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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배근 작업을 하다 – 건축 일기 16


중학교 시절에 배운 수학 공부 중에서 내심 감탄한 건 인수분해였다. 꼬일 대로 꼬인 복잡한 2차방정식이 두 괄호의 묶음에 들어가 곱셈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게 신기했다. 마치 지저분하던 책상 위의 물건들이 필통 속으로 깨끗하게 들어가는 것처럼, 똑 떨어지는 똥덩어리가 아래로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그것을 풀고 나면 시원했다. 끙끙 앓던 머릿속 변비가 단박에 해결된 쾌감이 대단했다. 내 수준이 고작 고것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이과반이었다. 취향은 문과였지만 맹목적으로 국립대학을 가기 위한 방편이었다. 수학을 잘한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곧잘 쫓아갔다. 미적분을 풀 땐 무조건 그래프를 그려 문제의 요지를 파악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문제를 보자마자 연습장에 x축과 y축부터 먼저 그리고 원점을 잡았다. 그 원점에서부터 사고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요령이 희미하게나마 생기기 시작한다.


건축을 시작하고 파일을 박고, 땅을 파고, 흙을 들어내면서 나의 집은 어디를 원점으로 삼을까. 그 점이 늘 궁금했다. 파일이 암반에 의지한다지만 그 암반은 또 어디에 의지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던 것이다. 이 거대한 지구에 붙박는 것으로 파일을 박고 기초 콘크리트를 치는 것으로 이해를 했지만 그 또한 일시적일 것이다.


아무리 궁리해도 그것이 근본적인 원점은 아니었다. 내 좁은 소견에도 이 집이 콘크리트의 수명까지 지하에서 아무 일이 안 일어났을 만큼만 유지하고 지탱해줄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영원한 원점이 있기는 한 것일까. 있다면 어디일까. 없다면 또 내 집은 어디를 기준으로 삼는 것일까.


연습장 공책에 주욱 선분을 긋고 xy축을 잡듯 버림 콘크리트에 먹물로 좌표를 표시하였다. 이제 그 표시된 대로 철근이 놓이고 그 위에 사람들이 여러 사람이 들러붙어 철근을 깔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철근 배근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까지 땅을 파고 흙을 들어내고 철근을 바닥에 옭기는 것을 담당한 것은 중장비의 힘이었다. 이제부터 철근을 원하는 위치에 묶고 연결시키고 배열하는 것은 오로지 사람의 손과 팔뚝의 힘으로 해야 했다.


철근은 자체의 무게도 상당했다.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마디가 무수히 있어 서로 걸치고 의지하기가 좋았다. 작업자들은 하나는 그냥 들었지만 두 개 이상은 두 사람의 어깨를 필요로 했다. 두 사람에 어깨에 얹힌 철근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운데가 축 늘어졌다.


매트릭스의 좌표처럼 철근이 제 자리를 잡고 열병하듯 도열하기 시작했다. 한편에서 철근이 제 용도에 딱 들어맞게 끊고 구부리고 재단을 해주었다. 간이 철물소라도 차린 듯했다. 그에 따라 제작된 철근들이 서로서로 이어지고 받쳐주고 매듭을 지으면서 큰 망을 구축했다. 딱딱한 철근을 마치 엿가락처럼 가지고 노는 작업자들의 솜씨가 대단했다.


철근들이 교차는 곳마다 고정시키기 위해서 실철근으로 단단히 묵었다. 실철사를 대고 작은 드라이버 같은 것으로 몇 바퀴 휙 돌리면 그것은 나비 같은 모양을 하면서 철근을 이어주었다. 철근에는 지문처럼 마디가 있어 서로 잘 들러붙었다. 이것은 나중 콘크리트를 부었을 때 울퉁불퉁한 표면이 서로 더 잘 접착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 같았다.


이제 바닥에는 무수한 x축과 y축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2중으로 간격도 아주 촘촘했다. 철근은 어디에서 힘을 받을까. 이 바닥에서 촘촘한 배열에서 중심은 없었다. phc파일에 연결된 철근에 묶은 것에서 고정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였다. 대부분의 철근은 바닥에 작은 벽돌이 받치고, 서로가 서로에게 얽혀들어 의지하면서 어깨동무하는 데에서 힘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있다가 이제 곧 콘크리트를 부으면 그것이 결합되어 엄청나고 견고한 바닥이 되는 것이다.


걷기도 힘든 바닥만으로 공간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xy축에 z축을 더해야 한다. z에 해당하는 벽과 기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좌우로 펼친 면(面)에 높이가 더해지면 이제 공간(空間) 생긴다. 마냥 생기는 것은 아니고 천정을 덮으면 비로소 지하층이 완성된다.


복잡하게 얽힌 철근은 어디 한 군데를 꼭 집어 원점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서로서로가 연결시켜주고 연결되면서 3차원의 매트릭스를 이루었다. 중심이 없이 연결이 되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나란히 연결되는 것. 중심이 없기에 모든 게 중심인 것. 이 우주의 자명한 진리가 이곳 지하의 좁은 바닥에서도 어김없이 실천되고 있었다.


수평의 철근은 원재질의 크기로 길게 누웠으나 수직으로 서는 것들은 일정한 크기가 아니었다. 어떤 것은 지하에서 ‘죽고’(지하에서만 소용되는 것을 현장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기둥이나 벽면으로 이어지는 것은 살아나서 실철근으로 이어 달았다. 매트릭스의 한 영화장면처럼 무수한 공간을 쪼개며 철근이 조밀하게 제자리를 갖춰나간 현장.


국수가락처럼 누워 있던 철근이 바닥으로 흩어지기도 했고 어떤 것은 기둥으로 서기도 했다. 철근은 하나하나 보면 싸늘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오와 열을 맞추고 일정한 질서를 부여하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이제 곧 콘크리트에 묻혀 이 집의 뼈대를 담당할 철근이 일제히 기립하고 누우면서 질서를 잡았다. 철근은 내일이면 콘크리트와 만나서 이 집을 떠받치고 지탱할 것이다. 작업이 끝난 현장에는 무겁고 엄숙한 침묵이 지하에 내려앉았다. 마치 날카롭게 도열한 철근 위로 열병하듯 철새 몇 마리가 하늘 저쪽으로 날아갔다. 신기해하던 나를 보고 공사감독관이 한마디 던졌다. “야, 싸늘한 철근이 너무 아름답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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