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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영혼의 말>을 펴낸 건축 비평가 이종건 인터뷰


Q∥ 이종건의 생활+세계 짓기 시리즈 네 번째 권 <영혼의 말>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어떤 문제의식에서 집필하게 되셨는지요? 책을 쓰게 된 사건이나 계기가 있으시다면요?

A   촛불집회가 만들어낸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한국의 역사에 기록될 하나의 중대한 사건입니다. 그로써 한국의 정치지형뿐 아니라 정치의식까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스무 번의 집회로 누적 참여인원이 1600만 명을 넘긴 촛불집회는 태극기집회라는 맞불집회를 촉발했는데, 특히 그 기간, 누구든 삼삼오오 모이면 이쪽-저쪽 진영 이야기로 피차의 의견과 주장을 뜨겁게 주고받았습니다. 분위기는 사뭇 사나웠습니다. 누구든 자신이 믿는 바와 상치되거나 재고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말(들)을 들으면, 쉽게 이성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격한 감정으로 대화는커녕 다툼으로 이어질까 늘 불안했는데, 이런 일은 공부를 삶의 한가운데 두고 있는 사람들도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들마저 대화(dia-logue) 능력, 곧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능력이 없는 현장을 생생히 지켜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촛불집회는 (사회적 수준이 아니라) 개인 수준에서는 소통 그 자체의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 과연 진정한 소통이 가능한지 근본적으로 묻게 되었습니다.

Q책에서 우리 사회 ‘교양의 실종’, ‘사상(들)의 상실을 염려하셨습니다. 교양과 사상(들)이 사라진 사회적 징후를 어디에서 읽으시나요?

A   두 개의 징후만 들자면, 하나는 반지성주의와 결합된 포퓰리즘의 횡행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분노라는 병적 징후입니다.

Q책 제목에 쓰인 ‘영혼’이라는 말은 요즘은 자주 쓰지 않는 말입니다. 이 단어를 지금 호출하신 이유가 있으시다면? 그리고 ‘영혼의 말’이라는 책 제목을 조금 설명해주신다면?

A   한국은 OECD 국가들 중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물질주의가 최고인 나라입니다. 정신과 물질 간의 불균형이 사회를 위태롭게 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그런데도 영혼의 문제를 책임져야 할 종교와 학교는 비즈니스 가치와 논리에 장악된 형국입니다. 영혼이라는 말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우리의 현실을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목을 ‘영혼의 말’로 잡은 것은, 우리가 사회적 생존(성공) 경쟁에 내몰려 우리의 내면을 사회적 관계(자아)에 정렬시킴으로써, 나와 너 간의 진정한 대화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사회연구에 따르면, 진정한(진실한)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친구는 이제 한둘도 없는 지경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우리의 영혼(정신/마음)이 거처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살아남거나 성공하기 위해 하는 말 말고, 우리 내면을 표현하고 나눌 영혼의 말이 필요합니다.

Q우리 사회가 왜 교양과 사상(들)이 사라진 곳이 되었을까요?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해서일까요? 교양과 사상(들)이 사라진 사회를 왜 경계해야 할까요?

A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IMF 사태와 뉴욕발 서브모기지 사태라는, 외부로부터 닥친 두 번의 경제쇼크로 생존에 대한 불안이 더없이 커졌습니다. 그런데, 그에 반해 우리는 경쟁에 기초한 성장주도의 ‘빨리빨리’의 삶의 양식으로 외부세계의 불안을 다스릴 정신(영혼)의 문제를 홀대했습니다. 교육마저 성장에 헌납해버린 결과입니다. 영혼이 실종된 사회는 인간이 살 만한 세상이 아닙니다. 인간은 주어진 것 너머를 갈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그리고 선을 위해 희생하는 능력인데, 그러한 능력은 곧 영혼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Q우리나라 교육은 똑같은 몸뚱어리를 만드는 훈련과정이다. 생각도 개성도 별반 다르지 않는 사람들끼리 어떻게 깊은 우정을 맺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책에서 비판하셨지요? 이에 관해 몇 말씀 해주시다면요?

A   우정, 곧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사랑은 독립적인 두 존재 간의 존중과 애정으로 형성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은 ‘독립적인’입니다. 홀로 서 있을 수 없는 존재는 건강하고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상대에게 기대거나 상대에게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은 미성숙합니다. 그럴 뿐 아니라 위험하기도 합니다. 상대에게서 얻는 사랑은 무조건적일 수 없고,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입니다. 홀로 선 존재가 된다는 것은 고유한 영혼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외부주입식입니다. 그게 시험에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체계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에게 희망은 없습니다.

Q정치를 보면 알아요. 적은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걸. 그런데 책에서 “적과도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정치에서든 개인 차원에서든. 이렇게 이야기한 까닭이 있으시다면?

A   정치학(슈미트)에서는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을 구분합니다. 외부의 적은 패배시켜 자신을 지켜내어야 할 대상이지만, 내부의 적은 경합을 통해 서로 성장해야 할 파트너입니다. 홀로 성장할 수 있는 방도는 없습니다. 홀로 존재하는 사람은 자신의 내부에 자신의 적을 만들어야 합니다.

Q책에서 ‘부끄러움’을 알아야 인간으로 성숙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요사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텔레비전 뉴스 상에 자주 등장해요. 왜일까요? 선생님 말씀처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인간을 좀 더 윤리적인 존재로 만들어줄까요?

A   우리 사회에는 후안무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정치인들 중에 많은데, 한마디로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반증입니다. 부끄러움은 인간됨의 핵심 감정입니다. 괴물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동물입니다.

Q이 시리즈는 책 한 권마다 한 가지 주젯말을 잡아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1권에서는 ‘공간’을, 2권에서는 ‘시간’을, 3권에서는 ‘이미지’를 탐구하셨지요. 이렇게 집필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시다면? 그리고 다음 시리즈에서는 어떤 키워드들로 글을 쓰실지 궁금합니다. 염두에 둔 주제어가 있으시다면?

A   아름다움을 당장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윤리적인 것, 곧 세계(세상)와 관계하는 방식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오늘날 진리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도 틈틈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Q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분들에게 몇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우리 바깥의 모든 것, 곧 다른 사람들이나 세상에 일희일비하는 삶은 고통스럽고 힘겹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사태는 담담히 받아들일 뿐 아니라, 좀 더 나아가 부정적인 것들을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우리의 삶이 의미로 채워지고 기쁨이 수반되리라 믿습니다. 그리하기 위해, 좋은 책을 늘 곁에 두고 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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