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전에 미리 읽는 책 한쪽┃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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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에 저항하는 정신은 어느 정도 개인이 자신을 한 집단과 동일시하는 데서 온다. 나치 수용소에서 가장 꿋꿋이 버틴 사람은 스스로를 강고한 당(공산주의자들)이라든지 교회(사제와 목사), 유대가 긴밀한 국가의 일원으로 여기는 이들이었다. 개인주의자들은 국적과 무관하게 무너졌다. 그중에서도 서유럽의 유대인들이 가장 무방비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강제수용소 안에서조차) 비유대인들에게 경멸당하고 유대인 공동체와의 끈끈한 결연마저 없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홀로 견뎌야 했다. 인류 전체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서야 중세의 게토가 유대인들에게는 감옥이 아니라 요새였음을 깨닫는다. 게토가 유대인들에게 부여한 극도의 결속감과 ‘우리는 남다르다’는 의식이 없었다면 그들은 폭력과 학대가 만연했던 저 암흑의 세기를 불굴의 정신으로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중세가 회귀했던 우리 시대 10년 동안, 그들은 옛날의 그 방벽이 없어진 유대인들을 붙잡아 으스러뜨렸다.

개인이 고문 혹은 죽음에 직면했을 때는 자기 개인의 능력에 의지할 수 없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는 듯하다. 그에게 유일한 힘의 원천은 본연의 자신을 추스르는 것보다는 강력하고 영광스러우며 파괴되지 않을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믿음은 기본적으로 동일시 과정, 개인이 본연의 자신에서 영구불멸하는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과정이다. 인류에 대한 믿음, 후세에 대한 믿음, 종교나 국가, 인종, 당 혹은 가족의 운명에 대한 믿음 따위가 그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우리가 영원불멸의 무언가를 눈에 그리지 않는다면 무엇에 자신을 의탁할 수 있겠는가?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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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한 사람들은 또한 가장 확고부동한 추종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공동의 노력을 쏟았을 때 가장 자립심 떨어지는 사람들이 패배에 가장 꿋꿋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사람들이 어떤 공동의 사명에 가담하는 것은 소중한 과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실패했을 때 개인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공동의 사명이 실패로 돌아간다 해도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즉 그들 자신의 결점이 폭로되는 상황은 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그들의 신념은 줄지 않아 어떤 새로운 시도에도 기꺼이 따라 나선다.

좌절한 자들이 지도자를 따르는 것은 그 지도자가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다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지도자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성취다. 지도자가 그들을 어디로 이끄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맹신자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