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조관희 교수의 중국사 강의』가 이미 출간된 다른 중국사 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아울러 독자들에게 이 책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A∥ 우리는 역사공부를 연표를 외우고 사건의 개요를 파악하는 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건의 진상이라는 것은 어차피 후대 사람들이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또 많은 경우 왜곡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읽을 때는 그런 데 얽매이지 말고 커다란 흐름을 잡아가며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를 현재라는 시점에서 해석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 책은 그런 관점에서 중국 역사를 개괄하고 개별 사건들이 갖고 있는 현재적 의미를 저 나름의 관점에서 짚어나가고자 했습니다.
이를테면 명나라가 서기 몇 년에 멸망하고 청이 그 자리를 대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왕조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면 망하기 직전에는 여러 가지 말기적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신분 질서의 고착화입니다. 곧 기득권을 가진 귀족 계급의 세력이 공고해지면서 더 이상 신분 질서의 타파를 통한 사회적 이동(Social Mobility)이 어려워지면, 상층부는 부패하고 상대적으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관리들의 핍박에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키고(官逼民反)”, “반란의 빌미가 위에서부터 주어지며(亂自上作)”, “핍박받아 어쩔 수 없이 도적이 될 수밖에 없는(逼上梁山)” 상황이 벌어져 결국 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세력이 그것을 대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명에서 청으로 넘어가는 시기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현재에도 그와 유사한 사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그런 의도에서 씌어졌습니다. 무려 5,000여 년에 달하는 그야말로 장구한 중국 역사를 공부하는 일이 단순히 사실 관계를 따지고 그들의 족적을 따라가는 데에만 그친다면 무엇보다 그 일 자체에서 재미를 느낄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따분한 과정을 거친 뒤에도 내게 남는 게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엄정한 사가의 입장에서 감정을 배제한 채 조금은 무미건조하게 사실(事實)을 나열한 정통의 역사책과는 달리 그 나름의 한계와 오류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급적 필자가 갖고 있는 역사 인식에 비추어 의미 부여한 사실(史實)들을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 제기로 인해 단순한 사실에 대한 이해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각에서 중국 역사를 돌아보게 됐다면 미흡하나마 필자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Q∥이 책의 인명과 지명 발음을 표기하는 데 교수님 나름의 원칙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것인지요?
A∥ 이 이야기는 설명하자면 조금 길어질 수도 있는데, 한자문화권에 속한 한중일은 똑같은 한자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읽고 있습니다. 혹자는 오랜 세월을 지나며 한자가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고유명사의 경우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를테면, 제 이름의 경우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조관희’라고 불러주는데, 유독 중국 사람들만큼은 자기들 식으로 ‘자오콴시’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한중간에만 있는 일인데, 내 이름을 ‘자오콴시’가 아닌 ‘조관희’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이제껏 일종의 ‘소중화주의’에 빠져 중국 문화를 마치 우리 것인 양 받아들였던 이제까지의 관행 역시 타파해야 합니다. 곧 ‘모택동’이 아니라 ‘마오쩌둥’이라 부르고 송대의 유명한 문인 ‘소식’ 역시 ‘쑤스’로 읽어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아니라 즉자대자적인 차원에서 상대방을 독립적인 자아로 인정해줘야 나 역시 그 대상으로부터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자아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Q∥『조관희 교수의 중국사 강의』1권은 고대 신화전설의 시대에서 신해혁명까지를 다루고, 내년 상반기에 나올 2권에서는 신중국의 수립부터 천안문 사태까지 담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가까운 이웃인 우리에게 중국사는 특히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A∥ 진부한 이야기지만 지정학적인 문제로 우리는 중국과 무관하게 살 수 없고, 실제로 우리 문화는 상당 부분 중국에 의지해 왔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 것을 알기 위해서는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그 첫걸음이 역사 공부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중국어를 외국어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경우 중국어를 단지 단어 암기나 표현 익히기 차원에서만 배우고 있는데, 실제로 하나의 언어는 해당 국가의 모든 역사 문화의 담지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배경 지식을 이루고 있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단어 몇 개 외우는 것을 외국어 공부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도 중국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중국사를 비롯한 다양한 역사를 바라보고 공부하는 일은 단순한 사실의 추구에 그치지 않고 우리 나름대로의 잣대로 과거 사실을 재단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현재 시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들을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끊임없이 새롭게 발견하고 공부하고 평가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 설파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사실은 여러 시대에 살았던, 살고 있는, 살아갈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의미가 드러난다는 뜻이겠지요. 결국 객관성의 담보 유무를 떠나서 역사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사실(事實)을 가려 뽑는 잣대는 공시적(共時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배러클러프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주장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Q∥중국 답사 여행을 자주 다니신다고 들었는데, 독자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지역이 있다면요?
A∥ 누군가의 말을 빌린다면, 중국 여행 1번지는 윈난(雲南)입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각자 다르겠지만, 크게 ‘뛰어난 자연 경관’, ‘이국적인 풍정(風情)’,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엿보기‘ 등으로 일반화할 수 있을텐데, 윈난은 이 모든 것을 갖춘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도(省都)인 쿤밍(昆明)에서 시작해 다리(大理), 리쟝(麗江)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고, 여행 매니아들의 일종의 순례 코스로 유명합니다. 사시사철 온화한 날씨에 맛있는 쌀국수를 먹으며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거닐다 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잊을 정도입니다.
Q∥앞으로 어떤 책들을 독자들에게 선보일 계획이신지 궁금합니다.
A∥ 제가 요즘 작업하고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저의 본래 전공인 ‘중국소설이론’ 분야에 대한 학술적인 작업으로, <중국 고대소설 독법>, <중국 고대소설 기법>, <중국 고대소설 서발>에 대한 기초 작업을 거쳐 궁극적으로 <중국 고대소설이론사>를 쓸 예정입니다. 둘째는 ‘중국문화탐방’인데, 그 중에서도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과 ‘장성’, 그리고 티벳이나 실크로드, 쓰촨, 윈난 등과 같은 오지 탐방이 주전문으로, 현재 <상그릴라를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숨어 있는 비경 10여 곳을 소개하는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번외 편으로 <천년 고도 교토의 꿈길을 걷다>(안그라픽스)라는 책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의 문화 유적을 찾아가며 일본의 역사를 조망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국 역사’에 대한 것인데, <중국사 강의>에 이어 내년에는 <중국 근현대사 강의>를 출간할 것이고, 이것과 연관해 <중국소설로 읽는 중국 역사>와 <전쟁으로 읽는 중국 역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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