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전 미리읽는 책한쪽┃파울 운슐트의 『의학이란 무엇인가』


생명 = 몸 + X ?!


다음과 같이 가정해보자. 우리는 인체의 여러 기능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런 뒤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기능을 설명하려고 한다. 어디에서 시작하면 좋을까? 몸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상당히 많은 양의 정보이다. 우리의 감각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우리 눈에는 얼굴과 몸의 색깔이 보인다. 코로는 냄새가 전달된다. 귀로는 흉곽과 복부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 이 중 어떤 정보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밤낮으로, 그리고 건강상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음식이 몸에 흡수된 뒤에는 변형된 모습으로 배설된다. 피부는 이따금 건조해진다. 힘을 쓰거나 놀랐을 때, 혹은 열이 날 때면 땀구멍에서 땀이 솟는다. 발열은 체온이 항상 일정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상처가 나서 피부가 벌어지기도 하고 다시 아물기도 한다. 모발은 자라고 빠지기를 반복한다. 눈물은 흘렀다가도 마른다. 몸은 우리에게 상당히 많은 양의 정보를 알려준다.

우리의 관찰 대상을 살아 있는 몸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죽은 사람도 우리에게 매우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해부된 시체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코, 눈, 귀, 입과 같은 외부기관과 함께 내장기관들이 보인다. 여기에서 다시 우리는 색깔, 형태, 체액을 관찰한다. 대단히 많은 정보가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까? 그리고 이 모두는 무엇 때문에 나타날까?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질까? 우리 몸의 특정 상태로 인해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런 상태 중 일부를 일컬어 '병이 났다'고 표현한다. 왜 이런 상태가 발생하는지 알고 싶어진다. 이를 위해 우리는 '건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정상'과 '비정상', 그리고 건강과 병을 가르는 기준은 다양하다.


그런데 문제가 또 하나 있다. 인간의 몸은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 몸에는 구체적 형상이 없는 그 무언가도 존재한다. 바로 생명 그 자체이다. 몸은 생명의 지시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 생명이 빠져나가면 인간의 몸은 기능을 멈춘다. 인체와 인체의 기능들을 이해하기 위해 살펴보는 과정에서 인체에 세 가지 층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먼저 물질로 된 몸이 인식된다. 다음으로는 이 물질로 된 몸 안에서 우리가 정상, 혹은 비정상으로 구분하는 특정 과정들이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지시하는 층위가 존재한다. 몸에서 이루어지는 기능들을 지휘하는 무엇이 있다. 이것은 몸에서 특정 작용들이 일어나도록 유도한다. 몸은 이 '무엇'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죽는다. 하지만 이 '무엇'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부르는 이름은 아주 많아서 문화권마다 각기 다르다. 시대에 따라 달리 부르기도 했다. 인간의 몸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부르는 이름으로 가장 많이 사용해 온 것이 바로 정신이다. 영혼이라 부르기도 한다. 몸은 영혼 없이 살아가지 못한다. 영혼이 없는 몸은 죽은 몸이다. 몸과 마음, 몸과 영혼, 혹은 육체(corpus)와 정신(spiritus) 중 무엇으로 부르든 똑같다. 둘 중 하나는 보이지만, 하나는 보이지 않는다.

인체에 마음, 영혼, 정신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첫 번째 지표이다. 인체와 그 기능에 관해서 논할 때에는 구체적 기질이든 인식 가능한 물질이든 간에 여기에서 시작된 논리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인체의 특정 작용 및 그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특정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드러나지도 않고 실체도 없으나 몸을 살아 있게 하는 실제 구성요소를 가정해야 한다. 이러한 가정의 근거는 무엇인가? 아마도 살아 있는 몸과 죽은 몸이 보여주는 차이일 것이다.

조용히 죽어가는 사람이나 막 숨을 거둔 사람에게서 삶과 죽음의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처음에는 잠든 듯이 보이지만, 죽은 사람을 만져보거나 이후 사체의 변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죽음이 또 다른 상태임을 알게 된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분명 사체에서 무언가가 사라졌고,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이 보인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한때 그것은 그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다.

