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독자들에게 첫 인사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 반갑습니다. 반은섭입니다. 저는 수학교사이자 수학교육연구자로 지난 15년간 중고등학교 현장, 대학교, 대학원에서 학생들과 ‘수학’을 주제로 여러 가지 담론을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Q ∥ 『인생도 미분이 될까요』, 이 책은 어떻게 집필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책을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요? A ∥ 학교에서 학생들과 수학 수업을 하다 보면, 수학 내용은 물론이고 수학과 관련된 다양한 질문들이 나오는데요, 그동안 그 답을 찾기 위해 여러 해 고민을 해왔습니다. 수학이 발전하게 된 역사적인 맥락이나 수학이 현대 과학에 응용되고 있는 부분, 또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들을 깊게 생각하면, 이 시대의 청춘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한두 편씩 글로 쓰니, 어느새 한 권의 책이 되었네요.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에게도 인생은 참 어렵습니다.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한 혼돈의 여행길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공부하고 학생들과 함께 고민했던 ‘수학’이라는 렌즈로 혼돈의 인생 여행을 들여다보면서, 위로를 받고 또 삶의 지혜도 얻을 수 있는 글을 엮어 이렇게 책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Q ∥ 대학 학부과정부터 박사과정까지, 수학교육을 오랫동안 연구해오셨습니다. 어떻게 ‘수학교육’을 전공하게 되셨는지요? 그간 선생님께서 연구해온 주제, ‘수학문제해결론’이나 ‘수학교육론’을 짧게 소개해주신다면요? A ∥ 저는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고등학교 시절부터 했습니다. 책에도 나와 있지요. 학원에서 만났던 수학 선생님의 영향이 매우 컸습니다. 선생님은 문제를 기발한 방법으로 풀어준다거나, 수학 내용을 알기 쉽게 가르쳐주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문제풀이는 대표적인 것 몇 개만을 풀어주셨고, 나머지는 학생 몫으로 돌리셨습니다. 그리고 수업 내용은 어려웠습니다. 다만, 수학 교실은 언제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백으로 가득 찼습니다. 선생님보다 더 멋진 수학 선생님이 되고자 학부과정에서 ‘수학교육’을 공부했고, 또 졸업을 한 뒤 수학 선생님이 되었지요. 이후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에서 수학교육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수학교육연구는 순수 수학 연구와는 다르게 중고등학교에서 교수자가 어떻게 수학을 잘 가르치고, 학습자가 잘 배울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것이지요. 제가 주로 연구한 수학교육의 하위 분야는 ‘수학문제해결론’입니다. 문제해결은 고도의 심리적인 작용이 필요한 정보처리 과정입니다. 인지심리학의 연구와 상당부분 겹칩니다. 문제해결에 성공하기 위한 심리학적인 원인을 분석해 모델을 개발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Q ∥ 책은 크게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무한’, ‘점’, ‘변화’, ‘연결’이라는 네 가지 주젯말로 이야기를 풀어내셨습니다. 네 가지 주제어로 이야기를 전개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 사실 처음부터 네 가지 주제어를 생각하고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편지글 형식으로 한 편 두 편 쓰다 보니 여러 편이 되었지요. 완성된 모든 글의 내용을 잘 살펴보니, 중복되는 내용이 있기는 했지만, ‘무한’, ‘변화’, ‘연결’이라는 키워드로 분류되었어요. ‘점’이라는 주제는 ‘연결’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습니다. 수학에서 점은 빈틈없이 연결되어 선을 만듭니다. 한 사람이 오롯이 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한 응원의 메시지로 ‘점’이라는 장을 만든 것이지요. ‘무한’한 세상에서 유한하고 보잘것없는 ‘점’과 같은 인간이 적극적인 ‘변화’를 통해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된다는 큰 프레임으로 책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Q ∥ 선생님의 수학 수업에는 이성과 직관, 유한과 무한, 경험과 반성, 비움과 채움 등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들이 풍성합니다. 수학이 삶을 사색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 깊었는데요, 이런 접근의 수학교육을 시도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 현재 우리나라의 수학교육은 학생들을 정말로 힘들게 합니다. 마치 청춘들을 가득 실은 배가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다고 할까요? 목적지는 문제 해결 만능의 섬인데, 그 섬이 결코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다 알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4차산업혁명, 인공지능, 빅데이터와 같은 차가운 단어를 앞세워 표류하고 있는 배에 기름을 붓고, 학교와 학원에서는 문제 하나 더 맞히면 대학의 이름이 바뀐다고 학생들을 설득하지요. 