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그동안 『교실밖 화학 이야기』 『시에게 과학을 묻다』 『소설에게 과학을 묻다』 등을 펴내며 과학과 문학, 과학과 사회 등 다양한 융합을 시도해오셨습니다. 이번에 출간한 『오늘도 나는 과학을 꿈꾼다』는 주제나 글의 분위기 면에서 전작들과는 다른 결을 지닌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이번 책을 쓰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는 나와 내 생애를 뒤돌아보면서 (금년은 제가 미국에서 박사학위 취득한 지 50주년이 되며, 또 만 77세가 곧 됩니다.) 과학자로서 우리나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과학, 과학적 사고, 과학적 생활방식이 스며들기를 소망하는 제 뜻이 녹아있는 글들을 쓰고 싶었습니다.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은 과학자의 사생활을 독자들이 엿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과학자를 신비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독자들에게 과학자들도 평범한 사람들임을, 그러나 헌신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강점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번 책은 몇 년 전에 출간된 <과학자는 이렇게 태어난다>(2017, 궁리)의 자매편이라고나 할까요? <과학자는 이렇게 태어난다>가 제자들의 글모음이었다면, 이번 책은 제 얘기들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겠네요. 음. 이런 제 뜻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될 지는 두고 봐야겠지요.
Q∥올해로 박사학위 받으신 지 50년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화학 분야 중 특히 고분자화학이라는, 그 당시로는 낯선 학문을 전공하시게 된 까닭이 있는지요?
A∥책 속 여러 글들에서, 특히나 책의 두 번째 글이 이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고분자화학을 선택한 것이 제 삶에 있어 얼마나 훌륭한 선택이었고, 고분자화학인이었음에 얼마나 행복해했는지는 책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모르는 길’을 개척해나가면서 얻은 모험심과 보람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영양분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분자 재료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확대되어 가는 시대에, 저는 고분자화학자로 일생을 보내고 있어 매우 감사하고 만족할 따름입니다. 개척자의 외로움도 있었지만, 이로 인해 영광의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어떤 ‘모르는 길’을 밟는가가 한 인간의 생애에 빛깔을 좌우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과학자는 특히 세계에서 그 길을 찾아야 합니다.
Q∥지금도 학회에 참석하면 젊은 과학자들과 사이에서 거침없는 질문과 반론을 펼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교수님의 그칠줄 모르는 호기심과 탐구심은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솔직히 저는 퇴임한 지금도 공부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국내외 학술대회에도 자주 참석해 강연을 하기도 하고 반대로 많이 배우기도 하지요. 호기심과 탐구심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터득하는 시점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들은 참으로 모르는 바가 많지요. 오히려 아는 것이 미미하다고 표현해야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면서도 호기심과 탐구심이 없다면 이렇게 빨리 변하는 세상에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더구나 앞서가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하지요. 결국 더욱 많이 배우고 싶다는, 알고 싶다는 욕망이 호기심과 탐구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앞서겠다는 욕망이 저를 채찍질하고 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욕심이 너무 많은지 저는 앞서가야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허허.
Q∥교수님은 액정 고분자의 세계적 개척자로 전도성 고분자, 전계발광 고분자 및 DNA의 재료과학 등의 연구에서 420여 편의 논문을 세계적 학술지에 발표하였고, 특히 2016년에는 나노과학과 나노기술 발전에 대한 공로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UNESCO 나노과학 메달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전 세계 학회들을 다니며 느끼시는 한국 과학계의 위상이나 상황 등을 날카롭게 들려주신다면요?
A∥국제적 활동을 비교적 많이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과학계에 대해 느끼는 바가 참 많습니다. 우선 과학인들이 연구에 더 몰입하길 바랍니다. 저의 과거를 돌이켜 보더라도 연구 외적인 업무와 잡무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또는 빼앗겼던)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큰 변화가 있기 전에는 우리나라 과학도들에게 국제경쟁력을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연구의 창의성입니다. 모방연구는 그저 흉내에 그치고 맙니다. 연구자 개인에게는 자신만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깊게 다룰 수 있는 지구력이 요구되며, 사회적으로는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지원도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과학계의 위상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과 중국에 비교해볼 때 여전히 분발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지금과 같은 초연결시대에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활동과 연구로는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가 힘듭니다.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국제적 협력이 훨씬 증가하고 활발해져야 할 때입니다.
Q∥그동안 학부생은 4000여 명, 석‧박사과정 제자들도 150여 명이나 된다고 하셨습니다. 뒤이어 이공계에 진학할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이공계에 진학할 청소년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평생을 투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야(전공)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학(자연과학)계열과 공학계열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선택하길 바랍니다. 또 이공계열로 진학하더라도 인문학적 소양을 익혀 융합적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 밑바탕을 탄탄히 해야 합니다.
이공계는 특히 성실하고 끈기 있는 생활태도를 지닌 젊은이들을 원합니다. 21세기는 과학기술의 시대입니다. 이공계 진학이야말로 젊은이들의 앞날을 넓게 열어줄 첫 단계입니다. 21세기에는 창의적인 이공계 전문인들을 더욱 필요로 할 것이 예상됩니다. 그만큼 경쟁도 커질 것이므로 노력형이며 동시에 혁신적인 사고력의 소유자가 요구됩니다.
Q∥앞으로 또 어떤 저술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꾸준히 글을 쓰시는 성실한 학자이신데, 글쓰기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A∥이번 책을 준비하며 써 놓은 원고들이 많이 남아있어 후속편 발간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책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환영받는지를 보아야 결정할 수 있겠지요. 또한 <교실 밖 화학이야기>(궁리)가 발간된 지도 꽤 시간이 지나, 후속편 발간을 생각하며 틈틈이 자료조사도 하고 있습니다. 사회와 기술의 변화, 환경과 기후문제, 건강과 영양, 대체에너지, ITC의 발전 등을 담은 내용들로 구성하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대학 연구실을 떠난 지금, 제 교육의 대상은 전보다 훨씬 넓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그들과의 소통을 글을 통해 이루고자하는 마음도 생겨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 뜻을 계속해서 펼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궁리출판에게도 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제 글들이 우수한 청소년을 한 명이라도 이공계로 유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우리 사회를 과학기술친화적인 사회로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제가 글을 쓰는 보람이라 생각합니다.
Q∥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A∥저는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바르게, 열심히 살고자 노력했다는 점은 자평하고 싶습니다. 거칠고 취약한 기반 위에서 과학의 뿌리를 내리고 꽃 피우려 혼신을 기울인 한 과학자의 조그만 발자국이 더 큰 발자국을 위한 밑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독자들이 제 삶과 생각을 엿보고, 엿들으면서 세계를 이끌 과학자들을 어떻게 키우고, 이끌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면 저에게는 그 이상의 큰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 독자들께서 아무쪼록 이 책의 내용을 건설적으로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이 책을 읽은 후 과학, 창의성, 성실, 철저함, 끈기, 인내, 노력, 보람, 행복, 성공 등 긍정적인 키워드들이 독자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길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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