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먼저 독자 여러분에게 첫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A ∥ 반갑습니다. 심강현입니다. 저는 서울 소재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평소 공부하면서 짬짬이 정리해온 원고가, 이번에 궁리출판을 통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어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Q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를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요?
A ∥ 한마디로 말하자면 서양철학사 입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철학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철학에서도, 본격적인 첫 기록은 플라톤의 ‘대화’ 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단편적인 기록들은 많았지만 체계에 맞춰 괄목할 완성을 만들어낸 첫 작품은 대화편이었죠.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책 역시 대화체로 되어 있는데요, 대화체의 장점이라면 무엇보다 가독성이 뛰어나서 쉽게 읽힌다는 점이겠죠. 따라서 이 책은, 철학에 관심은 있었지만 아직 본격적인 입문을 미루어 오셨던 분들께 가장 어울리는 입문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인문학과 철학을 이미 많이 접하셨던 분들 역시 그 흐름을 스스로 다시 정리해볼 수 있는 유용한 기회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기존의 철학사를 표방한 책들은 과도하게 많은 철학자들을 한 권에 담아보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 철학자의 전체적인 사상이나 철학사의 큰 흐름보다는 단편적인 사상의 조각들을 모아놓았다는 느낌을 많이 주었던 게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 이 책은 10명 내외의 철학자를 선택하여 한 철학자의 사상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정리했습니다. 또 2500년 철학사를 관통하는 큰 흐름도 잡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쉽게 읽히지만 깊이를 잃지 않는 철학 입문서’ 이 책의 작은 모토입니다.
・ 플라톤 ・ 영원의 빛 아래 비춰본 순간들 ・ 아리스토텔레스 ・ 저 멀리서 우리를 기다리는 목적 ・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 행복과 절제 사이에서 ・ 데카르트 ・ 생각이 이끄는 관성 ・ 스피노자 ・ 욕망이라는 이름의 자화상 ・ 합리론과 경험론 ・ 나의 경험, 나의 생각, 그리고 나 ・ 칸트 ・ 우리는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 헤겔 ・ 펜트하우스 주인의 꿈 ・ 쇼펜하우어 ・ 의지 앞에 놓인 시험대 ・ 니체 ・ 초인을 기다리는 노래
Q ∥“나의 친구 카잔차키스와 스피노자, 그리고 니체에게” 이 책은 이런 헌사 문구로 시작합니다. 세 사람이 선생님에게 많은 영감을 준 분들인 것 같습니다. A ∥ 오래전 니체가 헌책방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하고 그 책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니체는 자신과 200년 세월의 벽을 뛰어넘는 정신적 친구를 발견했다고 당시의 놀라운 순간을 회고하기도 했었죠. 그 책이 바로 스피노자의 『에티카』였습니다. 또 니체 사후 카잔차키스 역시 니체의 책을 접하며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왜냐면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한마디로 니체에게 바치는 헌사였으니까요. 저도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읽었던 순간의 그 신선함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이건 니체야!’ 바로 이런 느낌이었었죠. 그래서인지 제 책에서도 조르바의 패러디가 몇 군데 등장합니다. 조르바를 이미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어떤 부분인지 미소를 띠며 금방 찾아내실 수 있을 겁니다. 또 아직 읽지 않으신 분이라면 훗날 보시게 될 때, 또 그런 경험을 하게 되리라 기분 좋은 예상을 해봅니다. Q ∥ 특히 이 책은 여러 철학자들 중에서도 니체에 크게 할애하고 있습니다. 니체의 시선으로 서양철학사를 살펴보는 콘셉트이기도 한데요. 이러한 구성을 잡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A ∥ 니체는 현대 거의 모든 철학자들의 아버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푸코와 들뢰즈는 직계 후손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고요. 특히 들뢰즈의 주저인 『차이와 반복』은 어떤 의미에서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설명하는 책이기도 하죠. 뭐 이런 형식적인 이야기를 차치하더라도 개인적으로 니체는 저에게 큰 영감을 준 철학자였습니다.
대부분 그러시겠지만, 어떤 사상가의 생각이 가장 의미심장하고 큰 무게로, 또 선선하게 다가오는 때는, 자신이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찌르고 들어올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자신과 너무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철학자라면, ‘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네.’ 하는 정도의 감동에서 끝나겠죠. 그러나 가장 큰 감동은 자신과의 차이를 가진 사람에게서 오는 게 아닌가 합니다. 제게 니체가 바로 그런 철학자였습니다. 물론 니체를 읽다보면 ‘어떻게 이토록 내 생각과 똑같을 수가 있나’ 하는 대목들도 종종 있지만, 그의 삶과,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그의 날카로운 사상은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의 틀을 무너뜨리는 충격으로 다가온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가 늘 말하던 망치는, 그를 읽은 사람들의 생각을 지탱하던 가장 굳건한 토대에 조금씩 균열을 가하는 놀라운 도구입니다. 그의 망치에 의해 끝내 거대한 석상이 무너지듯 자신의 생각이 모두 허물어져버릴 때, 우리는 그 저자의 진정한 팬, ‘누군가의 주의자’(예를 들어 니체주의자)가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체험의 작은 시작을 이 책을 통해 시작해보시길 기원해봅니다.
