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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잃어버린 장미정원>을 번역한 한국장미회 김욱균 회장 인터뷰


Q현재 세계장미회 (WFRS) 산하 한국장미회(Korea Rose Society)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장미와의 처음 인연을 들려주세요.

A∥장미와의 인연을 말씀 드리려면 먼저 식물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해야 하는군요. 저는 식물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나이 쉰을 조금 넘어서니 주변의 나무들이 서서히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집 앞에 있는 나무 이름도 모르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느티나무와 벗나무를 구별하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차츰 나무와 숲, 그리고 들풀에 관심을 가지며 주말이면 산과 들, 그리고 식물원 등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숲에 대한 책도 자주 보고 강의도 들었습니다. 조금씩 자연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더해졌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숲으로 간 이유가 궁금해서 미국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마을 인근의 월든 호숫가에서 “그가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을 마주하려 했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녹색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또한 녹색 환경이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는 것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식물을 가까이 하게 하는 유전적인 요소가 있다는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바이오 필리아(Biophilia) 가설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요. 그것이 연유가 되어 느지막이 다시 학교에 입학하였고 “식물과 인간 그리고 환경의 상호관계”에 대한 공부를 조금 더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길목에서 장미를 만났습니다. 장미는 다른 식물보다 인간과 상호관계를 하기에는 더없이 적합한 식물입니다. 우리가 흔히 좋아하는 튤립이나 백합같이 주변의 아름다운 꽃들은 대개 한 계절에 보고 나면 일년을 기다려 다시 보게 됩니다. 요즘의 장미는 5월에 시작해서 늦은 11월 서리가 내리기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합니다. 꽃이 진 후 꽃봉오리를 잘라주면 날씨와 기온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평균적으로 45일이 지나 다시 꽃을 피웁니다. 또한 꽃잎이 많아서 꽃봉오리가 맺히고 켜켜이 싸여 있는 꽃잎이 피어나는 과정에서는 다양한 모습과 색깔로 변화되는 장미꽃을 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미의 붉은 열매는 겨울 정원의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년 내내 수시로 장미와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인 소재도 매우 풍부하고 스토리텔링적 요소도 많아서 장미의 창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지적인 충만감도 느끼게 된다는 것이 장미를 가깝게 하게 된 인연이 되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장미에 대한 정보와 재배지식을 ‘로자리안’이라 일컫는 국내의 장미동호인들과 서로 나누는 활동을 하면서 국제간의 교류와 유대도 만들어왔습니다. 이러한 활동의 기반이 2018년 세계장미회(WFRS- World Federation of Rose Societies)의 회원국으로 승인을 이끌어내면서 한국장미회(Korea Rose Society)의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Q『잃어버린 장미정원』을 번역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신다면요? 2018년 세계장미회 선정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던데요.

A∥이 책은 절망 속에서도 장미를 매개로 서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새로운 꿈과 희망을 만들어가는 로자리안들의 이야기입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유출 사고가 일어난 지 2년여쯤 되었을 때 일본장미회 회원들로부터 이 ‘잃어버린 장미정원’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아름다웠던 장미정원을 기억하고 장미를 통해서 희망과 위로의 활동을 펼치기 위한 노력이 사회적으로 계획되고 있다는 내용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 사연과 활동이 책으로 엮여 출판되었고, 이 책은 세계장미회 최고의 영예를 가진 장미서적 분야의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세계장미회는 장미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나누고 장미의 보존과 장미 문화의 확산을 위해서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권위 있는 기관입니다. 세계장미회는 3년마다 우수 장미품종과 우수 장미정원과 함께 우수한 장미서적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2018년 WFRS Literary Award 수상작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장미는 사랑과 평화의 의미가 담긴 꽃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특별한 힘이 있다는 것을 독자들께 전하고 싶었습니다.



Q∥ 이 책의 원제목은 ‘The Rose Garden of Fukushima’입니다. 장미의 식생이나 특징을 다루는 책일줄 알았는데, 후쿠시마 대지진이 일어나 50년간 가꾼 장미정원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일어나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좀더 자세히 들려주신다면요?

