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독자들에게 첫 인사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각자도생에 지친 도시중장년의 더불어 사는 꿈을 이루어드리는 공동체주거 코디네이터 김수동입니다. 보통은 제가 주거 관련 일을 한다고 하면 주택분양 및 임대사업을 하거나 건축 관련 경력의 소유자일 것이라고 짐작들을 합니다. 하지만 불과 수년 전까지 저는 그런 일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SW프로그래머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IT컨설턴트, 벤처기업CEO의 이력으로 50대 초반까지 지내왔습니다.
대박의 꿈을 쫓았으나 대박은 멀어지고 좋았던 동료들과의 관계만 망가져 가는 오랜 벤처 생활에 회의를 느끼면서 뒤늦게 사회적경제, 협동조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50을 넘어서자 연이어 들리는 주변 어르신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고령사회 주거 문제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의 대안으로 도시 중장년 세대를 위한 <소그룹 공동체에 의한 협력적 주거>라는 공동체주거 모델을 개발하고 우리 사회에 널리 알리고자 2015년에 더함플러스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현재는 협동조합활동가, 50+활동가, 사회혁신가로 후기청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동체주거에 관심을 갖다 보니 하루빨리 아파트에서 벗어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2014년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의 공동체주택 입주자 모집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후 1년 반에 이르는 행복한 집짓기 끝에 2016년 8월 공동체주택 ‘여백’에 입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여백에는 3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다양한 구성의 10세대가 ‘쫌 앞서가는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저의 공동체주택으로의 주거전환 고민과 경험을 담은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책이 인생 후반을 맞이하여 조금은 다른 주거와 삶을 고민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공동체주택에 대한 이해를 돕고 성공적인 전환을 돕는 실용적인 지침서가 되었으면 합니다.
Q∥‘쫌 앞서가는 가족’이라는 제목이 특히 눈길을 끕니다. 어떤 의미에서 책제목을 이렇게 지었는지요? 공유주택 ‘여백’을 지어 사시면서 언론의 많은 포커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쫌 앞서가는 가족’이라는 제목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2015년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에 참여하면서 ‘50+ 누구와 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5060 여성 1인 가구를 위한 공동체주거 시뮬레이션 프로젝트를 했었습니다. 5주간에 걸쳐 매주말 1박2일의 일정으로 공동체주거에 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공동체주거에 대한 가상체험을 하는 프로젝트죠. 이 프로젝트를 마치며 참가자들과 스텝들이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을 찍었던 참가자께서 사진에 ‘쫌 앞서가는 가족’이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그때 그 말이 강하게 와 닿더라고요. 농담 삼아 그분께 나중에 제가 책을 쓰면 제목으로 쓰겠다고 했죠. 농담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후 tvN에서는 전통적가족의 해체와 함께 등장하는 다양한 사회적가족의 형태를 소개하는 ‘판타스틱 패밀리’라는 제목의 4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방송 제작진은 "듣도 보도 못한 존재가 가족이 되고, 세상 어디에도 없던 관계가 가족이 되는 현대사회에서 혈육이 곧 가족이라는 공식은 없어진 것인지,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족은 어떤 모습일지 담아내고자 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판타스틱 패밀리가 듣도 보도 못한 가족, 세상 어디에도 없던 가족이라면, 나는 공동체주거를 하는 사회적 가족을 ‘조금 앞서가는 가족’, 줄여서 정겹게 부른다면 ‘쫌 앞서가는 가족’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전통적 가족이 해체되고 1인가구가 빠르게 늘어가고 혼자 살다 혼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무연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전통적 가족에 머물러 살 것인가? 아니면 ‘쫌 앞서가는 가족’으로 살 것인가?
Q∥ 시니어 공동체주거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공동체주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0여 년간 10명의 대가족을 이루어 사셨던 경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직접적인 계기는 어머니를 보며 느낀 것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어머니는 지금도 저희와 함께 살고 계시지만 어머니 친구분들 대부분은 노년의 오랜 시간을 홀로 사셨습니다. 이분들의 경우 70대 초반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르신들의 삶이 70대 중후반을 넘어서면서 서서히 어려움에 봉착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보통의 서민 중산층 어르신들이 선택할 만한 마땅한 주거대안이 없는 거예요. “뭐가 문제일까?” 하는 질문으로부터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8년간 10명이 대가족을 이루어 살았던 이야기요~ㅎㅎ
제가 공동체주거에 관심을 갖게 되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 우리 부부는 결혼 후 핵가족으로 살아본 시간이 거의 없더군요.
