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잭 런던 걸작선 중 『강철군화』,『야성이 부르는 소리』,『잭 런던 단편선』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이 걸작선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요?
A∥ 2002년 잭 런던의 『야성이 부르는 소리』 번역 의뢰를 받았습니다. 작가 약력을 읽다 대학 때 인상 깊게 읽었던 『강철군화』를 쓴 사람이 바로 잭 런던인 걸 알고 좀 놀랐죠. 두 작품의 분위기가 전혀 달랐으니까요. 런던이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런던의 생애를 들여다보았고, 그가 쓴 작품들도 찾아보았죠. 한국에 번역되어 있는 책들도 꽤 있더군요. 하지만 당시엔 잭 런던 걸작선을 내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의 강건한 문체와 실감나는 묘사에 매료되어 언젠가 그의 단편들을 꼭 번역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죠. 그 생각이 걸작선으로 확대된 데는 한 선배의 권유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선배가 그러더군요, “잭 런던이 그렇게 좋으면 네가 기획을 해봐.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 중 괜찮은 게 있지 않겠어.” 그동안 번역만 해왔지 기획이란 걸 해본 적이 없어 처음엔 좀 막막하더군요. 인터넷의 도움이 컸습니다. 런던의 모든 작품이 구글에 있더군요. 런던의 생애와 작품을 다시 들춰보면서 걸작선을 내야겠단 생각이 굳어졌어요. 무엇보다 그가 살았던 백 년 전 자본주의 세상과 오늘날이 너무도 닮아 있어 많이 놀랐어요. 그의 작품을 통해 오늘의 우리를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겠다 싶었죠.
Q∥ 사회주의 작가이자 대중에 영합하는 통속소설가, 낭만적 이상주의자이자 과학적 사실주의자, 노동자들의 친구이자 자본주의 정신의 표상 등 잭 런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어떤 모습의 인물이었을까요? 또한 영미문학계에서의 평은 어떤가요?
A∥ 몇십 년을 함께 한 부부도 서로를 잘 모를 때가 있다는데, 하물며 런던을 만나본 적조차 없는 제가 그가 어떤 인물인지 얘기하려니 쑥스럽군요. 전 런던에게 붙여진 그 모든 수식어가 그를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가난했고,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으며, 세상을 떠돌다 사회의 부조리에 눈을 떴습니다. 그 후 누구보다 열성적인 사회주의자가 되었죠. 하지만 그는 작가로 성공하는 꿈도 꾸었습니다. 그것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 여겼으니까요. 그는 분명 모순에 찬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여러 작가들 중 런던의 모순성이 더 부각되는 것은, 그가 다른 작가들보다 사회주의 활동을 더 열심히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목청껏 사회구조를 비판해놓고 그 사회의 성공 논리를 따랐으니, 더욱 이중적으로 보였겠죠. 영미문학계에서도 런던의 그런 면을 많이 부각시키면서 통속소설가로 몰아간 경향이 있어요. 제가 보는 런던은 누구보다 인간을 사랑하고 평등한 세상을 꿈꾼 낭만가예요. 어니스트 홉킨스는 19세기 미국 문학가들 중 마크 트웨인을 제외하고 잭 런던만큼 낭만적인 삶을 산 인물도 없다고 말했어요. 그의 자전적 소설 『마틴 이든』의 마틴처럼 런던은 인간을 믿고 싶었지만 인간이 대한 믿음이 부족해 죽음을 택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전 그에게 짙은 연민을 느껴요. 『잭 런던 단편선』마지막에 <나에게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에세이를 넣은 이유도 런던이란 사람을 독자들에게 더 잘 전달하고 싶어서였어요.
Q∥ 잭 런던 걸작선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잭 런던의 작품 중 흥미롭거나 인상 깊은 작품을 더 꼽아주신다면요?
A∥ 계급간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전면적으로 다룬 자전적 소설 『마틴 이든』, 베일에 가려진 정치 암살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엘리트들의 비밀결사 등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암살주식회사』, 문명에 길들여진 온순한 젊은이가 잔혹하고 무자비한 환경에 노출되어 거칠면서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바다 늑대』, 보르헤스가 추천한 단편 <마이더스의 노예들>과 <그림자와 섬광>. 고맙게도 모두 번역되어 나와 있어 시간과 관심만 있으면 언제든 읽을 수 있답니다.
Q∥ 『강철군화』나 『밑바닥 사람들』의 경우만 봐도, 100년 전에 묘사했던 초기 자본주의의 불길한 예언들이 오늘날에 점점 맞아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잭 런던의 작품들이 오늘날에도 많은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뭘까요?