죽음의 과정에서 반드시 혈액이 손실되지는 않는다. 죽음의 순간에 살아 있는 몸에서 빠져나가는 물질은 없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생명과 죽음이 나뉘는지 알지 못할 뿐더러, 생명의 어느 요소가 사라짐으로써 죽음이 초래되는지에 대해서도 모른다.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선사시대의 공식조차도 타당해 보인다. 즉, 생명은 몸에 X가 더해진 결과라는 것이다.


X를 정의해 보려는 과정에서 현재까지 우리가 도달한 곳은 추측과 가정에 불과하다. '영혼'이나 '정신', '마음'을 얘기할 때 우리는 흔히 비유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영혼은 '더럽혀'지거나 '어두워'질 수 있으며 '순수'해야만 한다. 이 말들은 수 세기동안 매우 구체적인 의미를 지녀왔으나, 오늘날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비유로서만 효력을 발휘하는 듯하다. 그러나 영민함에 있어서 과거의 사상가들과 차이가 없는 오늘날의 사상가들은 '마음'이 '상처받기 쉽기'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며 현시대의 파생된 X들을 태연하게 인정한다. 어쨌든 소용없는 일이다. 영혼이든 마음이든 정신이든, 혹은 그 무엇으로 X를 불러왔건 간에 그것은 생명에 필요한 요소이며 살아 있는 몸에 없어서는 안 될 구성물이다. X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없지만, X를 빼고 살아 있는 몸의 기능을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X를 위한 이름들은 그 해석의 배경에 따라 때로는 종교적 의미로, 때로는 세속적 의미로 선택된다. 어떤 풍습에서는 문화적 맥락 속에 각인되기도 한다. 단지 'X"만 가지고 논하는 일은 그다지 변별력이 없다. X1, X2 …… X3로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X1을 '영혼'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정신'이라 부르는 X2와는 다른 작용을 한다. X3은 '마음'이며, 마찬가지로 X1이나 X2와는 또 다른 작용을 한다. 더 세분화 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 인지학의 창시자-옮긴이)의 학생들이 잘 알고 있는, 몸을 구성하는 에테르나 천체의 일부분들이 바로 X의 변형들이다. 게다가 유럽과 미국에서 이제 널리 인정받고 있는 기(氣)라는 구성체는 본 고장인 중국에서 2천 년 전부터 정미로운 숨결이라는 개념으로 규정되어왔고, 보이지 않는 X는 이제 서구 사회에서 일종의 생명력이나 에너지라는 한층 변형된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의 생명법칙은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정확한 법칙은 이제, ‘생명은 몸에 X1, X2, X3 …… Xn을 더한 것’이다. 많은 명칭들이 도열한 모습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X가 실제로 다른 X에 인접하여 존재하는지, 혹은 X1에서 Xn에 이르기까지 사실은 단 하나의 X이지만 그것을 포괄할 만한 이름을 모를 뿐인지, 아니면 감히 이름붙이기 어려운 것인지 하는 문제들에 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X는 결국 X일 뿐이다.

모든 것이 가리키는 지점은 바로 일상 활동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 그리고 출생, 성년, 죽음이라는 궤도 속에서 임무를 완수하고 자기 위치에 맞는 매일의 의무를 수행하는 능력이 상실된 상태이다. 이것이 '병고'로 구분되는 상태를 규정한 최초의 기준이었다. 오늘날에는 더 분화된 관점이 존재한다. 우리는 한 손으로는 기저질환을, 다른 손으로는 눈앞에 드러나거나 실체를 가진 불쾌감을 구분해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은 눈앞에 드러나거나 실체를 가진 불쾌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발열은 결과적으로 그 자체로는 질병이 아니지만, 더 깊은 질병의 표현이자 징후이다. 환자가 자신의 기저질환을 초기부터 반드시 지각하는 것은 아니다. 고혈압이 그 예이다.


