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사람들 : 첫 어린이 호스피스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



*이 글은 『어린이 호스피스의 기적』을 발췌해 재구성했습니다.



2016년 4월 1일, 이날은 ‘쓰루미 어린이 호스피스’의 개관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곳은 일본 최초의 민간 어린이 호스피스로, 시설 전체가 흡사 어린이 놀이터처럼 꾸며져 있었다. 놀이도구와 악기도 가득했다. 이곳을 짓기까지 분투한 사람들과 목소리를 낸 환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시이 고타 (『어린이 호스피스의 기적』 저자)

#1. 호스피스를 짓기까지

기타히가시 사키(이하 사키)

안녕하세요. 저는 쓰루미 어린이 호스피스의 개관식에 환자 대표로 참석한 기타히가시 사키라고 합니다. 저는 3살 때 뇌종양이 발병한 이후 5살 때 재발했고, 9살 때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지금도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상황이지요.

하라 준이치(이하 하라)

저는 어린이 난치병 중에서 12퍼센트를 차지하는 소아암 전문의입니다. 젊었을 때의 저는 오직 소아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살았습니다. 항암제를 얼마나 투여해야 하는지, 효과가 없다면 어떤 약으로 바꾸어야 하는지, 새로운 치료법은 나오지 않았는지……. 하지만 저는 치료에 매진하면 할수록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다타라 료헤이(이하 다타라)

저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의사들은 환자의 죽음을 하나의 실패로 여겼습니다. 만약 10중 1명이 죽는다고 한다면, 그걸 마치 9승 1패로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어떻게든 10승을 올리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저 역시 울부짖는 갓난아기가 살 가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생명을 하루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애썼어요.

니시데 유미(이하 니시데)

간호사인 저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 종합병원 어린이병동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제가 본 것은 아이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병원의 환경이었습니다. 저는 간호사라는 직업에 점점 자신을 잃어갔습니다.

다타라

저도 이후 다른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 번민은 계속되었어요. 그러던 중 영국에 중증 어린이 환자를 위한 의료체제와 호스피스 시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시이

그리고 거기에서 ‘헬렌 하우스’를 둘러보셨군요?

다타라

네. 헬렌 하우스(현 헬렌&더글러스 하우스)는 영국에 세계 최초로 세워진 독립형 어린이 호스피스입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전문가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무 걱정 없이 마음껏 놀 수 있었어요. 부모도 아이를 맡기고 쉴 수 있었지요. 그러나 당시 일본에는 그럴 만한 시설은커녕 소아과 의사조차 거의 없는 상황이었어요.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완화의료 인정 의사 코스를 밟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영국처럼 종합적인 지원이 일본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2. 프로젝트에 착수하다

이시이

쓰루미 어린이 호스피스를 짓기 전에 봉사 단체를 발족하셨어요. ‘어린이 호스피스 프로젝트’ 선언이요.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다타라

어린이 호스피스 프로젝트는 2010년 7월에 열렸던 심포지엄에서 발족된 단체입니다. 그로부터 1년 전, 영국 헬렌 하우스의 창립자와 관계자들을 일본에 초청하여 교류 세미나를 열었던 적이 있어요. 당시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이 1년 후에 다시 모여, 일본에 어린이 호스피스를 세우기 위해 의지를 다진 것이지요.

이시이

그런데 왜 바로 시설을 짓지 않고, 이런 단체를 발족하셨나요?

하라

막대한 자금이 들기 때문이에요. 일본에는 성인 호스피스는 많이 있지만, 어린이 호스피스를 짓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호스피스는 방대한 환자 수로 운영되는데, 매년 37만 명이 암으로 목숨을 잃는 성인 환자에 비해 소아암 환자는 너무 적기 때문이지요.

단체에서는 난치병 아이와 가족을 위한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환자의 경우 병원이나 자택으로 놀이 전문가나 보육교사 등을 파견하는 방문 지원도 했지요.

이시이

그런데 프로젝트 이사회 명단에 낯선 이름이 있어요.

다카바 히데키(이하 다카바)

네, 저는 IT 기업을 운영하는 다카바입니다. 20대부터 시작한 사업이 잘되고 결혼도 하면서 행복한 미래가 펼쳐질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중증 뇌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의사의 권유로 교류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고, 이후 일본에 그런 시설을 짓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선생님의 부탁으로 프로젝트의 대표이사가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의료기술은 없지만 자금 융통, 인재발탁, 부지 확보에 관한 노하우가 있었으니까요.

#3. 어린이 호스피스를 열다

이시이

그렇게 2016년 4월, 쓰루미 어린이 호스피스가 개관했어요.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다타라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시(市)의 지원으로 처음 부지가 선정되었을 때, 합의를 마치고 설계를 의뢰하려던 때였어요. 고급 주택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는데, 별안간 그쪽에서 반대 의견이 나왔습니다. ‘호스피스는 죽어가는 애들이 모이는 시설인데, 그런 곳이 생기면 땅값 떨어지는 거 아니냐’고 하더군요.

니시데

호스피스가 개관하고 나서도 계속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그동안 일본에는 없던 활동이라, 저희 직원들은 전례 없는 상황에 난치병 아이와 가족을 맞아들였어요. 특히 이곳을 한두 번 이용하고 만 아이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흰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는 무력감에 빠졌습니다.

하라

호스피스 직원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이곳을 찾았던 아이들의 병세를 생각하면 한두 번 이용한 것도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떠난 아이들의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동안 병원이나 집에서는 할 수 없었던 시간을 호스피스에서 보낼 수 있었다고 하셨어요.

사키

호스피스가 생기기 전에는 미래는커녕 그날그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퇴원한 후에도 학교에는 친구 하나 없었고, 노는 것도 학업을 따라가는 것도 여의치 않았어요. 면역력이 낮아서 외출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에서 평범한 아이들처럼 놀고 공부하면서, 성장을 체감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 투병 경험을 바탕으로 아픈 아이들을 품어주고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하라

제 목표는 시설 하나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소아의료 현실을 바꾸는 것입니다. 머지않아 쓰루미 어린이 호스피스가 아이들과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함양해온 것들이 이 사회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