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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있는 도시> 서문에서 “발각”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든 생각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현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책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정복과 지배로 점철됐고, 그 결과가 각 민족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그렇다면 어떤 원인으로 그러한 결과가 일어났을까. 왜 유럽이 다른 대륙의 원주민을 정복했을까. 몇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철의 등장은 식량의 생산성을 높였다. 이는 인구의 밀집을 초래하고 제도를 정비하여 우월한 힘을 가능케 했다. 한편 유럽인들이 원주민을 제거하는 데에는 총의 역할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유럽은 도시가 탄생하고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병원균도 창궐했다. 이로 인한 전염병이 면역성이 전혀 없던 원주민들을 초토화시킨 것이다. “총, 균, 쇠”는 인류 문명의 다양성을 함축하고 있는 열쇳말이지만 그 배후에는 도시가 있는 셈이다.


도시, 에너지가 모이기도 하지만 고약함도 들끓는 곳. 우리 대부분은 그런 도시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특정 영화를 1,000만 명이나 보고, 베스트셀러가 쉽게 조작 가능하며, ‘인터넷 검색어 1위’ 따위로 전 국민적 화제를 통일하는 집단주의 도시 문화” 속에서 산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물을 모르듯 평생을 도시에 산다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그 도시를 모르는 건 아닐까.


<철학이 있는 도시>의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는다. “퇴행적이고 참혹한 삶은 2015년 급기야 헬조선이라는 말로 곪아 터져나왔다”면서 “이 책은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를 당연시하는 태도에 제동을 걸며 한국인의 당대 이해 자기 이해를 돕고자 쓰였다. 대다수의 한국인이 오늘날 도시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왜 그렇게 살아가게 되었는지, 이 시대의 집합적 삶을 그 근원에서 네비게이팅하는 정신성과 그 뿌리는 무엇인지, 우리 자신에게 비추어주는 책이 되려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배후를 이렇게 밝힌다. “이 나라의 대도시가, 10년의 외유를 하고 돌아온 이의 눈에 돌연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논의되는 도시는 반절은 이방인인 어떤 사람에게 발각된 도시다.”


발각. 숨기던 것이 드러남. 책에 으레 수록되어 있는 서문에서 저 문장을 읽는데 “발각”이라는 단어가 돌연 눈을 툭 쳤다. 이는 단순히 그냥 드러나는 건 아니고 무슨 일을 몰래 꾸미려다가 들통이 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부정적인 의미가 숨어 있기도 하다. 서울에서 산다는 게 작정하고 무슨 잘못을 저지르는 건 아니겠으나 누구에겐가 나의 삶이 고스란히 발각당하는 것만 같아 일순간 발칙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쾌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궁리의 이 달의 신간에 많이 주목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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