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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일본건축의 발견>을 펴낸 최우용 작가 인터뷰


Q 그동안 『다시, 관계의 집으로』 『변방의 집 창조의 공간』이라는 책을 펴내며 우리 주변의 잘 보이지 않는 건축의 이면을 살피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이번에 출간한 『일본건축의 발견』은 주제나 글의 분위기 면에서 전작들과는 다른 결을 지닌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일본은 우리와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그 외의 모든 것들은 그렇지 못한 듯합니다. 긴 역사를 통해 반목과 갈등을 계속해왔기 때문이겠지요. 문득 일본여행을 하다가 저 또한 일본건축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비로소 일본건축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비슷한 듯 다른 일본의 전통건축이 궁금했고, 서구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건축계에 일정의 문화적 지분을 갖고 있는 일본의 현대건축의 저력이 궁금했습니다. 이 글은 이런 자문에 대한 자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글들이 정성적인 이해에 대한 글이었다면, 이번 글은 정량적인 분석에 의한 글입니다. ‘일본건축은 어떤 의미인가?’란 물음 앞서 ‘일본건축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글이기 때문입니다. Q 2000년 일본건축의 긴 역사를 책 속에 녹이자면 정말 중요한 대목들만을 골라 정리했을 것 같습니다. 크게 어떤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들려주세요. A 2000년 일본건축의 역사를 조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우리건축을 비춰볼 수 있는 일본건축사 속 주요한 순간 몇 장면을 추렸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근대 이전의 일본 전통건축보다는 근대 이후의 일본 근현대건축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1장에서는 일본 전통건축의 기원과 독자적인 계통발생에 대한 내용을 다뤘습니다. 2장과 3장에서는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일본건축이 서구건축에 대한 그들 건축의 정체성에 대해서 어떤 고민했는지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4장에서는 그러한 정체성 문제가 일단락된 이후의 일본 현대건축을 세계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와 구마 겐고의 건축을 통해 살펴봤습니다. 마지막 5장에서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그러니까 ‘개발’과 ‘발전’이란 근대적 도시건축개념이 근본적이고 보다 구체적으로 부정되는 상황 속에서 일본건축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는지에 대해 살폈습니다. Q 좀더 주체적인 우리의 집짓기를 하는 데 우리와 가깝고도 먼, 같으면서도 다른 일본의 건축을 통해 우리건축의 정체성이 보다 선명해질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러한지 궁금합니다. A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체성은 자아(나, 우리)와 타자(너, 그들)를 구분할 수 있는 분류근거를 의미합니다. 즉 정체성은 고정불변하는 고정태(fixed status)가 아니라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 생성되고 구축·변화되는 상대적인 개념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정체성 형성에 있어 타자의 의미는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에 앞서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오늘의 현대건축에 이른 일본건축은, 그래서 우리건축의 정체성 형성에 있어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단게 겐조 건축에 나타난 일본적 전통의 특성에 관한 연구」라는 석사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특별히 단게 겐조라는 인물을 주제로 잡은 까닭이 있는지요? 그는 일본건축 역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요? A 일본의 근현대건축사에서 단게 겐조라는 건축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습니다. 단게 겐조는 20세기 초 일본의 근대화가 한참일 때 태어나서 백 년 가까이 장수하며 21세기 초에 타계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일본 근현대건축사를 관통하며 활동했던 건축가였죠. 물론 그는 건축 경력만이 풍부했던 것이 아니라, 일본 근현대건축사의 주요 장면장면마다 그의 흔적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그의 초기 작품들은 서구건축에 대한 일본건축의 정체성 수립 문제에 대한 고민이 심도 있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앞 질문에 말씀드렸다시피, 일본건축을 통해 우리건축을 비춰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저의 이러한 생각이 이번 책이 되었고, 또 개인적으로는 학위 논문이 된 셈입니다. Q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본건축가 또는 일본건축물이 있는지요? A 저는 개인적으로 구마 겐고라는 건축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첫 일본여행 그리고 그 뒤에도 이어졌던 많은 일본여행의 동기가 구마 겐고의 건축을 보러 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건축물을 찾아 일본열도 구석구석, 심지어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시골 마을까지도 기어코 찾아가고는 했습니다. 구마 겐고는 건축만들기를 잘합니다. 텍토닉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건축꾸미기가 아닌 건축만들기를 하는 것이죠. 그 의미는 본문을 통해 확인해보시면 좋을 듯한데, 간단히 말해 구마 겐고는 건축 이외의 것들(예를 들어, 자본 같은 요소들)에 배경으로 작동하는 건축을 넘어, 건축의 의미 그리고 그를 통한 건축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그를 좋아합니다. 좀 오래전 나스시오바라(那須塩原)역에서 무료 온천 셔틀버스를 타고 아시노란 시골 마을에 간 적이 있습니다. 분홍색 코스모스 그리고 가을걷이 끝난 늦가을의 풍경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는데 휘파람 불며 구마 겐고가 리모델링한 돌미술관을 구경했습니다. 돌의자에 앉아 빵우유로 끼니를 때우고 살랑살랑 바람맞으며 미술관 근처를 산책했었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Q 앞으로 또 어떤 저술계획이 있는 궁금합니다. 꾸준히 글을 쓰는 성실한 생활인데, 글쓰기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A 평소 핸드폰 문자 습관으로 하자면 위 질문에 ‘ㅎㅎ’로 문장을 시작해야 될 듯합니다. ‘꾸준히’와 ‘성실한’이란 단어가 제게 좀 어색하고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꾸준히 무엇을 하기에는 만성피로에 젖어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성실하게 무엇을 하기에는 게으른 생활인이라 그렇습니다. 그래도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밥벌이로 하고 있는 건축이 다만 밥 벌어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번 지어지면 너무나도 오랫동안 썩지 않는 건축은, 그래서 썩지 않는 채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는 플라스틱 빨대만큼이나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으로 희생되는 가치들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여깁니다. 우리에게 덜 파괴적인 건축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곧 제가 건축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앞으로도 글을 써서 책으로 만들어질 기회가 또 한 번 주어진다면, 짧은 일본 여행 산문을 쓰고 싶습니다. 일본을 십수 회 여행 다니면서 건축은 사실 작은 일부분에 불과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같은 일본 소설가들에 대한 이야기나 차고 넘치는 수십, 수백 종의 맥주와 사케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일본 골목길에 널려 있는 자잘한 일본의 일상에 대해 써보고 싶습니다. Q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A 저는 이번 글을 쓰면서 일본건축에 대한 책과 자료가 의외로 적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었습니다. 본문에도 나오는 독일건축가의 지적처럼, 일본건축에 대한 의식-무의식적인 편견과 무시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일그러진 거울은 일그러진 상을 비출 뿐입니다. 바로 볼 수 있어야 바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지요. 이 글을 통해, 일본건축에 비춰 우리건축을 생각할 수 있는 비판적 독자의 탄생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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