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선 독자들에게 자신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는 대학에서 부모교육, 인성지도, 탐구지도 등을 오랫동안 가르치며, 사람의 치유와 성장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에니어그램 동작치유 등 다양한 접근들을 탐구해왔습니다. 지금은 사직공원 건너편 인왕산을 바라보는 공간에서 에니어힐링 워크숍이라는 이름의 통합심신치유 프로그램으로 학부모, 탈북여성 등 저를 필요로 하는 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교과서로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그리고 『방과후아동지도론』 등의 교재를 써왔지만, 이번에는 그간의 삶과 의식의 흐름이 녹아 있는 책을 출판하게 되어 기쁩니다.
Q∥ 『이미 그대는 충분하다』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일상의 알아차림’이라는 부제에서 나타나듯, 우리 현대인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A∥ 우리는 이 사회에서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종종 아프기도 하고, 그 고통에서 회복되는 과정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어떤 방식으로 자신에게 가속을 붙여 채찍질해 달려왔습니다. 거기에는 과도함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집니다. 나를 괴롭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기도 합니다. 오래된 에고(ego-개체보존의 의식)의 습관이지요. 한때는 효과가 있어 보였지만 사실 이미 충분합니다. 일상에서 에고의 알아차림으로 과하지 않으면, 영혼의 자리에 가 있는 순간이 더 많아집니다. 맑은 공기를 마셔본 사람은 맑은 공기 있는 곳을 찾게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너무 애쓰지 말아요. 너무 서두르지 말아요. 잠시 숨으로 돌아와요. 그리고 하늘을 보아요. 나무를 보아요.” “이미 그대는 충분합니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Q∥ 이 책은 다른 명상 및 수련 관련서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적인 교리를 이야기하지도 않고, 세상과 떨어진 곳에서 에고를 벗어던지라고 외치지도 않는 걸 보면요.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책을 엮어나가려 하셨는지요?
A∥ ‘나’라는 개체는 지극히 적절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왔습니다. 기계를 적절히 그 용도대로 과하지 않게 쓰면 최적의 기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나라는 개체 안에 내장된 갖가지 기능들 또한 그렇습니다. 눈, 코, 귀 등의 감각기관들과 그 작용, 몸과 마음의 작용, 머리, 가슴, 장에서 다르게 작용하는 에너지, 그 모든 것으로 드러나는 내 존재의 본성, 내 안의 영혼은 이 모든 것을 통해 드러나지요.
에니어그램 관점은 내 안의 세 가지 에너지법칙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에니어그램은 아홉 가지 분류와 더 세밀한 분류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현대 에니어그램의 시조라 할 수 있는 구르지예프는 진리를 찾아 지구를 순례하면서, 지구상의 세 가지 종교를 발견했습니다. 머리의 종교, 가슴의 종교, 장의 종교가 그것이지요. 각각의 종교나 수련전통에서 불균형을 발견하고, 머리, 가슴, 장의 균형과 통합의 길을 꿈꾸었습니다. 종교의 문제는 인간 안의 세 가지 에너지 센터의 불균형과 균형회복의 문제이기도 하다.
Q∥ 글뿐만 아니라, 본문에 나오는 시들도 직접 쓰셨다고 했습니다. 이 책과 얽힌 기억나는 에피소드나 가장 애착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처음 시를 쓰게 되었던 2001년의 일이 생각나는군요. 학생들에게 ‘나무 관찰하기’ 과제를 주고 저도 1년간 주1회 나무 관찰을 했었습니다. 자기의 나무를 정해 나무에게서 일어나는 걸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는 인왕산 산책길의 떡갈나무를 바라보게 되었지요. 드러나는 모양, 빛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일어나는 변화를 주의 깊게 바라봅니다. <나무 바라보기>(<빛의 세계로 창 열다>편 참고), <오늘을 사는 떡갈나무>(<중심, 장의 구심력을 높이다>편 참고) 외에 여러 편의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떡갈나무를 바라보면서, 주의 깊게 바라보는 패턴이 만들어져, 잠자던 감각이 깨어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빛의 세계로 창 열다>참고). 알아차려지고 보이는 것을 기록하니 시가 되었습니다.
그해는 50년 만에 가뭄이 왔다고 하던 때입니다. 여름에 비가 오지 않자 풀들이 시들기 시작하는데, 내가 바라보던 떡갈나무가 다른 나무들보다 먼저 시들게 되었어요. 내가 나무를 잘못 선택했나, 다른 나무로 바꿀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더 가까이 가서 주의를 기울여 바라봅니다. 그랬더니 이 떡갈나무는 처음부터 인왕산의 절벽 끝 흙이 조금 덮여 있는 곳에서 힘들게 뿌리내려 자라고 있었던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힘들었겠다. 장하다”라고 말하게 되지요.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됐는데 도토리가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또 실망한 나는 “너 떡갈나무 맞니?”라고 마음속으로 따지듯 물어봅니다. 그러다 다음해 가을에 도토리가 따닥따닥 열린 걸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을 알려면 정말 오래 바라보아야겠구나 싶었죠. 아이들을 바라볼 때도 주의 기울여 오래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부모교육을 할 때 <나무 바라보기> 시를 소개하곤 합니다.
Q∥ ‘알아차림’이란 결국 무엇인지요? 자주 들어본 단어이지만, 그 의미를 명료하게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흔히들 불교와 관련된 용어라고도 생각하고 있고요.
