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중국, 당시(唐詩)의 나라>를 펴낸 중문학자 김준연 교수 인터뷰


Q우선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는 대학교에서 주로 중국 고전 시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중국 고전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학생 때였습니다. 당시 소설가를 꿈꾸었던 저는 <삼국지연의>를 읽고 나서 그 불가사의(소설이 끝나기도 전에 주인공이 다 죽는)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 막연히 중문과를 진로로 생각했지요. 고등학생 때 국어 교과서에서 두시언해를 배우고 한시의 매력을 접하게 되면서 중문과 진학의 목표가 더 굳어졌어요. 그때는 아직 중국과 수교하기도 전이라 주변에서는 왜 굳이 비인기학과에 가려고 하느냐며 말리기도 했어요. 원하던 중문과에 들어갔던 까닭에 전공과목을 열심히 들은 편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당시>라는 과목이었지요. 특히 이상은이라는 시인의 시에 흠뻑 빠져 그의 시 한 수를 분석한 것을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답니다. 이때부터 당초 <삼국지연의>를 개작하려는 꿈을 뒤로 미루고 당시를 전공으로 삼아 지금까지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Q 왜 중국 당시에 꽂히셨는지요? 어떤 매력이 있어 끌리셨는지 그 계기나 까닭이 궁금합니다. 당시가 1000년 넘은 유물이지만 정치인들부터 아이들까지 중국인들에게 고루고루 사랑받는다고 들었습니다. A 왜 당시냐고요? 시와 당나라를 나누어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먼저 시에 대해 말해볼게요. 중국은 유구한 역사와 다양한 문화적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인 만큼 여러 장르의 문학이 고루 발달했어요. 시, 소설, 희곡, 산문 등 어느 하나 뒤처지는 것이 없지요. 그중에서도 시가 더욱 융성했다고 볼 수 있는데, 중국 사람들도 흔히 ‘중국은 시의 나라’라는 말을 흔히 해요. 문자 면에서 뜻글자인 한자를 쓰는 까닭에 이야기의 서술보다 함축적인 표현에 유리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가 싶어요. 한마디로 시는 중국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면 왜 당나라의 시, 즉 당시가 다른 시대의 것보다 유명한 걸까요? 제 생각에는 당나라가 시인에게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했던 것 같아요.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풍토에서 천하를 주유하며 맘껏 견문을 넓힌 지식인들은 자못 극적이었던 사회적 변화와 개인적 체험을 시에 쏟아냈어요. 관리선발시험 과목에 시가 있었다든가 계층을 가리지 않고 시를 애호했던 분위기도 영향을 주었겠지요. 

이백, 두보, 왕유, 백거이, 이상은 등의 기라성 같은 시인들이 이런 자양분 속에서 빛을 발한 위대한 시인들이죠. 그러니까 당시는 또 중국 시의 정수인 거예요. 중국문학의 정수인 시, 그중에서도 정수인 당시니 만큼 자체 발광이 엄청난 보물이 따로 없는 거죠. 정말 아름다운 것에는 저절로 끌려갈 수밖에요. 국보급 보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소중한 것이기에 중국 사람들도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당시를 가까이 하는 것 같아요. Q∥ 지난 10여 년 간 12,500km를 누비는 대장정을 꾸리셨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이 여정을 생각하고 기획하셨는지요? 꾸준히 지속적으로 이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을텐데요. 

A 처음부터 완성된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답사를 다닌 것은 아니었어요. 저는 2000년도에 처음 중국 땅을 밟아보았는데요, 시안(西安)에 가서 이제껏 책으로만 접하던 대안탑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그러나 이때는 그리 길지 않은 여행이라 당시(唐詩)의 유적을 찾아나설 생각까지는 미처 못했어요. 그러다 이듬해에 항저우(杭州)로 연수를 가면서 본격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얼마 후 대학에 자리를 잡고 학생들에게 본격적으로 당시를 가르치다 보니 내 눈으로 생생하게 체험한 당시(唐詩)의 현장을 들려주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거에요. 그래서 먼저 유명한 시가 창작되거나 배경이 된 곳을 하나둘씩 꼽아보게 되었지요. 2007년에 고려대로 옮겨오면서 ‘당시 기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전보다 체계적으로 답사를 진행했어요. 답사 경비를 마련하려고 기를 쓰고 교내외 연구비를 신청하다보니 덩달아 연구업적도 향상되는 효과도 있었어요. 10여 년 간 12,500km를 누빌 수 있었던 비결이요? 제가 지어낸 말이지만 ‘답사는 또 다른 답사를 부른다.’가 답일 것 같아요. 가끔 왜 히말라야 14좌 완등 소식을 접하잖아요? 꼭 히말라야의 8,000m 이상 봉우리 14개를 다 올라야 할 이유는 없지만, 하나를 오르고 나면 다른 봉우리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해요. ‘당시 기행’도 마찬가지여서 당시 한 수의 고향을 다녀오고 나면 또 다른 한 수의 고향이 머릿속에 어른거려요. 이게 다음 학기 방학 때 다시 답사 배낭을 꾸리게 되는 주된 이유지요. 전해지는 당시는 5만 수나 되어서 ‘완등’은 불가능하겠지만요.


