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2012년에 『詩에게 과학을 묻다』, 2013년에 『교실 밖 화학 이야기』를 펴낸 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A ∥ 비교적 바쁘게 지냈습니다. 2012년 후반에 고려대학교에서 KU-KIST 융합대학원이 설립되었는데, 뜻밖에 제가 초대원장을 맡게 되어 새 대학원의 출발을 위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었지요. 현재는 후임 원장도 오셔서, 저는 석좌교수로서 약간의 교육과 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는 두어 개 민간단체 회장 등의 책임을 맡고 있으며, 주로 과학문화확산 및 과학교육개선, 청소년 및 일반인들의 과학적 소양 향상을 위한 민간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과학영재학교 및 일반고교에서도 종종 강연을 해왔습니다. 국제 학술 단체도 관여하고 있고요. 그러나 이번에 궁리출판에서 새롭게 출간되는 『진정일 교수가 풀어놓는 과학쌈지』의 원고 준비 및 정리에 많은 정성과 시간을 할애하였습니다. 이런 종류의 책을 꼭 한번은 출간해보고 싶었거든요.
Q ∥이번에 출간되는 『진정일 교수가 풀어놓는 과학쌈지』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요? 이전에 펴낸 책들과 차별화되는 점들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 ∥ 이 책은 4부로 되어 있으며, 과학의 역사 속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웃지 못할 과학 에피소드들, 과학적 진실 속에 숨어 있는 신비로운 사실, 우리 앞에 다가온 새로운 과학 기술의 세계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전에 펴낸 책들보다 과학을 더 넓게 다루고 있으며, 과거 과학자들의 융합적 사고력과 현대 과학기술의 융합적 발전 모델들을 함께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인간들의 탐욕이 과학기술을 악용한 예나 그 때문에 일어난 무서운 피해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 올바른 과학기술인의 태도와 대중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더 깊은 이해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Q ∥평생을 화학연구실에서 보내셨습니다. 화학자의 시선에서 이 책이 시작된다는 것을 1부 첫 글인 <이태규, 한국 화학의 초석>이라는 원고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과학자이다』를 쓰기도 하셨던 이태규 선생님에 대해 더 이야기를 들려주신다면요?
A ∥ 이태규(1902-92) 교수는 우리나라 현대과학 100년사에 가장 우뚝한 과학자로 화학계의 큰 어른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어른인 척을 하지 않은 겸손한 인격자셨습니다. 격동기에 우리나라(1902-20, 1945-48) 일본(1920-39, 1941-45) 및 미국(1939-41, 1948-73)에서 번갈아 살다간 세계적인 화학자였습니다. 평생 교육과 연구밖에는 모르고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은 그의 생애는 오늘의 과학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지요.
이태규 박사에 관해 몇 권의 책이 출간되었고, 과천국립과학관 명예의 전당에서 그의 업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매우 어려운 시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1924년 일본 교토제국대학에 유학한 그가 한때는 조선인으로 공부해보았자 미래가 어둡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회의에 빠져들어 학업에 충실치 않고 술과 가깝게 지낸 시절도 있었지요. 다행히 선배 이희준(토목학과)의 충고와 배려가 그를 다시 학업의 길로 되돌려 놓았다고 합니다.
그는 1931년 교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후 지도교수인 호리바(堀場信吉, 1886-1968) 밑에서 계속 촉매 및 표면화학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세계의 화학발전을 주도하던 독일이 나치국가로 변하면서 학문세계가 어두워짐에 따라 이태규 박사는 미국행을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인에게 도미 연구비를 일본정부가 지원해줄리 없었습니다. 더구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미국에 가는 거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마저 보냈지요. 다행히 기업인과 가톨릭 교회 등의 도움을 받아 1939년 프린스턴대학으로 연구의 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더 확대되어 이태규는 1941년 미국에서 교토대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으나, 연구비도 거의 없는 가난한 조교수였습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해방과 함께 귀국한 그는 국내 정치의 혼란스러움에 시달리다, 모국을 떠나는 또 한 번의 가슴 아픈 경험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태규 교수는 이 모든 역경을 무릅쓰면서 고집스럽게 연구실과 집 사이만을 오가는 철저한 과학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일흔이 넘어 정부의 배려로 미국에서 귀국해 생을 끝낼 때까지 KAIST에서 교육과 연구에만 전념한 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에게서 참다운 학자의 학문과 생활태도의 본보기를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Q ∥19세기 들어 과학 분야가 급격히 세분화되면서 과학자들은 각자 자기만의 영역에 들어가버렸고, 일반 사람들도 과학이라는 담장을 제대로 못 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요즘 ‘융합’이라는 키워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A ∥ ‘융합’이라는 키워드의 부상은 인류문명사적인 면에서도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지식의 분화는 과학에서만 국한되어 일어난 것이 아니며, 전 분야에서 관찰됩니다. 한편 이 같은 현상이 총체적 해답을 필요로 하는 세계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음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들이 당면한 글로벌 규모의 문제들(인구, 식량, 환경, 정치, 건강, 경제 등)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지식인들과 현 지식체계는 이들 문제를 풀기에 턱없이 모자라는 형국이지요. 과학과 기술이 융합되어 과학기술이 된지 꽤 긴 세월이 지났고, 이제는 과학기술과 인문사회의 융합을 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분야를 없애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모든 분야를 전문적으로 알기란 인간능력으로 불가능하지요. 그러나 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소양을 갖추어야 융합적 협력이 가능하게 됩니다. 따라서 융합적 교육, 융합적 사고력과 융합적 인간상의 육성 등이 요구됩니다. 그런 점에서 비록 과학 분야로 제한적이긴 하지만, 제 이번 책이 그런 점을 강조하고 있음이 독자들에게 전달되길 바랍니다. 전문적 지식으로 무장된 융합형 인재의 양성이 시급합니다.
Q ∥4부 ‘새로운 과학과 기술의 전개’ 편에서는 등산복, 포스트잇, 냉동 이야기 등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소재들을 꺼내 들려주고 있습니다. 연구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과학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많이 바라보시는지요? A ∥ 현실 또는 세상과 무관한 과학이 있을 수 없으며,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런 과학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적 호기심의 만족을 찾아 과학의 길을 간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호기심에 그치지 않고, 일상의 현상이나 이용 및 문제 해결과 연관 지으려는 의지와 습성이 과학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화학 중에서도 고분자 화학을 전공해 항상 고분자재료의 중요성과 새로운 전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사실 일상이 과학기술과 아주 밀접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삽니다. 현대는 과학기술의 시대입니다. 따라서 우리 일상 모두는 과학기술의 소재가 됩니다. 과학기술교육이 이 점을 강조하여 시행되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과학교육은 추상적 현상을 너무나 중요시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예컨대 거의 모든 물리학적 내용은 그대로 우리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또 그 원리가 이용되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요! Q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A ∥ 저는 이 책이 과학이 참으로 넓고 깊게 인류의 역사 및 현실세계에 자리 잡고 있음을 말해주길 바랍니다. 미래에도 이런 점에서 변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과학기술과 사회는 끊임없이 상호 작용을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발전해 왔습니다. 과학기술이 인류역사에 항상 긍정적 영향만 미치지는 않았습니다. 과학기술인들의 사회인식이 중요하듯, 사회구성원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평가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융합적 사고방식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해법을 찾는 데 가장 옳고 효과적인 최선의 답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다가올 문제들도 예견할 수 있는 예지를 가르쳐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 책이 독자들의 사고영역과 사고력의 확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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