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1학기, 고향 거창에서 부산으로 전학 가던 때. 하늘의 불이 꺼지면 그저 숨결에도 간당거리는 시골의 호롱불 밑에 있다가 눈구멍을 쑤실 만큼 들이닥친 전등과 네온사인은 마음을 홀랑 빼앗아 가기에 충분히 휘황했다. 잠시 거쳐 가는 동네라고 짐을 부린 곳은 거의 유곽이나 진배없는 하꼬방 집들이었다. 그 다닥다닥 어깨를 맞댄 이웃집의 정말 코딱지만한 곁방에 또 세들어 사는 일가족이 있었다. 젊은 부부와 아들 그리고 홀어머니. 밀양이 고향이라고 했던가. 사내는 저녁 어스름이면 문현동으로 리어카를 몰고 나가 카바이드 불빛 아래 멍게, 해삼과 담치 국물을 팔았다. 길거리 포장마차에 딸린 호구지책이라 집안 살림은 전적으로 노인의 몫이었다. 부부는 낮에 잠을 자고 밤에는 거리로 나가는 듯했다. 아이는 나보다 두어 살 아래였다. 막 글을 깨치는데 ‘이’라고 써야 할 이름을 꼭 ‘10’으로 썼다. 아이는 작대기의 어느 쪽에 동그라미를 놓아야 할지 무척 어려워했다. 그 골목에서 얼추 상대가 맞는 나하고 많이 놀았다. 아이는 저녁마다 세수를 했는데 나하고는 퍽 다른 방식이었다. 할머니가 받아준 세숫대야의 물에 시꺼먼 발을 먼저 씻은 뒤 그 구정물로 얼굴을 매매 딱았다. 신기한 건 하나 더 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추석으로 접어들 무렵 녀석이 그 말갛게 씻은 얼굴에서 입을 벌려 달력을 보며 이렇게 말하는 날도 있었다. 할매, 내 제삿날이 언제야? 그땐 녀석의 성이 아니라 이름을 부르면서 골목에서 놀았을 텐데, 그 일들만 몇 줄 기억에 남고 이름조차 깨끗이 잊었다. 그러나 그 음성은 최근 들어 나를 찾아와 이렇게 생생하게 가끔 귓전에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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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물로 닦아도 말갛게 씻겨나오던 어린 날의 얼굴......김기찬 선생님의 사진집이 생각나는 글 재밌게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