고대에도 실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몸의 병과,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정신인 X의 병을 구별하였다. X는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눈이나 다른 감각기관의 지각 범위 너머에 숨어있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현실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몸과 마찬가지로 X 역시 건강할 수도 있고 병이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만약 고열이 나거나 다리가 부러지는 등, 매일의 활동을 수행하지 못할 만한 상태에 놓인다면, 몸에 병이 난 것이다. 만약 몸에는 분명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그 사람의 행동에 이상이 생겨 일상을 수행하지 못할 만한 상태가 된다면 X에 병이 난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시 X에게 이름을 붙여보자. 우리는 사람들에게 '정신이상'이나 '정신장애', '정서불안'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정신이 병들었다'고 말할 때 실제로 병이 난 곳은 어디일까?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가정이나 가설일 뿐이며, 이는 병이 났다고 말할 수 있는 몸, 그 몸에 나타나는 손상에 비견되는 유사구조에서 뻗어 나온 것이다. '영혼의 질병' 뒤에는 다른 무엇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은 현재 우리의 상상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이해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 물리적·실제적 상황과 지적 가설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일은 장기적으로나 단기적으로나 불가능해 보인다.

당연히 몸과 X는 동시에 건강할 수도 있고, 동시에 병이 들 수도 있다. 한편, 몸은 건강하지만 X가 병들기도 하고, 그 역도 가능하다. 이미 고대부터 인간의 생명현상을 지켜보아 온 관찰자들은 몸에 병이 생기면 처음에 건강했던 X가 병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마찬가지로 X에 먼저 병이 나도 결과적으로 몸에 병이 발생함을 알았다. 이 과정이 일어나는 방향에 따라 정신신체의학(psychosomatics)이라 부르거나 신체정신의학(somatopsychics)이라 부른다. 이 용어들은 해당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현실(몸)과 추론(정신)이 한 단어로 연결됨으로써 마치 동등한 두 배우자가 함께 있는 상황을 연출한다. 죽음만이 몸과 X를 갈라놓을 수 있으므로 사실상 이들은 부부나 다름없다. 많은 사람들이 데카르트가 처음으로 몸과 영혼을 분리시켰다고 오해한다. 데카르트가 몸과 영혼을 분리시켰던 물질적 사고방식은 분명 이전 사상가들과는 다른 방식이었으며 새로운 서광이었다. 그러나 이미 천 년 전에 최초의 분리가 존재했었고, 당시에는 몸과 X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이 사건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문가들의 눈에 병들고 비정상적인 상태로 분류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무지한 관찰자들에게는 몸과 X가 매우 정상적이고 건강해 보일 수도 있다는 개념이 아주 오래 전에 생겨났다. 이렇게 확대된 개념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중국에서 나온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발견된다. 사마천은 고대 중국에 대한 역사를 기록하면서, 여러 지역에서 진료활동을 한 편작의 전기도 함께 썼다. 편작은 제 환공(桓公)을 처음 알현한 자리에서 환공에게 병이 있으며 바로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공이나 신하들 눈에는 전혀 병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으므로 결국 편작에게는 퉁명스러운 대답만 돌아왔다. 그 뒷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결국 제 환공이 죽고 이 순회의사가 숨겨진 병의 기전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병이 있어도 일상 활동에 문제가 없어서 건강해 보이는 경우, 이를 분간하는 능력은 고대에 매우 특별한 기술이었다. 요즘은 늘 있는 일이라 누가 알아주지도 않지만 말이다. 고혈압 환자는 자신은 물론 주변에서도 체력감소나 행동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 종양이 자라고 있어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편작은 환공에게 병이 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러나 오늘날 의사들이 고혈압이나 폐암을 초기에 진단할 수 있는 까닭은 ‘과거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몸의 작용에 관한 이론이다. 그리고 이 이론이 바로 의학이다. 의학이 출현해야만 '병리적'이라고 여겨지는 몸의 작용이 초기에 발견된다. 몸의 일상적 효율이 저하되어 병리적 상태로 진행되는 일은 초기 단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므로 이 작용들은 병의 첫 번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들이 병리적 상태로 구분되는 이유는, 보통사람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전문가들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훈련되지 않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론 교육을 받은 의사라면 이 작용들이 계속 진행하여 결국 병이라는 본래의 기준을 충족시킬 것이고, 그와 동시에 몸의 작용력은 (아마 X도 함께)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히 상실되리라는 사실을 예측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