Q ∥선생님은 어떻게 철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그리고 오랫동안 철학과 인문학 공부를 해오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A ∥ 물론 저는 프로페셔널 철학자는 아닙니다. 다만 의과대학시절 처음 접한 심리학과 정신과학을 통해 철학과 인문학에 대한 어떤 갈증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당시의 시대상황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80년대 말이었으니까요. 물론 여타 대학에 비해 현실참여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의과대학이었지만, 대학을 배회하던 맑스는 의과대학의 로비에도 자주 방문했었으니까요. 제가 써클 활동을 통해 읽었던 첫 철학책도 그의 입문서와 역사책들이었죠. 이를 계기로 이후 다양한 분야의 철학자들의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많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공부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처음의 경험이 가장 큰 인상으로 뇌리에 새겨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그 당시 읽었던 칸트에 대한 책들이 지금 이 책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예시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진정한 진리란 ‘나에게 진리인 진리’라고도 말합니다. 즉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진리야말로 가장 진리다운 진리라는 말이겠죠. 물론 이런 생각의 틀에 대입하자면 제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나도 그랬다’라고 답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공부들이 단 한순간에 밀고 들어오는 대변혁은 아닐지라도, 일상에서 서서히 점진적으로 삶에 스며들어오는 변화를 일으키리라 기대합니다. 한 번에 무너뜨리는 망치가 아니라, 작게 두드리는 망치소리가 스스로 변화를 자각하게 만들고 새로운 자신을 위해 기존의 자신을 조금씩 허물어뜨리는 그런 망치가 되길 바랍니다.
Q ∥ 수많은 철학고전이 있지만, 특별히 선생님께서 소개하고 싶은 고전이 있다면, 몇 권 추천해주세요. A ∥ 아무래도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역시 니체의 책입니다. 『에티카』는 난해한 기하학적 방식으로 쓰여 있어 읽기가 쉽지 않은 점이 있고, 니체가 플라톤주의에 의해 내몰렸던 비주류 철학사의 핵심 정점이기 때문입니다. 『에티카』에 대해서는 좋은 해설서들이 있어서 그걸 먼저 읽으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마치 한편의 장대한 서사시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문학적으로도 훌륭한 책이죠. 원래 니체가 철학자이기 이전에 고전문헌학자였으니까요. 또 그만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는 책입니다. 자신의 상황에 따라 같은 문구가 다르게 읽히는 즐거움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치 어느 날 바람에 넘겨진 책장의 페이지 속에 담긴 문구가 번개처럼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키듯이 말이죠. 우리는 프로페셔널 철학자가 아니기에 아마추어로서 이런 자기 나름의 해석이라는 기쁨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다양한 무수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고 있는 작품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품을 보더라도 말입니다. 또 그런 상황의 해석이란 바로 그 당시 처한 여러분 개인의 해석이기도 하니까요. 자신을 가장 잘 말해주는……
Q ∥ 이 책에 들어가는 그림을 손수 그리셨습니다. 책에서 난해한 철학 개념을 감각적인 그림을 통해 설명하기도 하셨습니다. 평소에도 그림을 즐겨 그리시나요? 그림 그리기는 철학 공부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A ∥ 네. 그림은 평소에도 가끔 그립니다. (웃음) 어찌 보면 보잘 것 없는 그림이지만, 저에겐 저만의 작은 창조가 아닌가 싶습니다. 가끔 한 획, 하나의 붓 터치에서 오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것이 창조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어요. 여러 철학자들이 마지막에 강조하는 요소 중 하나가 예술인데요. 이런 조그마한 창조는 훗날 조금씩 쌓여 그것 역시 자신만의 눈과, 자신의 삶마저도 창조해낼 수 있는 작은 연습이 되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제가 그린 삽화들은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제가 의도했던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해보려는 시도이기도 했는데, 뜻대로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평가해주실 영역이라고 생각됩니다.
Q ∥철학이나 인문학 공부를 막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A ∥ 아까도 말씀드렸었지만, 어떤 인문학 책을 읽을 때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이해하고 말 거야!” 하는 생각은 썩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프로페셔널 철학자들이라면 엄밀함이 미덕이지만, 우리들에게 미덕은 자신의 상황과의 연결점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를 꼭 알아내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강박관념이 되어 독서를 옥죌 수도 있겠죠. 그냥 담담히 읽어나가며, 인상적인 구절에 밑줄을 쳐보고 다 읽고는 그냥 덮어버리는 겁니다. 단, 눈에 잘 띄는 곳에 책을 놓아두었다가 다음에 어쩌다 손이 가서 읽게 될 때 줄친 구절을 위주로 다시 읽어보는 거죠. 그럼 한 번 읽으면서 놓쳤던 전체적인 구도와 큰 흐름이 보일 겁니다. 독서는 늘 최소한 두 번의 읽기가 아닌가 싶어요. 흔히 해석학자들이 말하던 해석학적 순환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처음 읽을 때 이론으로 다가오던 것이 두 번째는 삶에 대한 실천적 지혜로 다가오지 않나 싶어요. 정작 중요한 것은 후자이기도 하니까요.
Q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독자분들이 있으신가요?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먼저 철학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있지만 선뜻 시작하지 못하셨던 분들입니다. 철학사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려면 여러 권의 책을 상당한 기간에 걸쳐 읽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기 때문에 인문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가 망설여지셨던 분들 말입니다. 그런 분들께 이 책은 철학사의 큰 그림과 흐름을 쉽게 잡아줄 수 있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또 책에서 부제로도 걸었던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는 이 책이 설명하는 핵심이기도 해요. 21세기의 사회란 나를 어딘가에 두고 온 각자의 여정이기도 하니까요. 이 책이 그런 구체적 방법을 말하지는 않지만, 니체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의 눈을 통해 여러 방향으로 열려 있는 가능성의 길을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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