)의 여러 주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지요. 강의를 하는 와중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관심있는 주제의 외서를 번역하거나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해 펴내는 집필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20세기의 만성질환과 약의 관계를 다룬 『숫자, 의학을 지배하다』라는 책을 번역, 출간했습니다.



Q이번에 펴낸 책 『세상을 바꾼 기술, 기술을 만든 사회』을 소개해주세요.

A∥이 책은 제 원래 전공인 서양기술사를 살려서 일반 독자들을 상대로 집필한 첫 저서입니다. 대학에서 기술사 강의를 처음 시작한 게 2000년이니 거의 20년 가까이 관련 강의를 해온 셈인데요, 그동안에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정작 이 주제에 관해서는 두 권의 번역서 ― 『미국 기술의 사회사』, 『현대 미국의 기원』 ― 를 낸 것 이외에는 직접 글을 써볼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대학원 시절부터 줄곧 관심을 가져 온 주제에 대해 나름대로 ‘중간 결산’을 해본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Q어떻게 집필 구상을 하셨나요? 제목과 책의 주제와 관련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책의 서문에 썼지만, 사실 이 책의 근간을 이룬 글들을 쓰기로 마음먹게 된 데는 논술 잡지 <고교독서평설>의 공이 컸습니다. 2016년 말에 <고교독서평설>에서 새로 과학사 칼럼을 써줄 필자를 찾아 제게 연락을 해왔는데요, 제가 과학사 대신 기술사를 주제로 글을 써도 되겠느냐고 역제안을 하자 그쪽에서 흔쾌히 좋다고 답을 해와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지요. 이 책은 <고교독서평설>에 2년간 연재한 칼럼들을 주제별로 다시 묶고 보완해서 만든 것인데요, 연재 당시 칼럼의 주제들은 제가 줄곧 해온 서양기술사 강의의 주제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강의를 어떤 식으로 해왔는지는 제가 예전에 쓴 자료글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eeic.co.kr/files/report/학부_기술사_강의_어떻게_구성할_것인가.PDF) 대체로 산업혁명 이후의 기술사를 구성하는 주요 기술, 사건, 인물들을 다뤘는데요, 마치 과학사 강의에서 고대 그리스 과학, 과학혁명(천문학, 역학), 화학혁명, 진화론, 원자폭탄 등이 거의 고정적인 레퍼토리를 형성하는 것처럼, 이런 꼭지들이 기술사에서는 오래 전부터 중요하게 다뤄져 왔고 굳이 별다른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고전적’ 주제들에 해당합니다. 비교적 최근의 사건을 다룬, 그리고 제 개인적 취향이 많이 반영된 포스트포드주의와 휴대전화 관련 장들은 여기서 예외라고 할 수 있겠지만요.


강의를 하면서, 또 그 내용을 다시금 정리한 글을 쓰면서 염두에 두었던 점 중 하나는 기술과 사회의 관계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점을 강조하는 거였는데요. 『세상을 바꾼 기술, 기술을 만든 사회』라는 제목에도 그런 문제의식이 반영돼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예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들이 차례로 나타나서 세상을 바꾸는 서사에 익숙하지요. 이런 서사에서 기술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갑자기 선을 보이고, 스스로 생명력을 지닌 것처럼 자라나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종국에는 사회를 바꿔놓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에서 그러한 기술이 다름아닌 인간 활동의 산물이고, 따라서 그것이 선을 보인 당대 사회의 성격과 한계를 그 속에 각인한 존재였다는 점을 함께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짧고 압축적으로 정리된 글들이라 그런 문제의식의 전달이 눈에 잘 띄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이 책을 보실 독자분들은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나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Q책을 만들며 힘든 점은 없었나요? 특히,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셨나요? 나아가 이 책만의 특장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대학에서 제가 담당한 기술사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은 대부분 공대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일정한 수준의 과학적 배경과 기술적 소양을 갖추고 있을 거라고 가정하고 강의 내용을 풀어나갈 수 있었지요. 하지만 고등학생, 더 나아가 일반 독자들을 상대로 글을 쓴다고 생각하니 예전에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던 내용들도 독자들이 모를 거라고 가정하고 좀더 쉽고 재미있게 풀어 써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더군요. 특히 이 책에서 다룬 기술들 중 일부(가령 증기기관, 전신 등)는 이제 우리 주위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된 기술이라 사람들이 생경하게 여길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 설명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특히 역점을 두었던 것이 시각자료를 많이 넣는다는 거였습니다. 기계나 장치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거나 특정 기술이 도입된 당대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그림, 도면, 사진 등을 풍부하게 집어넣고, 경우에 따라서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이나 유튜브 동영상 링크를 첨부하기도 했지요. (원하는 이미지를 담은 고해상도의 그림이나 사진을 인터넷상에서 찾느라 제법 고생도 했고, 때로는 며칠씩 날밤을 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아쉬운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기술사의 여러 주제들을 다룬 TV 다큐멘터리 작품을 소개하는 부록을 권말에 추가로 넣었습니다. 물론 그런 다큐멘터리를 구해 보기가 쉽지 않다는 점(그리고 유튜브 등에서 영상을 구해도 한글 자막이 없는 점) 때문에 다소 한계가 있긴 합니다만, 이런 자료들을 통해 텍스트 자료만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던 내용을 독자들이 더 잘 이해하게 된다면 저로서는 큰 보람이 될 거 같습니다.