지금은 늦은 나이도 아니지만, 그 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서른셋에 저는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신혼집은 서울 수유리의 빨래골이라는 북한산 자락의 10평 남짓한 작은 빌라. 그래도 방이 2개였죠. 맞벌이였던 우리는 결혼 채 2년이 안 되어 낳았던 딸아이를 춘천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형님 댁에 보냈죠. 결혼하고 2년이 채 안 되는 딱 고 시간이 우리 부부가 단둘이 지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큰형님 아들인 조카가 고등학교 3년을 빨래골 그 작은 우리 신혼집에서 기거를 했고, 이후에는 군생활 마치고 대구를 떠나 서울로 편입 온 처남이 대학원 진학까지 2년을 우리와 같이 살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더 큰일이 기다리고 있었죠. 춘천에서 직장생활하던 형님 회사가 서울로 이전을 하면서 이사를 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서울의 집값은 서민들에겐 늘 넘사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호 공생을 위해 형님네와 살림을 합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의정부에 50평대 신축 아파트 전세를 얻어 그 집에 우리 부부와 아이 3명, 형님네 부부와 아들 형제 4명, 어머니 아버지 2명, 그리고 큰형네 조카 1명, 이렇게 총 10명이 살았습니다. 의정부에서 6년, 서울에서 2년, 총 8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사이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아이들도 성장하면서 형님네와 분가를 했고, 이후 어머니는 지금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십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내와 형수, 두 사람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지혜롭고 현명한 두 여성이 힘들고 어려울 수 있었던 그 시절을 우리 가족이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았던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며... 놀라기도 하고, 일부는 불쌍하게 바라보기도 합니다. ㅎㅎ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가족이라는 큰 틀 안에서 더불어 함께 살았던 그 시간이 삶에서 가장 풍부하고 역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늘 복작거리며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함께해서 행복은 배가 되었으며, 초기에는 불편한 상황도 적지 않았지만 어른들이 계셔서 자제하기도 하고, 살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들더군요. 각자의 경제적인 형편은 여의치 않았지만 협력적 주거를 통해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주거를 이야기할 때,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제가 특별한 거부감이 없고 익숙했던 이유는 결국 이 같은 나의 과거 경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느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거죠.
Q ∥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독자들에게 ‘주거’는 가장 큰 숙제로 여겨집니다. 이와 관련하여 앞으로의 가족의 미래, 공동체의 미래는 어떠하다고 보시는지요? ‘홀로(1인 가구)’와 ‘같이(공동체)’가 공존하는 요즘입니다. 제가 공동체주거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집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생 후반의 삶을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면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래서 주거계획은 은퇴설계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가진 게 ‘집’밖에 없는 50+ 세대에게는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이제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의 해체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자, 메가트렌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고독력을 키우면서 혼밥과 혼술을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면, 그처럼 팍팍하고 우울한 모습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가족은 진정 해체되고 없어지는 것일까요? 『가족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라는 책에서 엘리자베스 벡 게른스하임은 가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형태와 특징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족은 안정된 관계를 원하며 동시에 개인적 욕구의 실현을 원하는 ‘개별화’된 자들의 연합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즉 사회적 가족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주택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가족, ‘쫌 앞서가는 가족들’을 위한 집입니다. 중장년들의 경우는 고령화와 장기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 공동체주택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가장 큰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집은 대표적인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집으로 돈 벌 기대를 하기 힘든 지금, 사람들은 건축업자에 의해 획일적으로 제공된 공간과 이웃과 소통이 단절된 주거환경에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중장년 세대의 경우도 1~2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주거비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노후에 사회적 고립상태가 될 것에 대한 염려가 매우 큽니다. 그러던 차에 마포 성미산마을에서 시작한 공동체주택 소행주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고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한번 해볼까”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과 같은 주택협동조합 운동도 시도되고 있고, 정부공공에서도 공동체주택과 사회주택에 대한 관심과 정책 추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공동체주택은 내 공간은 실용적으로, 함께하는 공간은 합리적으로 구성하여 주거비용의 절감이 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와 같이 한 공간 안에서도 서로 담을 쌓고 사는 단절된 관계가 아니라, 이웃들과 주거공동체로 사회적 가족을 이룸으로써 필요에 따라 이웃과 함께 하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행복하고 건강한 주거공간으로서 공동체주택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유의할 것은 함께 산다는 것이 생각처럼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규칙이 있고 다소의 불편함과 책임도 따릅니다. ‘공동체정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노력이 없으면 매우 힘든 것이 공동체주택입니다. 