A∥이 책의 저자인 마야 무어는 일본계 미국인입니다. 전직 일본방송공사(NHK), 미국의 PBS 등 여러 TV 방송국의 뉴스 앵커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습니다. 미국과 일본 외에도 영국, 프랑스, 타이완 등 해외에서 거주한 경험이 아주 풍부해서 비교문화에 관한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인간이 일으킨 엄청난 재해로 자연이 무자비하게 유린되는 쓰라린 경험을 글로 표현하면서, 좌절을 딛고 새로운 희망을 품으며 다시 일어날 줄 아는 인간의 회복력에 대한 일화를 들려줍니다.


나이 열일곱에 장미와 사랑에 빠져 평생을 바쳐 일본 최고의 장미원을 가꾸었지만, 후쿠시마 대지진으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해 일본 북부지역을 폐허로 만들었고, 그가 평생 동안 일구어낸 정원은 출입금지구역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졸지에 정원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정원사의 마음이 병들고 슬픔은 깊어갈 즈음, 해마다 그의 정원을 방문하면서 오랜 세월 때맞춰 피어나는 장미의 신비로운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아온 사진작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잃어버린 장미정원 속에 담긴 의미와 문화를 찾으려 애쓰는 로자리안들이 장미를 매개로 서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새로운 꿈과 희망을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사연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Q∥ 이 책 말미에는 원서에는 없는 부록이 새롭게 담겨 있습니다. 그중 <장미에 대한 짧은 문화사>를 집필하셨는데요. 중국의 월계화가 유럽으로 전해져 현대장미가 된 이야기, 해당화가 들장미의 일종이라는 이야기 등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나라의 장미 이야기를 좀더 들려주신다면요?

A∥많은 분들이 장미는 서양의 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대체적으로 장미의 자연 서식의 기원은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중국에는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야생장미의 절반 이상이 자라고 있고요. 특히 꽃을 일년에 두 번 이상 피우는 야생장미가 자연에서 서식하는 지역은 동북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정도로 매우 제한적입니다. 우리에게 친근한 해당화도 반복 개화의 특성을 가진 이런 야생장미입니다.


정원장미는 야생의 장미가 차츰 정원으로 들어와서 진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장미 중 반복해서 꽃을 피우는 월계화(月季花, Rosa chinensis)가 18세기부터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일년에 한 번 여름철에만 꽃을 피우던 유럽의 고전장미와 교잡하여 육종된 장미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현대장미가 된 것입니다. 이런 현대장미는 초여름부터 피고 지고를 반복해서 추위가 닥치기 전까지 개화를 반복합니다.


우리나라의 장미문화에 관한 유래는 삼국시대로부터 시작되며, 많은 문장과 시, 그림으로 그 유산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월계화와 같이 반복해서 꽃을 피우는 장미인 사계화(四季花)라는 이름의 장미가 있었습니다. 사계화에 대한 이야기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옛 문헌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삶과 정서에 깊게 남아 있는 야생장미인 찔레와 해당화 또한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서양으로 전해져 오늘날 현대장미의 육종에 주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미를 서양의 식물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유 식물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Q『잃어버린 장미정원』에는 130여 장의 아름다운 장미사진들이 담겨 있습니다. 부록에 이 책에 소개된 장미들의 품종 등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진 장미들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장미 셜록 홈스’라는 팀을 꾸렸다고 들었습니다. 좀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이 책의 한국어판 출간을 준비하면서 사진들 속의 장미는 과연 어떤 이름의 장미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영문으로 출판된 원서에는 장미 품종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이제 막 사회적으로 장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고 장미정원을 조성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어, 책에 수록된 장미의 품종과 이름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정원은 사라져버렸고 사진들만 남아 있었으며 오랜 세월 장미 사진을 찍어온 사진작가들은 사진을 예술적이고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작품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장미 품종이나 장미 이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이름들을 어떻게 찾을 수 없을까 고심했습니다. 사진에 나타난 한순간의 장미 모습만을 보고 장미의 품종을 식별해내는 것은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잃어버린 장미의 이름을 찾는 방안을 일본장미문화연구소 마에바라 카츠히코 이사장과 일본 지바현립 자연사박물관의 유키 미카나기 박사와 의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미의 이름을 찾는 활동에 장미 전문가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차츰 모이면서 장미 이름을 찾는 결사대가 꾸려졌습니다.


