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독자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A∥ 안녕하세요. 커다란 변화 없이 21세기 초반 두 번째 십년을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주로 생물학에서 열역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공부하고 있습니다. 가령 세포 내에서 진행되는 대사 과정의 총합을 에너지와 일로 전환하고 엔트로피의 양을 계산할 수 있느냐 하는 것들이지요. 어떤 식으로든 정리를 해볼 생각입니다.
Q∥ 『술 취한 원숭이』는 어떤 점에 끌려 번역 소개하게 되셨는지요? 책에 관해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A∥ 아마 『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빠른 속도로 포도당을 소비한다는 점에서 암세포도 효모와 비슷한 ‘먹고 사는’ 삶을 살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효모는 왜 그런 생활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이런 진화적 질문에 대한 답이 『술 취한 원숭이』에 잘 나와 있답니다.
역자 후기에도 썼지만 인류의 조상이 침팬지와 분기되어 나왔을 때 이미 다른 영장류보다 알코올 대사 속도가 40배가 더 빨라졌답니다(미 국립과학원회보, 112, 458-463, 2015). 발효되어서 알코올이 포함된 과일을 먹는 일은 곧 과일 속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탄수화물을 먹는다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이런 재미난 이야기들이 『술 취한 원숭이』에 풍성하답니다.
Q∥ 이 책의 저자, 로버트 더들리는 파나마 열대 우림을 누비며 현장 연구한 결과를 이 책에 담았습니다. ‘알코올’을 다룬 책의 무대가 열대 우림이에요. 왜 그런지 독자들에게 짧게 설명을 해주신다면요?
A∥ 온도와 습도지요. 온대지방에 살기 때문에 우리는 적도의 상황을 정확히 모르지만 매스컴을 통해 짐작해볼 수는 있습니다. 가을 수확기가 지나고 겨울이 오듯 적도 지역에도 건기와 우기가 있을 수 있고 주기적으로 과일이 익고 떨어지겠지요? 상대적으로 습도와 온도가 높은 열대 우림에서 열매를 노리는 동물은 엄청나게 다양할 것입니다. 세균과 곰팡이가 달려들어 상하기 전에 과일을 먹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가 그들 과식 동물 앞에 있을 것이고요. 약간 발효된 과일의 알코올 냄새를 맡는 곤충들도 있겠지요.
이렇게 다양하고 비교적 잘 보존된 생태계를 지니고 있어서 열대 우림은 알코올 연구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가 됩니다. 본문에도 나와 있지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의 열매는 종류가 많아 관찰을 통한 현장 실험이 가능한 곳이지요. 열매가 익은 뒤 온도가 내려가는 온대 지방의 늦가을보다 열대 우림에서 발효 과정에 쉽게 진행된다는 생물학적 이유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작은 열매를 먹는 새들의 알코올 섭취를 연구한다면 온대 지방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Q∥ 이 책은 선생님의 저서, 『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요. 동물들의 알코올 소비는 먹고 사는 “영양 섭취”에서 시작된 일이지요? 우리 인간은 식사를 하면서 ‘반주’를 하는 습관도 있습니다. 관련해서 독자들에게 설명을 덧붙여주신다면요?
A∥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종으로서의 인간이 진화하기 전에 우리 조상들은 이미 알코올 대사 능력을 한껏 갖추었습니다. 당시 열대 우림의 상황에서라면 과일이 익는 시절은 늘 반주를 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과정에서 알코올이 부가적으로 식단에 편입되었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서 인간은 의식적으로 발효 식품인 알코올을 섭취합니다. 점심 먹으러 식당에 가 보면 반주를 즐기는 사람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저녁에는 더하고요. 알코올음료가 영양소가 아니라 대화의 한 수단이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현대적 생활 유형이 알코올 소비를 부추기는 경향이 많지만 과도한 양의 알코올을 섭취하는 일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위험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알코올의 생산과 소비를 줄여야지요.
Q∥ 술을 잘 드시는 편인가요? 이 책의 저자는 서양인에 비해 동아시아인들이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이유를 알코올 분해효소의 차이로 설명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과학계에서 연구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지요?
A∥ 잘은 먹지 못하는데 사양은 하지 않습니다. 수업시간에 저는 진정한 알코올 중독자는 외투안쪽 주머니에 술병을 들고 다니면서 아침부터 먹어야 한다고 농담처럼 말합니다. 동아시아 사람들이 술에 약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쉽게 얼굴이 붉어지고 숙취를 달래는 음료가 날개 돋친 듯 팔리지요. 한국에서 해장국이 발달한 이유이기도 하다는데 별로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듭니다.
주로 쌀의 경작이 시작된 동아시아 지역에서 알코올 소비를 억제하는 어떤 생물학적 또는 생태학적 동인(動因)이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부모 어느 한쪽으로부터 살아가는데 불리한 겸상 적혈구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식이 말라리아에 내성을 가진다는 현상에서 보듯 술에 약한 동아시아 사람들이 쌀을 오염시키는 곰팡이나 간염 바이러스에 강할지도 모른다는 일종이 타협(trade-off)점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합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없지요. 다만 이런 형질이 최근 1만년 이전 양쯔 강 유역에서 쌀농사가 확대된 일과 궤를 함께 한다는 점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Q∥ 이 책을 보면, ‘알코올’을 주제로 이렇게도 많은 과학자들이 다양한 세부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탄성을 자아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백미 중 하나는 여러 알코올 연구자료를 소개한 ‘참고문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선생님은, 과학자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이 책을 작업하며 흥미롭게 본 과학 연구가 있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현대’의 알코올이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빠르고 강력한 선택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류의 목표는 1000만 년 전에 획득한 알코올 대사 효소보다 더 강한 단백질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논문을 읽다보면 알코올이 과당과 비슷한 생물학적 물질이라는 얘기가 등장합니다. 거의 모든 식품에 첨가되며 옥수수를 가공해서 만든 값싸고 당도가 높은 고과당(high fructose)과 마찬가지로 과도한 알코올 섭취는 간과 뇌에 독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현대인의 건강과 질병에 알코올이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전언이지요. 사회적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출판이 매우 시의적절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과학자요? 호기심이 많고 또, 어떤 기술적 수단을 써서 질문에 대한 논리적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지요. 기본적으로 우리 인간 모두는 과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 사회는 그것을 억압하는 분위기가 좀 큰 편이지요. 호기심을 못 갖게 한다는 뜻입니다. 어쨌든 어떤 과학자도 자신이 속한 사회적 숙제를 풀라는 커다란 명제에서 갈수록 자유롭지 못합니다. 여기서 사회는 이제 지구 전체가 됩니다. 먹이 피라미드의 최상위에 속하는 생명체의 숫자는 기본적으로 ‘적어’야 하는데 인류는 그 수를 엄청나게 늘렸습니다. 곧 90억에 육박하겠지요. 이런 생물학적 한계, 다시 말하면 인구 밀도 상승, 물 부족, 식량 부족 등의 문제가 코앞에 있다는 말이지요. 결국 이 모든 것은 에너지 문제로 귀결됩니다. 우리가 열역학을 깊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지요. 인류 전체가 이 지구 행성 에너지 순환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숙고할 시점이고 과학자들은 그 사실을 선명하게 밝혀야 할 것입니다.
Q∥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술 마시는 모든 분들께 권합니다. 나는 왜 술을 마시고 싶을까? 우리는 왜 쉽게 취하는 것일까? 술 마시면 살이 찔까? 이런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이 읽으면 술자리를 흥겹게 할 좋은 안주가 절로 굴러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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