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전 미리읽는 책한쪽 ┃심해 The Deep


2001년 캘리포니아에 있는 몬터레이 만 수족관(Monterey Bay Aquarium)에서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다운 영상을 본 뒤 나는 심해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리고 전혀 예기치 않게 내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내가 본 영상은 몬터레이 해양연구소(Monterey Bay Aquarium Research Institute)가 몬터레이 해곡의 심해에서 촬영한 동물들이었다. 그곳에서는 믿기 힘든 생명체들이 발견되고 있었다. 놀라운 생김새나 당혹스런 색깔을 지닌 종도 있었고, 푸른빛의 위협적인 섬광을 뿜어대는 종도 있었다. 또 어떤 것은 무지갯빛 섬광을 번쩍이며 너무나 우아하게 굽이쳐 지나갔다.


머리나 꼬리가 없는 희한한 동물들은 육감적인 춤 속에서 리본이 물결치듯 몸을 꼬았다가 풀었다. 그 중 하나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꾸던 진홍색 문어는 우스꽝스럽게 생긴 두 개의 큰 ‘귀’를 자랑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게 보였다. 문어는 마치 우주의 별들 사이를 떠다니는 것 같았다. 당당한 우아함과 과장되게 느린 동작으로 문어는 외투막을 풍선처럼 부풀리기도 하고 원반처럼 납작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표피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심해의 호박으로 변했다가, 밤을 보내기 위해 몸을 나팔꽃처럼 길게 꼬아서 위로 단정하게 접은 모습으로 갑자기 재등장했다. 그러다 결국은 자신만의 세계, 끝없는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놀라운 세계였다! 나는 그 영상을 연속으로 네 번이나 봤다. 최고의 특수효과팀이라도 들통 날 수밖에 없는 조작의 흔적을 찾아,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화면을 샅샅이 훑었다. 머릿속 생각이 그 영상처럼 돌고 돌았다. “이럴 수는 없어…… 이 동물들은 진짜가 아니야…… 특수효과를 아주 멋지게 해냈군…… 완전히 듣도 보도 못한 거야. 이게 다 팀 버튼의 작품인 게지!” 그러나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컴퓨터 처리 영상이 아니라 모방할 수 없는 실제의 존재라는 것을 차차 눈으로 확인하면서 생각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어떻게 지구에 저런 경이로움이 있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어째서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걸까? 왜 누구도 1분, 아니 단 1초 동안 걸음을 멈추고 서서 여기 아래, 바로 우리 행성 안에 이런 생물이 존재하고 있다고 외쳐대지 않는 것일까?” 나는 외계 생명이 최초로 발견되어 촬영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은 감정과 충격에 휩싸였다! 나는 감탄했고, 할 말을 잃었으며, 엄청나게 놀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주 공간을 최후의 프런티어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끝내지 못한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바로 여기, 지구 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_로버트 D. 밸러드


(좌) 유리문어. 이빨이나, 독, 껍질과 같이 적절한 방어 무기가 없는 심해 동물들은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 포식자들의 눈을 피한다. (우) 검은악마아귀 암컷. 바다 괴물 같은 외모이지만, 크기가 포도보다 크지 않다.  이 아귀는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서 최대한 에너지를 절약한다. 

미친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첫 눈에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사랑의 힘에 놀란 사춘기 아이처럼 내 삶은 갑자기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섰다. 그것은 마치 장막이 걷히고, 예상하지 못한 더 넓고 더 유망한 새로운 세계가 드러난 것과 같았다. 파리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했다. 바로 심해. 나는 영원한 어둠으로 덮인 거대한 물을 상상했고, 우리의 시선에서 멀리 떨어진 그곳, 창의적인 자연이 만들어낸 초현실 풍의 작품인 그곳에서 헤엄치는 환상적인 생물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나를 사로잡은 이미지들은 재빨리, 그리고 조용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 주제를 다룬 기록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게 남은 것은 가슴 아픈 실망감뿐이었다. 영상 속 동물들은 훌륭했다. 그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였지만, 살아 있는 이미지가 그러하듯 쏜살같이 지나가는 모습은 나의 호기심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우선 내게 필요한 것은 바다의 어둠 속에 숨어 사는 이 놀라운 존재를 나만의 속도로, 내가 원하면 몇 시간이라도 계속 볼 수 있게 해줄 책이었다. 나만의 내면으로의 여행을 시작하고, 액체로 된 하늘의 중심에서 고동치고 맥박이 뛰는 바다 속 이방인들과 정신적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나는 약간의 거리와 자유가 필요했다. 나는 그들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했다. 얼마나 깊은 곳에서 살며, 어떻게 생식을 하고, 얼마나 크고 이름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나는 우리 대다수가 접할 수 없는 심해의 경계에서 포착된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를 모아놓은 책, 그리고 모든 이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책, 간단히 말해서 심해를 밝힐 그런 책을 꿈꾸었다! 이 책을 너무나 간절히 원했고, 이 책이 충족시켜야 할 의미에 대해 아주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직접 그것을 실현시키기로 결심했다. 나는 전 세계의 연구진들, 현 해양학계의 주요 인물들을 방문했고, 이들은 잇따라 나의 프로젝트에 협조하겠다고 자발적으로 동의해주었다. 이 책은 나의 비전과 정확히 일치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미적·지적 감각 모두를 ‘충족’한다. 더불어 우리를 사로잡을 만한 힘을 지닌 작품이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너무나 연약하며, 우주에서 기적처럼 유일한―그렇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기 전까지는―거대한 살아 있는 사슬에 우리가 속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작품이다.  

2006.5.2. 파리에서 클레르 누비앙

_들어가는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