공동체주택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공동체주택의 장점과 효과에 대해서는 많은 공감을 합니다. 그러나 공동체주거의 핵심인 공동체의 개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양한 견해와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공동체주택을 추진함에 있어 입주 희망자들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공동체 형성과정을 거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일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은 주거공동체에 대한 각자의 기대와 우려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주택의 주거공동체에 대해 최근 미디어를 통해 표현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독립적이지만 고립되지 않은 사회적가족(Social Family) 협력적 주거(Co-living) 의식주가 아닌 연식주(緣食宙) 프레밀리(Friend + Family) 따로 또 같이 이 키워드들이 공통적으로 내포하고 것은 공동체의 장점은 물론 좋지만 나의 독립적인 삶 또한 중요하고 보호받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즉, ‘느슨한 공동체’를 원한다는 것이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에서 ‘공동체’는 이중적인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공동체’란 말을 들을 때, 장점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에 대한 구속과 이념적 거부감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동시에 작용합니다. 따라서 공동체주택의 확산을 위해서는 이러한 공동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느슨한 관계로서의 공동체주거의 현실적인 모습을 가시화함으로써 충분히 선택 가능한 삶의 형태로 일반 시민들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50+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과제는 아마도 자녀교육과 내집 마련이었을 겁니다. 좋은 학교를 나와야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었고, 집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자산증식 수단이었죠. 이와 같이 한때 성공과 노후대비의 상징이었던 집. 그러나 어느덧 세상은 변하여 대다수 서민 중산층 50+ 세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달랑 ‘집’ 하나인 것이 현실입니다. 집이 있는 사람은 노후의 삶을 지탱해줄 마지막 보루인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 집이 없는 사람은 갈수록 소득은 줄어드는데 하염없이 오르기만 하는 미친 전월세 가격에 집을 줄이거나 점점 도시의 외곽으로 밀려나가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반지하와 옥탑방, 고시원을 떠돌며 어렵게 번 돈의 상당부분을 주거비에 소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집’ 때문에 걱정입니다. 50+세대에게 집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닙니다. 자신의 노후대책이며, 자녀의 결혼자금이고, 은퇴 후 사업자금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집에 너무 많은 부담을 지우고 있습니다. '집' 이외 다른 자산이 거의 없기 때문에 뭘 하나 하려 해도 집을 팔거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결국 주거불안과 노후파산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따라서 최우선적으로 노년의 삶을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주거대책을 강구하여야 합니다. 그 대안의 하나가 바로 공동체주택입니다. 특히 공동체적 삶을 원하는 서민중산층 중장년세대에게 경제적으로 주거안정과 관계망 형성을 도모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Q ∥ 협동조합활동가, 50+활동가, 사회혁신가 등 많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독자들에게 귀띔해주신다면요? 저는 베이비부머 세대입니다. 한국의 베이비부머. 이들에 대해 참 말이 많습니다. 지면이고 방송이고 하루도 이들에 대한 뉴스는 거르는 날이 없을 정도입니다. 인터넷에서 ‘베이비부머’를 검색어로 검색한 결과, 눈에 띄는 제목 몇 개를 골라보았습니다. 벼랑 끝 베이비부머.... 700만 은퇴 쓰나미 온다. 베이비부머, 청년세대에 죽을 죄를 지고 있다. ‘낀 세대’ 베이비부머 더 숨막힌다. 베이비부머 10명중 6명, 은퇴자금 전혀 준비 못했다. ……. 끝이 없습니다. 매일같이 이런 소리를 들으면 누군들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이가 없는 것은 이렇게도 엄청나게 많이 베이비부머에 대해 염려를 쏟아내는 언론, 연구자, 정부 그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틈을 타 기업은 이들의 공포심리를 더욱 자극하여 보험이나 투자상품을 팔고, 심지어 막장 창업에 내몰고 있습니다. 누구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 하고, 다른 이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고 합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 살 만큼 살았고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직장이라는 우산을 내려놓고 보니 다시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저는 올해 서울시 보람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여 서울시50+서부캠퍼스에서 파트타임으로 생애설계 상담 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설명하기는 곤란하지만 가끔은 ‘이분은 무슨 걱정이 있을까?’ 싶은 분들도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가끔 상담을 요청하는 모습을 볼 때,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먼저 각자 처한 입장이 다르고 상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베이비부머’로 대표되는 공통의 불안과 염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꽤 여건이 좋은 사람조차도 불안해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서민 중산층들은 더욱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허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집단의 틀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집단의 문제가 모두 내 문제는 아닙니다. 