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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책 이야기┃혼자 읽기 어려운 철학 고전, 다시 읽기『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출판사에는 하루에도 몇 편씩 원고가 투고된다. 1년 전, 서양철학사를 한 권으로 정리한 원고가 출판사 문을 두드렸다. 화이트헤드가 2천 년 서양철학의 역사는 플라톤 철학에 대한 주석이라고 했다던데, 원고는 이 유명한 말을 책 한 권으로 호기롭게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글을 쓴 사람은 철학 전공자가 아니라 철학 독학자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한 철학자의 사상에만 깊이 매몰되어 있지 않았고, 쉬운 언어로 서양철학사가 전개되어온 전체적인 흐름을 찬찬히 짚어주고 있었다.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형식으로!

내 서가에 잠들어 있는 철학 고전들, 플라톤의 『국가』, 스피노자의 『에티카』가 철학사 전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읽어나가야 하는지 원고를 읽다보니 한마디로 감이 잡혔다. 읽다가 만 철학 고전을 다시 꺼내어 읽고 싶어졌다. 읽고 나면 다른 책을 읽도록 부추기는 책,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조건 중 하나에 충실히 부합하는 원고였다.

책작업을 시작한 뒤, 초고에는 없던 삽화가 추가되었다. 독자들과 함께 철학의 세계를 여행할 이 책의 길잡이, ‘고슴도치 도우치’가 캐릭터로 만들어졌고, 난해한 철학개념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도 추가했다. 모든 그림은 저자가 손수 그려 넣었다. 삽화가 풍성한 철학책을 읽는 것은 이 책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저자는 글과 이미지를 총동원하여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철학을 친숙한 대상으로 바꾸어놓는다.

철학자도 아닌 저자는 왜 철학을 쉼 없이 공부하고 철학책까지 쓰게 되었을까? 이 책의 저자, 심강현 선생은 20여 년 전 철학과 만난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주로 몸의 구조와 기능을 다루는 의학 과목들에 파묻혀 지내던 의과대학시절, 심리학을 비롯한 정신과학을 접하고 나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인간 내면에 대한 갈증도 깊이 느꼈죠. 그런 갈증은 지금까지 철학과 인문학 공부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생각 없이 몸으로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몸의 관성대로, 어제처럼 오늘을 살아도 괜찮을까? 이런 의문이 두려움처럼 찾아왔을 때, 저자는 철학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기 생각의 주인이고자 애썼던 철학자들을 만나기 시작한 그에게 스피노자와 니체의 말은 가장 큰 무게감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네 감정에 충실해라.” “가장 고귀한 삶은 남들이 말해준 삶이 아니라, 네 스스로 고귀하다고 여기는 것을 향해가는 삶이다.” 그의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낸 두 철학자, 스피노자와 니체를 이해해보고 싶었던 마음은 두 사상가가 서양철학사에 등장하기까지의 긴 이야기로 그의 관심분야를 넓혀주었다.

같은 산이라도 정상을 오르는 경로가 다양하듯이, 철학이라는 산봉우리에 이르는 길도 다양할 것이다. 저자에게 철학의 시작이 스피노자와 니체였다면, 내 인생의 철학가이드는 누구일까?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운명의 철학자 한 명쯤은 꼭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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