A∥ 알아차림이란 자기관찰(self-observation) 또는 자각(awareness)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이해합니다. 의식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지요. 나의 움직임뿐 아니라, 몸 안에서 일어나는 것, 생각과 감정의 흐름, 내 안과 밖의 연결들, 과거와 현재의 연결들을 알아차림으로 사람과 삶과 세계에 대해 더 명료해집니다. 내 밖의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에니어그램 개념창을 통해 바라보면 잘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무엇을 위한 알아차림인가? 생명을 입고 이 세계에 태어나 살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살기 위해 알아차림이 필요합니다. 작은 가전제품을 사도 그것의 사용법을 알기 위해 매뉴얼을 열심히 읽습니다. 지구상에는 여러 매뉴얼들이 나와 있습니다. 여러 종교와 세속의 매뉴얼들은 같은 존재에 대해 다른 설명을 합니다. 그러므로 매뉴얼을 참고는 하되 누구나 나와 삶에 대한 진지한 탐험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이미 답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섬세하게 알아차려 살아감이 필요합니다.
알아차림의 대상이 무엇인가? 억겁의 시간 속에서 이 순간 이 모습으로 나와 존재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귀합니다. 잠시 피었다 지는 들꽃은 그것 자체로 귀합니다. 진달래는 비가 오면 바로 힘없이 꽃잎을 떨어뜨리지만 이 세계에서 진달래 빛깔의 꽃으로 피어나기를 두려워하지 않지요. 땅에 뿌리내려 해를 향해 올라가 바람과 씨름하며 비를 맞습니다. 비와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또한 두려워하지 않지요. 스러져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고통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고 받아들이지요.
우리도 이 순간 있음을 온전히 경험합니다. 감각되어지는 것을 알아차려 받아들이고 보이지 않는 파동에 대한 감각 또한 섬세하게 알아차림으로 나를 온전히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보이는 감각의 세계와 보이지 않는 파동의 세계, 보이는 분리의 세계와 보이지 않는 연결의 세계에 동시에 속해 있습니다. 나는 이 현상의 세계에서 형상을 가진 개체이면서 또한 시간이 없는 파동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파동감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연결의 세계에 대한 통찰을 갖게 됩니다. 연결과 분리를 다 경험합니다. 나고 죽음과 영원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 순간에 있습니다. 시듦을 두려워하지 않는 진달래처럼. 존재를 온전히 경험하기위해 알아차립니다.
알아차림을 어떻게 하는가? 알아차림은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명료한 앎, 인과관계에 대한 앎을 가져옵니다. 부처님은 알아차림 명상을 통해 존재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라보고 가슴으로 느낌으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바라보고 느끼는 것은 때로 아픔에 대한 공감이 되고, 길가의 들꽃을 바라보고 느끼는 감동이 되고, 이미 나에게 와 이 생명을 지켜주는 것들에 대한 감사가 되기도 합니다.
알아차림은 보이는 외부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림, 내안에서 일어나는 호흡, 맥박, 나의 걸음걸이를 알아차림, 그리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에너지인 파동을 알아차리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알아차림은 고요한 가운데 일어나므로 명상자세를 하고 앉아서 호흡을 바라보는 방법과, 일상 속에서 고요의 공간을 만듦으로 알아차리는 방법을 모두 사용합니다. 내가 아이와 말하는 동안, 사람들의 에고가 충돌하는 동안, 걷는 동안,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려는 순간, 차를 타고 가면서 등 일상을 살아가는 순간순간 가능한 대로 알아차립니다.
Q∥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해볼 수 있는 ‘알아차리기’ 연습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선생님이 하시는 대로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A∥ 자세를 바르게 해봅니다. 허리를 펴고 어깨는 내리고 턱을 내리고 의자에 앉으셨다면 발을 바닥에 툭 내려놓고 손을 무릎에 툭 내려놓습니다. 손에 잡았던 걸 내려놓고 입은 말을 잠시 멈추고 힘을 빼 약간 벌린 듯하게 눈은 아래로 내려 감고, 내쉬는 숨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러면 편안하고 긴 숨이 됩니다. 이렇게 몇 번 숨을 쉬면서 잠시 숨으로 돌아옵니다.
잠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이완하는 방법인데, 머리도 맑아집니다. 수업 시작하기 전 흩어진 주의를 모아들이고 긴장된 몸을 편안하게 되돌려놓고 싶을 때 학생들과 하는 5분간의 쉼입니다.
조금 전의 그 자세 그 숨으로,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숨을 그대로 가지고 하늘이 있는 창가에 까지 천천히 걸어갑니다. 발뒤꿈치가 먼저 닫는 걸음으로 숨의 리듬을 따라 걸어갑니다. 가능하다면 복도에서 5분간 걷기 또는 10분간 땅에 발을 딛고 걷기의 시간을 가집니다.
Q∥ 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A∥ 아픔을 경험하고 나오는 과정이 치유의 과정, 수련의 과정이요, 뭔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지요. 어떤 경험을 하든, 그 가운데서 바라보는 눈을 떠서 알아차린다면, 그 경험도 마침내는 녹아 보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명료한 통찰이 되고 누군가를 공감하는 가슴의 사랑이 되고, 그걸 가지고 행동할 용기가 됩니다.
모든 인간 안에는 굉장한 힘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겪는 모든 경험들을 통해 지혜로운 통찰에 이르고, 누군가를 공감하는 사랑의 가슴으로 성숙되고, 사랑과 지혜의 삶을 살 수 있는 에너지가 매일 매일 우리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놀라운 우리 안의 연금술입니다(<세 가지 에너지 아홉 가지 빛깔을 보다>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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