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우선, 독자들에게 짧게 자기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A ∥ 반갑습니다. 이종건입니다. 일상적으로는 글 읽고 쓰고, (클래식) 음악 듣고, 티비 보고, (클래식) 기타 연습하고, 매주 정기적으로 가르치고, 종종 친구들과 커피 마시며 수다 떨고, 가끔 전시 보러 가고, 매달 정기적으로 공개집담회를 진행하고, 분기마다 건축역사/이론/비평 저널지 《건축평단》을 만듭니다.
Q ∥ 『시적 공간』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점점 경제가 정치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세계까지 지배합니다. 경제적 압박에 밀려 우리의 시야가 좀체 목전의 것들 너머로 나아가기 힘듭니다. 무엇보다 환경, 그것도 물리적인 차원의 환경 문제가 다급한데, 이마저 국가적 이익에 묶여 전망이 어둡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내면이 세상의 시야로부터 나날이 멀어집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공간(의 분위기)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막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공간은 인간은 자신의 몸과 모든 것을 거기 침잠하는 환경인 까닭에,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공간을 일컬어, 인간을 사로잡는 “공간-악령(space-demon)”이라고까지 말할 정도입니다. 공간에 관여하는 것이 제 삶을 이루는 하나의 중요한 축이어서, 그것의 생산과 소비 양식을 앞에 두고 함께 고민하고 싶어 책을 냅니다.
Q ∥ 이 책 프롤로그에서 위대한 시인들에게서 많이 배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D. H. 로렌스, 스티븐스의 시를 호출하며 시와 내면의 혁명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시심詩心이 실종된 이 시대에, 시의 어떤 점이 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궁금합니다.
A ∥ 시는 우리의 내면을 깨웁니다. 오래 잊었던 것들, 소리 없이 그리워하고 열망해왔던 것들을 환기시킵니다. 우리의 시야를 목전의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우리의 영혼을 돌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시금 살펴보게 합니다. 버거운 삶일수록, 그것을 한 걸음 떼어놓고 봐야 하는데, 시야말로 그리합니다.
Q ∥ 이 책에서, 최근 건축학, 지리학 분야에서 “장소성” 개념이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장소’만큼 중요한 것이 ‘공간’이라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긴 이야기가 될 것도 같습니다만, 짧게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해주신다면요?
A ∥ 앞서 슬로터다이크가 (과장해서) 말했듯이, 공간은 우리가 무자각하게 침잠하는,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세계입니다. 하이데거가 인간은 (기분에 따라 세계관과 삶의 양식이 결정되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기분에 사로잡힌 존재라고 했을 때, 그것은 곧 공간이 형성하는 분위기의 막강한 영향력을 시사합니다.
Q ∥ 에필로그의 이 문장에 특히 강하게 끌렸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물들은 사소하다. 사물들이 아니라 삶들도 그러하다.” 요새 이런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개인의 성공이나 안위에만 관심을 쏟게 되기 쉬운데, 문제는 그 삶도 그들의 바람대로 쉬이 풀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문제가 뭘까요?
A ∥ 목전의 것들에 붙잡혀 있어서, 그리해서 우리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지 않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Q ∥ 『시적 공간』은 <이종건의 생활+세계 짓기 시리즈>의 첫 책입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예정이신가요? 더불어 시리즈 이름에 대한 뒷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시리즈 이름에 사용한 ‘생활세계’란 단어는 ‘공론장’과 ‘의사소통이론’ 등으로 유명한 정치철학자 하버마스가 만든 용어이기도 한데요, 그와 관련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 하버마스에 따르면 우리의 생활세계는 돈과 매체권력이 구성하는 체계에 의해 식민화된 형국입니다. 그것이 추동하는 경제적 합리성과 기술적 도구성 곧 효용과 효율성의 가치가 심화되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가 어려워진 상태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방도를 시급하게 찾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생활세계를 근거 짓는 가장 일차적인 차원은 시간과 공간과 이미지 등입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우선 시간과 이미지 등을 찬찬히 응시해서 우리의 삶에 가치 있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도를 숙고해볼 요량입니다. 그리고서 불안이나 욕망처럼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마음의 문제도 다루어볼까 합니다.
* * * * * <시적 공간> 차례 * * * * *
1. 프롤로그
2. 해방
3. 공간
4. 짓기
5. 공간, 장소 그리고 환경
6. 중간기술
7. 시의 힘
8. 즐거운 노동
9. 위대한 허구
0. 에필로그
* * * * * * * * * * * * * * * * * * * * * * *
Q ∥ 어떤 공간(장소)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실 때 행복감을 느끼시는지요? 선생님의 ‘시적 공간’은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A ∥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어디서든 행복감을 느낍니다. 창 너머 새들이 우짖는 나무와 풀들이 보이고 그 너머 하늘이 보이는 고요한 이곳이 내게는 그렇습니다.
뉴욕 맨해튼의 배터리 공원도, 유럽 여러 곳들도, 가끔 그립습니다.
Q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A ∥ 세상이, 혹은 우리의 삶이 힘겹고 어려울수록, 그로부터 잠시 물러나 우리의 내면을 응시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왜 이렇게 사는지, 이렇게 사는 것이 진실로 우리가 원하는 삶인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왜 이런지, 더 좋게 바꿀 수는 없는지 등도 가끔 물어가며 살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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