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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뗏목을 완성하다 – 건축 일기 17


바라보기만 해도 전기가 쩌릿쩌릿하게 흐를 것 같은 철근. 그러나 그 싸늘한 철근의 아름다움은 가슴에 묻기로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철근은 아름답다는 것이 곧 강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할 것이다. 밤이 길었다.


사무실에 들러 간단히 일을 처리하고 나는 듯이 자유로를 달렸다. 콘크리트가 제대로 굳으려면 일찍 시작해서 해가 있을 때 마쳐야 했다. 오후의 남은 햇볕을 어느 정도 쬔 상태로 밤을 맞이해야 곱고 튼튼한 콘크리트가 완성되는 것이다. 오늘은 낮이 짧을 수밖에 없다.


현장에 도착하니 아름다웠던 철근의 풍경은 하룻만에 자리를 내주고 사정없이 뭉개지고 있었다. 레미콘 두 대가 공급하는 칙칙한 콘크리트가 공중으로 길게 연결된 호스를 통해 콸,콸,콸 쏱아지고 있었다. 긴 호스를 잡고 원하는 장소에 콘크리트를 원하는 만큼 붓는 작업자와 레미콘 옆에서 아코디언 같은 조절기를 맨 기사가 긴밀히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고함과 수신호가 공연하듯 잘 어우러졌다.


굳기 전의 콘크리트는 부드럽기가 이를 데가 없어 사방으로 튀기도 잘했다. 작업자들의 바지는 물론 옷과 얼굴도 온통 콘크리트 자국으로 얼룩이 졌다. 등에도 얼룩이 묻어 콘크리트 무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혹 눈으로 튈 지도 몰라 고글을 썼는데 그곳에도 예외가 없었다. 가히 콘크리트 공화국이었다.


작업자들의 장화가 푹푹 빠졌다. 철근을 딛고 서느라 몹시 힘이 드는 듯 했다.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나무쓰레가 몇 번 왔다갔다 했다. 우툴두툴하던 콘크리트 표면은 물기가 떠오르면서 표면이 밍겅(거울)처럼 빛났다. 하늘을 나는 새가 있다면 제 모습을 여기에 비춰봐도 좋으리라.


물은 모든 것을 녹이는 강력한 용해제이다. 물속에 오래 놀다보면 손가락 끝이 우툴두툴해지는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물이 살을 분해하는 현상의 전조이다. 오래 지나면 단단하던 살은 불어터져서 물에 흔적도 없이 녹아들 것이다. 물은 모든 것을 포용하느니 물이 달려들어 녹이지 못하는 것은 없다.


식물의 광합성은 햇빛, 엽록소, 물이 작용해서 포도당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거칠게 말하자면 물이 햇빛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엽록소를 얽어매서 포도당 곧 양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콘크리트 또한 물에 모래, 자갈, 시멘트를 섞은 것이다. 시멘트에 물을 가해 섞으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 응결 작용이 일어난다.


로마시대에서부터 사용했다는 콘크리트는 이처럼 시멘트가 물과 반응하여 굳어지는 수화반응(水和反應)을 이용한다. 물이 시멘트와 반응해서 풀처럼 변해 모래와 자갈을 둘러싸서 꼼짝 못하게 얽어매는 것이다. 이 과정에 햇빛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광합성이 지구의 생명에 영양분을 공급하듯 콘크리트가 있어 이 세상의 건물을 가능케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격자무늬 촘촘한 철근배근 사이로 콘크리트가 착착 배어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콘크리트를 빈틈없이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콘크리트가 물을 배경으로 하니 기포가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구나 호스에서 반죽된 콘크리트가 주입될 때 공기도 잽싸게 따라서 떨어진다. 기포는 조금만 방심하면 콘크리트의 틈을 두더지처럼 파고드는 것이다.


이를 방치했다간 나중 굳고 난 뒤에 두더지들이 일어나 도망가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부실공사를 예방하려면 지금 이를 남김없이 제거하고 차곡차곡 채워야 한다. 진동을 일으키는 작은 구멍의 호스로 연결된 기포제거기가 구석과 구석을 공략하면서 착실하고 확실하게 다졌다. 작고 오동통하게 살찐 두더지들이 일망타진되었다.


작업방식은 한꺼번에 그 넓은 바닥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밑에 먼저 절반의 두께로 콘크리트를 깔았다. 그리고 일정시간이 흐른 뒤 그 위를 다시 콘크리트로 도포했다. 말하자면 간격을 두고 그 사이에 햇빛에게 많이 노출되도록 하고, 층을 만들어 햇빛을 그만큼 더 넣어주는 장치였다. 햇빛과 접촉하는 표면적을 되도록 늘리겠다는 의도로 보면 되겠다. 오늘은 하늘도 풍부한 햇빛으로 큰 부조를 했다.


직각으로 구획된 표면. 완성된 콘크리트 바닥은 염전인가 할 정도로 그 표면이 정돈이 되었다. 싱싱한 물고기라도 한 마리 솟구쳐 오를 것 같은 바닷가 어장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이제 벽으로 기어오를 기둥 철근만 남은 채 바닥의 철근은 콘크리트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둘레에는 멸치잡이를 할 때 펼쳐논 그물처럼 철근이 둘레를 따라 도열했다. 이제 이들은 다시 철근을 이어붙여서 지하의 벽을 만들고 1층, 2층의 벽으로 뻗어나간다.


이윽고 콘크리트 작업이 끝났다. 건설 현장의 용어로 ‘공구리 작업’ 무사히 끝난 것이다. 철근은 수평으로 전해오는 압력에 대해 저항을 한다. 콘크리트는 수직으로 전해오는 압력에 대해 저항을 한다. 이제 콘크리트와 철근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딱딱히 굳어 이 건물에 전해오는 위로부터의 압력과 무게와 지층에서 웬만한 지진과 파동이 덮쳐도 끄떡없이 집을 지켜낼 것이다.


운동 경기에서 응원가로도 널리 불리는 <아파트>의 가수, 윤수일. 그가 부른 <제2의 고향>이란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사방을 몇 바퀴 아무리 돌아봐도 보이는 건 싸늘한 콘크리트 빌딩숲 정둘 곳 찾아봐도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나에겐 제2의 고향 거리를 하루 종일 아무리 걸어봐도 보이는 건 한없이 밀려오는 자동차 가슴은 답답하고 머리는 띵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제2의 고향 밤이면 빌딩 위에 걸린 초생달 쓸쓸한 내 마음을 달래주누나(........)”


콘크리트 빌딩숲은 나도 그간 그닥 좋아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것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도시에 사는 이상 누구나 콘크리트에 순치될 대로 순치되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같은 날은 술 한 잔을 건너뛸 수가 없다. 공구리 공사를 무사히 끝낸 마당에 윤수일의 노래는 메들리로 한 곡조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공간 감각이 퍽 떨어지는 내게 비로소 바닥의 면적이 눈으로 확실하게 가늠이 되었다. 이제 저 바닥을 짚고 집이 일어서겠다. 아직도 건물의 전체 구조를 확실히 파악 못하는 내게 2차원의 바닥이라도 확실한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저물면서 빛나는 콘크리트! 앞에서 나는 조금 감격했다. 하지만 현장 경험이 풍부한 내 친구 건축감독관의 냉정한 한마디. “이봐, 친구. 이제 겨우 콘크리트 뗏목 하나 완성된 것에 불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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