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전 미리읽는 책 한쪽┃『생물다양성은 우리의 생명』


생물다양성은 원래 ‘자연의 다양성(natural diversity)’ 또는 ‘생물학적 다양성(biological diversity)’으로 쓰이다가 하버드대학의 생물학자 윌슨이 둘 중 후자를 축약하여 책의 제목으로 쓰면서 널리 퍼진 용어이다. ‘Biodiversity’라는 용어는 생물학계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이제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거의 일상용어가 되었다. 그러면서 ‘biodiversity’는 원래의 ‘biological diversity’의 개념 범주를 넘어 엄청나게 다양한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로부터 이어지는 개념을 새로운 용어로 재포장하여 다시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어찌 됐건 이제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이란 용어는 ‘생명(life)’, ‘야생(wilderness)’, 또는 ‘보전(conservation)’의 동의어로 쓰이거나 종종 이 모든 걸 포괄하는 만능어로 쓰이기도 한다.


1987년 미국 기술평가국(U. S. Office of Technological Assessment [OTA])이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의하면 생물다양성이란 “생물체들간의 다양성과 변이 및 그들이 살고 있는 모든 생태적 복합체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1989년 세계자연보호재단(Worldwide Fund for Nature)은 “생물다양성이란 수백만여 종의 동식물, 미생물, 그들이 담고 있는 유전자, 그리고 그들의 환경을 구성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생태계 등 지구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풍요로움이다”라고 정의했다. 다른 정의들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 것으로 보아 생물다양성이란 일반적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 전체(Life on Earth)를 의미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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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들은 지금 수준의 환경 파괴가 계속된다면 2030년경에는 현존하는 동식물의 2%가 절멸하거나 조기 절멸의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번 세기의 말에 이르면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생물다양성의 감소에 관한 이 같은 예측들이 나와 있어도 현대인의 대부분은 그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물론 “예전에는 참 흔했는데 요즘엔 통 볼 수가 없어”라고 말하면서도 설마 그들이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을까 의아해 한다. 나는 그리 머지 않은 과거에 우리 곁을 떠난 한 동물을 알고 있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 과정을 밟던 1980년대 내내 나는 코스타리카와 파나마의 열대우림에 드나들었다. 코스타리카 고산지대의 몬테베르데 운무림 보존지구에서 아즈텍개미(Aztec ants)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던 시절 어느 날 밤 숲 속에서 나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오렌지색의 황금두꺼비(golden toad)를 보았다. 어른 한 사람이 제대로 들어앉기도 비좁을 정도의 물웅덩이에 언뜻 세어봐도 족히 스무 마리는 넘을 듯한 수컷 두꺼비들이 마치 우리 옛 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선녀들처럼 멱을 감고 있었다. 그들에게 방해가 될까 두려워 숨소리마저 죽인 채 나무 뒤에 숨어 그들을 관찰하는 내 모습은 영락없는 나무꾼이었다. 다만 그들이 수컷 선녀들이란 게 아쉬울 뿐이었다. 그들은 고혹적인 몸매를 뽐내려는 듯 다리를 길게 뻗기도 하고 물웅덩이에 첨벙 뛰어들어 헤엄을 치기도 했다. 그 해 1986년 나는 그들을 딱 두 번 보았고 그게 내가 그들을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960년대 중반 황금두꺼비를 처음으로 발견한 미국 마이애미 대학의 파충양서류학자 제이 새비지(Jay Savage)는 온 몸이 거의 형광에 가까운 오렌지색으로 뒤덮인 작고 섬세한 두꺼비를 보고 누군가가 그 두꺼비를 통째로 오렌지색 에나멜 페인트 통에 담갔다 꺼낸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고 한다. 깜깜한 열대 숲 속에서 손전등 불빛에 비친 황금두꺼비들을 보면 정말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인가 되묻게 된다. 그런 그들을 과학자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89년 5월 15일이었다. 결국 국제자연보호연맹은 2004년 그들을 완전히 절멸한 것으로 보고했다. 처음 발견된 시점으로부터 치면 불과 38년 동안 그저 10km2넓이의 고산지대에서 살다가 영원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나는 2003년에 출간한 내 에세이집 『열대예찬』에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들이 벗어놓은 옷가지라도 한두 개 숨겨둘 걸” 하는 나무꾼의 한탄을 늘어놓은 바 있다.


1960년부터 세계적으로 개구리를 포함한 양서류의 개체수가 적어도 매년 2%의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개구리,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금방 지구의 종말이 오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호들갑이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은 더 이상 21세기의 지식인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이 모두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하면 사회 전체가 부유해지고 번영하며, 그러한 과정은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통제되는 시장경제에 기초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자유교환의 손익은 거래의 구성원에 달려 있다고 가정하지만 때로는 교환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이들이 손해를 보거나 이익을 보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손해나 이익을 경제학에서는 외계(externality)라 부르는데 인간의 경제활동에 의해 환경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다.



- 본문 중에서 (최재천, '생물다양성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