A∥ 런던의 작품 세계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사회 문제에 천착한 사회주의 소설과 야성이 넘실거리는 자연 소설로 말이죠. 런던의 고향인 미국에서도 그렇고 전 세계적으로 런던을 크게 알린 작품들은 대부분 자연 소설 쪽이었어요. 그 작품들이 꾸준한 사랑을 받는 것은 그 속에 담긴 개척자의 도전 정신, 끈기와 자립심, 극한의 경험, 미국적 이상 같은 것이 언제 어디서나 유효하기 때문일 거예요. 『강철군화』나 『밑바닥 사람들』 같은 사회 소설이 오늘날까지 호응을 얻는 건 예나 지금이나 자본주의의 모순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히려 오늘날이 더 심하지 않나 싶어요. 학생운동을 했던 학생들도 이른바 대학이라는 간판만 있으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실업률이 높아져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노동자들은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서로를 경계하고 있어요. 며칠 전 신문에서 현대자동차 노조가 올해 단체협약 요구안에 ‘직원 신규 채용 시 정년퇴직자 및 25년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을 명시하는 방안을 넣었다고 해서 화들짝 놀랐어요. 이른바 ‘정규직 세습’인 거잖아요. 천만 노동자들 중 그들은 노동 귀족에 해당하는 이들이죠. 런던은 실업자들로 이루어진 산업예비군(요즘은 비정규직이죠)의 존재가 노동자들의 연대를 깨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어요. 그 지적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거죠. 서로 연대하지 않고서는 노동자들은 결코 자본가들을 이길 수 없어요. 제 잇속에만 눈을 밝히지 말고 노동자의 권리를 찾도록 해야 하는데…… 런던의 작품을 읽고 행여 독자들이 ‘그래, 자본주의는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어.’라고 패배주의에 젖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해요.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얘기하고자 한 것은 이 사회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거예요. 실천의 첫 단추는 문제의식 파악이니, 런던의 작품이 그것을 도와줄 겁니다.
Q∥ 『밑바닥 사람들』은 걸작선의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저자의 체험을 풀어쓴 르포입니다. 1900년대 영국 런던의 기아, 주택문제 및 실업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글을 읽는 동안 오늘날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곳이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태동한 영국이라는 점에서 더 관심이 가는데요. 당시 영국 빈민가의 풍경에서 오늘의 우리를 포착한 것이 있다면요?
A∥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뉴타운(혹은 재개발)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돈 없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 들어와 만들어진 동네가 이른바 ‘빈민가’입니다. 집이 아닌 좁은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함께 살다 보니 고함치고 싸우는 일이 잦죠. 아이들은 배움 없이 자라 노동판을 전전하거나 부랑자가 되죠. 가난이 대물림됩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런 빈민가를 번듯한 새 동네로 만들어주겠다고 떠듭니다. 아파트가 들어섭니다. 그러나 돈 없는 빈민은 비싼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고 또 다른 빈민가로 이사를 갑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제 집 한 칸을 마련할 수가 없어요. 뉴타운 건설은 더욱 아이러니합니다. 건물세를 받으며 잘 살고 있던 사람들을 졸지에 하우스 푸어(House poor)로 만드니까요.
백 년 전 영국의 빈민가에서 런던이 본 것이 이것이 아닐까요.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은 폭발적으로 향상되었는데 현실은 불행한 인간들을 더욱 양산하죠. 자본주의가 첨예화되면서 빈익빈부익부는 한층 더 심해지고 있어요. 런던은 그것을 ‘경영’의 잘못으로 보았어요. 바꾸어 말하면 분배의 문제겠죠. 그런데 경영을 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아니면 인간이 돈에 더 가치를 두는 이상 불가능한 일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국가가 부자가 되면, 삼성이 국제적인 선진 기업이 되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고 떠들어대지만 사실은 아니잖아요. 대한민국이 어느덧 자살률 3위 안에 드는 나라가 되었어요. 자본주의는 자살의 원인을 개인의 우울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어요. 우울증이 심해져 자살한 건 맞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포착해야 할 것은 그 우울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하는 거죠. 요즘 정치권에선 복지가 뜨고 있더군요. 복지는 곧 이익의 배분이죠. 선심 쓰는 기부가 아닌 분배의 관점에서 복지 문제를 거론해야 한다고 봐요. 『밑바닥 사람들』을 읽으면 자연스레 우리의 문제까지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Q∥ 『잭런던 단편선』에 나오는 열한 편의 작품들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셨는지요? 잭 런던이 쓴 단편의 묘미나 특징으로는 어떤 게 있는지요?
A∥ 런던의 단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불을 피우기 위하여>일 거예요. 이 작품을 처음 원서로 읽었을 때의 서늘한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요. 드넓은 설원, 차디찬 공기, 숨 막히는 고요, 회색빛 하늘, 곳곳에 도사린 위험 등등. 읽는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죠. 런던의 경험이 녹아들어서인지 흥미진진하고 묘사가 손에 잡힐 듯 와닿았어요. 그런 단편을 더 찾아내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죠. 그래서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한 단편들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잭 런던 단편선』에 나오는 열한 편 중 여섯 편은 『늑대의 아들The Sun of Wolf』이라는 런던의 첫 단편집에 실린 것들이에요. 이 단편집은 알래스카의 전설적 노다지꾼들에 대한 정보나 이야기에 목말라 있던 독자층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죠. 나머지 다섯 편은 미국에서 출간된 런던의 베스트 단편선을 참조해 골랐어요. 알래스카는 극한의 세계예요. 미지의 그 세계로 몰려든 온갖 인간 군상의 모습을 런던은 감칠맛 나게 그려놓았어요.