장미 셜록 홈스(Rose Sherlock Holmes)는 저자가 잃어버린 장미의 이름을 찾는 과정에 참여했던 전문가 그룹에 붙인 이름입니다. 여기에는 일본장미회와 고전장미&덩굴장미클럽(Old Roses & Climbers Club)에 소속되어 있는 대학교수, 자연사박물관 큐레이터, 일본 유수의 장미원의 장미정원사, 장미 육종회사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사진에 나타난 장미꽃의 모양, 색깔, 잎의 수, 탁엽, 가시, 수형 등을 세심하게 살피고 추적하였습니다. 책에 나온 모든 품종의 이름을 다 찾지는 못했지만 많은 장미의 이름을 찾았습니다. 잃어버린 장미정원과 함께 잃어버린 장미의 이름을 찾는 작업은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Q∥ 직접 장미를 가꾸며 지내시는데요, 장미의 미덕이랄까 매력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그리고 가장 아끼는 장미 품종이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A∥장미는 다른 식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매혹적인 향기, 다채로운 꽃의 색깔과 질감, 그리고 다양한 꽃의 형태를 가진 아주 특별한 미적인 요소와 매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영국의 데이비드 오스틴 장미나 프랑스, 독일에서 육종되는 고전장미풍의 현대장미는 기존의 현대장미가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꽃잎 수와 향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스프릿 오브 프리덤이라는 영국 장미는 꽃잎의 수가 230장 정도 되는 큰 꽃송이입니다. 이런 장미들이 아주 풍성하고 다채로운 향기로 장미를 키우는 분들께 호감을 받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고전장미와 야생장미에 소박한 아름다움에 특별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정원주인 오카다 씨가 고전장미와 야생장미를 수집하는 과정과 그 품종들로 정원을 꾸미면서 느끼는 감상이나 소회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관리하는 정원에 올해 막 피기 시작한 야생장미 스피노시시마(R. spinosissima)입니다. 우리나라 산에 피는 야생장미 인가목과 유사합니다.


Q∥ 장미는 어쩌면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있어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장미에 대해 좀더 알고 가꾸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으시다면요?

A∥앞서 이야기드렸습니다만 우리의 장미 이야기는 8세기부터 시작되며, 문학작품 또는 그림으로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현대장미의 원류인 야생의 들장미인 찔레, 해당화에는 우리의 삶과 정서를 아우르는 한국인의 소박한 애환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장미는 꽃의 아름다움과 함께 그 속의 문화를 함께 보고 가꾸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장미를 통해서 나눔과 배움의 기회를 같이 가지시길 권하고 싶고, 아울러 장미회의 소개도 조금 드리고 싶습니다.


40~50년 전까지는 장미를 사랑하는 사람들 즉 로자리안의 모임인 장미회가 우리 사회에서 장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장미를 가꾸고 전시회를 개최하고 회보를 발간했다는 그들의 활동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1959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활동을 시작한 전주장미회가 우리나라의 첫 로자리안 활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61년 서울장미회가 조직되었고 1971년 한국장미회로 개칭되어, 1979년 제17회 한국장미전을 개최했으며, 한국장미회 창립 10년 기념특집을 발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그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과 내용은 전해지고 있지 않습니다.


70년대에 시작된 아파트의 보편화는 우리 주거문화를 변화시켰고, 장미를 가꾸고 좋아했던 장미문화도 같이 사라지면서 우리와 함께 해왔던 소박한 장미정원도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고, 또한 우리의 장미 이야기도 여기서 길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한국장미회의 시작은 2009년 장미 재배방법과 장미 품종의 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한 장미공부모임인 사계장춘회가 첫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그 후 서울로즈클럽으로 개칭하여 장미를 통한 나눔과 봉사, 장미 문화와 국제 교류 등으로 활동 영역이 확대되었으며 세계장미회(WFRS- World Federation of Rose Societies) 회장 및 임원의 클럽 방문과 교류가 이어지면서 2018년 WFRS 총회에서 정회원국으로 승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장미회(Korea Rose Society)가 새로이 이어가는 장미 이야기가 장미에 대한 우리사회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우리의 잃어버린 장미 문화와 유산을 찾아보며 끊어졌던 우리 사회 로자리안 활동의 맥을 이어갈 수 있는 작은 디딤돌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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