서안 비림박물관 '탁본 시연'

Q 당시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특히 힘들었거나 또는 인상적이었던 경험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A 당시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이 쉽지는 않았어요. 쑤저우(蘇州)의 한산사(寒山寺)처럼 더러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곳도 있지만, 또 많은 당시 유적지는 산 넘고 물 건너며 발품을 팔아야 해요. 기본적으로 방학 때 답사를 다니다 보니 날이 덥거나 춥고, 혼자 다니면 외롭기도 하거니와 먹는 것이 부실해져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중국 음식은 혼자 먹기에 편하지 않거든요. 햄버거로 때우는 것도 하루이틀이고요. 한번은 시안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기차가 고장이 나서 꼼짝없이 네 시간을 기다려야 했어요. 시안역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인파로 메워져 겨우 얻은 자리를 비웠다가는 무거운 짐을 들고 서 있어야 할 판이었죠.(그 넓은 역사에 짐을 내려놓을 공간이 없다는 게 상상이 가나요?) 노트북을 두드리며 그렇게 네 시간을 꾹 참고 버텼죠.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건릉(乾陵)에 갔던 길에 양산에 올랐을 때인 것 같아요. 괜한 욕심으로 물도 챙기지 않고 가파른 산에 올랐다가 한여름 무더위에 죽을 뻔했어요. 인상 깊었던 곳으로는 이백묘원이 떠오르네요. 이백의 무덤을 보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어요. 난생처음 느끼는 묘한 기분이었죠. 당시 속에서 늘 신선 같은 풍모를 보여주던 이백이 풀더미 속에 들어앉은 모습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어요. Q 가장 좋아하거나 애송하는 당시가 있으면 한번 들려주세요. 당시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어떤 시인의 시부터 만나보면 좋을까요? A 저는 학부 졸업논문의 주제로 삼았던 이상은의 <비단 비파>라는 시를 가장 좋아해요. 이상은은 난해한 시를 쓴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어서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어쨌든 제 애송시이니 들려드릴게요. 비단 비파는 까닭 없이 오십 줄로 되어 있어 한 줄 한 기러기발마다 꽃다운 시절 생각하게 하네 장자는 새벽 꿈에 나비인가 헤맸고 망제는 봄 마음을 두견새에 기탁했다네 창해에 달 밝으면 진주에는 눈물이 있고 남전에 해 따뜻하면 옥에서 연기가 난다네 이러한 정들이 어찌 추억될 수 있으리? 다만 당시에 이미 망연자실했던 것을 이 시는 이상은이 만년에 일생을 회고한 시라고 해요.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세상의 온갖 변화에 내맡겨져 늘 감정의 요동과 풍파를 감내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이상은과 이 시를 좋아하는 것은 제 취향이고요, 일반 독자분들은 당시의 쌍두마차라 할 이백과 두보의 시 세계에 먼저 다가가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그러면 둘 중에 어떤 시인의 시를 먼저 읽어볼까 고민되시나요? 제가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연세가 마흔이 안 되신 분은 두보의 시를 먼저 읽고 마흔이 넘으신 분은 이백의 시를 먼저 읽으세요.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그러면 좋을 것 같아요. 당시를 처음 접한다면 <당시 삼백수>도 괜찮으리라 생각해요. 절구(絶句)라는 네 줄짜리 시부터 읽어보세요. 그리 어렵지 않게 당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형양 이상은공원 시벽

Q 혹시 앞으로 계획한 여정이나 집필 계획이 있으신지요? 앞으로 오랜 시간 교수님을 새롭게 사로잡을 만한 주제가 있다면요? A 솔직히 말하면 ‘당시’의 올가미에서 풀려나고 싶은 마음이 반, <중국, 당시의 나라> 속편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반이에요. 10여 년 당시만 쫓아다닌 것을 생각하면 이제 자유롭게 중국이든 어디든 다니면서 견문의 폭을 넓혀야 할 것 같아요. 당시와 아무 관련이 없어도 아름다운 곳은 또 얼마든지 있잖아요. 그렇지만 한편으로 제 업이 당시다 보니 당시가 없는 곳에 가도 그곳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네요. 사실 몇 년 전부터 당시 외에 다른 중국 고전도 유심히 지켜봐오긴 했어요. 감성에 호소하는 시와는 또 다른 세계, 즉 이성의 세계를 탐색해본 것이죠. 그 가운데 우리의 지혜를 북돋우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줄 내용들을 찾고 있어요. 탐색의 결과 생각이 무르익으면 또 독자 여러분들과 그것을 나눌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Q 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A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은 우리가 더 잘 이해해야 할 나라가 되고 있어요. 그러려면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여기에는 중국을 강대국으로 모시는 사대(事大)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지요. 단순히 중국의 명산대천을 유람하거나 음식을 맛보면서 발전상도 지켜보는 차원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양식을 지배하는 문화적 전통까지도 속속들이 알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당시를 중심으로 그 일단을 보여주는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요. 연전에 상하이에서 열린 APEC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탕쭈앙(唐裝)’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던 모습이 문득 떠오르네요. ‘탕쭈앙’은 말 그대로 당나라 시대의 복장이라는 뜻인데요, APEC회의에서 ‘탕쭈앙’을 맞춰 입은 것은 현대 중국이 나아갈 방향을 당나라에 두고 있다는 것이죠. 세계를 이끌어가던 그 당나라 제국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당시는 중국의 과거이면서 또 미래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중국에 갈 때 배낭에 여행책자와 함께 <중국, 당시의 나라>도 한 권 넣어가면 어떨까요? 배낭이 너무 무거워지겠지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