내 문제를 올바르게 정의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아니 역으로 생각하면 집단의 문제가 나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집단의 문제에 매몰되어 있는 반면에, 누군가는 집단의 문제 속에서 기회를 탐색하기도 합니다. 집단을 분류하고 접근하는 것은 사회학자들, 정책연구자들, 또는 말하기 좋아 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기업조차도 시장을 매우 세분화하여 차별적인 접근을 해야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인데, 하물며 개인이 집단의 모든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염려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가요? 서울시는 베이비부머 세대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기회와 대안으로 접근을 하였습니다. 먼저 특정 출생년도를 기준으로 분류하고 부정적 인식이 너무 강하게 자리 잡은 ‘베이비부머’라는 말 대신 ‘50+’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송은주 박사는 4060세대를 과거 중장년이란 말 대신 밀도 높고 성숙한 청년이라는 뜻의 ‘후기청년’이라고 불렀습니다. 후기청년이란 이미 낡은 사회적 기준에 따라 억지로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맞는 삶의 패턴을 직접 디자인하고 자신만의 드라마를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나이듦을 배우다』(마거릿 크룩생크, 2016)의 번역자 이경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늙어가지만, 나이 듦을 제대로 상상하지도 않고 준비할 여유도 없다. 기껏해야 연금이나 보험을 들거나 일찌감치 안티에이징 마케팅에 휘둘릴 뿐이다. 그러나 노년은 훨씬 더 큰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사회적으로 노년을 위한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우리로서 노년은 더욱 블루오션이다. 그러므로 늙음에 대해, 나이 들어감에 대해 우리는 배워야 한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무엇이 노년의 의미이고 목적인지 성찰해야 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책임하게 쏟아지는 광고나 기사에 휘둘리지 말고 이 시대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노년, 나이듦에 대해 제대로 배워봅시다. 숨겨진 곳을 보고 수많은 문제의 틈 속에서 기회를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 1~2년 정도 전환기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를, 나의 욕망을 제대로 알고 탈소비적인 삶으로 전환한다면, 비록 벌이는 줄어들지라도 덜 쓰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제 저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2000년부터 2013년까지 14년간 벤처생활을 했습니다. 대박을 꿈꿨고 돈이 나의 욕망을 채워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저에게 너는 왜 그 일을 하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이 저에게 맡겨진 일 이었습니다. 돈을 왜 벌려고 하는지 묻지 않았고 무작정 끝을 알 수 없는 욕망을 쫓아 늘리고 채우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늘 시간은 부족했고 가끔의 여유도 하는 일이라는 것이 돈을 쓰거나 쓸 돈이 없어 한탄하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반복된 삶에 지쳐가며 처음으로 “나 지금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너는 무엇을 위해 지금 이 일을 하니?”라고. 어처구니없게도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남들은 나에게 묻지 않아도 나는 스스로 물었어야 할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막연히 마음 맞는 후배들과 함께 창업을 시작하면서 함께 일하고 소유하고 경영하는 그런 일터를 꿈꿔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만의 생각이었고 자본이 지배하는 주식회사에서 이익이 실현되기 시작하자 동료들과의 갈등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사람이 주인되는 일터를 다시 꿈구며 사회적경제, 협동조합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더함플러스협동조합은 직원(노동자)협동조합입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은 끊임없이 저에게 물어봅니다. “당신은 왜 그 일을 하려고 하십니까?”, “더함플러스의 소셜미션은 무엇이죠?” 아무도 묻지 않았던 벤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죠. 사회적경제 조직도 돈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기업이 추구하는 사회적가치에 대한 창업가의 확신과 굳은 의지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결국 그 질문이 저를 생각하게 했고 일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수시로 저에게 질문을 합니다. “너는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니?”, “그 일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니?”라고. 이 질문을 통해 이제는 과거와 같이 맹목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사회 중장년 세대의 인생재설계를 돕고 혁신적 방법으로 주거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협동조합활동가, 50+활동가, 사회혁신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잘못된 질문에 정답을 찾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잘못된 선택을 되돌릴 시간도 없고 회복력도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돈이 아닙니다. 과연 존엄한 노년은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여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답을 찾고 지금부터 그 시간에 이르기까지 리버스 엔지니어링 관점에서 재설계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문제를 뒤집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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