Q∥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하고 번역가로 활동 중입니다. 번역가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또 매료된 작가나 작품을 소개해주신다면요?
A∥ 영문학을 했던 사람들은 보통 번역이란 걸 한 번쯤 해보고 싶어합니다. 제 경우엔 특별한 계기랄 건 없고 지인의 권유로 무작정 뛰어들었죠. 아마 그런 심리가 작용했던가 봐요. 내 글을 써서 이름을 새기진 못해도 남의 글을 빌려 이름을 새겨보자는 공명심 같은 거요. 근데 생각보다 번역 일이 참 재미있었어요. 힘겨운 만큼 성취감이 컸죠. 왠지 이 일이 내가 앞으로 할 일이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번역에 입문했던 첫 일 년 동안은 미친 듯이 재미나게 번역을 했어요. 그 초심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요즘엔 성취감보다 힘겨움이 더 커서 죽을 맛이에요. 전 제가 번역하는 작품에 거의 매료되는 편이에요. 힘이 많이 들었지만 정말 좋았던 작가는 조디 피콜트였고, 아모스 오즈의 작품(『블랙박스』)도 무척 매력적이었어요.
Q∥ 잭 런던 걸작선 한국어판 작업에 세 명의 번역자분이 함께하셨습니다. 각 권마다 번역 과정에서 조금씩 유념해야 했던 부분도 있을 테고, 한 작가의 작품들인 만큼 잭 런던의 문체를 오롯이 살려내는 것도 중요했을 텐데요. 공동 번역작업에서 힘든 점은 없으셨는지요? 누가 어떤 책을 번역할 것인가 하는 것에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A∥ 세 명이 함께 번역작업을 했는데, 특별히 힘든 점은 없었어요. 다들 영문학을 전공한 문학도라 런던의 문체를 살리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작품은 각 번역자의 성향을 고려해 맡겼어요. 『버닝 데이라이트』는 정주연 씨 덕분에 걸작선에 들어간 작품이랍니다. 제가 애초에 걸작선에 넣은 것은 『바다 늑대』였는데, 번역자가 “바다 얘기, 물고기 얘기는 지겨워요”라고 지적해주어서 다시 고르게 되었죠. 결과적으로 더 나아졌고 만족스러웠어요. 공동 작업은 기회가 닿으면 앞으로도 또 해보고 싶어요.
Q∥ 앞으로 또 다른 ‘걸작선’을 만들어본다면 어떤 작가를 섭외하고 싶으신가요? 그 이유는요?
A∥ 업턴 싱클레어와 찰스 디킨스를 꼽겠습니다. 업턴 싱클레어는 런던 걸작선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런던과 동시대를 산 인물로 전체주의에 항의하고 참된 자유를 구현하려 애쓴 실천적인 작가였어요. 시카고 식육 공장의 실정을 폭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창설에 기여한 『정글』이 그의 대표작이죠. 석유 개발업자와 그 아들간의 충돌을 통해 사회주의와 노동자에 대한 연민을 그린 『오일』도 유명합니다. 『올리버 트위스트』로 유명한 찰스 디킨스는 명성에 비해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협소하지 않나 싶어요. 디킨스도 가난하여 어렸을 때부터 밑바닥 생활을 경험한 사람이었어요. 그런 체험을 바탕으로 밑바닥 사람들의 애환을 생생히 묘사하고 사회의 모순과 부정을 날카롭게 지적했어요. 지나치게 독자에 영합한 저속한 작가라는 비난도 받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자본주의 태동기의 영국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하죠. 게다가 디킨스는 이야기꾼으로서 탁월했어요. 디킨스 이후 작가 지망생들이 거의 빼놓지 않고 참고하는 것이 그의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말해 놓고 보니 제가 선호하는 작품 경향이 보이네요. 마냥 재밌기만 한 소설도 좋지만,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작품이 더 오래 남는 것 같아요. 기획의 걸림돌이라면 이 두 작가의 작품이 대체로 너무 길다는 거예요. 또 다른 걸림돌은 육아 때문에 제가 일에 매진할 수 없다는 거죠.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라도 기획을 해서 번역했으면 좋겠어요.
Q∥ 끝으로 ‘잭 런던 걸작선’을 아직 만나지 못한 독자 여러분께 책을 소개해주신다면요?
A∥ 재미와 신선함을 원하는 독자에겐 『야성이 부르는 소리』이나 『잭 런던 단편선』을, 사회 부조리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에겐 『강철군화』를 먼저 권하고 싶어요. 『강철군화』 재출간 소식을 전해들은 한 후배 녀석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누나, 반갑긴 하던데 요즘 누가 그런 걸 읽어.” 대학시절 누구보다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고 지금도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후배가 그렇게 말해서 섭섭하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런던을 처음 접한 궁리의 한 편집자가 번역자인 제게 런던의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써서 보내준 글을 읽고 ‘아, 기획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그 편집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어요. 그의 글을 읽고 그런 신선한 충격을 받는 독자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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