Q기술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왜 중요한가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A∥대학에서 제 강의를 들은 학생들로부터 학기말에 강의평가를 받아 보면 “구수한 옛날 얘기를 듣는 거 같아 재미있고 좋았다”라는 식의 평가가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강의가 재미없고 졸렸다”라는 평가보다야 훨씬 반가운 문구이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평가를 접할 때마다 다소 아쉬운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비록 강의에서 다룬 사건들이 제법 오래전에 지나간 과거이고, 때로는 우리가 지금 더 이상 쓰지 않는 기술에 관한 서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역사가 오늘날 우리가 기술을 대하는 태도에 중요한 함의를 던져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책의 서문에도 쓴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구닥다리 기술로 여기는 “옛 기술”들은 그것이 처음 등장한 당대 사회에서는 혁명적 잠재력을 지닌 “새 기술”이었습니다. 그런 기술들은 등장 초창기에 그것의 잠재력을 놓고 과장된 기대와 낙관이 종종 횡행하곤 했지요. 19세기 이후 새롭게 등장한 통신기술들은 대부분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보아도 결코 과장이 아닌데요, 가령 전신기술은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들간에, 더 나아가 해저 케이블을 통해 서로 다른 국가간에 자유롭고 신속한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제공해 주며, 이를 통해 오해와 갈등이 줄어들면서 단일하고 통합된 세계가 도래할 거라는 전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세기 초에 나타난 무선통신 기술은 이러한 기대를 더욱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렸지요. 하지만 그런 기술을 통해서 과연 갈등과 전쟁이 없고 사해동포주의가 뿌리내린 세계가 도래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선뜻 긍정적인 답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런 기술이 서구 제국주의의 도구로 활용되고, 전쟁에 쓰이는 통신수단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도 가능하지요. 이런 과거에 대한 반성은 20세기 말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한 시기를 풍미했고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유토피아적 기대와 전망에 대해서 우리가 비판적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일견 죽은 과거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오늘날의 사건들에 겹쳐 보면 여전히 훌륭한 반면교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지요.



Q한 달에 한 번 과학영상모임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어떤 모임인가요? 소개해주세요!

A∥제가 실무를 맡고 있는 ‘과학기술 영화(다큐)보기 모임’은 원래 2007년에 시민과학센터의 회원모임으로 시작됐습니다. 당시 센터가 주로 운영위원회나 간사 위주로 운영되던 상황에서 일반 회원들이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는 취지로 첫발을 떼었지요. 첫 1년 반 정도는 매주 모임을 하다가 이후부터는 격주로, 그리고 다시 월 1회로 빈도가 조정되어 드문드문 진행이 되었고요. 2017년에 시민과학센터가 해산하면서 모임 공간이 사라져 상영회도 중단되었다가, 작년 말부터 고려대학교에서 상영 공간을 얻어 다시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을 주요 소재로 다룬 다양한 장르의 영상물을 같이 보면서 토론하는 장으로 운영을 하고 있고요, 한동안 다큐멘터리 위주로 보다가 최근에는 근래 제작됐지만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집중적으로 같이 봤습니다. 내년에는 다시 다큐멘터리 상영회 중심으로 운영이 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Q과학기술사와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A∥제가 요즘 원서나 논문 위주의 독서를 하다 보니 우리말로 된 과학기술사 책을 별로 읽지 못해서 추천을 드리기가 쉽지가 않네요. (사실 요즘은 개인적으로 과학사보다 일반 역사책이 더 재미있게 느껴져 문제입니다. 하하) 그냥 지난 몇 년간 인상깊게 읽은 책들을 늘어놔 보자면, 데이비드 에저턴의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토머스 헤이거의 『공기의 연금술』, 유신의 『인공지능은 뇌를 닮아 가는가』, 월터 아이작슨의 『이노베이터』, 케이트 모어의 『라듐 걸스』, 전치형, 홍성욱의 『미래는 오지 않는다』가 떠오릅니다.



Q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낼 예정이신지 궁금합니다. 연구하는 주제나 하고픈 주제를 말씀해주셔도 좋겠습니다.

A∥요 몇 년 동안은 냉전 시기 과학기술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면서 이 주제에 관한 강의와 집필을 병행해 왔습니다. 지금은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 내용에 기반해 20세기 과학사에서 대학-산업-정부(군대)가 서로 어떻게 관계 맺어 왔는지를 서술한 『테크노사이언스의 역사와 철학』이라는 책을 쓰고 있습니다.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내후년 정도쯤 출간될 수 있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꾼 기술, 기술을 만든 사회』의 뒤를 이을 만한 강의와 저서도 구상중에 있습니다. 이 책은 대체로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의 기술을 다루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20세기와 21세기, 특히 20세기 중후반 이후에 초점을 맞춰 우리 주위에 중요하게 자리잡았거나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기술들(민간 항공기, 전자 칩, GPS, 액정 스크린, 배터리, 전기자동차 같은 것이 얼른 생각나네요)의 역사를 다뤄볼 생각입니다. 마침 그런 기술들을 다룬 저작이 해외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고요.



Q이 책을 꼭 읽길 바라는 독자가 있나요? 끝인사 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일차적으로는 역사책인 만큼, 기술의 지난 과거에 관심있는 분들이 많이 집어드는 책이 될 텐데요. 저는 그에 못지않게 기술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 분들도 이 책을 많이 보셨으면 합니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불확실하고 손에 잡히지 않아서 종종 불안감을 수반하곤 하는데요, 그럴 때 필요한 것이 과거에 우리가 이미 겪었던 비슷한 사건들로부터 얻는 교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서 추천드린 책 『미래는 오지 않는다』가 바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기술과 사회의 관계가 일방적인 독립변수-종속변수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들의 능동적 수용과 저항으로 점철되어 온 관계임을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 등장할 기술 역시 그로부터 예외가 아님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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