최근엔 수학교육전문가 행세를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순수한 학생들에게 사탕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분명히 ‘수학교육’에 대한 보다 참신한 접근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학이 가지고 있는 본성과 근본적인 수학의 지혜를 학생들과 세상에 조금씩 알리고 있습니다. 이 책도 같은 맥락입니다. 르네상스 이후 세상이 바뀌고 근대의 학자들이 고대 그리스의 학문을 다시 들여다본 것처럼, 수학교육 르네상스가 일어나 처음부터 탑을 다시 쌓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Q ∥ 수학교육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부터 물리학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으셨는지, 그리고 물리와 수학의 매력과 차이, 연관성을 짧게 들려주신다면요? A ∥ 우리는 살면서 우연한 만남과 늘 마주합니다. ‘누구를 만나는가? 어떤 책을 읽는가?’는 한 인간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저는 학부 시절 도서관에서 우연히 『코스모스COSMOS』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우주를 다룬 물리학 교양서적입니다. 이 책에 매료되어 당시 물리교육과에서 개설된 ‘상대성이론’을 청강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기초물리학 지식만으로 내용을 따라가기엔 너무 버거웠습니다. 졸업을 한 뒤,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물리교육을 전공하는 친구를 우연히 만났고, 당시 수강했던 ‘응용수학’ 담당 교수님과 함께 결국 상대성이론을 스터디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하게 되었지요. 우연한 만남들이 삶을 디자인하니 하루하루가 다 선물입니다. 물리학은 제가 모든 분야를 깊게 공부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학문의 전개방식은 모릅니다. 다만, 물리학에서는 물질의 상태나 운동을 기술하면서 반드시 수식으로 표현을 해야 합니다. 수학이 필요합니다. 실제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수식으로 기술하는 과정에서 수학에 능통한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수학을 이루는 양대 기둥, 대수와 기하입니다. 대수는 물론이고 공간을 다루는 현대의 기하학 책도 도형보다는 어려운 수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수학이나 물리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식을 정확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Q ∥ 책에는 선생님께서 삶을 대하는 철학이나 태도가 곳곳에 묻어나 있습니다. 우선 미니멀리스트이세요. 인생의 덧셈만큼이나 뺄셈, 비우는 삶도 중요하게 여기세요. 또 산책자이시죠. 글을 쓰거나 연구할 때 잠시 산책을 하며 생각을 갈무리하는 일상이 책에 그려져 있어요. 정리나 산책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A ∥ 정리나 산책은 결국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기 위한 것입니다. 이곳 싱가포르에서 저는 단순하게 살고 있는데요. 오히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할까요? 복잡하지 않아서 생각이 더 단순해지고, 한 인간으로서 ‘나’를 자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많습니다. 한국 학교에서는 산책은 엄두도 못 내지요. 대부분의 학교 디자인이 천편일률적인 탓입니다. 이곳의 학교는 복도가 테라스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계절 없이 항상 여름이라 늘 푸른 자연 속에 교실이 있습니다. 학교 뒷동산에 오르면 높게 올라간 나무들은 물론이고 산책로도 있습니다. 산책은 주로 혼자 합니다. 저는 인간관계에서도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을 타인이나 다른 물건들에게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고독하게 고민해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공부라는 것도 마지막 단계에서는 혼자 해야 합니다. 최근 코로나 19라는 감염병 때문에 사회적 거리를 지켜야 합니다. 고독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산책을 하면서 ‘인생 미분’을 해보면 어떨까요. Q ∥ 제목에 쓴 ‘인생을 미분한다’는 표현이 재밌습니다. 책에서 자세히 이야기 들려주셨지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인생의 미분’은 무엇인가요? 정의를 내리신다면요? A ∥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수많은 우연한 사건과 수많은 선택지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제가 싱가포르에 오게 될지 저도 잘 몰랐습니다. 몇 년 전, 우연히 한국에서 열린 수학교육 학술대회에서 제가 연구해놓은 문제해결에 관한 모델과 유사한 내용을 발표하는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 WIS)의 한 교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박사후연구원으로 이스라엘 행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싱가포르에서 살고 있으니, 인생은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차선입니다. 