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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전 미리읽는 책한쪽┃ 화이트헤드의 수학이란 무엇인가


이 책 저자인 화이트헤드는 속된 말로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의 학문적 무게와 위상에 비추어보면 이름이 턱없이 낯선 학자다. 한국에 화이트헤드 학회가 있고 유수 연구자가 그의 학문세계를 부지런히 밝히며 전파하고 있음에도 그의 대중적 인지도는 매우 낮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터라도 그의 책을 많이 읽고 인지도를 높이자는 캠페인성 발언이 아니다. 정작 덧붙이고 싶은 얘기는, 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위상이 확고한 만큼 그의 학문에는 그만한 필적가치가 있다는 것이며, 인지도에 어두워 그것까지 놓쳐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화이트헤드를 소개하다 보면 자연스레 등장하게 되는 그의 제자이자 동료인 버트런드 러셀과 비교해서도 그의 글이 어렵고 무겁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로서, 낮은 인지도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어왔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주요 저서들은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어 한글로 옮기는 작업부터가 엄청난 도전일 정도다. 그렇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이 그의 사상과 학문을 꾸준히 천착하는 이유는 그 반대급부의 필적가치가 독보적으로 빼어나기 때문이다. 끝 모를 깊이와 규모에 정확성까지 갖춘 그의 지식체계가 난해함은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의 경우 난해함조차도 제대로 아는 사람만의 덕목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묘한 매력까지 더한다. 그래서 전공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은 특유의 난해함까지 덕목으로 수용하기 벅차서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앞서 단서를 달았던 대목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화이트헤드의 저서들 가운데 그야말로 유일하게 난해하지 않은 예외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 『화이트헤드의 수학이란 무엇인가(An Introduction to Mathematics)』인 것이다. 이 책은 그의 긴 학문 편력에서 각별한 시점에 출간되었다. 책이 처음 세상에 나온 1911년은 그의 나이 만 50세가 되는 해인데,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주로 대수학을 가르치는 전문 수학자였다. 이후부터 10여 년 동안은 무대를 런던 대학으로 옮겨 수리물리학을 가르치며 수학을 기반으로 한 자연과학 탐구에 주력했다. 그리고 이후 남은 생은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교수로 활동하며 마감했으니, 그의 학문체계는 수학·물리학·철학이라는 세 가지 순수학문을 아우르며 연주한 3중주의 화음인 셈이다. 특히 이 책이 나온 시점은 가장 원숙했던 저자의 수학적 역량을 결집해서 러셀과 함께 ‘수학의 원리(Principia Mathematica)’ 3부작 중 1권을 출간한 직후로서, 그가 새로운 교육이념에 입각하여 수학의 대중적 계몽을 실천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이 조그만 책자에 담긴 의미는 다각도로 새길 만한 것으로서, 단순한 소개(Introduction)의 수준을 넘고 범위도 수학(Mathematics)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이 지닌 표면적 가치는 수학이라는 학문을 대가의 풍모가 담긴 친근한 육성을 통해 차분히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변에 책이 넘쳐나도 막상 세계 최정상급 학자의 체온이 담긴 교양수학 해설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희귀하다. 물론 100년 전에 쓴 책이기에 현대수학 내용이 상당부분 빠져 있다는 점은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 어떤 현대수학의 새로운 분야 내용에도 공통으로 적용되는 보편적 수학원리에 초점을 정확히 맞추어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 대해서는 현대수학 언급이 결핍되었다는 지적이 적절치 않음은 2,300년 전에 나온 유클리드의『원론』에 대한 경우와 마찬가지라 하겠다. 굳이 아쉬워할 것이 있다면, 수록된 내용의 선별과 강조에 담긴 저자의 높은 안목과 깊은 배려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이 책이 이미 고전이 되었다는 점을 우선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이 지닌 이면적 가치는 앞서 밝혔다시피 난해함에 가려진 화이트헤드의 사상체계를 비전공자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창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 책이 다른 그의 저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읽기 쉽다고 해도 결코 가볍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본문 5장에 나오는 “문명의 발전은 되새기며 생각하지 않고서도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연산규칙의 수가 증가함으로써 이룩된다”는 문장은 단순한 수학 지식의 소개에 그치지 않고 그의 세계관 및 역사관도 함께 반영하는 표현이다. 이 문장이 화이트헤드의 수학 관련 어록 가운데 백미라면, 그의 철학 관련 어록의 백미는 “서양철학의 역사는 플라톤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라는 문장이다. 이 문장이 실린 그의 업서 『과학과 근대세계』가 자신의 거대한 학문체계 2기와 3기 사이에 들려주는 음감 풍성한 앙상블이라면, 이 책은 1기와 2기 사이에 친절한 해설을 곁들이며 들려주는 간주곡에 비유할 수 있다.


“왜 수학이 간결한 정리, 아름다운 증명, 엄청난 응용이라는 여섯 단어로 압축해서 표현되는 학문인지 보다 진지하게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더 많은 가치와 행복을 발견하리라 믿는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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