인생에서 최선의 선택이 어디 있나요? 작은 성공들을 차곡차곡 모아두는 것뿐이지요. 제가 지금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것도 차선의 선택이겠지요. 차선이 연결되면, 최선이라는 그림이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결국 선택의 길목에서 어떤 결정을 할지 부단히 고민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고, 또 누군가는 절에서 108배를 하겠지요. 이 모든 것들이 ‘인생 미분’이 아닐까요? 조금 더 적절하고 분명한 비유가 있습니다. 미니멀리즘 이야기를 했는데요. 물리학의 엔트로피 법칙을 아시나요? 닫혀 있는 공간에서는 무질서도가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책상을 치워도 시간이 지나면 지저분해집니다. 여러분이 한 일주일간 휴가를 다녀왔다고 생각해보세요. 방에 먼지가 쌓여 있을 것입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 강원도의 한 사찰에서 한겨울 새벽을 맞이한 적이 있습니다. 강원도의 겨울은 매일 눈이 온다고 보면 됩니다. 동트기 전, 경내에 쌓인 눈을 빗질하시는 스님은 매일 수양하듯 눈을 쓸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친구나 동료와의 인간관계는 늘 어렵습니다. 감정노동에 의해 마음속의 먼지는 늘 쌓여만 갑니다. 이 먼저들을 매일 치워줘야 하지요. ‘인생 미분’은 다름 아닌, 마음의 빗질입니다. ‘인생 미분’을 통해 우리는 매일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Q ∥ 수학의 언어, 수식은 ‘간결한 아름다움’이 있는 도구입니다. 선생님 글은 수학 언어처럼 ‘간결함’이 있고요, 간결함에서 나오는 ‘여백의 미’도 느껴집니다. 수학이 선생님의 글쓰기에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글을 쓰거나 혹은 수학 수업을 할 때 이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시나요? A ∥ 수학이 글쓰기에 물론 영향을 주었지요. 수학 자체가 논리적이기 때문에 수학을 하는 분들은 관심만 있다면, 아마 글쓰기를 다들 잘 하실 겁니다. 책에 있는 내용이긴 합니다만, 문제를 푸는 과정과 글쓰기 과정이 여러모로 비슷하거든요. 가정과 결론을 미리 확인하고, 여러 중간단계를 논리적으로 배치해 연결하는 것이니까요. 다만, 수학 문제풀이는 정답을 꼭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글쓰기와 조금 다릅니다. 글은 표현하고 싶은 핵심 내용을 독자가 생각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기도 해야 합니다. 간결함과 여백의 미입니다.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면 됩니다. 언젠가 신영복 교수님이 쓰신 책에서 자기 능력치의 70% 되는 일을 하고, 나머지 30%는 여백으로 채우라는 글을 봤습니다. 수업 시간에 제가 하는 말과 행동에서 학생들이 ‘간결한 아름다움’을 알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최대한 간결함과 여백의 미를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Q ∥ 어떤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으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A ∥ 저는 수학 교실이라는 정원에서 학생 개개인은 각각 한 그루의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다른 나무이지요. 어떤 나무는 크고 높겠으나, 이제 막 심은 나무도 있겠습니다. 물을 매일 줘야 하는 것도 있고, 한 달에 한 번 물이 조금만 필요한 나무도 있지요. 어떻게 하면 정원을 잘 가꿀 수 있을까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나무 몇 그루만 잘 키워내고 있습니다. 차가운 형광등으로 밤낮 빛을 비춰주며, 매일매일 정원에 물을 가득 뿌리고 있습니다. 저는 소중한 나무들에게 따뜻한 햇볕과 필요한 만큼의 물을 제공하는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제 학생 한 명 한 명의 개인적인 성취와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수학 문제는 반드시 정답이 있지요. 공식적인 풀이와 해답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개인이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푸는 사람의 선택이지요. 개인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만큼만 풀면 됩니다. 논리에만 맞으면 각자의 수준에 맞는 최고의 답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모든 학생들은 새롭고 참신한 생각을 할 자유가 있습니다. Q ∥ 이 책은 어떤 분들에게 가닿으면 좋을까요? 끝으로,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몇 마디 부탁드립니다. A ∥ 망망대해를 목적지 없이 떠도는 ‘수학교육’이라는 배를 타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학생들과 학부모님들, 그리고 학창시절, ‘문제풀이식 수학’에 괴로웠던 성인들에게 교양서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내용들을 기초로 앞으로 수학교실은 물론이고, 사회 곳곳에서 참신하고 따뜻한 수학 담론들이 꽃이 되어 피어나길 바랍니다. 『인생도 미분이 될까요』에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